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이 검증하는 2017 나라예산] (1) ‘송파 세모녀 예산’ 200억 줄이고, ‘미르’ 주도 사업은 160억 늘려
조형국·박병률 기자 situation@kyunghyang.comㆍ취약층 생존권 ‘외면’…권력형 사업 지원 ‘펑펑’
ㆍ‘장애인 의료비’ 대상자 늘리며 단가 깎아 142억 감액
ㆍK스포츠·K-밀·새마을운동 ODA 사업 등엔 ‘뭉칫돈’
지체장애 1급인 최태준씨(52)는 “내년을 생각하면 너무 불안하다”고 말했다. 혼자서 식사나 용변, 휠체어 이동은 물론 몸을 가누기도 힘든 최씨는 생활의 대부분을 활동보조인에게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가 지난달 2일 국회에 제출한 내년 예산안을 보면 장애인활동지원 예산은 55억원 넘게 줄었고 활동보조인의 임금도 동결됐기 때문이다.
복지 사각지대의 민낯을 여과 없이 드러낸 ‘송파 세모녀’ 사건 후 사회안전망 확충 요구가 높아졌지만 사각지대는 좀체 줄어들지 않는다. 36만4000가구가 판잣집·비닐하우스·공사장 임시막사 등 ‘집’이라 할 수 없는 곳에서 힘겹게 산다. 무연고 사망자도 최근 4년 만에 2배 가까이 늘었다. 그럼에도 이번 예산안은 저소득층·장애인 등 취약계층을 외면하고 있다.
나라예산네트워크(네트워크)가 꼽은 50개 문제예산을 보면 실직·질병 등으로 위기에 처한 저소득층에 긴급지원하는 ‘긴급복지’(문제예산 30번) 예산은 올해 1213억1700만원(추가경정예산 포함)에서 내년 1013억400만원으로 200억1300만원(16.5%) 감액됐다. 정부는 예산 삭감의 근거로 의료보장성이 강화됐으며 에너지바우처 사업으로 복지 수요가 줄어들었다고 설명한다. 네트워크는 “빈곤으로 인한 가정 해체, 고독사 등 문제가 끊이지 않는데도 예산을 거액 삭감해 취약계층의 생존권이 침해될 우려가 있다”며 “최소한 올해 추경 수준으로 증액해야 한다”고 밝혔다.
장애인 관련 예산도 대폭 줄었다. ‘저소득 장애인 의료비 지원사업’(문제예산 36번)은 올해보다 141억9100만원(39.7%) 줄어 215억8300만원으로 편성됐다. 지원 대상은 7만8719명에서 8만5320명으로 늘었지만 단가를 38만7000원에서 32만4000원으로 깎았기 때문이다. 중증장애인의 생존권과 직결된 ‘장애인활동지원’(문제예산 35번) 예산도 55억8400만원 줄었다. 장애수당도 39억8000만원 줄어든 736억200만원으로 편성됐다. 정부는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됐다는 이유로 지원 인원이 1만2383명 줄어들 것이라며 예산을 삭감했다.
보건복지부가 취약계층지원 목적으로 편성한 예산안은 증가세 둔화가 뚜렷하다. 2013년 취약계층지원 예산은 1년 전보다 16.4%, 2014년은 9.2%, 2015년은 40.1% 증액됐다. 그러나 2016년 예산부터 증가율이 2.0%로 급감했고 내년 예산안은 1.6% 늘어나는 데 그쳤다.
반면 ‘권력형 사업’은 대거 예산이 증액됐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인 최순실씨가 관여한 의혹이 있는 미르재단이 ‘K-밀(meal)’ 사업을 통해 사실상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코리아에이드 사업’(문제예산 39번)은 예산이 160억7300만원 늘어났다. 코리아에이드는 지난 5월 박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을 계기로 시작된 대외원조사업이다. 미르재단은 코리아에이드 내 식량원조사업인 K-밀 사업 홍보대행사로 선정돼 청와대 회의에도 개입했고 박 대통령의 순방 때도 동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코리아에이드 출범 기념 공연에서는 미르재단과 같이 비선 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K스포츠재단이 태권도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미르재단 초창기 이사가 개입한 ‘새마을운동 공적개발원조(ODA)사업’(문제예산 43번)은 행정자치부·외교부 예산을 합쳐 435억9100만원에 달한다. 새마을운동 테마공원 조성, 새마을운동 기록물 아카이브 구축 등에 92억7000만원, 해외 개발도상국 농촌공동체 개발사업 등에 396억2300만원이 편성됐다.
K스포츠재단이 이란·아프리카·케냐·에티오피아 등 박 대통령 순방을 따라다니며 태권도 시범을 보일 수 있었던 근거인 ‘국가이미지 홍보 사업’은 6억9200만원이 증액된 164억8200만원이 편성됐다. 정부는 올해 멕시코·이란·아프리카 3개국 순방 문화행사에 23억1000만원을 썼다. 이 중 멕시코는 국기원이, 나머지 4곳은 K스포츠재단이 태권도 시범 공연을 한 곳이다. 내년 이란에서 열리는 ‘2016년 VIP(대통령) 이란 방문 관련 후속조치 문화교류 행사’에도 8억원이 배정됐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은 “코리아에이드 사업은 사업 타당성 조사가 없었던 것은 물론 ODA 사업과 무관한 미르·K스포츠 재단이 개입해 추진한 것으로 즉각 폐기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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