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관찰하기

선한 미국/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5. 23. 15:53

사설.칼럼칼럼

[특별기고] 선한 미국 / 서경식

등록 :2016-05-19 20:13

 

벤 샨은 밑바닥 사람들에게 공감하며 전쟁, 빈곤, 차별 등의 주제를 계속 다뤘다. 2차대전 뒤로는 평화운동에 헌신했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 예비선거에서 버니 샌더스가 예상외로 잘 싸웠다. 미국 사회의 희망적 조짐이다. 뉴욕에서 ‘옛 동무’ 벤 샨과 재회하고 그런 생각을 했다.
지난번 글 ‘죽음의 산’에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되는 악몽에 대해 얘기했다. 그로부터 1개월여 지난 5월3일 인디애나주 예비선거 결과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자로 확정됐다. 악몽은 한 걸음 더 실현 쪽으로 다가섰다.

강연차 코스타리카를 왕복하는 도중에 들른 뉴욕에서 지난번 글을 썼다. 코스타리카는 작은 나라지만 세계 유일의 군대 없는 나라다. 일본도 그와 마찬가지로 헌법상 무력을 보유하지 않는다고 선언한 나라인데, 그 규정은 형해화한 지 오래다.

“지금은 세계에서 비무장 국가는 명실공히 코스타리카뿐이군요”라고, 현지에서 만난 교수와 학생들에게 얘기를 걸면 그들은 앞으로도 무슨 일이 있더라도 비무장 원칙을 지켜갈 것이라고 밝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코스타리카 국민 대다수가 자국이 비무장 국가라는 사실을 다행스러워하고 자랑스러워하고 있는 것이다.

전세계에서 군사주의와 배외주의가 고조되는 가운데 코스타리카 사람들은 언제까지 그 원칙을 지켜갈 수 있을까. 이런 현대 세계에서 무장하지 않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나라가 단 하나라도 존재한다는 사실의 소중함에 대해 상상해본다. 희귀 동물의 절멸이 생태계의 파멸적 파괴를 예고하듯이, 군사주의·배외주의로 인한 파멸을 경고하고 있는 이 소국이 그 이상과 평화를 지켜나갈 수 있을까. 거기에 인류 전체의 미래가 걸려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1980년대 후반에도 뉴욕을 방문했었다. 당시 한국은 군사정권 시대로, 나는 정치범의 조기석방을 호소하기 위해 여러 인권단체와 시민단체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멀리 일본에서 15시간 가까이나 비행기를 타고 어느 인권단체에 마침내 당도해보니 고급스런 슈트를 입은 금발의 여성 스태프가 웃지도 않고, 내가 알아듣기에는 너무 빠른 영어로 “오케이, 당신에게 15분을 드리겠습니다”라고 통고했다. 15분! 15시간의 비행 뒤에, 그것도 더듬거리는 영어로 하는 15분이라니!

생각해보면, 그녀의 대응도 무리는 아니었다. 당시에는 칠레, 아르헨티나, 필리핀, 대만 등 세계 각지에서 나와 같은 하소연을 하려는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모여들었다. 그녀는 그들 모두를 상대해야 했으니까.(지금도 세계에는 그와 같은 하소연을 하려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다.)

정치범 학대와 인권유린 법률들에 대해 열심히 얘기했다. 정확하게 15분 뒤 상대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불친절한 시험관의 면접을 받은 기분이었다. 반응은 잘 모르겠지만 뭔가 구체적인 성과가 있는 것 같진 않았다. 그 뒤 거리로 나갔다. 시간이 남아돌았으나 그 낯선 거리에서 나를 맞아줄 지인은 없었다. “미국은 정말 싫다!”는 말을 마음속으로 내뱉으며 우울한 마음으로 브로드웨이 근처를 돌아다녔다.

이럴 때 사람들은 어디로 갈까? 공원? 술집?… 나는 언제나 미술관이다. 그 뒤 며칠 동안 나는 뉴욕 시내의 주요 미술관들을 돌며 중세의 거장에서부터 현대의 이단아까지 많은 미술가들과 마음속으로 대화를 했다. 미국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미술관은 나쁘지 않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30년이 지난 지금, 트럼프의 악몽이 죄어오는 것을 느끼면서 예전과 같은 우울한 마음으로 미술관을 돌아다녔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상설전을 보는 데만 이틀이 걸렸으나 그래도 다 보지 못했다. 근대미술관의 특별전시는 드가였다. 무용수의 모습을 즐겨 그린 19세기 인상파 거장인데, 이번 전시에서는 내가 미처 몰랐던 새로운 면, 말하자면 어두운 측면을 볼 수 있었다. 드가는 당시 파리에서 번성했던 성매매업소와 거기서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특별한 애착을 갖고 어두운 색조의 그림을 다수 남겼다. 여성을 대상으로 심미적으로만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자연주의 문학적인 정서를 담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최근 이전해서 새로워진 휘트니 미술관의 최상층 플로어에서는 로라 포이트러스의 대규모 개인전 ‘아스트로 노이즈’(Astro Noise)를 볼 수 있었다. 포이트러스는 미국의 국가안보국 내부정보를 폭로해 당국에 쫓기는 몸이 되자 모스크바로 망명한 에드워드 스노든과 연락을 취하면서 그와의 인터뷰를 <시티즌포>(Citizenfour)라는 영상작품으로 만든 여성이다. 그녀 자신 미국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지금까지 몇 번이나 구속당했다고 한다. 이번 전시도 ‘감시사회’를 문제 삼는 내용이다.

<베드 다운 로케이션>(Bed Down Location)이라는 제목의 설치미술은, 관객이 방 중앙의 널찍한 베드에 드러누워 천장을 올려다보게 돼 있었다. 거기에는 총총한 별들이 빛나는 예멘과 파키스탄의 밤하늘이 비친다. 그러나 이윽고 태양이 떠오르면 하늘은 무인 공격기 드론으로 가득 찬다.

개인전의 가장 큰 방에는 대형 스크린에 다양한 사람들 얼굴이 슬로모션으로 흐른다. 모두 너무 놀라고 어이없어 할 말을 잃은 듯한 표정. 울고 있는 이도 있다. 아무래도 9·11 직후에 그라운드 제로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인 듯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이게 끝이 아니다. 스크린 뒤로 돌아가면 거기에는 화질이 나쁜 단색의 영상이 비치고 있다. 헛간 같은 방에 끌려온 남자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다. 미군 병사로 보이는 인물이 라이플 총구를 남자에게 겨누고 “너는 알카에다지” 하고 심문한다. 남자가 부정하면 병사는 “파키스탄 정부에 연락해서 네 마누라를 구속할 수 있어”라고 위협한다. 이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용의자를 심문한, 다분히 실사 장면인 듯하다. 등장한 두 사람의 용의자는 그 뒤 관타나모 수용소로 보내졌다고 한다. 얼마나 지적으로 도발적인 작품인가!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고 이런 작품을 만드는 아티스트가 아직 있다. 그것을 뉴욕 한복판에서 공개하는 미술관이 있다. 자기검열이 일상화한 일본에서는 어떨까? 한국에서는? 그렇게 생각하면 미국에도 아직 좋은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광부의 죽음>
<어느 광부의 죽음>

근대미술관에서 ‘현대 아메리카파’라는 방에 들어갔다. 구석의 벽에 걸려 있는 작은 유화에 눈이 갔다.

“아, 벤 샨이다….” 그리운 옛 동무를 만난 기분이었다. 생각하면 그야말로 내겐 ‘선한 미국’의 대표 작가다. 그 작품은 <어느 광부의 죽음>(1949)이다.

벤 샨(Ben Shahn, 1898~1969)은 리투아니아 태생의 유대계 미국인이다. 1906년, 7살 때 미국으로 이민갔다. 뉴욕 브루클린에 살면서 석판화 장인으로 생계를 꾸려갔다. 육체노동자, 실업자 등 밑바닥 사람들에게 공감하며 전쟁, 빈곤, 차별 등의 주제를 계속 다뤘다. 대공황 시대는 미국 서민을 제재로 뛰어난 사진을 많이 찍었다. 디에고 리베라의 록펠러센터 대벽화 제작 때 조수 일을 했다. 제2차 대전 중에는 반나치 선전포스터 제작에 수완을 발휘했다. 종전 뒤에도 평화운동에 헌신했으며, 1954년 남태평양 핵실험 때 피폭당한 일본 어선 제5후쿠류호를 테마로 시리즈를 발표했다. 자주 일본을 찾아 전후 일본의 일러스트레이터와 그래픽 디자이너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다만 일본인 아티스트 쪽이 그의 기법이 아니라 그 정신을 얼마나 배웠는지는 따로 검토해봐야 할 과제다.)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
그래서 나도 젊었을 때부터 벤 샨의 작품에 친숙했다. 1930년대 이후 미국의 진보적 예술운동의 명맥이 여기에 이어지고 있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 예비선거에서는 버니 샌더스가 젊은이들의 지지를 얻어 예상외로 잘 싸웠다. 그가 본선에 나가 승리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는 확실히 미국 사회의 희망적 조짐일 것이다. 뉴욕에서 ‘옛 동무’ 벤 샨과 재회하고 그런 생각을 했다.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 번역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