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어느 무더운 날의 점심식사가 김 전 대통령에게는 마지막 공식 행사였다. 박지원은 문재인, 정세균, 안희정 등과 함께 초대받았다. 김 전 대통령은 “이제 그동안의 감정이나 서운함은 다 버리고 모든 야권이 하나가 돼야 한다. 수구 정권이 계속되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건 내 유언이다”라고까지 못박았다. 그런데 유언 집행자로서 박 의원은 충실하지 못했다. 적어도 김 전 대통령의 뜻을 세번 외면했다. 닭 울기 전에 예수를 세번 부인한 베드로처럼.
첫번째는 2015년 2월 전당대회 때다. 김대중 세력과 노무현 세력을 갈라치려고 했다. 여러가지 ‘호남 홀대론’을 들고나왔지만 제일 심한 건 “대북 송금 특검 때문에 김대중 대통령께서 투석을 시작했다”는 주장이다. 사실관계가 맞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이 특검을 수용한 건 3월14일이고 김 전 대통령이 입원해 수술을 받은 건 5월10일이다. 두 달 가까운 간격이 있다. 그것도 신장이 아니라 심혈관계 질환 때문이었다. 충격으로 발생하는 병이 아니다. 투석은 대통령 재임 시절부터 주치의가 받으라고 권고했으나, 한번에 4~5시간씩 걸리는 거라 미루고 미룬 것이다. 왜곡이거나 과장이다. ‘무조건 단결’을 주문했던 김 전 대통령의 유훈은 외면받았다.
두번째는 지난 1년 동안 쉼없이 쏟아낸 분열의 언어들이다. 문재인 대표에게 ‘결단하라’며 사퇴를 촉구했고 ‘신당은 상수다’라는 말로 은근히 분당을 부추겼다. 탈당하기 전에는 루비콘 강을 수십번도 더 넘나들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통합하기 위해 탈당한다’고 말했다. 탈당을 마치 자기희생인 것처럼 둔갑시켰다. 김 전 대통령이 만들고 지켜온 당을 걷어찼으니 이 또한 ‘김대중을 모른다’고 답한 것이다.
그래도 두번의 부정은 흐릿하게 지나갔다. 세번째 부정이 나오자 앞의 부정들도 뚜렷해진다. 박 의원은 지난 1일 종편인 <엠비엔>(MBN)과의 인터뷰에서 “이희호 이사장이 ‘아들 김홍걸의 정치 참여는 아버지를 두번 죽이는 일’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이사장을 잘 아는 한 인사는 “이사장님은 그런 과격한 언어를 쓰시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설사 사실이라 하더라도 ‘주군’의 가족 모두를 욕보이는 일이니, 마지막 비서실장을 자처하는 이가 옮길 말은 아니다. 왜 그랬을까? 이어지는 인터뷰에서 짐작할 만한 대목이 나온다. “어떻게 김홍걸 교수가 목포 지역구 출마 또는 비례대표에 출마하려고 하나 의아해하는 여론이 많다”고 말한 것이다. 자신에게 도전하지 말라는 견제구인가 싶다. 더 나아가 그는 “호남인들 사이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몰표로 당선시켰는데, 지역경제 발전을 시키지 않았다는 불만과 서운함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고까지 말한다. 김대중 대통령을 신앙처럼 섬기던 이의 발언이 맞나 싶다.
예수는 부활한 뒤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번 거듭 묻는다. 베드로는 세번 모두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답한다. 박지원 의원도 그럴 수 있을까?
김의겸 선임기자 kyummy@hani.co.kr
김의겸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