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관찰하기

러시아 유권자의 투표 파업으로 드러난 러시아의 비민주성 / 경향신문에서

이윤진이카루스 2016. 9. 20. 22:16

“러시아 유권자, 투표 파업”…푸틴의 ‘거수기당’ 총선 압승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입력 : 2016.09.19 21:40:00 수정 : 2016.09.19 21:43:42

ㆍ집권 통합러시아당 승리…54% 득표 450석 중 343석
ㆍ일정 앞당기고 토론 제한…‘투표율 47%’ 맥빠진 선거

<b>예정된 승리</b> 18일(현지시간) 러시아 총선이 끝난 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왼쪽에서 두번째)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첫번째)가 여당인 통합러시아당의 모스크바선거운동본부를 방문해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모스크바 | 타스연합뉴스

예정된 승리 18일(현지시간) 러시아 총선이 끝난 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왼쪽에서 두번째)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첫번째)가 여당인 통합러시아당의 모스크바선거운동본부를 방문해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모스크바 | 타스연합뉴스

러시아에서 18일(현지시간) 국가두마(하원) 의원들을 뽑는 총선이 실시됐고, 집권 통합러시아당이 이번에도 1당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창당 15년을 맞은 이 정당은 여전히 실체가 없고, 선거를 둘러싼 의혹이 끊이지 않는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1인 통치’를 뒷받침하기 위해 운영되는 정당인 까닭이다.

러시아 언론들은 통합러시아당이 이번 총선에서 54.1%의 득표율로 선두를 지켰다고 보도했다. 공산당은 13.4%, 극우민족주의 성향의 자유민주당은 13.2%를 얻었다. 이번 총선에서는 2003년 폐지된 지역구·비례대표제 혼합 방식이 부활해 225명은 지역구에서, 나머지 225명은 정당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제로 선출됐다. 통합러시아당은 비례대표로 2011년 총선 때보다 105석을 더 얻어 전체 450석 중 무려 343석(76%)을 가져가게 됐다.

푸틴은 이번 총선으로 다시 힘을 과시했다. 2018년 대선에 푸틴이 재도전할 수 있도록 권력기반을 재정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통합러시아당은 2001년 사실상 푸틴의 지시로 만들어진 정당이었고, 2003년 총선에서 제1당이 됐다. 푸틴은 2000~2008년 대통령 시절에는 입당하지 않았지만 ‘관리 민주주의’라는 명분하에 당을 활용해왔다. 푸틴은 총리 시절 잠시 입당했다가 2기 집권 뒤 다시 탈당했다. 당의 정책과 이념은 모호하다. 중도우파와 전통주의를 표방하면서도 동성애 금지, 교내 여교사 치마 착용 금지 등 극우적인 정책을 내세운다. 정치적 색채보다는 오로지 푸틴을 위한 당이며 크렘린의 거수기라는 비판이 끊임없이 나온다.

모스크바타임스는 이번 선거에서도 통합러시아당의 승리를 위한 정치 술수가 작용했다고 보도했다. 2011년 총선 뒤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리는 등 정부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크렘린은 올 12월 실시돼야 할 총선을 9월로 앞당겼다. 후보자들이 선거운동을 펼치는 동안 유권자들은 여름휴가를 떠났고 9월에는 추수 기간과 신학기 시작이 겹쳐 선거에 관심이 쏠리지 않았다. 실제로 2011년 60.2%였던 투표율은 이번 선거에서 47.8%에 그쳤다. 선거 일정이 바뀐 데다 정치에 실망한 시민들이 아예 무관심으로 돌아선 것이다. 특히 2011년 50% 정도였던 모스크바 투표율은 37%로 떨어졌다. 정치학자인 알렉산드르 키네프는 “정부 비판 여론이 강한 대도시에서 투표율이 가장 많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낮은 투표율은 예고된 것이었다. 푸틴 권위주의에 대한 비판이 나올까 우려해 선거 분위기를 의도적으로 가라앉혔기 때문이다. 총선을 앞두고도 거리에는 후보자 포스터가 거의 보이지 않았고, 여당과 야당들 모두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는 토론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한 현지 언론은 “유권자들이 후보의 이름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이번 총선은 ‘국가 기밀’로 분류됐다”는 유머를 기사에 실었다. 사회학자 엘라 파네야크는 모스크바타임스에 “유권자들이 투표 파업을 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 1.91% 득표에 그친 온건자유당 야블로코 측은 “사람들은 결국 정치를 믿지 않고 집에 있는 것을 택했다”고 논평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70205&artid=201609192140005#csidx59b0b86739c8e1db82367604b6a14f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