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 게임에서 ‘와일드카드’는 게임의 재미를 더해줄 수 있다. 하지만 와일드카드는 승패를 바꾸고 판을 더욱 예측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래서 ‘순수한 포커’ 애호가들은 조커 같은 와일드카드를 게임에서 빼버리고 싶어한다.
미국 정치에서, 대선 경선은 일반적으로 와일드카드를 제거하기 위한 심사 과정 구실을 한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라는 와일드카드가 사실상 공화당 대선 후보로 지명됐다. 그가 대선 후보가 될 것으로 예측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예측은 빗나갔다. 정치권 주류들은 그가 현상유지 상태를 전복하지 않을까 매우 두려워하고 있고, 정치적 순수주의자들도 포커판의 순수주의자들처럼 정치판에서 조커를 제거하고 싶어한다.
나도 트럼프가 오는 11월 대선 본선에서 패배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는 역대 대선 후보자 가운데 비호감도가 가장 높다. 그는 여성과 히스패닉을 심하게 공격했다. 지난 2012년 대선에서 여성은 전체 유권자의 53%, 히스패닉은 8.4%를 차지했다. 공화당 경선에서 그를 승리하게 만들었던 자질들, 예컨대 인종적 편협성이나 무절제한 언행, 말의 비일관성 등은 본선에선 유권자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그는 공화당을 철저하게 분열시켰다. 2012년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밋 롬니와 네오콘들은 그에 대한 지지를 거부하고 있고, 공화당도 (본선에서) 매끄럽고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는 (본선에서) 패배는 물론이고, 큰 표 차로 질 것이다. 그러나 이런 예측들도 전통적인 정치적 분석에 기초한 것이다. 트럼프는 와일드카드다. 그는 11월 선거에서 이런 전망을 뒤엎을 수 있다.
트럼프는 행동뿐 아니라 내놓는 제안들도 예측불가능하다. 북한 지도자인 김정은과 직접 대면해 협상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워싱턴 주류 정치인들은 트럼프의 생각이 무법적인 북한 정권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것이라며 진저리를 친다. 심지어 북한도 그런 제안에 회의적이다. 서세평 스위스 제네바 주재 북한대사는 “쓸모없는 일”, “선거용 행위”라며 일축했다.
트럼프는 정치인이었던 적이 없다. 방송사 경영진이 새로운 텔레비전 쇼를 소개할 때처럼 트럼프는 멕시코와의 국경선에 장벽 설치, 무슬림 이민자 추방, 물고문 도입 등의 제안들을 펼쳐놓는다. 신문 제목을 만들어내고, 주의를 끌게 하고, 새로운 충성스러운 추종자들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트럼프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무용지물이라고 하고, 한국이나 일본에 주둔하는 미군의 철수를 언급했다고 해서 ‘대통령 트럼프’가 실제로 해외주둔 미군을 축소시킨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트럼프는 국방부와 교류해본 적도 없고, 외국 지도자들과 협상해본 적도 없다. 말하는 것들이 현실에서 검증된 적도 없다. 트럼프는 실제로 거의 ‘리얼리티 텔레비전 쇼’를 통해 ‘리얼리티’(현실)를 이해한다.
최근 들어 트럼프는 좀더 ‘대통령답게’ 되겠다고 했다. 트럼프 참모들도 그를 좀더 차분하고 예측가능하게 바꾸려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가 지금 모습을 버리게 되면, 그는 자신의 청중과 핵심 지지층을 잃어버릴 것이다. 게다가 그가 정신을 차리고 내놓은 정치적 견해들로 공화당 지도부를 설득하기엔 이미 너무 늦었다.
트럼프가 터무니없는 제안을 할 때 농담이라고 생각하면 틀리기도 하고 맞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무언가를 말할 때 아주 진지하다. 하지만 다음날 ‘그냥 농담이었다’는 식으로 말한다.
성공적인 정치인이 되기 위해선 메시지의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트럼프는 그런 것엔 관심이 없다. 이런 이유로, 트럼프는 모든 대선 후보들 가운데서 가장 위험하다. 그렇지만 트럼프는 너무나도 예측불가능해서 11월 선거에서 뜻밖의 승리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트럼프에 관한 한 모든 예측은 작동하지 않는다.
존 페퍼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존 페퍼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