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죽느냐고,
어떻게 사라지느냐?
너무나 긴 우주의 역사에서
나는 무지하다고 주장하는 스승과
아니, 지혜롭다고 나댄 자는
기원전 500여년 경 아테네에서 실존했는데
그 의미가 여전히 왜곡되는 까닭은
지금도
아테네에 플라톤 기념관이 있고
안내양이 열심히 설명한다네.
현명한 자가 왕이 되어야 한다는데
러셀은 현명하다는 기준이 없다 하고
동굴 속의 인간들은 현명하다는 말에
복종하고 추종하여 자신을 죽이고 말지,
타인의 의견을 이해할 수도 없고
연구할 필요도 없다고 예단하여
나르시시즘에 익사하고 말지.
자신에게 만족했기에 행복했노라고?
그럼 주위 사람은 그리 평가하고
스크루지 영감처럼 되지도 못하여
그대는 오랫동안 기억되지 않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지.
허무해, 세상에 허무밖에 없어?
시간은 거의 영속적이라는데
남길 것도 없고 남길 필요도 없다니...
후기:
“주관적 지식은 비판에 종속되지 않는다. 물론 주관적인 지식은 다양한 수단들에 의하여 ㅡ 예를 들어, 문제의 주관적 지식이나 의향을 지닌 사람을 제거함에 (죽임에) 의하여 ㅡ 변화될 수 있다. 주관적 의미의 지식은, 생명체의 돌연변이와 제거라는 다윈적 방법에 의하여 성장하거나 더 나은 적응들을 이룩한다. 이것과 반대로, 객관적 지식은 언어적으로 정식화된 추측을 제거함에 (죽임) 의하여 바뀌고 성장할 수 있다: 그 지식을 ‘지닌 자’는 살아남을 수 있다 ㅡ 그가 자기-비판적인 사람이라면 심지어 자기 자신의 추측도 제거할 수 있다.”
ㅡ 칼 포퍼, “객관적 지식, 진화론적 접근”, 1979년, 옥스퍼드 대학 출판사, 66쪽 ㅡ
Subjective knowledge is not subject to criticism. Of course it can be changed by various means ㅡ for example, by elimination (killing) of the carrier of the subjective knowledge or disposition in question. Knowledge in the subjective sense may grow or achieve be better adjustments by the Darwinian method of mutation and elimination of the organism. As opposed to this, objective knowledge can change and grow by the elimination (killing) of the linguistically formulated conjecture: the ‘carrier’ of the knowledge can survive ㅡhe can, if he is self-critical person, even eliminate his own conjecture.
ㅡ Karl Popper, Objective Knowledge An Evolutionary Approach, 1979, OXFORD at Clarendon Press,
p 66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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