조선의 철학

서로 해치지 않고, 어긋나지 않는 길을 찾아서/ 이경구 한림대 교수/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1. 8. 08:52

 

문화

서로 해치지 않고, 어긋나지 않는 길을 찾아서

등록 :2016-01-07 20:03

 

현대화가 김호석의 ‘황희 정승’(1988). 조선 시대 인물화의 전통을 유감없이 창신(創新)한 걸작이다. 그림의 압권은 다른 색깔을 가진 네 개의 눈. 복수의 눈은 보는 사람의 처지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과거와 현재, 현상과 본질 등 시공을 꿰뚫는 현자의 얼굴인 듯도 하고, 곤경을 감내하고 올바름을 추구하는 선비의 의지가 엿보이기도 하며, 욕망과 도덕 사이에서 갈등하는 보통 사람의 속내가 드러난 듯도 하다. 호락논쟁에 활약했던 많은 학자들의 내면도 이 같지 않았을까.
현대화가 김호석의 ‘황희 정승’(1988). 조선 시대 인물화의 전통을 유감없이 창신(創新)한 걸작이다. 그림의 압권은 다른 색깔을 가진 네 개의 눈. 복수의 눈은 보는 사람의 처지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과거와 현재, 현상과 본질 등 시공을 꿰뚫는 현자의 얼굴인 듯도 하고, 곤경을 감내하고 올바름을 추구하는 선비의 의지가 엿보이기도 하며, 욕망과 도덕 사이에서 갈등하는 보통 사람의 속내가 드러난 듯도 하다. 호락논쟁에 활약했던 많은 학자들의 내면도 이 같지 않았을까.
[이경구의 조선, 철학의 왕국 -호락논쟁 이야기]
마지막회 (20) 지금 여기에서의 호락논쟁
고백하건대 연재 내내 추상적인 철학 개념은 가급적 피하려 했다. ‘철학’이란 말도 왠지 골치 아픈데, 하물며 한자(漢字)와 유학(儒學) 세계의 철학 개념이라니! 기사 제목에 미발(未發), 성범(聖凡), 인물성(人物性) 등을 드러내, 아침부터 독자의 머리를 지끈거리게 할 수는 없잖은가. 그렇다고 철학을 다루면서 철학 개념을 끝내 피할 수도 없다. 그것마저 피하면 이제껏 보아온 인상적인 장면들은 그저 호사가의 취미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호락논쟁 개념들의 현재적 의미를 마지막 주제로 잡았다. 그리고 논쟁이 오갔던 개념 중에 지금에도 생생할 수 있는 키워드로는 ‘마음’과 ‘타자’를 선택했다.

마음의 참모습

마음 곧 심(心)에 대한 논의는 동양철학의 최대 주제 가운데 하나였다. 호락논쟁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논쟁이 오갔던 ‘미발’(未發)이란 개념은 감정이 일어나기 이전의 마음을 뜻했다. 유학에서 마음이란 인간의 본성(本性)과 정감(情感)의 통합체로 정의되었기 때문에 마음의 본질에 대한 해명은 인간의 정체를 묻는 것과 다름없었다.

따라서 마음의 정체에 대해서 수많은 정의가 있었다. 어린아이의 그것처럼 천진한 상태, 명상이나 수양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고요한 경지, 잠자고 있을 때처럼 감각이 꺼져버린 무의식, 아니면 미친 사람처럼 정신이 나가버린 모습일 수 있었다. 물론 대부분은 수련이나 명상을 통해 평정을 누리는 상태로 이해했다.

다양한 정의만큼이나 마음의 평정을 얻는 길도 여러 갈래였다. 쉽게는 일상 행동 하나하나에서 체험할 수 있었고, 학문과 사유를 통한 단련이 있었으며, 감정과 감각을 분리해 마음의 본체로 직행하는 길도 있었다. 유학에서는 일상에서의 체험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도, ‘미발을 아는 것이 가장 어려우니, 조금이라도 틀리면 멍한 상태로 떨어진다’는 경고도 많았다. 마음 알기란 참으로 쉬운 듯하면서도 한없이 어렵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마음이란 어떤 의미인가. 해부학이 등장하자 마음이 깃들어 있다고 여겨졌던 심(心)은 피를 돌리는 기관에 불과하게 되었고, 정신의 중추는 뇌(腦)로 확인되었다. 이제 우리는 인간의 정체를 몸의 중추인 두뇌와 연관해 설명하고 있다.

뇌가 지배하고 지력(智力)이 가속화하자 우리의 생각과 감각은 미증유의 세상으로 뻗어나갔다. 라디오와 청각이, 영화·티브이와 시각이 결합했고, 컴퓨터와 스마트폰은 아예 가상의 현실을 만들어냈다. 누구나 알다시피 이 확장은 앞으로도 무한할 것이다. 그런데 그 세계는 감각의 무한 증식과 정신의 몰입이라는 또 하나의 얼굴을 지니고 있다. 그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지금은 ‘마음 다스리기의 대표선수’인 스님들까지 나서서 스마트폰 사용의 절제를 고민하게 되었다.

수도자들은 항상 ‘도고일척(道高一尺) 마고일장(魔高一丈)’을 경계한다. 도(道)가 높을수록 마(魔) 또한 커진다는 이 일침은, 성찰 없는 과학의 질주 혹은 인간이 해명될수록 정작 인간은 감각이나 욕망에 종속되는 역설을 꼬집는 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마음의 본질을 부단히 질문했던 과거의 경험을 다시 음미해 볼 수 있다. ‘마음이 무엇인가’에 대해 과거의 철학은 대답을 제공하지 못한다. 그러나 마음을 주인으로 삼고, 욕망과 감각을 종속시켰던 그들의 작업은 오히려 현재에 더 의미를 발한다. 철학과 행동을 일치시켰던 그들은 우리에게 마치 경건한 종교인이나 구도자처럼 다가온다. 그들의 경험을 보며 금옥(金玉)을 캐는 일은 우리의 몫이다. 아마 일상에서 명상·독서·사색의 영역을 확보하거나, 지나친 감정과 감각을 스스로 제어하거나, 물신화(物神化)한 욕망을 경계하며 가끔이나마 절제를 즐기는 일 등이 아닐까.

호락논쟁 열쇳말 마음과 타자
‘마음’은 인간의 정체 묻는 것
‘타자’ 대한 성찰도 여전한 숙제
현재 질문 답할 때 논쟁 유의미
겸손한 주체들 연대할 수 있기를

타자에 대한 성찰

호락논쟁 가운데 성인(聖人)과 보통 사람의 관계에 관한 ‘성범심동이’(聖凡心同異)와 인간과 사물의 동일성에 관한 ‘인물성동이’(人物性同異)는 이따금 격렬한 사회 논쟁을 유발했다. 보편주의에 입각해 동일성을 강조하는 입장과 분별주의에 입각해 차별성을 강조하는 입장이 서로 맞섰기 때문이었다.

왜 하필 이때에 보편주의와 분별주의가 떠올랐을까? 당시에는 바야흐로 새로운 타자(他者)들이 부각되고 있었다. 사회 내부에서는, 양반·남성에 비해 열등하다고 보았던 중인·서민·여성 등의 역량이 신장되었다. 밖에서는 오랑캐로 멸시했던 청나라의 융성이 확연했다. 서민·여성이 성인군자가 될 가능성이 커질수록 명분 질서는 요동쳤고, 오랑캐가 유교 문명을 이룩할수록 화이(華夷) 질서는 뿌리째 흔들렸다. 양반의 존재감을 위협하는 그들을 인정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조선의 향방을 둘러싼 싸움이었다.

타자를 둘러싸고 벌였던 논쟁은 지역과 시간을 가리지 않는다. 당시는 명분과 화이가 문제였다면, 지금은 계급·문명·인종·남녀·지역 등을 매개로 더 복잡해졌다. 우리 사회만 보더라도 다양성을 존중하는 진전을 이루는 듯했지만, 최근 몇 년은 조야한 이분법이 다시 횡행하는 쓴맛을 보고 있다.

세계로 시야를 돌리면 타자의 문제는 ‘세계사’ 성립의 이면을 또한 보여준다. 19세기 이래 서양에 의한 근대화는 사실 서양식 기준의 보편화였다. 그런데 서양을 제외한 사회들에서 그것은 집단적으로 타자가 되는 과정이었다. 수많은 사례가 알려주듯이 그 실상은 무제한의 강압과 유무형의 폭력들이었다. 물론 직접적이고 적나라한 폭력들은 상당 부분 사라졌다. 그러나 그뿐일까. ‘타자화 과정’의 가장 복잡하면서도 해결하기 어려운 점은 서양이 ‘보편’의 이름을 전취했다는 데에 있다.

현대의 보편적 기준은 대부분 서양에서 기원했다. 그런데 보편의 확대 또한 차별의 연속이었다. 출발부터가 그랬다. 유럽에서 발흥한 근대 학문들은 대개 새로 개척한 지역·문화에 대한 차별성을 검증하려 했다. 만약 그 동기에 도전한다면 박해를 감수해야 했다. 예컨대 신화를 통해 ‘인간들 사이에 차이가 없음’을 밝힌 고전 <황금가지>조차도 한때는 금서였다. 자신들의 신화와 기독교의 독존(獨尊)을 흔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려움을 무릅쓰고 타자에게서 보편성을 찾아낸 학자들, 그리고 밖에서 들어온 기준과 전통 사이의 황금비를 고심한 사회들의 노력으로 이제 기준들은 어지간히 자연스러워졌다. 그렇다고 해서 애초 그것들이 유럽의 역사·상식·경험에서 파생했을 따름이요, 보편으로 자리잡기 위해선 서양 바깥의 타자들의 합의가 있었음을 잊을 수는 없다.

위의 여러 장면을 보면 차별화에 대한 성찰은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듯하다. 우리 안의 타자에 대한 차별, 우리가 타자가 되어 겪었던 피해, 과거의 잔재와 현재 진행 중인 문제들, 나아가 인간과 자연의 문제까지 넓힌다면 완성된 도달점이 있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의 맥락을 고려하는 신중함과 적절함을 찾는 노력만이 남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연재에 소개했던 <중용>(中庸)의 한 구절, ‘만물이 어울려 자라도 서로 해치지 않고, 도(道)는 함께 행해져도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 (萬物竝育而不相害, 道竝行而不相悖 만물병육이불상해, 도병행이불상패)는 경지가 바로 그것이 아닐까.

조선에서 발견하는 미래

조선의 학자들이 현대를 상상할 수 없었듯이 우리는 미래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다. 지금 상식적인 학문은 또 어떻게 변해 나갈까. 인문학과 사회과학, 과학의 경계가 더 좁아진다면 역사나 철학조차도 유효성을 지니기 위해 변신을 거듭할지 모른다. 마치 줄기세포처럼 변하지 않는 핵심을 변화한 환경에서 제공할 수 있을 때에만 변신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호락논쟁의 주제들도 현재의 질문에 답할 때에만 유의미할 수 있다. 논쟁의 과정과 내용이 우리에게 마음의 정체를 다시 생각게 하고, 타자에 대한 열린 정신을 심어줄 수 있다면, 조선의 철학은 지금 여기에서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 파편화가 가속하는 지금 겸손한 주체들이 어울리는 소통과 연대는 또 하나의 희망이기 때문이다.

이경구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인문한국(HK) 교수
이경구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인문한국(HK) 교수
그동안 소중한 시간을 할애하여 읽어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린다. 새해에는 모두가 평안하시길. <끝>

이경구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인문한국(HK)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