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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긍정적으로 보기 /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6. 30.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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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길 칼럼] 브렉시트 긍정적으로 보기

등록 :2016-06-30 08:33수정 :2016-06-30 08:37

 

정의길

브렉시트는 유럽연합 확장과 긴축정책의 동력 상실을 의미한다. 미국의 패권, 독일의 경제 이익에 바탕을 둔 유럽연합 확장과 긴축은 유럽의 불안과 침체의 배경이다. 브렉시트는 철없는 포퓰리즘의 광란이 아니라, 유럽연합을 건강하게 할 기회가 될 수 있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를 놓고 비판의 목소리만 들린다. 나 역시 비판적이다. 하지만 모든 사물과 현상에는 명암이 있음을 상기하자. 브렉시트는 그 원인인 유럽연합의 확장과 긴축정책을 교정할 절호의 기회이다.

브렉시트의 최대 동력인 영국 안의 이민 문제는 유럽연합의 급속한 확장 때문이다. 유럽연합이 동유럽으로 확장을 시작한 1993년 이후 영국 내의 외국 출신 노동자는 두 배인 600만명으로 늘었다. 노동력의 10%이다. 대부분은 동유럽에서 온 유럽연합 시민들이다. 동유럽 저임 노동자에 치이고 있다고 느끼는 영국 중하류층들은 중동 난민 사태가 발발하자, 이민자에 대한 적의를 증폭했다. 사실 영국은 섬나라라서 유럽 대륙 국가들과 비교하면 중동 난민 유입이 거의 없는데도, 중동 난민들은 그 희생양이 됐다.

유럽연합의 확장과 이를 이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팽창은 유럽에서 불안의 근원이었다. 이를 추진하는 쪽은 안정과 안보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현실은 그 반대였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과 우크라이나 내전이 잘 말해준다. 러시아의 앞마당인 우크라이나까지 유럽연합에 가입하려 하자,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합병하고 우크라이나 내전을 촉발했다. 신냉전이란 말이 나왔다.

유럽연합의 확장은 두 가지 이유에서 추진됐다. 먼저, 옛 사회주의권 동유럽 나라들을 서방 체제에 편입시켜 전통적인 러시아 위협을 봉쇄하려는 의도이다. 유럽 전체를 확고한 동맹 구도로 묶으려는 미국의 의도가 컸다.

둘째, 동유럽으로 시장을 확장하려는 자본의 이해이다. 역사적으로 동방 지향인데다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의 이해가 컸다. 공동통화 유로에다가 확장된 공동시장의 최대 수혜자는 독일이었다. 독일은 2008년 금융위기도 거의 겪지 않고, 중국을 능가하는 최대 흑자국이 됐다. 그리스 등 남유럽 부채위기의 배경도 유럽연합에서 독일의 독식이다.

브렉시트 사태로 유럽연합은 이런 공격적 확장의 동력을 잃었다. 이는 유럽과 유럽연합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미국이 유럽에 개입하는 지렛대인 영국이 탈퇴함으로써, 유럽은 외교적 자율 공간을 더 넓힐 수 있다. 이미 독일은 우크라이나 내전과 관련한 러시아 제재에서 미국의 강경 입장에 반기를 들었다.

제프리 색스 컬럼비아대 교수는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의 투고 ‘브렉시트의 의미’에서 우크라이나와 조지아로의 나토 팽창을 중단하라고 지적했다. 그는 “나토 팽창의 문을 닫는 것은 러시아와 긴장을 완화하고 관계를 정상화하고, 우크라이나를 안정시키고, 유럽의 경제와 유럽 프로젝트에 대한 초점을 복원하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과 유럽 쪽의 자율 공간 증대는 시리아 내전 등 중동분쟁의 해결에도 기여할 수 있다.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손잡고 시리아의 정권 교체에 집착하는 한 시리아 내전 등 중동분쟁은 해결될 수 없다. 서방과 러시아, 이란이 손을 잡고, 시리아 내전에서 이슬람국가를 패퇴시키는 것이 급선무이다. 이는 유럽 난민사태의 근원을 차단하는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지속되는 유럽연합의 신자유주의 긴축정책도 동력 상실이 불가피하다. 재정 건전성이라는 명분으로 독일 주도로 유럽연합과 회원국 전체에게 강요되는 긴축정책은 런던의 금융자본과 독일 이익에 복무했을 뿐이다. 독일을 제외한 유럽연합 전체 경제의 침체와 실업, 이에 바탕을 둔 불평등 확산은 브렉시트의 근본 배경이다.

딘 베이커 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 공동소장은 <폴리티코>에 “브렉시트는 종국적으로 영국 밖의 유럽연합 엘리트에게 유럽연합을 구하려면 긴축 외의 다른 코스를 취해야만 한다는 것을 납득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브렉시트 결과로 영국에서는 런던의 금융산업 비중이 줄고, 유럽 대륙은 긴축 고삐가 풀리며 5년 안에 성장과 고용의 증가 효과를 볼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물론 이는 희망 사항이나,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브렉시트를 철없는 포퓰리즘의 광란으로만 평가하는 건 힘세고 가진 자들의 관점일 뿐이다. 브렉시트는 유럽연합이 그동안 유럽 통합이란 숭고한 이상을 가진 자와 힘센 자의 이익을 먼저 하는 데 이용했기 때문이다. 브렉시트는 유럽연합을 건강하게 할 기회가 될 수 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