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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정의를 찾기보단 명백한 불의 막아라 - 아마르티아 센-

이윤진이카루스 2010. 10. 4. 20:42

[이사람] “완전한 정의 찾기보단 명백한 불의 막아라”
노벨 경제학상 수상 아마르티아 센 교수 방한
한겨레 최원형 기자기자블로그
» 아마르티아 센 교수
정의가 화두다. 인문서 한 권이 유례없는 인기를 끌며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끓어올랐고, 이명박 정부가 ‘공정사회’를 국정과제로 제시하며 공정한 사회 논쟁이 불붙고 있다. 여기에 최근 한국을 찾은 세계적 석학이 또다시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완전한 정의가 무엇인지 찾기보단, 현실에 있는 명백하고 확실한 불의를 찾아서 막으라”는 것이다.

경제학과 윤리학을 접목한 독보적인 연구가 아마르티아 센 하버드대 교수(사진·경제학·철학)는 1일 경기도 성남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주최한 ‘2010 문명과 평화 국제포럼’에서 ‘정의와 글로벌 세계’를 주제로 강연을 했다.

제도 아닌 현실에서 ‘글로벌 정의’ 모색


공공이성’ 활동 시민단체 강화에 방점

인도 벵골에서 태어나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센은 빈곤과 불평등, 인간개발 등을 주제로 삼아, 기존 경제학과 달리 윤리학에 기반을 둔 연구로 명성을 얻었다. 1998년에는 노벨 경제학상을 받기도 했다. 오늘날 빈곤 연구에서 흔히 쓰이는 ‘센 빈곤지수’나 유엔개발계획(UNDP)에서 발표되는 ‘인간개발지수’(HDI)는 대표적인 그의 연구성과다.

센은 2008년 일어난 세계 경기 침체로 세계적 피라미드 구조의 아래쪽에 위치한 사람들의 삶이 더욱 극심하게 망가진 것을 단적인 사례로 들어 ‘글로벌 정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자신의 정의론을 “공공이성(public reason)을 통한 합의 모델”이라고 압축하고, 토머스 홉스나 장자크 루소 등의 ‘사회계약’ 개념에서 비롯된, 완전히 정의로운 제도를 찾으려는 시도를 비판했다. 대신 18세기 프랑스 수학자 콩도르세 등의 ‘사회선택이론’에 뿌리를 두고 제도보다는 현실을 중요시하는 논리를 제시했다.

이어 “현실적인 관점을 택한다면 완전한 정의를 모색하기보다 확실한 부정을 막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 그는 “제도적 자유주의자들이 추상적인 권리로서 외치는 자유가 아니라, 실제로 인간이 누리는 자유가 어떠한지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원하는 가치있는 삶을 선택하고 추구할 능력이 현실적으로 없다면, 그것이 바로 ‘빈곤’이며 자유와 평등이 구현되지 못하는 상태라는 것이다. 미국의 노예전쟁처럼 그런 상태를 더는 견딜 수 없을 때가 ‘불의’다.

센은 “세계정부가 없다고 해서 전지구적 민주주의가 이뤄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며 유엔 같은 기관 말고도 시민단체나 독립뉴스 매체, 각종 비영리기구 등이 다양한 목소리를 내면서 이미 현실 속에서 저마다 공공이성에 건설적으로 기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금의 과제는 이미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 참여 과정을 강화하는 것이다.”





올해 서울에서 열릴 ‘G20 정상회의’에 대해 센은 “아마도 세계 정상들은 전세계의 부와 자원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 큰 방향을 논의하게 될 것”이라며 “그러나 아프리카나 동남아 등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적인 빈곤과 불평등을 해결할 실질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게 더 시급하다”고 꼬집었다.

글·사진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