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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시대와 지옥도 같은 중국의 부패/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2. 18. 21:16

사설.칼럼칼럼

[편집국에서] 댓글시대 / 박민희

등록 :2016-02-17 22:02수정 :2016-02-17 22:06

 

장강명의 소설 <댓글부대>는 댓글로 여론을 조작하려는 세력에 동원된 젊은이들의 이야기다. 댓글부대를 동원한 국정원의 대선 개입을 모티브 삼았지만, 소설은 댓글 여론 조작에 나서는 주인공들의 현실 속으로 쑥 들어간다. 주인공들인 20대 청년 셋은 돈도 빽도 스펙도 변변한 일자리도 없는 처지다. 어느 날부터 ‘위험한 진보’를 소탕하려는 비밀스런 세력의 사주를 받고, 진보 성향 사이트 등에 들어가 회원의 말실수를 트집잡거나 갈등을 부추겨 자중지란을 일으키며 그런 공동체들을 망가뜨려 간다. 그 대가로 돈과 섹스를 제공받는다.

기득권층은 장막 뒤에 숨은 채 사회적 약자들끼리 서로를 ‘종북, 노인충, 맘충, 진지충, 일베충, 급식충, 홍어, 김치녀…’로 증오하도록 부추기는 상황을 섬뜩하게 보여준다. 온라인 댓글과 페이스북, 카카오톡 등에서 부정의한 현실에 대한 분노는 넘쳐나지만 현실을 바꿔내기에는 무력한 ‘사이버 분노’ ‘댓글 진보’를 비꼬는 듯도 하다.

최근 극장가를 독점하고 있는 <검사외전>을 비롯해 영화 <베테랑> <내부자들>, 드라마 <리멤버>에 대한 호응도 이런 한계에 갇혀 있다. 이 작품들은 모두 부패한 정치권력, 권력과 재벌의 결탁, 그들의 방어막으로 기생하는 검찰과 언론을 고발하고 응징하는 공식을 따른다. 섹스파티 장면 등으로 상징되는 기득권층의 추악함이 적나라하고, 이들에 기생하는 검찰·언론 간부는 악마성을 번득이는 이들로 그려진다. 관객들은 실컷 분노하고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영화 속 응징에나마 조금은 후련해하며 극장 불이 켜지면 현실로 되돌아온다. 소설가 김사과가 산문집 <0 이하의 날들>에서 지적한 대로 “현실의 비극들은 지루함 또는 오르가슴으로 손쉽게 해소되고 있다.”

중국에 머물며 취재하던 몇년 전, 중국 사회는 그야말로 지옥도 같았다. 사회주의 간판이 무색한 세계 최악 수준의 빈부격차, 고위 관료들의 상상을 초월한 부정부패와 봉건왕조시대를 방불케 하는 축첩, 2등 시민으로서 저임금과 착취, 차별에 시달리며 떠도는 농민공들, 부동산 개발에 밀려 강제철거에 몰리자 분신하고 사제 폭탄을 터뜨리고 칼부림을 하던 서민들…. 그때 웨이보(중국판 트위터)가 등장했다. 당국의 삼엄한 검열에도 불구하고, 웨이보를 타고 고속철 사고의 내막, 강제철거당하고 분신한 이들의 사연, 고위 관리들의 성관계 동영상까지 폭로됐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인터넷 공간의 분노만으로는 현실의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음이 분명해졌다. 현실로 나서지 않는 분노는 권력에 의해 검열·통제·관리되었고, 중국 당국은 ‘우마오당’이라고 불리는 댓글부대를 통해 반정부 세력을 공격하고 여론을 쉽게 조작할 수 있었다.

결국 현실을 바꾸는 것은 행동이다. 댓글, 온라인, 극장과 텔레비전 앞에서 끓어오르는 시민, 약자들의 분노를 변화의 에너지로 바꿔내려는 노력이다. 새롭고 다양한 사회·정치 운동, 시위, 적극적 투표 참여 등 형식은 다양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공정한 사회의 비전을 제시하는 샌더스에 열광하는 새로운 정치 흐름이 나타났고, 일본에선 아베 정부의 안보법 통과에 반대하는 집회를 이끌며 새로운 사회를 향한 운동을 시작한 학생행동단체 실즈가 있다. 온라인 토론과 지역운동 등으로 시민들의 참여를 적극 모아내며 창당 2년 만에 제3당으로 부상해 스페인을 바꿔나가고 있는 포데모스도 있다.

박민희 문화스포츠 에디터
박민희 문화스포츠 에디터
무너지는 경제, 신냉전의 긴장 속에 내던져진 우리가 이런 변화를 시작하지 못한다면, “대중은 개돼지입니다. 적당히 짖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라는 <내부자들>의 대사를 증명하게 된다.

박민희 문화스포츠 에디터 minggu@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