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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DJ를 세 번 부인하다 /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2. 3. 23:12

사설.칼럼칼럼

[편집국에서] 박지원, DJ를 세 번 부인하다 / 김의겸

등록 :2016-02-03 19:49수정 :2016-02-03 19:53

 

김대중 대통령 시절 청와대 인사에게 들은 얘기다. “임기말이 되면서 대통령이 많이 우울해하신다. 건강도 안 좋고 아드님들 문제로 속을 끓이시는 거다. 그래도 박지원 비서실장이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가면 5분도 안 돼 웃음꽃이 핀다. 이제는 아예 부속실에서 박지원 실장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어디 계십니까? 지금 대통령이 저기압이신데 한번 들러주시죠’라고 요청을 하기도 한다.” 박지원 의원을 ‘반석’처럼 믿고 좋아했기에 김 전 대통령은 그에게 유언을 남겼을 것이다.

2009년 6월 어느 무더운 날의 점심식사가 김 전 대통령에게는 마지막 공식 행사였다. 박지원은 문재인, 정세균, 안희정 등과 함께 초대받았다. 김 전 대통령은 “이제 그동안의 감정이나 서운함은 다 버리고 모든 야권이 하나가 돼야 한다. 수구 정권이 계속되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건 내 유언이다”라고까지 못박았다. 그런데 유언 집행자로서 박 의원은 충실하지 못했다. 적어도 김 전 대통령의 뜻을 세번 외면했다. 닭 울기 전에 예수를 세번 부인한 베드로처럼.

첫번째는 2015년 2월 전당대회 때다. 김대중 세력과 노무현 세력을 갈라치려고 했다. 여러가지 ‘호남 홀대론’을 들고나왔지만 제일 심한 건 “대북 송금 특검 때문에 김대중 대통령께서 투석을 시작했다”는 주장이다. 사실관계가 맞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이 특검을 수용한 건 3월14일이고 김 전 대통령이 입원해 수술을 받은 건 5월10일이다. 두 달 가까운 간격이 있다. 그것도 신장이 아니라 심혈관계 질환 때문이었다. 충격으로 발생하는 병이 아니다. 투석은 대통령 재임 시절부터 주치의가 받으라고 권고했으나, 한번에 4~5시간씩 걸리는 거라 미루고 미룬 것이다. 왜곡이거나 과장이다. ‘무조건 단결’을 주문했던 김 전 대통령의 유훈은 외면받았다.

두번째는 지난 1년 동안 쉼없이 쏟아낸 분열의 언어들이다. 문재인 대표에게 ‘결단하라’며 사퇴를 촉구했고 ‘신당은 상수다’라는 말로 은근히 분당을 부추겼다. 탈당하기 전에는 루비콘 강을 수십번도 더 넘나들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통합하기 위해 탈당한다’고 말했다. 탈당을 마치 자기희생인 것처럼 둔갑시켰다. 김 전 대통령이 만들고 지켜온 당을 걷어찼으니 이 또한 ‘김대중을 모른다’고 답한 것이다.

그래도 두번의 부정은 흐릿하게 지나갔다. 세번째 부정이 나오자 앞의 부정들도 뚜렷해진다. 박 의원은 지난 1일 종편인 <엠비엔>(MBN)과의 인터뷰에서 “이희호 이사장이 ‘아들 김홍걸의 정치 참여는 아버지를 두번 죽이는 일’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이사장을 잘 아는 한 인사는 “이사장님은 그런 과격한 언어를 쓰시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설사 사실이라 하더라도 ‘주군’의 가족 모두를 욕보이는 일이니, 마지막 비서실장을 자처하는 이가 옮길 말은 아니다. 왜 그랬을까? 이어지는 인터뷰에서 짐작할 만한 대목이 나온다. “어떻게 김홍걸 교수가 목포 지역구 출마 또는 비례대표에 출마하려고 하나 의아해하는 여론이 많다”고 말한 것이다. 자신에게 도전하지 말라는 견제구인가 싶다. 더 나아가 그는 “호남인들 사이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몰표로 당선시켰는데, 지역경제 발전을 시키지 않았다는 불만과 서운함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고까지 말한다. 김대중 대통령을 신앙처럼 섬기던 이의 발언이 맞나 싶다.

김의겸 선임기자
김의겸 선임기자
예수는 부활한 뒤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번 거듭 묻는다. 베드로는 세번 모두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답한다. 박지원 의원도 그럴 수 있을까?

김의겸 선임기자 kyumm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