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철학

“고전읽기에서도 ‘유교 편식’ 벗어나야 합니다” / 김원중 단국대 교수 /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5. 25. 22:47

문화문화일반

 

등록 :2016-05-25 18:54수정 :2016-05-25 22:33

 

김원중 단국대 한문교육과 교수. 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김원중 단국대 한문교육과 교수. 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짬] 동양고전 번역가 김원중 교수
“한문 잘 안다고 생각한 적 없어요. 나보다 한문 잘하는 사람, 한국에 10만명 가량은 있을 겁니다. 성실히 했을 뿐이죠.”

김원중(53) 단국대 한문교육과 교수는 국내 동양고전 출판계의 잘 나가는 스타다. 그가 개인으론 세계 최초 완역했다는 <사기>(전 6권)는 20여 만권, 느낌표 선정 도서인 <삼국유사>는 45만권 이상 팔렸다. <한비자>와 <논어> 번역본도 각각 8만권, 4만권이 나갔다. 김 교수의 책 18권을 낸 민음사에서 그를 이문열 작가와 함께 ‘으뜸 효자 필자’로 꼽은 이유이기도 하다.

중학교 2년생이면 이해할 수 있는 우리말 문장에, 원전의 결을 최대한 살린 그의 번역은 동양고전의 문턱을 낮추는 데 기여했다는 평을 받는다. 번역자 주관을 최대한 억제하고 이해의 폭을 넓히는 참고자료를 풍부하게 제공하는 것도 장점이다.

그가 최근 <김원중 교수의 마음에 쓰는 고전>(한겨레출판)을 펴냈다. 지난 20여년 고전을 번역하면서 마음에 새긴 글귀 120개를 추려 담았다. 지난 20일 단국대 죽전캠퍼스 연구실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사기’ 세계 첫 완역 ‘출판계 스타’
쉬운 우리말 문장으로 ‘문턱’ 낮춰
“김원중표 번역문체 정립하고파”

최근 ‘마음에 쓰는 고전’ 편저 추가
20여년 번역한 고전 명문 120개 추려
“우리말 평론 많이 읽은 게 도움”

김 교수는 최근 중국 전국시대 법가 사상가인 한비의 저서 <한비자>(휴머니스트) 완역본도 냈다. 기존 역서에 위작 논란이 있는 편까지 포함해 20편을 추가 번역해 55편을 모두 옮긴 것이다. 당 태종 이세민이 신하들과 폭넓게 정치의 요체를 토론한 내용이 담긴 <정관정요>(휴머니스트) 개정판도 함께 냈다. 그는 그동안 <정사 삼국지>(전 4권) <손자병법> <명심보감> 등 20여 권의 번역서를 냈다. 지금은 <대학>과 <중용> 번역에 몰두하고 있다.

그는 요즘도 새벽 3시면 깨어 번역을 한다. 1990년대 초부터 들인 한결같은 습관이다. 대학 다닐 때도 새벽 4시30분이면 일어나 공부했다고 한다. “81년 고3 때 집안에 일이 너무 많아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없었어요. 그때의 아쉬움이 제가 대학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된 동력이었던 것 같아요.”

충남대 중문과에서 석사까지 마친 그는 성균관대에서 중국 고전문학 이론서인 <문심조룡> 연구로 95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문심조룡’에 쓰인 한자인 변려문이 무척 어려워요. 공부를 더 하도록 해준 자극제였지요.” 대학원 다닐 때, 그는 특히 미문으로 이름난 유종호 문학평론가의 저서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수없이 읽었다. “번역자는 우리말을 잘 구사해야 합니다. 그시절 국내 저자의 평론집 100권 정도를 읽었어요.”

번역자로서 그의 목표는 독자들이 책을 보고 ‘이건 김원중이 번역한 거네’라고 알아보는 것이다. 그만의 문체를 정립하는 것이다. “내 번역이 100% 제대로 되었다고 절대 확신할 수 없어요. 원전의 근사치 접근이 목표이지요. 번역자는 겸손해야 합니다.” 그가 번역하면서 교정을 다섯차례나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애착이 가는 저자와 저술을 물었다. “‘사기’는 인간에 대한 모든 것을 이야기합니다. 궁형의 치욕을 딛고 명저를 지은 사마천은 저의 인생 멘토이죠. 문장은 한비자가 좋고요. ‘논어’는 꼭 봐야 할 책이죠.”

그는 군 장성 전원을 4개팀으로 나눠 고전 강의를 한 적도 있다. 그때마다 늘 강조하는 게 있다. 바로 ‘유교 편식에서 벗어나기’다. “중국은 유가와 도가, 병가, 법가가 혼합되어 있어요. 진시황의 사상적 기반이 법가였죠. 마오쩌둥이 늘 읽었던 책이 ‘손자병법’과 ‘사기’, ‘자치통감’입니다. 시진핑도 2년 전 중국의 대외전략을 말하면서 ‘손자병법’의 3벌론을 이야기했죠. 일본에도 1808년 한비자 주석의 명저로 꼽히는 <한비자익취>가 나옵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법가나 도가, 병가 문장을 대놓고 읽을 수도 없었어요.”

그는 중·일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라도 법가, 병가적 사유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했다. “대만으로 쫓겨난 장제스는 유교 저작인 ‘주역’과 ‘논어’를 읽었어요. 마오쩌둥이 프로였다면, 장제스는 아마추어였어요. 능력보다는 인성을 중시하는 유교적 사유로는 큰 파고를 돌파할 힘이 부족해요.”

당태종의 ‘정관정요’는 박근혜 대통령의 애독서이기도 하다. 김 교수는 이 책을 ‘열린 정치와 소통하는 리더십의 고전’이라고 소개했다. “1400년 전, 제왕과 신하 사이에 이 정도 소통이 가능했다는 게 놀라워요. 신하 위징은 어느날 태종에게 4차례나 간언을 합니다. 태종은 이 간언을 다 들어주죠.”

그는 ‘한비자’에 나오는 ‘개가 사나우면 술이 신다’는 구맹주산(狗猛酒酸) 얘기를 꺼냈다. “주막집 개가 무서우면 술 받으러 가는 아이들이 들어가기 어려워 그 주막 술이 시어진다는 뜻이죠. 사나운 개는 간신을 뜻합니다. 소통이 안 되는 것은 대부분 리더의 문제죠.”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뭘까. “춘추전국 시대에 큰 전쟁만 500여 차례 있었죠. 생존과 패망 등등 극한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사유가 다 있어요. 그들이 고민하고 내놓은 해결책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그는 지난해 1월부터 교육부 산하 한국학진흥사업단의 심의·자문기구인 한국학진흥사업위 위원장을 맡고 있다. 대통령직속 문화융성위에서 인문특위 1·2기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그가 생각하는 인문학 진흥 해법이 궁금했다. “졸업 조건으로 토익 700~800점을 걸어놓은 대학이 꽤 많아요. 대학이 학원 기능에서 벗어나 진짜 인문학 책을 읽혔으면 좋겠어요. (중국 역대왕조의 정사인) ‘24사’ 가운데 사기와 삼국지를 빼면 22권이 아직도 번역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 이야기도 많이 나오는 ‘명사’나 ‘청사’가 속히 번역되도록 지원이 있었으면 합니다.”

그에게 이번에 고른 120개 글귀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글을 물었다. ‘지혜란 눈과 같아 백보 밖은 볼 수 있지만 자신의 눈썹은 볼 수 없다’(한비자 유로 편)를 꼽았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