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기획] ‘조작사건’ 책임자 사전 ② 책임 안지는 판검사
재심에서 무죄로 확정된 과거사 사건을 담당한 판검사 505명(중복 제외) 가운데 오는 4·13 총선에 출마하는 이들은 임내현 국민의당 의원과 새누리당 황우여 의원, 이인제 최고위원, 여상규 의원, 이사철 전 의원, 곽상도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 6명이다.
6선에 도전하는 황우여 의원(인천 연수)은 1976년 서울형사지법과 1982년 서울고법에서 근무하면서 ‘재일동포 강종헌에 대한 간첩조작의혹사건’과 ‘전민학련·전민노련 반국가단체 조작의혹사건’을 담당했다. 2014년부터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으로 재직하며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주도한 황 의원은 총선 출마를 위해 지난 12일 장관직에서 물러나 당으로 복귀한 상황이다.
1982년 대전지법 판사로 재직하며 ‘아람회 사건’을 맡은 이인제 최고위원(충남 논산·계룡·금산)은 다시 당선되면 7선 국회의원이 된다. 1980년대 초반 ‘석달윤 등 간첩조작의혹사건’ 1심 재판과 ‘구로분배농지 소송사기 조작의혹사건’ 파기환송심을 담당한 여상규 의원(경남 사천·남해·하동)은 3선을 위해 뛰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에서 국민의당으로 소속을 옮긴 임내현 의원(광주 북구을)은 재선에 도전한다. 임 의원은 1984년 인천지검에 근무하면서 ‘납북귀환자 정영 등 간첩조작의혹사건’의 수사와 공소유지를 담당했다.
4건의 과거사 재심 무죄 사건에서 수사나 공소유지를 맡았던 검사 출신 이사철 전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달 경기 부천 원미을 새누리당 후보 경선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대구 중남 새누리당 후보 경선에 나서는 곽상도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1991년 서울지검 근무 당시 ‘강기훈 유서대필의혹 사건’ 수사에 참여했다.
총선 출마자들은 대체로 당시 사건에 대해 “기억이 안 난다”거나 “책임자가 아니었다”고 밝혔다. 황 의원과 여 의원은 “오래된 사건이라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고, 이인제 최고위원 쪽은 “그 사건과 관련해 특별히 할 말이 없으신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사철 전 의원은 ‘안기부와 경찰 등 수사기관이 피해자를 불법구금한 사실을 알지 못했는가’라는 <한겨레>의 질문에 “기억나지 않는다”면서도 “당시에는 보통 강력사건이나 공안사건의 경우, 검찰로 넘어오기 전 수사 단계에서 수사관들이 피의자들을 여관방이나 사무실에 며칠씩 데리고 있던 것이 관행이었다”고 말했다. 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2000년대 들어 실체적 진실보다 수사의 절차적 정당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쪽으로 형사법 절차가 달라졌기 때문에 유죄가 무죄로 뒤집어진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 사람들이 간첩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전 의원이 맡은 4건 모두 재심에서 간첩 혐의 자체에 대해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강기훈 사건에 참여한 곽상도 전 민정수석은 통화에서 “초임검사로 수사 보조를 한 것은 맞지만 의사결정을 할 위치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이 사건 결정문에 “당시 검찰이 강기훈에 대해 잠을 재우지 않으면서 장시간 밤샘조사 등을 통해 자백을 얻고자 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곽 전 수석은 이에 대해 “당시에는 야간 조사가 허용됐다”고 주장했다.
<한겨레> 분석 결과 과거사 사건을 담당한 판검사 505명 가운데 현직 국회의원 4명을 포함해 국회의원을 지낸 이들은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와 최연희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 등 19명이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이사철
곽상도
[탐사기획] ‘조작사건’ 책임자 사전 ② 책임 안지는 판검사
그때 그 재판장들
고문·허위자백 호소 눈감고 검찰 주장대로 유죄판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서 재심을 권고해 재심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판결 224건의 1, 2심 판결문에는 92명(중복 제외)의 재판장이 등장한다. 재판장은 가장 큰 권한을 행사하지만 증거조작이나 가혹행위를 밝히지 못한 채 수사관과 검사의 주장대로 유죄 판결을 내렸다. 법정에서 피고인이 가혹행위를 폭로하는데도 이를 무시한 재판장도 적지 않았다.
과거사 사건 1, 2심 재판장 92명 중 절반이 넘는 50명이 아직도 변호사로 활동 중이며 41명은 사망·휴업하거나 근황이 확인되지 않았다. 1명은 명예교수다. 이들 중 45명이 이후 고법 부장(9명), 법원장(16명), 대법원장(2명), 대법관(13명), 헌법재판소장(1명), 헌재 재판관(4명) 등 고위 법관에 임명됐다.
‘법원조직법’을 보면, ‘사형, 무기 또는 단기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금고에 해당하는 사건’은 합의부에서 재판하며 이때 ‘심판권은 판사 3명으로 구성된 합의부에서 행사한다’고 돼 있다. 따라서 판결서에 서명 날인한 3명의 판사 모두 일정한 책임이 있지만, 이 중 실제 재판 진행과 판결에 가장 큰 권한을 행사하는 재판장의 책임이 크다는 데 법조인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15년 이상 법원에 근무했던 판사 출신 변호사는 “재판장의 권한은 지금도 크지만 과거에는 더 심했기 때문에 법원의 경우 (과거사 사건에서) 재판장 책임이 가장 중하다”고 말했다.
과거사 사건 피고인들이 검사 앞에서 말 못하다 법정에서 최초로 고문 사실을 폭로하는데도 이를 무시한 재판장들이 먼저 눈에 띈다. ‘박동운 간첩조작 의혹 사건’의 피해자 5명은 1981년 1심 법정에서 “국가안전기획부에서 인간으로서는 감내할 수 없는 신체상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재판을 맡은 서울형사지법 14부 재판장인 김헌무 판사(배석판사 김병재, 이형하)는 박씨 등에게 사형 등을 선고했다. 김 판사는 이후 수원·청주지법원장 등을 지냈다. 그는 훗날 ‘구명서 간첩조작 의혹 사건’의 2심 재판장도 맡았다. 김 전 법원장은 외국에 있어 연락이 닿지 않았다.
92명 중 45명이 고위직 승진
아직도 50명 변호사로 활동
판사 믿고 고문 밝힌 피고인 진술
들어주긴커녕 중형 선고해 4건이상 담당한 재판장 6명
최다 6건 이재훈 판사
혐의 부인하자 가족접견 금지
재심재판부 “당시 원심
사법부 본연역할 다 못해” ‘아람회 사건’ 피해자인 박해전씨도 1981년 1심 법정에서 경찰청 대공분실 수사관들의 가혹행위를 폭로했다. 그러나 재판부인 대전지법 형사2부 재판장 김학세 판사(배석판사 황승연, 이인제)는 박씨 등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재심 재판부는 “재심 대상 재판(대전지법 원심) 당시 법관들은 (피고인의) 호소를 외면한 채 진실을 밝히고 지켜내지 못함으로써 사법부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였다”고 밝혔다. 김학세 판사는 이후 서울고법 부장판사 등을 지냈다. 김 판사는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무죄 재심을 받은 과거사 사건 중 4건 이상의 원심 재판을 담당한 재판장도 6명에 달했다. 이재훈 전 판사는 1984~1986년 서울형사지법 13부와 인천지법 형사2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면서 ‘구명서 간첩조작 의혹 사건’ 등 6건의 과거사 사건을 판결해 가장 많은 재판에 관여했다. 이 전 판사는 1985년 서울 ‘미문화원 점거 농성 사건’ 재판장으로 피고인인 시위 학생들에게 판결과 별도로 훈계문을 낭독한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다. 4건의 과거사 사건을 맡은 사실이 밝혀진 강일원 헌재 재판관은 재판장인 이재훈 전 판사의 배석판사로 재판에 참여했다. 진실화해위 결정문을 보면, 이 전 판사는 1984년 인천지법 형사2부 재판장 때 ‘납북귀환자 정영 등 간첩조작 의혹 사건’ 피해자 정영씨가 공판에서 혐의를 부인하자 검찰의 요청을 받아들여 비공개 분리심문을 결정하고 접견금지 조치를 내렸다. 이 전 판사와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4건의 사건을 맡은 이재화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도 눈에 띈다. 이 전 재판관은 광주고법 형사1부 재판장으로 1983년 ‘오송회 사건’ 2심을 맡았다. 피고인들은 1·2심 법정에서도 고문으로 허위 자백했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재심 재판부는 “재판부가 허위 자백이란 사실을 밝혀내려는 의지가 부족했다는 점에 커다란 아쉬움이 있다”고 밝혔다. 이 전 재판관과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 상당수도 과거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양승태 대법원장과 전직 대법원장 12명 중 7명, 전직 헌법재판소장 4명 중 3명이 재심 무죄 과거사 사건의 재판에 참여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서울형사지법에 재직했던 1976년 재일동포 유학생 김동휘씨에게 반공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했다. 김씨는 1심 법정에서 공포심 때문에 고문 사실을 폭로하지는 않았으나 핵심 혐의는 부인했다. 김씨는 진실화해위 조사에서 “1심 법정에 중앙정보부 직원이 방청석에 앉아 있는 걸 보니 다시 끌려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생각에 진실(고문받은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재심을 맡은 서울고법은 고문으로 인한 허위진술이 판결의 근거로 사용됐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수사기록을 보면 김동휘씨는 20일간 불법구금됐으나 1심 재판부는 이를 지적하지 않았다. 김민경 고나무 김경욱 기자 salmat@hani.co.kr
아직도 50명 변호사로 활동
판사 믿고 고문 밝힌 피고인 진술
들어주긴커녕 중형 선고해 4건이상 담당한 재판장 6명
최다 6건 이재훈 판사
혐의 부인하자 가족접견 금지
재심재판부 “당시 원심
사법부 본연역할 다 못해” ‘아람회 사건’ 피해자인 박해전씨도 1981년 1심 법정에서 경찰청 대공분실 수사관들의 가혹행위를 폭로했다. 그러나 재판부인 대전지법 형사2부 재판장 김학세 판사(배석판사 황승연, 이인제)는 박씨 등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재심 재판부는 “재심 대상 재판(대전지법 원심) 당시 법관들은 (피고인의) 호소를 외면한 채 진실을 밝히고 지켜내지 못함으로써 사법부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였다”고 밝혔다. 김학세 판사는 이후 서울고법 부장판사 등을 지냈다. 김 판사는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무죄 재심을 받은 과거사 사건 중 4건 이상의 원심 재판을 담당한 재판장도 6명에 달했다. 이재훈 전 판사는 1984~1986년 서울형사지법 13부와 인천지법 형사2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면서 ‘구명서 간첩조작 의혹 사건’ 등 6건의 과거사 사건을 판결해 가장 많은 재판에 관여했다. 이 전 판사는 1985년 서울 ‘미문화원 점거 농성 사건’ 재판장으로 피고인인 시위 학생들에게 판결과 별도로 훈계문을 낭독한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다. 4건의 과거사 사건을 맡은 사실이 밝혀진 강일원 헌재 재판관은 재판장인 이재훈 전 판사의 배석판사로 재판에 참여했다. 진실화해위 결정문을 보면, 이 전 판사는 1984년 인천지법 형사2부 재판장 때 ‘납북귀환자 정영 등 간첩조작 의혹 사건’ 피해자 정영씨가 공판에서 혐의를 부인하자 검찰의 요청을 받아들여 비공개 분리심문을 결정하고 접견금지 조치를 내렸다. 이 전 판사와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4건의 사건을 맡은 이재화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도 눈에 띈다. 이 전 재판관은 광주고법 형사1부 재판장으로 1983년 ‘오송회 사건’ 2심을 맡았다. 피고인들은 1·2심 법정에서도 고문으로 허위 자백했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재심 재판부는 “재판부가 허위 자백이란 사실을 밝혀내려는 의지가 부족했다는 점에 커다란 아쉬움이 있다”고 밝혔다. 이 전 재판관과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 상당수도 과거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양승태 대법원장과 전직 대법원장 12명 중 7명, 전직 헌법재판소장 4명 중 3명이 재심 무죄 과거사 사건의 재판에 참여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서울형사지법에 재직했던 1976년 재일동포 유학생 김동휘씨에게 반공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했다. 김씨는 1심 법정에서 공포심 때문에 고문 사실을 폭로하지는 않았으나 핵심 혐의는 부인했다. 김씨는 진실화해위 조사에서 “1심 법정에 중앙정보부 직원이 방청석에 앉아 있는 걸 보니 다시 끌려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생각에 진실(고문받은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재심을 맡은 서울고법은 고문으로 인한 허위진술이 판결의 근거로 사용됐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수사기록을 보면 김동휘씨는 20일간 불법구금됐으나 1심 재판부는 이를 지적하지 않았다. 김민경 고나무 김경욱 기자 salmat@hani.co.kr
수사지휘권 가지고…, 수사관 가혹행위 도운 검사들
등록 :2016-01-27 21:43수정 :2016-01-28 09:39
[탐사기획] ‘조작사건’ 책임자 사전 ② 책임 안지는 판검사
그때 그 검사들
수사관 가혹행위 규명 한명도 없어…묵인 넘어 돕기까지
재심 무죄 판결을 받은 과거사 사건 75건의 담당 검사 127명을 심층분석해보니, 수사지휘권 등 강한 권한을 가진 검찰이 수사관들의 고문·가혹행위를 밝혀내지 못했거나 ‘적극적 묵인’을 했던 실체가 드러났다. 과거사 사건을 맡은 뒤 검찰총장과 법무장관 등 검찰 최고위직에 오른 검사도 6명이 있었다.
이번 취재로 3명의 전직 검찰총장과 3명의 전 법무장관이 재심 무죄 과거사 사건 수사나 공소유지를 담당한 사실이 밝혀졌다. 김기수 전 총장(27대)은 전주지검 군산지청 소속 검사로, 이웃의 북한 찬양 발언을 듣고 전하지 않았다는 반공법 불고지죄 혐의로 이 이웃과 함께 기소돼 1973년 유죄 판결을 받은 어부 임봉택씨 사건의 수사와 공소유지를 담당했다. 임씨와 함께 기소된 피고인은 검찰 앞에서는 고문과 가혹행위에 대해 말하지 않았으나 1심 법정에서 탄원서를 제출해 가혹행위가 있었다고 폭로했다. 그러나 1심 공소유지를 맡은 김 전 총장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김 전 총장은 “전혀 기억나지 않고 (이사건이) 재심 무죄 판결을 받은 사실도 몰랐다”며 “(수사관의) 가혹행위가 있었다면 (검사인) 내가 인정 안 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순용 전 총장(29대)은 1982년 ‘전민학련, 전민노련 반국가단체 조작의혹 사건’의 수사 및 1·2심 공소유지를 담당했다. 박 전 총장은 “당시 피고인들의 여러가지 혐의 가운데 (나는) 집시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만 수사했고 재심 판결 때도 집시법 위반 혐의는 그대로 인정됐다”며 “국가보안법 혐의에 대해서는 모른다. (당시 담당자인) 다른 검사에게 물어보라”고 말했다. 김경한 전 법무장관도 이 사건 1·2심 공소유지를 맡았다.
127명 중 6명 총장·장관 지내
막강 권한 비해 ‘공익대표’ 역할 못해
3건 이상 관련 11명…최대 7건
‘차풍길’ 담당 이종찬 전 서울고검장
피의자 조서 작성때 수사관 입회시켜 ‘어부 임봉택씨’ 담당 김기수
1심 법정 고문 폭로뒤 적절조처 안해
“기억 안나고 재심 무죄 몰랐다”
‘전민학련·전민노련’ 담당 박순용
“보안법 혐의 소관 아니어서 모른다” 서동권 전 총장(20대)은 1976년 재일동포 강종헌의 간첩죄 혐의 형사사건에서 2심 공소유지를 담당했다. 변호사 사무실 직원을 통해 서 전 총장에게 당시 수사에 대해 물었으나 답하지 않았다. 심상명 전 법무장관은 1975년 재일교포 김우철 형제 간첩조작의혹사건에서 수사와 공소유지를 담당했다. 심 전 장관과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최상엽 전 법무장관은 1974년 유신반대 성명을 낸 문인들을 간첩죄 혐의로 처벌한 ‘문인간첩단사건’에서 2심 공소유지를 맡았다. 최 전 장관은 “기억나지 않고 따라서 따로 할 말이 없다”고 직원을 통해 답했다. 3건 이상의 과거사 재심 무죄 사건에 관여한 검사가 11명으로 조사됐다. 황진호 전 검사, 장응수 전 인천지검장이 가장 많은 7건을 맡았고 성민경·김남옥 전 검사가 5건을 맡아 뒤를 이었다. 박태운 전 검사, 이사철 전 새누리당 의원, 이창우 전 서울지검장, 임휘윤 전 부산고검장, 정용식 전 검사, 최대현 전 유정회 의원 등이 3~4건의 재심 무죄 사건 원심 수사나 공소유지를 맡았다. 이 중 박 전 검사, 성 전 검사, 장 전 지검장 등 3명은 고검 소속 검사로 항소심 공소유지만 담당했고, 나머지 검사들은 더 중요한 수사나 1심 공소유지를 맡았다. 황 전 검사는 1961년 13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1963년 춘천지검에서 검사 근무를 시작했다. 그가 맡은 과거사 사건은 1969년 남조선 해방 전략당 사건(수사와 1심 공소유지)부터 1983년 재일조총련 관련 최양준 간첩조작의혹 사건(2심 공소유지) 등 긴 시대에 두루 걸쳐 있었다. 과거 검사의 권한이 매우 강했기 때문에 검찰이 ‘공익의 대표자’ 구실을 못했다는 책임론이 계속 나온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과거사 재심 사건과 관련해 수사기관과 법원이 7대3 정도 책임을 나눠 진다”고 주장했다. 당시 검찰은 수사 지휘권과 기소 독점권은 물론 지금 검찰과 달리 일종의 ‘대법원 판례가 부여한 권한’도 가졌다. 1980년대 대법원 판례에 의해, 피고인이 검사 앞에서 조서를 작성한 뒤 이를 인정하면 법정에서 조서 내용과 달리 혐의를 부인하더라도 검사가 작성한 조서에 더 증거능력이 있다고 인정됐다. 피고인들은 이 판례 때문에 법정에서 가혹행위를 폭로하고 혐의를 부인하더라도 유죄 판결을 면할 수 없었다. 이 판례는 2000년대 중반에야 뒤집어졌다. 강한 권한을 가졌지만 과거사 재심 무죄 사건 담당 검사 누구도 당시 수사관의 가혹행위를 규명하지 못했다. 적지 않은 피의자들이 수사관의 협박 때문에 검사에게 가혹행위와 불법감금 사실을 밝히지 못했다. 그러나 이를 고려해도 가혹행위를 밝혀내지 못한 것이 ‘과실’인지 ‘적극적 묵인’인지 해석이 갈린다. 검사 출신 김희수 변호사는 “불법구금을 (검사가) 모를 수가 없다. 기록에 체포일자가 나오고 기록이 없어도 경찰 보고서 등을 보면 100% (불법구금 사실이) 나온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적극적 묵인’이라는 해석이다. 묵인을 넘어 가혹행위를 사실상 도운 검사도 있었다. 진실화해위 결정문을 보면, 차풍길 간첩조작의혹사건의 수사와 1심 공소유지를 맡았던 이종찬 전 서울고검장은 피의자 신문조서 작성 때 안기부 수사관을 입회시켰다. 이 전 고검장은 이후 법무부 검사적격심사위원장, 2008년 이명박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 등을 지냈다. 검찰은 법원과 달리 지금까지 과거사 재심 무죄 사건과 관련해 공식적으로 조사를 하거나 사과 등 조처를 한 적이 없다. 김희수 변호사는 “‘왜 과거 일을 가지고 논란을 삼느냐’는 반박도 있지만 (검사에게) 민형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면 최소한 국가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못박을 필요는 있다. 검찰의 과거사 정리 작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막강 권한 비해 ‘공익대표’ 역할 못해
3건 이상 관련 11명…최대 7건
‘차풍길’ 담당 이종찬 전 서울고검장
피의자 조서 작성때 수사관 입회시켜 ‘어부 임봉택씨’ 담당 김기수
1심 법정 고문 폭로뒤 적절조처 안해
“기억 안나고 재심 무죄 몰랐다”
‘전민학련·전민노련’ 담당 박순용
“보안법 혐의 소관 아니어서 모른다” 서동권 전 총장(20대)은 1976년 재일동포 강종헌의 간첩죄 혐의 형사사건에서 2심 공소유지를 담당했다. 변호사 사무실 직원을 통해 서 전 총장에게 당시 수사에 대해 물었으나 답하지 않았다. 심상명 전 법무장관은 1975년 재일교포 김우철 형제 간첩조작의혹사건에서 수사와 공소유지를 담당했다. 심 전 장관과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최상엽 전 법무장관은 1974년 유신반대 성명을 낸 문인들을 간첩죄 혐의로 처벌한 ‘문인간첩단사건’에서 2심 공소유지를 맡았다. 최 전 장관은 “기억나지 않고 따라서 따로 할 말이 없다”고 직원을 통해 답했다. 3건 이상의 과거사 재심 무죄 사건에 관여한 검사가 11명으로 조사됐다. 황진호 전 검사, 장응수 전 인천지검장이 가장 많은 7건을 맡았고 성민경·김남옥 전 검사가 5건을 맡아 뒤를 이었다. 박태운 전 검사, 이사철 전 새누리당 의원, 이창우 전 서울지검장, 임휘윤 전 부산고검장, 정용식 전 검사, 최대현 전 유정회 의원 등이 3~4건의 재심 무죄 사건 원심 수사나 공소유지를 맡았다. 이 중 박 전 검사, 성 전 검사, 장 전 지검장 등 3명은 고검 소속 검사로 항소심 공소유지만 담당했고, 나머지 검사들은 더 중요한 수사나 1심 공소유지를 맡았다. 황 전 검사는 1961년 13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1963년 춘천지검에서 검사 근무를 시작했다. 그가 맡은 과거사 사건은 1969년 남조선 해방 전략당 사건(수사와 1심 공소유지)부터 1983년 재일조총련 관련 최양준 간첩조작의혹 사건(2심 공소유지) 등 긴 시대에 두루 걸쳐 있었다. 과거 검사의 권한이 매우 강했기 때문에 검찰이 ‘공익의 대표자’ 구실을 못했다는 책임론이 계속 나온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과거사 재심 사건과 관련해 수사기관과 법원이 7대3 정도 책임을 나눠 진다”고 주장했다. 당시 검찰은 수사 지휘권과 기소 독점권은 물론 지금 검찰과 달리 일종의 ‘대법원 판례가 부여한 권한’도 가졌다. 1980년대 대법원 판례에 의해, 피고인이 검사 앞에서 조서를 작성한 뒤 이를 인정하면 법정에서 조서 내용과 달리 혐의를 부인하더라도 검사가 작성한 조서에 더 증거능력이 있다고 인정됐다. 피고인들은 이 판례 때문에 법정에서 가혹행위를 폭로하고 혐의를 부인하더라도 유죄 판결을 면할 수 없었다. 이 판례는 2000년대 중반에야 뒤집어졌다. 강한 권한을 가졌지만 과거사 재심 무죄 사건 담당 검사 누구도 당시 수사관의 가혹행위를 규명하지 못했다. 적지 않은 피의자들이 수사관의 협박 때문에 검사에게 가혹행위와 불법감금 사실을 밝히지 못했다. 그러나 이를 고려해도 가혹행위를 밝혀내지 못한 것이 ‘과실’인지 ‘적극적 묵인’인지 해석이 갈린다. 검사 출신 김희수 변호사는 “불법구금을 (검사가) 모를 수가 없다. 기록에 체포일자가 나오고 기록이 없어도 경찰 보고서 등을 보면 100% (불법구금 사실이) 나온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적극적 묵인’이라는 해석이다. 묵인을 넘어 가혹행위를 사실상 도운 검사도 있었다. 진실화해위 결정문을 보면, 차풍길 간첩조작의혹사건의 수사와 1심 공소유지를 맡았던 이종찬 전 서울고검장은 피의자 신문조서 작성 때 안기부 수사관을 입회시켰다. 이 전 고검장은 이후 법무부 검사적격심사위원장, 2008년 이명박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 등을 지냈다. 검찰은 법원과 달리 지금까지 과거사 재심 무죄 사건과 관련해 공식적으로 조사를 하거나 사과 등 조처를 한 적이 없다. 김희수 변호사는 “‘왜 과거 일을 가지고 논란을 삼느냐’는 반박도 있지만 (검사에게) 민형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면 최소한 국가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못박을 필요는 있다. 검찰의 과거사 정리 작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연재‘조작사건’ 책임자 사전
[탐사기획] ‘조작사건’ 책임자 사전 ③ 훈장받은 조작수사
김철씨 국가·수사관 상대로 소송
“8억700만원 배상” 판결 받아내
강기훈씨도 31억 배상소송 중
재심 무죄 과거사 사건의 수사 담당자에게 민사상 책임을 지운 사례가 있다.
‘간첩조작 의혹 사건’의 피해자인 김철(85)씨는 2012년 7월 재심 무죄 확정 판결을 받고 이듬해 “경찰의 무리한 수사로 수감생활을 하게 됐다”며 국가와 당시 치안본부 소속 수사관 유아무개(80)씨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3부(재판장 박평균)는 “당시 사건으로 겪었을 정신적 고통과 사회적 편견, 경제적 어려움이 인정된다”며 “국가와 유씨는 총 8억700여만원을 김씨와 그 가족들에게 지급하라”고 2014년 1월 김씨에게 일부승소 판결을 했다. 피고 유씨가 항소하지 않아 판결은 확정됐고, 배상금은 전액 국가가 납부했다.
김철씨는 28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억울하게 7년을 감옥에서 보냈는데, 고문하고 증거를 조작해 간첩으로 몰아세운 수사관들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 당시 소송에 나섰다”고 말했다.
법원이 이 사건에서 수사관의 책임을 인정한 것은 유씨의 불법행위가 뚜렷했기 때문이다.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유씨는 김씨를 불법체포하고 장기간 감금한 상태에서 가혹행위 등을 통해 허위자백을 받아내고, 조작된 증거를 이용해 김씨가 유죄판결 받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며 “이는 국가배상법상 공무원의 고의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김철 간첩조작 의혹 사건 재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6부(재판장 박형남)도 2010년 무죄를 선고하며 “수사기관이 증거를 조작하는 데 개입했다”고 지적했다.
‘유서대필의혹 사건’의 피해자 강기훈(52)씨는 직접 수사를 맡은 검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5월 재심 무죄 판결을 받은 강기훈씨는 1991년 사건 당시 수사 책임자였던 강신욱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장, 신상규 강력부 수석검사, 잘못된 필적감정을 한 김형영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인과 국가를 상대로 지난해 11월 서울중앙지법에 3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강씨는 소장에서 “이 사건은 국가가 진실을 조작해 무고한 시민을 ‘유서대필자’로 만든 인권유린 사례”라며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국가와 가해자들의 책임을 물어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강씨는 당시 수사관들과 다른 검사들은 피고로 삼지 않았다. 소송대리인단의 송상교 변호사는 “수사 관계자 모두를 대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면 소송의 본질이 흐려질 수 있다”며 “이번 소송은 당시 핵심적인 수사 책임자에게 법적·역사적 책임을 묻기 위한 의도에서 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연재‘조작사건’ 책임자 사전
1974년 소설가 이호철(맨 왼쪽)씨, 임헌영(왼쪽 둘째)씨 등 문인들이 유신에 반대하는 활동을 벌이자 국군보안사령부(현 국군기무사령부)가 ‘문인 간첩단 사건’으로 규정해 수사했고, 검찰과 법원은 문인들을 형사처벌했다. 이들은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 받았다. 당시 재판 모습. 1975 보도사진연감
[탐사기획] ‘조작사건’ 책임자 사전 ③ 훈장받은 조작수사
중정·안기부·보안사 수사관들
중정·안기부·보안사 수사관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재심을 권고해 무죄 판결을 받은 과거사 사건 75건의 재심 판결문에 등장하는 수사관을 분석한 결과, 이들 중 14명이 조작간첩 사건 등을 담당한 이후 훈포장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재심 판결에서 수사관들의 불법구금·고문 등이 확인된 만큼 이들의 공적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유럽간첩단 사건’ 피해자들
“팬티만 입혀 무차별 구타·고문”
최양준씨 25일 불법구금
물고문에 전기고문까지 구명서씨 조사한 수사관은
고문 주장하자 구치소 찾아가 협박
‘울릉도 간첩’ 수사 중정 파견 검사
이례적으로 그 사건 특정해 훈장 시효 끝나 현행법상 형사처벌 못해
불법 확인된 만큼 상훈은 재고해야 <한겨레>가 75건의 재심 무죄 판결문과 국가기록원이 보유한 국무회의록을 비교·분석해보니, 중앙정보부(중정)·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 등 소속 수사관 14명이 과거사 사건 수사 뒤 보국훈장 천수장 등의 훈포장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간첩을 검거하여 국가안보에 기여했다’는 것이 주된 사유였다. 상훈법상 훈포장 수여는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재심 무죄 판결문과 진실화해위 결정문을 보면, 훈장을 받은 수사관들은 조작간첩 사건 등을 수사하며 불법구금과 고문 등 가혹행위를 많이 저질렀다. ‘박노수·김규남 등 유럽간첩단 사건’ 재심 무죄 판결문에는 ‘(피고인이) 팬티만 입은 채 중정 수사관 3명에게 무차별 구타와 고문을 당했다’는 목격자 진술이 나온다. 수사를 담당했으나 훈장은 받지 않은 다른 수사관도 “자백을 받으려면 폭행 등 가혹행위로 이어지는 경우가 없다고는 하지 않겠다”고 진실화해위 조사 때 진술했다. 사법경찰관리인 수사관들의 고문은 형법 125조(폭행, 가혹행위)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할 수 있는 범죄다. ‘박노수 사건’ 재심 재판부는 “심한 고문과 구타 등 가혹행위를 당하면서 조사받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면서도 “공소시효가 경과돼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다”고 밝혔다. 시효 만료로 형사처벌은 할 수 없으나 불법행위임을 명확히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1969년에 이 사건을 수사한 중정 수사관 2명은 1976년, 1977년 보국훈장 천수장을 받았다. ‘맡은 바 직무에 헌신해 국가안전보장에 크게 기여했다’는 이유다. ‘재일조총련 관련 최양준 간첩조작 의혹 사건’의 피해자 최양준씨는 부산 보안부대 수사관한테 연행돼 25일간 영장 없이 불법구금됐다. 최씨는 1982년 12월 서울지검에 송치됐고, 이 사건에 참여한 보안사 수사관 1명은 1985년 보국훈장 광복장을 받았다. 이 사건 재심 판결문을 보면 훈장을 받은 이 수사관 본인이 진실화해위에서 “간첩사건은 법정 시한 안에 조사할 수 없어 관행적으로 영장 없이 구금했다”고 진술했다. 이 기간 동안 최씨는 물고문, 전기고문을 받았다. 불법체포·불법감금은 형법 124조에 따라 7년 이하 징역과 10년 이하의 자격정지가 가능한 범죄다. 검사 앞에서 고문을 주장하자 구치소로 찾아가 협박한 수사관도 훈장을 받았다. 1986년 7월 징역 7년형을 확정받은 ‘구명서 간첩조작 의혹 사건’ 재심 판결문을 보면, 담당 보안사 수사관은 구치소에 찾아가 ‘검사한테 가서 왜 부인하느냐, 또 부인하면 다시 보안대로 와서 조사받게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피해자 구씨는 고문을 또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보안사가 요구하는 내용대로 검찰에서 진술했다. 이 수사관은 1994년 보국훈장 광복장을 받았다. ‘이성희에 대한 간첩조작 의혹 사건’(‘울릉도 간첩사건’) 수사와 관련해 중정에 파견된 검사 1명과 수사관 4명이 1974년 훈장을 받은 사실도 확인됐다. 대다수의 훈포장 공적이 ‘간첩 검거의 공’으로 두루뭉술한 데 비해 특정 사건을 이유로 훈포장을 받은 경우는 이례적이다. 중정은 1974년 울릉도 간첩단 47명을 검거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한 바 있다. 이씨를 포함해 ‘울릉도 간첩단 사건’으로 유죄를 선고받은 32명 중 28명이 재심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훈포장을 받은 수사관들의 위법행위로 재심 무죄가 선고된 만큼 이들의 상훈을 재조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상훈법은 공적이 거짓이거나 형법 위반으로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의 형을 받은 경우 서훈을 취소하도록 하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과거사청산위원회의 이상희 변호사(법무법인 지향)는 “피해자들에게 끼친 영향이 크고 사안이 중하기 때문에 재심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사건 수사관들의 훈포장 공적을 재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2006년 ‘과거사 청산’ 차원에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과 고문경찰관 이근안씨 등 176명의 서훈을 취소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행정자치부 관계자는 “훈포장 추천 기관과 공적 내용 허위 여부에 대해 협조해서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끝>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팬티만 입혀 무차별 구타·고문”
최양준씨 25일 불법구금
물고문에 전기고문까지 구명서씨 조사한 수사관은
고문 주장하자 구치소 찾아가 협박
‘울릉도 간첩’ 수사 중정 파견 검사
이례적으로 그 사건 특정해 훈장 시효 끝나 현행법상 형사처벌 못해
불법 확인된 만큼 상훈은 재고해야 <한겨레>가 75건의 재심 무죄 판결문과 국가기록원이 보유한 국무회의록을 비교·분석해보니, 중앙정보부(중정)·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 등 소속 수사관 14명이 과거사 사건 수사 뒤 보국훈장 천수장 등의 훈포장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간첩을 검거하여 국가안보에 기여했다’는 것이 주된 사유였다. 상훈법상 훈포장 수여는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재심 무죄 판결문과 진실화해위 결정문을 보면, 훈장을 받은 수사관들은 조작간첩 사건 등을 수사하며 불법구금과 고문 등 가혹행위를 많이 저질렀다. ‘박노수·김규남 등 유럽간첩단 사건’ 재심 무죄 판결문에는 ‘(피고인이) 팬티만 입은 채 중정 수사관 3명에게 무차별 구타와 고문을 당했다’는 목격자 진술이 나온다. 수사를 담당했으나 훈장은 받지 않은 다른 수사관도 “자백을 받으려면 폭행 등 가혹행위로 이어지는 경우가 없다고는 하지 않겠다”고 진실화해위 조사 때 진술했다. 사법경찰관리인 수사관들의 고문은 형법 125조(폭행, 가혹행위)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할 수 있는 범죄다. ‘박노수 사건’ 재심 재판부는 “심한 고문과 구타 등 가혹행위를 당하면서 조사받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면서도 “공소시효가 경과돼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다”고 밝혔다. 시효 만료로 형사처벌은 할 수 없으나 불법행위임을 명확히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1969년에 이 사건을 수사한 중정 수사관 2명은 1976년, 1977년 보국훈장 천수장을 받았다. ‘맡은 바 직무에 헌신해 국가안전보장에 크게 기여했다’는 이유다. ‘재일조총련 관련 최양준 간첩조작 의혹 사건’의 피해자 최양준씨는 부산 보안부대 수사관한테 연행돼 25일간 영장 없이 불법구금됐다. 최씨는 1982년 12월 서울지검에 송치됐고, 이 사건에 참여한 보안사 수사관 1명은 1985년 보국훈장 광복장을 받았다. 이 사건 재심 판결문을 보면 훈장을 받은 이 수사관 본인이 진실화해위에서 “간첩사건은 법정 시한 안에 조사할 수 없어 관행적으로 영장 없이 구금했다”고 진술했다. 이 기간 동안 최씨는 물고문, 전기고문을 받았다. 불법체포·불법감금은 형법 124조에 따라 7년 이하 징역과 10년 이하의 자격정지가 가능한 범죄다. 검사 앞에서 고문을 주장하자 구치소로 찾아가 협박한 수사관도 훈장을 받았다. 1986년 7월 징역 7년형을 확정받은 ‘구명서 간첩조작 의혹 사건’ 재심 판결문을 보면, 담당 보안사 수사관은 구치소에 찾아가 ‘검사한테 가서 왜 부인하느냐, 또 부인하면 다시 보안대로 와서 조사받게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피해자 구씨는 고문을 또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보안사가 요구하는 내용대로 검찰에서 진술했다. 이 수사관은 1994년 보국훈장 광복장을 받았다. ‘이성희에 대한 간첩조작 의혹 사건’(‘울릉도 간첩사건’) 수사와 관련해 중정에 파견된 검사 1명과 수사관 4명이 1974년 훈장을 받은 사실도 확인됐다. 대다수의 훈포장 공적이 ‘간첩 검거의 공’으로 두루뭉술한 데 비해 특정 사건을 이유로 훈포장을 받은 경우는 이례적이다. 중정은 1974년 울릉도 간첩단 47명을 검거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한 바 있다. 이씨를 포함해 ‘울릉도 간첩단 사건’으로 유죄를 선고받은 32명 중 28명이 재심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훈포장을 받은 수사관들의 위법행위로 재심 무죄가 선고된 만큼 이들의 상훈을 재조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상훈법은 공적이 거짓이거나 형법 위반으로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의 형을 받은 경우 서훈을 취소하도록 하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과거사청산위원회의 이상희 변호사(법무법인 지향)는 “피해자들에게 끼친 영향이 크고 사안이 중하기 때문에 재심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사건 수사관들의 훈포장 공적을 재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2006년 ‘과거사 청산’ 차원에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과 고문경찰관 이근안씨 등 176명의 서훈을 취소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행정자치부 관계자는 “훈포장 추천 기관과 공적 내용 허위 여부에 대해 협조해서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끝>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