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시

이제는 끝내야 해

이윤진이카루스 2017. 10. 23. 00:35

애드가 앨런 포의 갈가마귀처럼

이제는 끝내야 해라고 외치는 것은

잃어버린 연인 레노어의 영혼이 아니라

내면의 깊은 곳에서 터지는 고백일 테지.

 

버렸다고, 학대했노라고, 살해했다고

회피해도 생명을 갉아먹는 반려자는

으스스한 흐느낌이지,

나의 의식은 내가 그랬다고 말하지만

나의 자존심을 내가 그랬을 리 없다고

마침내 자존심이 의식을 이긴다던

니체의 치열한 경험처럼,

경험이란 우리의 실수를 지칭한다던

오스카 와일드의 독백처럼

우리에게 남은 것은 방랑의 길.

 

빛이 있으라고 명령하면 빛이 나타나지만

암흑이 없다면 빛은 의미를 상실하겠기에

생명에 흐르는 것은 빛과 암흑이 빚은

멈출 수도 알 수도 없는 시간이란 파동이지.

 

파동이 아니라 입자라고?

그건 너의 관심사고 구분일 뿐

파동이든 입자이든 미친 자에게는

무의미한 설명이라면 어쩔 텐가?

 

미치지 않고, 제정신이라는 자는

타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누가 증명해줄 것인가?

장미 한 송이, 뱀 한 마리에도

스며들던 외로움을 표현했던

생텍쥐페리는 적기에게 격추되어

땅에 추락했는데 유해도 없었다지.

 

침대에 얹혀 가뿐 숨결을 내쉬며 삶을 마감하기보다는

먼 여행길에서 미련도 슬픔도, 고통도 회한도 없이

사라지자고 다짐하지만 그 희망조차도 기약이 없지.

 

생명에게 위해를 가하는 일은

내 자신이 생명이었기에

지워지지 않는 죄악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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