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섬진강 자전거 여행 / 경향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10. 13. 22:43

여기, 섬진강 따라 달리니…저기, 가을이 따라오네요

정유미 기자 youme@kyunghyang.com

ㆍ광양에서 순창까지…자전거 종주길 148㎞

자동차가 다니지 못하는 길, 두 바퀴가 행복하다.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전남 구례 섬진강변의 코스모스 길을 따라 달리며 깊어가는 가을을 만끽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자동차가 다니지 못하는 길, 두 바퀴가 행복하다.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전남 구례 섬진강변의 코스모스 길을 따라 달리며 깊어가는 가을을 만끽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지리산을 휘감아 도는 섬진강. 지리산이 어머니의 품이라면 섬진강은 마르지 않는 어머니의 젖줄이다. 지리산을 언덕 삼아, 섬진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벗 삼아 두 바퀴 자전거로 달려보자. 천천히 페달을 밟아도 좋고 잠시 멈춰도 좋다. 자전거 종주길 148㎞를 따라 가을 햇살 부서지는 강물이 무성한 습지를 지나 지리산 자락과 익어가는 들녘을 휘돌아 꿈결처럼 흘러간다. 어지럽던 산천은 이내 붉게 물들 것이다. 꽉 찼던 들판이 비워지기 전에 두 바퀴로 섬진강변을 달리면 붉은 물, 노란 물 가슴에 가득 고이겠다.

■벚나무 따라 섬진강

전남 구례 사성암 입구에서 자전거를 빌렸다. 폭이 2m 정도 되는 자전거 도로에는 파란 줄이 그어져 있다. 섬진강 자전거길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벚나무길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새하얀 벚꽃 흐드러졌던 그 자리 단풍으로 물들면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

페달을 밟자 아름드리 벚나무들이 달려든다. 왼편으로 보이는 섬진강은 호수처럼 잔잔했다. 전날 비가 내려 강물이 불었다고 했지만 깊어 보이지 않았다. 강 너머로 아파트와 건물들이 보이는 것을 보니 구례읍이다. 확 트인 하늘 위로 하얀 뭉게구름이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자동차가 다니지 못하는 길, 두 바퀴는 행복하다. 차도와 함께 달리던 길이 두갈래로 갈라졌다. 조금만 달려가면 구례읍과 문척면을 연결해주는 1970년대 지어진 문척교 아래를 지나는 길이다. 강을 내려다보니 사람 손길이 닿지 않은 원시림 같다. 강을 마주 보고 있는 밭에는 콩과 옥수수, 들깨 등이 넘쳐났다. 노랗게 익어가는 감나무를 따라 달리고 또 달렸다. 숨을 들이마시고 깊게 내뱉었다. 두 발에 힘이 들어갔지만 등 뒤에서 살포시 안아주는 지리산 햇살이 뭉친 가슴을 달래준다.

여기, 섬진강 따라 달리니…저기, 가을이 따라오네요

나룻배가 아니면 건널 수 없고 비가 많이 오면 다리가 강물에 잠겨 섬 아닌 섬에 갇혀야 했던 사람들…. 옛 나룻배가 몸을 묶던 문진정에서 잠시 숨을 돌린 뒤 수줍게 핀 코스모스를 따라 부드럽게 페달을 밟았다. 여기서부터 3㎞ 구간은 논밭을 지나는 시골길이다. ‘노고단 정상이 저기 있네’하고 왼쪽 검지로 가리키는데 왕실봉이 우뚝하다. 지리산에서 마산면으로 이어지는 형제봉 능선은 평화롭다. 매천 황현의 시를 읽고 73명이 항일의지를 다졌다는 용호정(1916)이 보였다. 10m 높이의 바위에 올라서면 섬진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산을 지나자 섬진강도 잠시 쉬어가는 수달 생태보호구역에 닿는다.

왜 이 길을 봄이 오면 눈꽃이 흐드러지게 내리는 벚꽃터널이라고 하는지, 가을이 되면 새색시의 두 볼처럼 붉게 물드는 탐스러운 숲이 된다고 하는지 고개가 끄덕여졌다. 오봉산을 넘어 토지면 송정을 지나자 갑자기 유속이 빨라졌다. 오미리 조선 후기 고택 운조루에 머물고 싶다는 생각도 잠시, 간전면 만수동으로 가는 돌담길이 나왔다. 예뻤다.

고개를 들어 강을 내려다보니 건너편 집과 차가 너무 작아 보였다. 산이 높아지고 협곡이 깊어져 착시현상이 생긴 게다.

백운산 줄기와 지리산이 만나는 길목의 강물은 세찼다. 살짝 오르막이 나오더니 풍광 좋은 자연이 눈앞에 펼쳐졌다. 저만치 단풍이 핏빛처럼 붉게 춤을 추는 피아골 입구가 보였다. 20년 전만 해도 호젓했는데 지금은 입구부터 간판과 펜션들이 즐비하다. 머리카락이 뽑힌 듯 나무들이 듬성듬성 누워있는 지리산도 안타까웠다. 2011년 큰불이 나면서 여기저기 불길이 번져 헐벗은 산자락이 상처로 가득했다. 목적지 남도대교까지는 아직 2㎞. 섬진강이 서울의 한강만큼이나 넓어 보였다. 사성암에서 남도대교까지 19㎞를 자전거로 달리는 데 2시간 정도 걸렸다.

■매화나무 따라 섬진강

전남 구례와 광양의 경계선 남도대교에서 매화마을까지는 15.89㎞. 광양의 섬진강은 구례와 또 다른 얼굴이다. 5㎞쯤 달렸을까, 자동차가 달릴 수 없는 솔밭 쉼터 내리막으로 들어섰는데 반전이 따로 없었다. 갑작스러운 속도감에 브레이크를 잡는 순간 작은 계곡에서 물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하늘로 치솟은 오래된 소나무 숲을 지나 왼쪽으로 방향을 틀자 너른 들판과 저수지처럼 고요한 섬진강이 안겼다. 가을 햇살을 머금은 낙엽들이 두 바퀴 아래서 사각거렸다.

김용택 시인의 시 ‘섬진강 1’이 떠올랐다.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쌀밥 같은 토끼풀 꽃, 숯불 같은 자운영 꽃 머리에 이어 주며//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섬진강 갈대가 손짓하는 바람은 시원했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이 걷힌다. 강둑을 한없이 달리는데 오르막이 나왔다. 내리막에서는 두 발이 가벼워졌지만 오르막이 나오면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종아리에 힘을 줘야 한다. ‘영차, 영차.’ 힘을 내라는 듯 춤추는 코스모스가 어여쁜 치어리더들 같다. 자전거에서 잠시 내려 걷다 보면 높고 큰 소나무숲이 나온다. 발아래 떨어져 있는 솔방울을 만지작거릴 때는 혼자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하다.

버스 정류장 직금역을 지나는데 한무리의 자전거족이 ‘훅’하고 앞서간다. 점점 간극이 벌어지더니 아예 보이지 않았다. 따라 잡아볼까 싶었지만 감나무와 배나무가 시선을 빼앗는다. 금천천을 흐르는 섬진강은 맑았다. 다압 평촌마을을 스쳐가는데 그림자가 먼저 갔다. ‘급커브를 조심하라’는 표지판이 나와도 콧노래가 멈추지 않았다. 모나지 않고 둥근 하늘이 안아주니 힘들어도 즐겁다.

압도적인 풍경은 강가에 쌓인 모래언덕이다. 동해의 해수욕장이 떠오를 만큼 멋지다. 매화마을까지는 9㎞. 또 다른 일행들이 “지나갑니다”하며 내달린다.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신문지에 쌓인 과일과 빨랫줄에 걸린 하얀 옷들이 정겹다.

숲과 섬진강이 숨었다 나타났다 숨바꼭질을 했다. 길섶의 참새들이 인기척에도 놀라는 기색 없이 조잘거린다. 강을 따라 부서지는 햇살은 눈이 시리다. 조금 더 속도를 냈다. 도무지 어쩌지를 못해 동동거렸던 답답한 마음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유기농 생태 죽천마을을 지나 매화 섬진마을로 들어서니 섬진강이 드넓은 부채처럼 펼쳐진다. 차로 20분도 안 걸리는 거리지만 자전거로 1시간30분 넘게 걸린다. 다리가 뻐근하지만 상쾌하다. 여기는 가을 섬진강!

▶가장 아름다운 구간 ‘구례 ~ 광양’ ‘임실 ~ 순창’

 

섬진강 생태습지와 너른 들판을 가로지르는 자전거도로.  이석우 기자

섬진강 생태습지와 너른 들판을 가로지르는 자전거도로. 이석우 기자

지리산을 벗삼아 섬진강 물결을 따라 달리는 자전거 종주길은 총 148㎞ 정도다. 전남 광양~하동~구례~곡성~순창까지 이어지는데 출발과 도착은 여행일정에 맞게 스스로 정하면 된다. 타고 싶은 구간을 각각 나눠 타도 좋다.

섬진강 종주길은 2013년 148㎞로 개통했지만 지자체들이 앞다퉈 자전거도로를 확장하고 있어 종주 코스(㎞)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구례(동해마을)~광양(매화마을) 36㎞ 구간과 임실(회문삼거리)~순창(마실오토캠핑장) 15㎞ 코스가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교통편은 KTX를 타도 되고 고속버스를 이용해도 된다. 광양부터 순창까지 각 지역을 오가는 버스들이 많아 자전거를 갖고 이동하는 것도 크게 불편하지 않다. 현장에서 자전거를 빌릴 수도 있다. 구례읍에 있는 ‘삼천리 자전거’(061-782-5513)는 접이식을 하루 1만원에 대여해준다. 각 구간별로 지자체에 문의해도 된다. 가격은 5000~1만원선이다. 야외를 달리는 만큼 모자와 선크림, 생수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자전거 배낭여행 전문회사 트렉월드투어(http://m.blog.naver.com/robean)는 섬진강길 자전거 상품을 마련하고 있다. 3박4일 일정으로 임실에서 출발해 곡성과 구례를 지나 하동을 거쳐 광양에 도착한다. 지리산 노고단을 등산하고 농가체험도 한다. 트렉월드투어 임시환 사장(40)은 “섬진강 자전거여행은 오염되지 않은 자연 속에서 몸과 마음을 되돌아볼 수 있는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02)2157-8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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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350101&artid=201610122142005#csidx88eb927543b9dd9a17fbfc92982e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