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시

허깨비

이윤진이카루스 2015. 11. 19. 23:05

물체에게 관성의 법칙이 있다면

물체는 에너지 자체일 텐데

열정을 지닌 그대는

군자라도 되려는지

꿈인 이상을 품고 살지.

 

늙어 군자인지 선비인지가 되기까지

천 갈래 만 갈래 사기만 쳤을 테니

주홍 글씨 A가 천사로 변해서

세상에 천사가 많기도 하겠네.

 

의관을 정제하고 엄숙한 표정을 띤

인간을 믿을 수 없는 까닭은

살아가려는 에너지이기 때문이지.

여기서도 간통이 죄가 아니라니

죄도 시대에 따라 변하는데...

 

햄릿이

세상을 그대로 풍자한다고

배우인 친구를 우대하고,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기 전까지

수많은 지식인의 무지를 까발렸는데

근대적인 싸움을 벌이는 이곳은

현실은 먼 듯 허깨비 세상이지.

 

 

 

 

후기:

나는 어려서부터 늙을 때까지 천 갈래 만 갈래 사기 칠 궁리만 해왔다. 그런데 사기 칠 때마다 낭패가 되었고 더욱 곤욕스럽고 더욱 비굴해졌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성(: 진실)으로 돌아 갈 수밖에 없었고 자경(自警)케 되었다. 자경이라 함은 내 몸을 돌이켜 성으로 돌아간다 함이나 그래도 사기 치고픈 마음이 아주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기를 반복할 때마다 더욱 잃는 것이 큼으로 결국 자경에 이르게 되는 것뿐이다. 지금 내 나이 쉰일곱이지만 아직도 사기 칠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 그래서 더욱 자경케 되니, 진실로 이 사기치고 싶은 마음이야말로 세상에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기 칠 마음을 품고 사기를 치는 것, 그것은 진짜 사기이다. 사기 칠 마음이 생기는데도 사기 치는데 까지 이르지 않고 성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곧 학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학문의 길이란 별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맹자가 말하는 구기방심(求其放心)인 것이다. 구기방심이란 흩어지는 마음을 모은다는 것이다. 대저 사람의 마음에는 술을 좋아하고 색을 좋아하고 재화를 탐하고 권세를 탐하는 경향이 누구에게든지 있다. 그런데 이러한 경향 중 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지독한 욕심이 어느 한 방향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래서 사기를 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중에서 착 달라붙는 지독한 놈을 잘 극복하면 그 나머지 덤덤한 욕심들은 극복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스스로 극복되게 마련이다. 이것이 곧 공자가 말하는 극기복례(克己復禮)라 하는 것을 일컬음이다. 극기복례란 자기를 극복하고 예()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東武自幼至老 千思萬思 詐心無窮 行詐則箇箇狼狽 愈困愈屈 不得已反於誠而自警也 自警者 反身之誠 而未免有詐 屢復屢失 而至於自警也 東武今年五十七齒 而尙未忘行詐 故彌彌自警 詐亦難矣哉 詐心而行詐 則詐也 詐心便發 未及行詐而反誠 則學問也 學問之道無他 求其放心而已矣 凡人心中 或酒或色 或貨或權 必有膠着之欲 故行詐也 就其中膠着之甚者克之 則其他泛泛之欲 不克而自克也 此之謂克己復禮也

- 김용옥, “의산문답, 기옹은 이렇게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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