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기업 구조조정 추진계획 및 국책은행 자본확충 등 보완방안 발표 기자회견에서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과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귓속말을 주고받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정부가 8일 조선해운 구조조정 및 국책은행 자본확충 방안을 내놨다. 구조조정이 시급한 상황에서 정부가 사실상 첫 번째로 내놓은 종합 대책이다. 하지만 벌써부터 걱정이 적지 않다. 국책은행 자본확충 목적의 펀드 조성과 관련한 한국은행 동원 논란이 대표적이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준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자산매입 등의 양적완화를 단행했다. 경기부양을 위한 유동성 공급 확대가 핵심이었지만, 지금 우리처럼 부실 금융기관을 지원하기 위한 구제금융도 적지 않았다. 외형적으로 우리와 유사하다. 하지만 금융전문가들은 미국과 한국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고 말한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은 개별 금융기관 지원의 법적 근거가 분명하지만, 우리의 경우 한은이 기업은행을 거쳐서 펀드에 대출을 해주는 것은 한은법 위반”이라고 말했다.
그럼 정부가 왜 이런 무리수를 두는 걸까? 전문가들은 국회를 피하려는 꼼수라고 입을 모은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채권단과 금융감독 당국이 부실기업을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하고 오히려 ‘밑 빠진 독에 물붓기’ 식으로 부실만 키운 것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 추궁은 꼭 필요하다. 정부가 한은 지원 대신 재정이나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방안을 선택할 경우 국회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회 검토 과정에서 자연히 채권단과 금융감독당국, 나아가 청와대의 책임론이 거론될 수밖에 없다. 청와대는 이것이 싫은 것이다.
마침 부실 구조조정과 관련해 욕을 먹고 있는 산업은행의 홍기택 전 회장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2014년 10월 대우조선해양에 4조2000억원의 유동성 자금을 지원한 것은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최경환 경제부총리 및 기획재정부 장관,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 임종룡 금융위원장의 일방적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폭로한 것이다. 서별관회의는 경제부총리(기재부 장관), 경제수석, 금융위원장, 금감원장, 한은 총재 등 5명이 모여 거시금융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는 자리로, 사실상 한국 경제의 컨트롤타워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서별관회의의 법적 근거가 없고, 결정 과정이 전혀 공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동안 많은 경제전문가들이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포함한 주요한 경제정책이 국민의 눈이 제대로 미치지 않는 밀실에서 결정되는 데 대한 위험성을 지적해왔다.
정부도 이런 비판을 의식한 듯 구조조정 대책 중에 경제부총리를 포함한 관련부처 장관들로 컨트롤타워를 만드는 방안을 포함시켰다. 덧붙여 기존 서별관회의에서는 구조조정 문제를 다루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청와대는 빠진 채 관련부처들끼리 종합대책을 세우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 간의 이견을 조정하고, 특히 국회와 의견조율까지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 서별관회의에서 구조조정 문제는 다루지 않겠다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는 실질적인 구조조정의 컨트롤타워를 당당히 만들지 못하는 것은 구조조정이 실패했을 때 책임 추궁을 피하려는 비겁함 때문이다.
야당의 모습도 대통령과 크게 다를 게 없다. 특히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구조조정의 실패 원인을 정확히 규명해 앞으로 비슷한 일이 재연되지 않도록 하고, 구조조정에 성공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힘을 보태야 함에도 사실상 팔짱을 끼고 있다. 김상조 소장은 “책임지는 일은 피하고, 결과를 지켜보다가 잘못되면 정부와 청와대를 공격하는 가장 쉬운 일만 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벌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총수가 무소불위의 절대권한을 휘두르고도 정작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지배구조의 후진성이다. 대한민국에서 정치권력의 투톱이라고 할 수 있는 박근혜 대통령과 더민주의 비겁함이 국민의 눈에 어떻게 비칠까?
곽정수 경제에디터석 산업팀 선임기자 jskwa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