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박근혜와 아베의 차이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박근혜 정부와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은 비슷한 시기에 출범했다. 중국이 세계 금융위기 이후 급부상하고 미국은 이를 견제하기 위해 아시아재균형정책을 본격적으로 펼쳐나가는 상황에서 양국 지도자는 같은 출발선에 서 있었다. 3년 반이 지난 지금 아베와 박 대통령의 외교 성적표를 보면 천양지차다. 아베의 외교는 일본을 필수불가결한 존재로 삼고 있는 미국의 아시아재균형정책 덕분에 날개를 달았다. 하지만 일본이 미국만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출구를 여러 개 파서 위험을 피하는 여우처럼 막다른 골목에 밀리지 않고 국익이 걸린 문제에서는 과감히 독자행보를 한다. 2013년 5월 일본은 납치 문제 해결을 매개로 북한과 직접 대화 채널을 열어 한·미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최근 일본은 우크라이나 사태로 미·러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대규모 경제협력을 내세워 러시아와 밀월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일본의 목표는 쿠릴 4개섬(북방영토) 반환을 포함하는 평화조약 체결이다. 패전국의 멍에를 벗으려는 목표 아래 미국과 러시아를 적절히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일본이 미국과의 공조를 뒤흔드는 이 같은 외교행보를 취할 수 있는 배경은 미국이 절대적으로 일본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역이용한 배짱과 자신감이다. 아베는 또 미국의 미래권력인 힐러리 클린턴 측에 일찌감치 접근해 일본의 독자행보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치밀함도 보여줬다.
아베의 이 같은 행보는 한국과 대비된다. 박근혜 정부는 미·중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으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미·중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다 결국 한·미·일 안보협력의 틀에 갇혀 운신의 폭을 스스로 제한하고 수동적 존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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