憲康王은 臣下들과 東海岸 開雲浦로 놀러 갔다가 기이한 因緣으로 東海海龍을 만났다. 그 龍王의 자식 하나가 임금을 따라 서울에 와서 왕의 政事를 輔弼하게 되었는데 그의 이름을 處容이라 했다. 그의 聰明과 슬기를 미쁘게 여긴 왕은 한 아름다운 여인을 골라서 그의 아내로 삼게 하고, 또한 그에게는 級干이라는 높은 벼슬을 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처용이 밤 늦도록 밖에 나가 노는 틈을 타서 악한 鬼神이 그의 집을 침범해 왔다. 處容의 아내가 매우 아름다운 까닭으로 이 惡神이 그녀를 사모하는 나머지 사람으로 變貌하여 밤에 몰래 그의 집에 침입한 것이다. 그리고 그녀와 同寢하고 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밖에서 놀던 처용이 집으로 돌아와 본즉 침실에는 두 사람이 누워 있었다. 이것을 본 처용은 격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놀랍게도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물러 나왔다. 서울 밝은 달에 밤새워 노닐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가라리 넷일러라, 둘은 내해인데 둘은 뉘해인고, 본디 내해련만 빼앗겼으니 아이하리꼬. 이것을 본 악귀는 드디어 處容 앞에 무릎을 꿇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그대의 아내를 사모하여 지금은 잘못을 범했는데 그대는 분노하지 아니하고 춤추며 노래를 하니 나는 이에 감격하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부터는 당신은 물론이려니와 당신과 같은 形象만 보더라도 나는 一切 侵犯치 않을 것입니다. -유동식 著 "민속종교와 한국문화", 현대사상사 1978 - 위 글에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처용이 동해해룡의 아들로 헌강왕을 따라 서울로 왔다는 부분이다. 이 부분의 실제 의미는 동해의 한 호족이 서울의 통치에 순종하지 않다가 헌강왕의 정치적 노력에 의하여 복종을 약속하고 자기 아들 처용을 인질로 헌강왕에 보냈다는 의미이다. 마음에도 없이 서울로 끌려와 헌강왕의 볼모 노릇을 하게된 처용은 서울 귀족의 여인네와 결혼을 하게되는데 그 여인의 도덕성은 이미 무너져 있었다. 처용은 아름다운 여인과 정략적인 결혼을 했으나 여인에게 마음을 주지 않고 밤만 되면 놀러 다녔다. 부도덕한 상류 여인들이 마음껏 간통을 즐기는 서울에서 시골뜨기 처용은 고향을 그리며 술과 여자로 세월을 보냈는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처용이 늦게 귀가해보니 아직도 아내와 姦夫가 서로 끼고 자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확인한 처용은 이미 마음속으로 버린 아내와 그 情夫를 보고 노래를 불러 비꼬고 춤을 추며 물러 나오는 것이다. 이러한 처용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내가 국내 모교수의 글에서 읽은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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