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철학

다산 철학/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4. 14. 22:47

문화학술

“유학 포기하면서 만난 ‘중용’ 덕분에 ‘다산’ 전문이 됐죠”

등록 :2016-04-14 18:50수정 :2016-04-14 20:48

 

백민정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사진 신소영 기자 <A href="mailto:viator@hani.co.kr">viator@hani.co.kr</A>
백민정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짬] ‘순수 국내파’ 한국철학자 백민정 교수
‘맹자 읽기의 진수, 다산의 혁신적 인간상’. 다산연구소에서 여는 ‘다산학 입문 특별강좌’ 10강 가운데 9강의 제목이다. 다산 정약용의 맹자 주석서인 <맹자요의> 해석을 통해 다산 사상의 특질을 짚어보는 강의다. 오는 20일 예정된 이 강의 담당자는 백민정(44·사진)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다. 다산과 맹자라는 두 거대한 산과 대면해 자신의 사유를 풀어헤칠 채비를 하고 있는 이 40대 여성 철학자를 지난달 29일 부천 가톨릭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그는 연세대에서 박사학위를 딴 지 7년 만인 2014년 교수가 됐다. 한국철학 전공자인데다 국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여성이 수도권 대학의 교수가 된 것이다. “지난 몇년 사이 한국철학 전공자 두세 명 정도가 교수 자리를 얻었어요. 국내 학문 배경만 가진 연구자로는 제가 유일합니다.” 여성이라 더 힘들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는 “그렇지는 않다”며 “한국철학이 한국 사회에서 배제되는 분위기” 자체를 지적했다. “역사 쪽은 그래도 국내 박사들 중심이지요. 하지만 철학은 서양 쪽 위세에 밀려 전통철학이 무시당하는 정도가 심한 편입니다.” 가톨릭대는 예외이지만, 대다수 대학에서는 한국철학 교수들도 해마다 의무적으로 영어 논문을 써내야 한다. 외국유학파가 우위에 설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연세대 학·석·박사 마친 ‘토종 학자’
‘정약용 철학’ 박사논문 높은 평가
한국철학 해도 ‘영어 논문’ 제출 의무
“다산때 ‘서양 위세·전통 홀대’ 비슷”

20일 ‘다산의 혁신적 인간상’ 특강
“다산은 보수주의자…우상화 경계”

그는 연세대 철학과 학부부터 박사 과정까지 모든 이수과목에서 A학점을 받았다고 했다. 그가 박사 과정에 진학한 지 9년 만에 완성한 박사 논문 ‘정약용 철학의 형성과 체계에 관한 연구: 주자학과 서학에 대한 비판적 수용과정을 중심으로’는 그해 다산학술문화재단에서 우수연구상을 받았다. 그는 이 논문에서 다산을 19세기 동아시아 철학의 집대성자로 분석했다. 서학과 고대유학, 훈고학, 일본고학 등 다양한 철학적 흐름을 비판적으로 종합했다고 평가했다. 이 논문을 보완해 펴낸 <정약용의 철학>(이학사)도 철학계 안팎의 호평을 받았다.

애초 그는 프랑스 현대철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96년 대학원 진학 뒤에도 두 학기 이상 서양철학 수업을 들었다. 이 기간 그가 우리말로 옮긴 프랑스 철학 번역서도 두 권(<들뢰즈와 정치> <질 들뢰즈>) 있다. “대학원에 들어간 뒤 아버지 병환 등 우환이 겹치면서 유학을 접었죠.” 마음고생을 심하게 하던 그때 그에게 <중용>이 찾아왔다. “연세대 선배들과 ‘중용’ 강독을 하면서 심리적 안정을 찾았어요. 그러면서 전통철학으로 진로를 틀었어요.”

학자 정약용은 ‘토종 연구자’ 백 교수가 닮고 싶은 롤모델이기도 하다. “서양철학의 과학적 학문 방법론 위세에 눌려 우리 학문이 홀대당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다산 당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그는 본다. “당시 젊은 학자들은 학술적으로 참신하고 새로운 학문인 서학에 이끌렸죠. 서양과 전통 사이에서 갈등하던 다산은 결국 여러 학문적 경향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요.”

‘다산의 혁신적 인간상’을 이번 강의 주제로 정한 이유도 궁금했다. “주자는 인간에게 선의 마음이 있다면서 내면을 들여다보는 함양 공부를 강조했죠. 다산은 선을 타인과의 유대관계 속에서 봤습니다. 인의예지를 실현하려면 타인이 필요하고, 타인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봤죠. 이런 통찰은 지금도 의미가 있습니다.” 맹자는 사람이 측은지심(남의 불행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이를 인의 단서(端緖)라고 봤다. “인의 단서라는 맹자의 표현이 애매합니다. 주자는 단을 끝 단으로 해석해 (사람은) 인도 갖췄다고 보죠. 다산은 시작 단으로 해석합니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인의예지’ 4개의 덕이 드러난다고 봤지요.”

그는 다산의 사회·경제·통치 이념은 당대 유학자들과 큰 차이가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다산은 예치를 중요시하죠. 예치의 기본은 차등입니다. 다산은 완고한 보수주의자였어요.”

‘민초를 위한 개혁적 사유에 몰두한 큰 학자’ 다산의 위대함에 좌든 우든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를 우리 사회에서 듣기 쉽지 않다. 백 교수는 이런 우상화 분위기가 싫다고 했다. “다산은 모든 인간관계에서 차등의 논리(변등론)를 적용했지만, 이런 주장은 다산 관련 글에서 잘 인용되지 않지요. 다산은 차등을 위한 타당한 기준으로 덕행·나이·벼슬을 내세우죠. 이른바 삼달존(三達尊·보편적 존경의 기준)론입니다.”

그는 다산의 저서 중 ‘예학’ 관련이 가장 많은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했다. “<경세유표>와 <목민심서>는 국가, 향촌의 예식서입니다. 다산은 자기 가문의 예식서도 쓰지요. 향례 복원에 적극적이었죠.” 차등의 논리는 맹자도 예외가 아니다. “맹자도 정신노동을 하는 노심자와 육체노동을 하는 노력자를 구분하고 노력자가 노심자를 먹여 살린다고 했죠. 차별이 아니라 기능적 역할분담이라고 설명했어요. 이런 생각은 다산에게로 넘어갑니다. 직업을 9개로 나누는, 다산의 구직론(九職論)이 그 예죠.”

백 교수는 다산 개혁사상의 상징 격인 ‘정전제’를 두고도 “한계가 많았다”고 평했다. 정전제는 토지 한 구역을 ‘정’(井) 자로 9등분해 농가 8호가 한 구역씩 경작하고, 가운데 구역은 공동경작해 수확물을 국가에 조세로 바치는 토지제도다. “다산은 ‘경세유표’에서 지주들이 사유지를 경영하면서 정전제 형태를 취하고 세금을 과도하게 거두지 말라고 요구합니다. 하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론은 제시하지 못합니다. 다산의 정전제는 ‘땅은 공공재’라는 인식을 사람들에게 계몽하는 의미에 그칩니다.”

그는 준비 중인 새 저서에서 다산의 경세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생각이다. “다산의 통치원리를 18~19세기 동아시아 구도 속에서 비교검토할 생각입니다. 명·청 시대와 도쿠가와 막부 시대의 통치제도와 다산 경세론을 함께 보는 것이죠.”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