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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상업화를 어찌 막을까 / 신기섭

이윤진이카루스 2010. 10. 9. 07:20

[아침 햇발] 언론 상업화를 어찌 막을까 / 신기섭
한겨레
» 신기섭 논설위원
1988년 11월 미국의 정통 좌파 월간지 <먼슬리 리뷰>에 아주 흥미로운 글이 하나 실렸다. 미국 최대 부수를 자랑하는 신문 <월스트리트 저널>에서만 10년 동안 일한 켄트 맥두걸이라는 기자가 자신의 이중생활을 공개한 것이다. ‘부르주아 언론 내부 와해 공작’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그는 주류 언론 기자로 일하면서 좌파 매체에 몰래 글을 쓴 경험을 털어놨다.

좌파 신념에 찬 그는 학생 때부터 어려움에 부닥쳤다. 언론대학원 졸업 작품으로 영국령 기아나 자치정부에 대한 영국의 개입 문제를 쓰려고 현지 취재를 시도했으나 학교의 허락을 받지 못한다. 현지 취재를 통해 삐딱한 글을 쓰면 학교 명성까지 손상될까 싶어 금지한 거라고 한다. 1956년 뉴욕의 한 신문 기자가 된 뒤에도 어려움에 직면했다. 중앙정보국의 추악한 행태 등을 좌파 매체를 통해 비판하다가 요주의 인물로 찍힌 것이다. 필명을 썼는데도 어떻게 알았는지 정부 요원이 전화해 “당신을 계속 주시할 것이다”라고 다짐했다고 한다.

1962년 <월스트리트 저널>로 옮김으로써 주류 언론에 뿌리를 내린 뒤엔 주로 내부 견제에 시달렸다. 비판적인 기사를 쓸 때마다 ‘너무 딱딱하다’, ‘왜 좌파 학자들 말을 대단한 것처럼 인용하느냐’는 등 다양한 견제를 당했다. 기사를 신문에 싣기 위해 민감한 말들을 빼거나 우파 학자의 반박을 덧붙이는 식의 타협이 불가피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서도 10년을 일한 그는 주류 신문사 편집 간부들을 이렇게 평가한다. “세상 돌아가는 걸 직접 경험하는 일이 거의 없고 아이디어도 별로 없다. 그들이 생각하는 좋은 기사는 내용이야 어찌됐든 많이 읽히고 화제가 되는 것이다.”

언론인의 이런 태도는 미국만의 일은 아니다. 많은 나라 언론이 비슷하고 한국 언론도 예외는 아니다. 게다가 이런 현상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이념적·정치적 편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일도 많지만, 더 빠르게 번져가는 건 독자들의 이목만 끌면 그만이라는 식의 행태다. 인터넷 언론이나 케이블방송이 특히 심하지만 그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때로는 주류 신문이나 방송이 한술 더 뜬다. 심지어 지난주엔 공영방송인 <문화방송>이 학력 위조 논란에 휩싸인 대중가수와 함께 미국까지 날아가 만든 프로그램을 ‘스페셜’이라는 제목 아래 방송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 사안이 외국 출장까지 갈 만큼 중요한 사회적 쟁점인가?

많은 사람이 주목하면 최고라는 생각의 가장 밑바닥에는 돈 문제가 깔려 있다. ‘잘 팔리는’ 기사와 방송 프로그램에는 결국 광고가 붙기 마련이라는 걸 모르는 언론인은 없다. 돈을 최고로 여기기는 사회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이제 언론의 상업화는 거스르기 힘든 대세 같다. 아니 이미 갈 데까지 간 느낌이다. 며칠 전 국정감사에서는 언론사들이 정부 돈을 받고 기획기사를 싣는 게 논란이 됐다. 지원금과 정책 홍보성 기사를 주고받는 거래가 최근 부쩍 늘었다고 한다. 게다가 ‘협찬’이니 ‘공동캠페인’이니 하는 표시조차 하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언론이 이런 일까지 별 거리낌 없이 하니 시민들의 불신은 극에 달했다. 기자나 언론사를 기득권 세력의 일부로 보는 시각도 널리 퍼져 있다. 트위터 같은 서비스가 호응을 얻는 것도 이런 불신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언론이 제 기능을 못하면 개인들끼리 직접 여론을 형성할 통로를 만들자는 의지가 엿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힘만으로 대안 매체를 형성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한때 크게 부각됐다가 시들해진 블로그만 봐도 알 수 있다. 언론의 공공성 회복 운동에 힘을 실어주는 게 더 효과적인 선택이다. 외면한다고 언론의 영향을 벗어날 수는 없다. 시민들 스스로를 위해서도 언론 문제를 남의 일 보듯 하면 안 될 것 같다.

신기섭 논설위원mari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