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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저력 보여준 대만의 정권교체/ 한겨레신문 사설

이윤진이카루스 2016. 1. 18. 22:38

사설.칼럼사설

[사설] 민주주의 저력 보여준 대만의 정권교체

등록 :2016-01-17 18:50

 

16일 치러진 대만 선거에서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국민당의 8년 집권이 끝나고 다시 민진당 시대가 열렸다. 1996년 첫 총통(대통령) 선거에선 국민당이, 2000년과 2004년 선거에선 민진당이 승리한 바 있다. 선거 역사는 길지 않지만 민주주의가 착실하게 뿌리내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승패를 가른 건 역시 경제였다. 마잉주 국민당 정권은 633공약(6%대 경제성장, 개인소득 3만달러, 3% 이하 실업률)을 전혀 지키지 못했다. 국민의 실질소득은 정체된 가운데 투기자본이 대거 유입돼 부동산 값만 급등했다. 빈부 격차가 심해졌고, 초임이 2만2천대만달러(약 80만원)인 젊은이를 이르는 ‘22K세대’라는 말이 유행했다. 국민당의 지지층인 중산층이 대거 이탈하면서 민진당의 차이잉원 후보는 역대 총통선거에서 가장 큰 표차로 낙승했다.

국민당 정권의 친중국 노선 역시 심판대에 올랐다. 마잉주 총통은 중국과의 경제협력 강화를 국가전략으로 추진해왔다. 그 결과 중국의 관광객과 투자는 늘어났지만 국내 산업 기반은 오히려 취약해지고 일자리가 줄어드는 현상이 고착돼가고 있다. 대중국 종속이 구조화한 것이다. 선거 막판에 민진당 지지자들을 결집시킬 정도로 큰 이슈가 된 ‘쯔위 사건’은 지금의 양안(중국-대만) 관계에 비판적인 민심을 잘 보여준다. 쯔위는 한국 걸그룹에서 활동하는 대만 소녀로, 방송에서 대만 국기를 흔들었다가 중국 쪽의 거센 항의를 받자 결국 공개사과했다.

대만 역사상 첫 여성 최고지도자로 뽑힌 차이잉원 후보는 기성 정치에 물들지 않은 깨끗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는 선거 기간 동안 대만 독립이라는 민진당의 전통적인 정책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은 현실주의적인 면모를 보였다. 그가 최대 이슈인 활력 있는 경제, 빈부격차 및 세대갈등 해소에서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이미 떼려야 뗄 수 없을 정도로 깊어진 양안 관계를 어떻게 끌고 갈지도 핵심 과제 가운데 하나다. 본토 출신자와 대만인의 여전한 갈등 역시 그가 풀어야 할 숙제다.

대만은 지구촌에서 몇 남지 않은 분단국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와 동질성이 있다. 둘 다 장기 독재정권을 경험하고 ‘아시아의 4룡’으로 불린 것도 일치한다. 우리나라의 처지에서 볼 때 중국과의 관계가 중요하지만 대만에 대해서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대만이 현재 겪는 문제들이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는 점에서 대만의 성공과 실패 모두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 쉽지 않은 대내외 여건에서 주기적으로 정권교체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만은 우리에게 한 본보기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