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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의 화두 ‘통일’ - 리영희

이윤진이카루스 2010. 12. 7. 20:24

일생의 화두 ‘통일’…“남북체제 반반씩 수렴해야”
리영희 ‘한반도에 대한 시각’
이대론 남북충돌 못피해…자본·사회주의 절충 통해 서로 인정하고 닮아가야
기득권 세력과 미국 지배, 통일 첫발은 그들과의 투쟁…결국 민중이 깨어날밖에
한겨레 한승동 기자기자블로그
» 1989년 8월 <한겨레> 방북 취재 계획을 이유로 구속돼 5번째 옥고를 치르다가 집행유예로 출감한 리영희 당시 한겨레신문사 고문에게 부인 윤영자씨가 두부를 먹이는 ‘액땜 행사’를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변함없이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2005년에 출간된 <대화>에서 리영희는 자신이 1990년대 초 서울대 신문연구소와 <문화방송>이 공동 주최한 학술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동북아 지역의 평화적 질서 구축을 위한 제언’을 언급하면서 남북문제, 나아가 통일문제 해법은 여전히 그 길밖에 없다고 말했다. “북한의 핵이나 남한의 핵이나 한반도의 비핵화, 가능하면 궁극적으로 통일 한국의 비핵화·중립화로 동북아시아 6개국의 공동체적 평화체제를 구축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면서 그는 남북이 각각 자체 수정을 거쳐 서로를 닮아가는 ‘체제수렴적 통일’론을 주창했다. “남북한이 시장경제와 사회주의를 절반씩 도입해서 비슷한 경제·문화가 되어야 각기 국민의 행복이 증진될 수 있어요. 그렇게 서로 상대방의 장점을 절반씩 가미한 제도의 국가는 통합되기가 쉽지.” 2004년 대담에서도 그는 “현재의 이질적인 두 체제를 재통합하기 위해서는 체제수렴적인 방식밖에 없다”고 했고, 이미 1988년 8월 잡지 <말>과의 인터뷰에서도 그런 발상의 윤곽을 피력했다.

»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8억인과의 대화> 등의 저서가 반공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붙잡혀간 지 2년 만인 1980년 1월9일 광주교도소에서 출소한 리영희. 한승헌 변호사 등의 마중을 받은 그가 기자들의 취재에 응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남북이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일정기간 연합의 형식으로 두면서, 두 지방국가의 대표기구가 쌍방의 두 지방국가 내부의 경제구조라든가 이질적인 요소를 순차적·단계적으로 수정 변화시켜나가는 형식을 고려해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느슨한 국가연합, 낮은 단계의 연방’ 방식의 통일방안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고, 1989년 4월 문익환 목사가 평양에서 김일성 북한 주석과 합의한 통일방안과도 그리 다르지 않다. 그래야 남북이 서로 접근할 수 있는데, “현재의 체제로는 대립과 충돌, 심지어 전쟁을 피할 수 없어요.” 이번 연평도 사태로 그의 우려는 이미 현실화했다.

이는 그의 사회민주주의 소신과도 밀접하게 얽혀 있다. “나의 결론은 인간은 물질적 요소로 존재하는 동물이니까 자본주의적 요소로 말미암은 필연적인 비인간화 결과를 5할 정도의 선에서 인정하고,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인간성 파괴의 측면을 보완하기 위해 게마인샤프트(공동체)적·사회주의적 요소를 5할 정도 융합하는 방식인 사회민주주의적 체제가 인류 사회의 지금 발전단계에서는 가장 낫고, 사회주의 없는 미국식 체제보다 우월하다고 확신해요.”

그러나 리영희는 그런 체제로 나아가는 데는 두 가지 중대한 장애가 가로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하나는 우리 내부의 기득권 세력, 그리고 또 하나는 그들이 기대고 있는 미국이라는 나라다. “우리 경제는 미국 자본주의 경제 구조 속에 강력히 편입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때문에 극단적으로 불평등한 경제구조를 평등하게 만들려고 시도할 때, 기득권세력이 야기하는 내적인 요소와의 투쟁뿐만 아니라 주로 미국을 축으로 한 큰 구조와의 투쟁도 동시에 수행해야 합니다.”

리영희는 분단을 주도한 미국의 남한 지배가 한반도 문제의 출발점이자 본질이며, 그 미국과의 모순관계 해소 없이는 한반도 안보위기 해소는 물론이고 남북문제, 통일문제도 해소할 길이 없다고 보았다. 북핵문제도 거기에서 시작됐으며,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남한과 미국이 막대한 군사비 투입을 중단해야 하고 북한을 우선적인 공격대상으로 겨냥한 미국 군부의 전략이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과의 지난 8월27일 병상 인터뷰에서도 리영희는 “서해와 남해에 미국 항공모함이 그렇게 마음대로 오가는” 상황이 중국을 자극하면서 위기를 심화시킬 것이라며 지금을 “(을사)조약 시기, 강제병탄 직전인 1905년, 거의 사실상 국가를 상실한 그 시기로 본다”고 말했다. 다만 강제병탄 주체가 일제에서 미국으로 바뀌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2006년 인터뷰 때는 이런 말도 했다. “100년 전과도 비슷하고 주변 열강들에게 우리가 농락당한 1920년대 이후 상황과 더욱 비슷하다. 1920~30년대는 바로 제국주의 각축전이 치열하게 전개된 시대다. 다만 상당히 다른 점은 러시아·중국 쪽이 위기상황을 조성할 동기가 없다는 것이다. 자신들에게 해로우니까. 건설과 평화 쪽이 그들에겐 유리하다. 문제는 역시 지금도 백년 전과 마찬가지 입장을 추구하고 있는 미국과 일본·영국이다. 이들 남북분단 고착화를 노리는 외부세력 때문에 우리의 내부 갈등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

남북문제, 한반도 통일문제의 해결은 결국 그런 안팎의 모순을 해소하는 것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으며, 그 해소의 주체는 각성한 시민 또는 민중일 수밖에 없다고 생전의 리영희는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