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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지난 4월 스페인 마드리드 사르수엘라 궁에서 열린 한 시상식에 참석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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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살 데뷔한 남미문학의 거장
대선출마 등 적극적 정치참여
이라크전 지지 구설 오르기도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페루 출신 스페인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74)는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대표하는 대가의 한 사람이지만 이라크전쟁을 지지하는 등의 보수적인 정치 행보로 구설에도 오른 인물이다. 청년 시절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 혁명을 열렬히 지지했던 그는 그 뒤 자유시장주의자로 ‘전향’했으며, 1990년 대통령선거에서는 중도우파 후보로 나섰다가 일본계인 알베르토 후지모리에게 패한 독특한 전력도 있다.
1936년 페루 아레키파에서 태어난 바르가스 요사는 어머니와 할아버지와 함께 콜롬비아에서 성장하다가 1946년 페루로 돌아왔다. 열여섯 어린 나이에 문단에 데뷔한 그는 대학에서 법학과 문학을 전공하면서 공산주의 계열의 지하 조직에 몸담기도 했다. 1959년 프랑스로 건너간 그는 <아에프페>(AFP) 통신 기자와 텔레비전 방송 캐스터 등으로 일했다. 그의 언론 활동은 그 뒤에도 이어져 그는 여러 매체에 이런저런 현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글을 기고했다. 지금도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강의하면서 스페인의 권위있는 일간지 <엘파이스>에 글을 쓰고 있다.
그의 문학적 경력에서 전환점은 첫 소설 <영웅의 시대>(1960)와 더불어 찾아왔다. 페루 리마의 사관학교 시절 체험을 통해 권위주의 체제의 초상을 인상적으로 그린 이 작품으로 그는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열아홉살 나이에 서른두살 아주머니 훌리아 우르키디와 결혼한 그는 9년의 결혼 생활 체험을 <훌리아 아주머니와 대본작가>(1977, 국내 번역판 제목은 <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했다>)라는 소설로 발표했으나, 그 내용에 불만을 품은 훌리아 아주머니는 <어린 바르가스가 말하지 않은 것>(1983)이라는 책을 써서 응수하기도 했다.
그는 스페인 마드리드대학에서 콜롬비아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나 나중에 가르시아 마르케스와는 정치적으로나 인간적으로 적대적인 관계가 되었다. 1971년 피델 카스트로와 결별을 선언한 뒤에는 가르시아 마르케스 및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 등과 치열한 논쟁을 펼치기도 했다.
그가 1990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것은 국제적으로 화제가 되었다. 볼리비아와 칠레, 페루 사이의 영토 분쟁을 해결하고 반부패 투쟁에 가속도를 내겠다는 공약을 내세우고 중도우파 후보로 출마한 그는 결국 일본계인 알베르토 후지모리에게 패배했으며, 그 충격으로 1993년 스페인 국적을 취득했다. 그의 조국 페루인들은 분노했지만, 그 자신은 이듬해인 1994년 스페인어의 문법과 어휘에 관해 최종 결정권을 행사하는 왕립언어학회 회원에 선출되기도 했다.
정치적 주제와 라틴아메리카의 복잡한 역사, 그리고 개인의 은밀한 성적 욕망을 두루 다루는 바르가스 요사의 소설은 국내에도 여러 편 번역 소개되어 있다. 열네 살 연상의 친척 아주머니와 결혼하기까지의 과정을 통해 금지된 사랑의 유혹을 그린 <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했다>, 새엄마를 상대로 한 소년의 에로틱한 욕망과 그것을 지켜보는 새엄마 쪽의 ‘길티 플레저’를 다룬 <새엄마 찬양>, 그리고 페루 국경 아마존 지역에 병사들의 성욕 해소를 위해 창설한 ‘특별봉사대’를 소재로 인간의 어리석음과 페루 군부 및 사회의 모순된 행태를 우스꽝스럽게 그린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등이 대표적이다. 이밖에도 <녹색의 집>을 비롯한 몇 작품이 번역 출간되었으나 지금은 절판된 상태다.
이런 작품들 덕분에 바르가스 요사는 1994년 스페인어권 최고 문학상인 세르반테스상을 수상하는 등 유수의 문학상을 받았으며
노벨상 후보로 줄곧 거론돼 왔다. 그러나 그 자신은 올해 수상 결정 사실을 접한 뒤 “후보에 올랐으리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자신의 수상이 “라틴아메리카 문학과 스페인어문학에 대한 인정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은 우리 모두가 행복해할
만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