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19)
스톡홀름 증후군으로
기억되지 않는 시절부터
강인한 인간이 존경스러웠다.
미국의 패튼 장군 영화를
하버드 출신 미국인에게 물었더니
존경하지만 좋아하지는 않는단다.
오랜 세월이 흐르도록
강하게 주장하는 자에게
넋을 잃고 빠져들었는데
인간이 강력하다는 게,
자신만만하다는 게
일종의 위선이고 겁박이고
정신병이라는 것을
늙어서야 알았는데
일생동안 후유증을 앓는다.
몸뚱이만 가릴 수 있다면
어떤 옷이라도 입었던 시절,
한 방에서 한 가족이 뒹굴며
살아야 했던 생활이
사육되는 가축과 달랐던 점은
꿈이 있었다는 것 외에 없는데
그 꿈은 먹고 사는 것이어서
동물의 본능과 무엇이 다른지?
무슨 음식이라도 남길 수 없던,
흔들리며 눈치 보며 살았던
각인된 증후군 때문에
여인네는 화장품이 생기면
변질되어서 버릴 때까지 못쓰고
남정네는 엥겔지수가 걸린 목구멍에
지레 주눅이 들어 술에 취해 잠든다.
프랑스 혁명이 지금도 진행 중인 까닭은
민주주의란 완성되지 않는 것이기도 하지만
지워지지 않는 잔혹의 흔적이기 때문이려니.
친위 쿠데타를 기다리며 혁명을 거부하는
수구주의자가 한 팔을 치켜 올리는데
파시스트가 아닌지 역사를 더듬는데
역사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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