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민족주의를 넘어, 오리엔탈리즘을 넘어

이윤진이카루스 2010. 7. 29. 08:34

민족주의를 넘어, 오리엔탈리즘을 넘어

 

 

 

 

 

 

 

 

 

 

 

 

 

 

 

 

 

 

 

 

 

 

 

 

 

 

 

 

 

 

 

차 례

1. 머리글

2. 민족주의 속의 폭력성

3. 민족주의의 근원

4. 민족주의 속의 계급주의

5. 계급사회의 몰락

6. 민족주의라는 망상

7. 지도자라는 허상

8. 아무도 가질 수 없는 진리

9. 맺는 말

 

 

 

 

 

 

 

 

 

 

 

 

 

 

 

 

 

 

 

 

 

 

 

 

 

 

1. 머리글

   글을 쓰는 일은 참으로 조심스럽다. 특히 내가 쓴 글에서 틀린 내용으로 독자를 오도(誤導)한다면, 그것은 정말 참기 어렵다. 설사 인간의 진보는 시행착오로 이루어진다고 자위한다 할지라도 독자들에게 남긴 마음의 상처는 치유되기 어렵다. 내가 어린 시절 방황하면서 소위 유명인사라는 사람들의 글을 읽고 받은 마음의 상처는 지독히도 컸다. 아직도 나는 그들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어쩌면 나는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글을 읽으면서 내 자신과 싸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싸움은 나의 일생 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삶이란 무엇인가? 이 땅에 산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라고 고민하는 이들에게 나의 글을 떠나보낸다. 나의 글은 완전하지 못하다. 다만 내가 지금까지 공부하고, 사색한 내용들을 적었을 뿐이다. 따라서 나는 나의 글이 혹독하게 비판받기를 진심으로 원한다. 만약 독자 여러분들의 비판이 타당하다면 나는 기꺼이 그 비판을 받으리라. 떠드는 일 보다는 올바른 말을 듣는 일이 더 좋다. 결코 길다고 말할 수 없는 삶을 살면서 하나라도 더 깨우치고 내일을 맞을 수 있다면 그것은 진보다. 어제의 내가 아니고 새로운 나이다.

   글은 쓰는 일은 외로운 외침이다. 그러나 그 외침이 정당한 메아리로 돌아온다면 이 땅은 정당한 아우성으로 가득 찰 것이며, 올바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땅이 될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목표가 아니겠는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 횡행하는 거짓철학이나 인기에 편승하는 사이비 철학자들과 종교인들이 어떻게 한국인들을 오도하고, 속이고 있는지 나는 망연한 좌절감에 사로잡힌다. 그래도 이 땅에는 새로운 사고를 가진 인간들이 끊임없이 태어난다. 그들에게라도 나는 희망을 걸어보련다. 설사 무망한 일일지라도.

 

                                                                                                           2007 년 10월 필자

 

 

 

 

 

 

 

 

2. 민족주의 속의 폭력성

   ‘닫힌 사회’의 폭력은 국산영화 “쉬리”에서 잘 나타난다. 이 영화는 ‘닫힌 사회’인 한반도 국민의 의식구조와 할리우드 식 폭력이 혼합된 기괴하고도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보여준다. 우선 인민군 특수부대의 등장과 남쪽의 극우파라고 볼 수 있는 중앙정보부 요원의 대결이 극과 극을 묘사한다. ‘남한 인민들은 잘 살면서 북쪽의 동포들은 돌보지 않는다.’는 원한에 찬 인민군 특수부대원의 말은 바로 민족주의에서 나오는 질투요, 저주요, 증오다. 더구나 이 말에 대한 남쪽 중앙정보부 직원의 대답은 어설프기 짝이 없다. 비참하게 살고 있는 북쪽의 동포에게 무언가 죄를 지은 듯한, 뒤로 빼는 대답을 한다. 또스또에프스키의 ‘죄와 벌’에서 나온다는 ‘누가 너에게 사람을 살해할 권한을 주었느냐?’라는 기본적 도덕률마저도 없다. 영화 “쉬리”의 마지막 장면. 사랑했던 여인을 남자가 권총으로 쏜다. 그것도 1 미터 정도의 거리에서, 남자가 여자의 머리를 쏜다. 이 장면은 잔혹의 극치이다. 이념이 인간을 초월하는가, 더구나 사랑했고 사랑하는 여자의 머리를 향하여 남자가 지근거리에서 방아쇠를 당길 수 있을 정도로 이념이 중요한 것인가? 차라리 사랑하는 사람의 총에 스스로 맞아 죽는 북한 인민군 특수부대원인 여자 주인공이 이 영화에서 승리한다.

   초기 기독교가 박해를 받아가면서, 사자 밥이 되고, 십자가형을 당하고, 목을 잘리면서 인간애를 실천했기 때문에 기독교는 서양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서양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폭력이 영화로 만들어지고 우리나라 인기 최고의 영화로 꼽히는 이 한국적 현실. 인간의 내부에 존재하는 폭력성을 과장하여, 적나라하게 자극하는 이 영화가 최고의 흥행을 기록하는 한국 땅.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이 땅에 민주주의는 멀고도 먼 길이라고 느꼈다. 다시 말해서 이 땅에 인간애가 꽃피는 날이 까마득하여 보이지도 않았다.

   우리는 한민족의 우수성을 말한다. 한국의 소위 지도자들은 기회만 나면 ‘한민족은 우수하다’고 역설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중국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고유한 문화를 발전시켜왔다’고 증거까지 댄다. 이 말의 의미는 ‘중국문화가 더 우수한데 그 영향을 받으면서도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켰다’는 종속적 뜻이다. 엄격한 의미에서 ‘고유문화’가 어디 있으며 ‘단일민족’이 어디 있는가? 만약 우리가 단일민족을 고집한다면 한국의 독실한 불교도는 스리랑카의 부처님 제자보다 사기나 치는 한국인을 편들어야 하는가? 한국의 기독교도는 예수의 희생을 믿는 일본인과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위안부란 없었다고 주장하는 일본인을 동등하게 취급해야 하는가?

   세계의 모든 문명은 서로 주고받으며, 심지어 피까지 섞으며 전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엄격한 의미에서 세계의 어떤 민족도 단일민족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 민족도 단일민족이 아니다. 우리 민족의 피에는 중국인, 아라비아인, 몽고인, 만주인, 미국인, 일본인, 영국인, 독일인, 파키스탄인 등등 온 세계인의 피가 섞여있다. 그리고 미국인, 일본인, 중국인, 러시아인의 피에도 한국인의 피가 섞여있다. 철학자 칼 포퍼는 알렉산더 대왕이래 종족을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는 사라졌다고 주장하며 민족국가의 허구성을 파헤친다:

 

알렉산더의 제국과 동시에, 진짜 종족적 민족주의는 정치적 관행에서 영원히, 그리고 정치 이론에서 오래 동안 사라진다. 알렉산더 이후 줄곧, 유럽과 아시아의 모든 문명국가는 무한히 혼합된 근원의 인구를 포함하는 제국이었다.

민족국가란 민족주의자들이 꿈꾸는 이른바 ‘민족’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적인 국경선을 가진 나라에 오랫동안 정착한 동질적인 인종무리들이 없거나, 거의 없다. 인종적 및 언어적 무리들 (방언도 자주 언어적 장애물과 동일하다)은 모든 곳에서 밀접하게 서로 혼합되어있다. 마사리크의 체코슬라바키아는 민족자결이라는 원칙을 토대로 건설되었다. 그러나 그 나라가 건국되자마자, 슬로바크 족은 그 원칙의 이름으로 체코 족의 지배로부터 해방될 것을 요구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같은 원칙의 이름으로, 그 나라는 독일 소수민족에 의하여 파괴되었다... 민족무리에 대한 압박은 큰 악이다; 그러나 민족자결도 합당한 해결책이 아니다. 게다가, 영국, 미국, 캐나다, 그리고 스위스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민족성 원칙을 위반하는 국가의 분명한 네 가지 본보기이다. 그 국경선을 한 정착무리에 의하여 결정하도록 하는 대신에, 각각의 나라는 다양한 인종무리를 연합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므로 문제는 해결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민족주의라는 종교는 강력하다. 많은 사람들이 민족주의가 도덕적으로 옳으며 실제로 사실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 종교를 위하여 기꺼이 죽으려 한다. 그러나 그들은 잘못 알고 있다; 공산주의자들만큼 잘못 알고 있다. 민족성의 원칙이 옳다고 믿는 것보다 더 증오와 잔인성과 무의미한 고통을 만들어낸 신념은 거의 없다...

 

   그러므로 이 설명을 뒤집어 해석하면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국가나 민족은 문명국이 아니고 야만국이다.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나라는 문명국에 위협을 받고 짓밟히는 덜 발달된 나라이다. 일본 민족주의, 중국 민족주의, 한국 민족주의, 베트남 민족주의는 서구라파 문명에 대항하려는 약자(弱者)의 몸부림이다. 민족주의를 다르게 표현하면 종족주의라는 ‘닫힌 사회’이다. ‘닫힌 사회’는 마치 몰려오는 외국인들에게 포위된, 성(城)에 갇힌 사람들의 집단과 같다. 이 사회의 지도자들은 보다 우수한 문명이 들어와 자기들의 기득권이 없어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리하여 겉으로는 민족을 내세우고 안으로는 자기들이 호화로운 외제 물건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어떤 닫힌 사회에도, 특히 정보통신이 크게 발전한 현대에서는, 어쩔 수 없이 외국의 정보가 파고들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라도 전해진다. 미국의 페리 제독이 이끄는 군함 ‘흑선(黑船)’이 폐쇄적인 근세 일본의 해안에 도달했을 때 일본사회의 모습을 ‘일본정치사상사연구’의 제2절 토쿠가와(德川) 봉건제 하에 있어서의 국민의식에서 저자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는 이렇게 묘사한다:

 

1853년(嘉永 6) 6월 페리(Perry)가 네 척의 군함을 이끌고 우라가(浦賀)에 도착하여 필모어(Fillmore)대통령의 국서(國書)를 전달하면서 개항(開港)을 요구하자 바쿠후는 어쩔 줄 몰라했다. 한편으로는 사태를 조정(朝廷)에 알리고 에도(江戶)에 있는 다이묘들에게 자문을 구하여 "국가의 커다란 하나의 사건"<國家之一大事, this national crisis> “아주 어려운 일”<不容易筋, extremely troublesome matter>에 대하여 거국적인 협력을 요청함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종래 국내를 통제하기 위해 금지하고 있던 오백 코쿠(石) 이상의 조선(造船) 및 대포 주조를 비로소 허용하면서 모든 한에 군비강화를 촉구했다. 그리고 다급한 나머지 급기야 스스로도 에도만(灣) 방비대책을 강구했지만, 국내적 생산력 및 낮은 기술수준은 도저히 감출 수가 없었다. 당시의 국방 상황에 대해 타카시마 슈우한(高島秋帆, 1798~1866)은 “가장 걱정되는 것은 전국에 있는 화약으로 겨우 1년 정도 싸울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하고 있다. 무기만이 아니었다. “일단 싸움이 시작되면 ......... 최소한 4 . 5년은 지속될 것입니다. 그럴 경우에는 초석(硝石, nitrate)은 물론이고 식량도 상당히 많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한 3년간 버틸 수 있는 무기와 음식을 비축하고 있는 영주는 아마도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嘉永 6年 10月, 「高島秋帆上書」]. 게다가 그런 슈우한 자신이 이미 포술(包術}을 급속히 근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혐의를 입어 투옥된[天保 13年(1842)] 사실이 말해주듯이, 그런 근대적 생산 및 기술의 생장(生長)을 집요하게 막았던 것은 “옛날 중국에서 오랑캐를 어루만지는 방식이나 일본을 지켜주는 카미카제(神風)에도 의지할 수 없었으므로, 먼저 적의 상황을 자세하게 아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다”(「西洋事情御答書」)라는 식견을 가지고 있던 와타나베 카잔(渡邊華山, 1793~1841)이나 타카노 쵸오에이(高野長英, 1804~50) 등의 란가쿠샤(蘭學者, scholars of Dutch Learning)를 체포했던 것과 같은 “우물안 개구리와 같은 좁은 소견(井蛙管見)”[華山,「愼機論」]의 쇄국의식이 아니었던가. 1850년(嘉永 3)에 이르러서도 사쿠마 쇼오잔(佐久間象山)의 “오랑캐들의 풍속을 제어하는 데는 오랑캐들의 사정을 아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없으며, 오랑캐들의 사정을 아는데 있어서는 오랑캐들의 말에 능통하는 것보다 긴요한 것이 없습니다. ......... 바다의 방어<海防>는 천하의 일입니다. ......... 천하의 사람들에게 모두 저들의 사정을 알리는데 있어서는 일반적으로 오랑캐들의 책을 읽는 것이 가장 좋으며, 일반적으로 오랑캐들의 책을 읽히는데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그 사전을 간행해야 할 것입니다”라는 일본어-화란어 사전의 간행 요청을 끝내 기각시키는 등, 바쿠후는 국민들을 외국사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게 만들려는 방침을 계속 유지해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바쿠후의 페리대책자문에 응한 여러 다이묘오(大名) 내지 한(藩) 사무라이들의 상소문이 거의 대부분 “우물안 개구리와 같은 좁은 소견”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 명망이 일세를 풍미했던 미토(水戶)의 영주 나리아키(齊昭, 1800~60)조차도 “전함과 대포는 직접 맞붙어 싸우면서 승부를 가리는데 불편하다. 그래서 설령 그런 오랑캐들이 일단 해변을 침범했다 하더라도 상륙할 수 없다면, 그 욕심을 드러낼 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의 건장하고 용감한 병사들을 선발하여 창과 칼로서 무장시켜, 기회를 틈타고 변화에 응하게 하고 또 우리들의 장점으로 저들의 단점을 제압하게 하고, 옆에서 갑작스레 뛰쳐나가기도 하고 적의 뒤로 돌아가 차단시키거나 하면서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죽기로 싸운다면 오랑캐들을 물리치는 일은 마치 이 손바닥 안에 있는 것과도 같을 것이다”라고 하여, 저들의 전함 대포에 대응하는데 있어 “신의 나라(神國) 일본의 장기(長技)인 칼과 창으로 맞서려고 했다. 그 외에 당시 활발하게 논의되었던 주장들도 오랑캐를 막는 구체적인 방법은 그 정도 사람의 마음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라고 했으며, 또 사쿠마 쇼오잔은 “일본의 권위와 위엄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기회도 바로 지금입니다. 그런데 지금 정부가 큰 변혁을 시도하려고 하지만 지금 나라 안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서로 화합하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서로 화합하지 않는다면 대체 나라 안팎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라는 식으로 탄식하고 있다. 그리고 요코이 쇼오난(橫井小楠, 1809~69)은 “게다가 오늘날 사람들의 마음이 서로 화합하지 못하고 또 기계가 갖추어져 있지도 않은데 전쟁을 치르게 되면 백번을 싸우더라도 모두 패배하는 것은 필연적인 추세”라고 근심하고 있다. 과연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는가, 바쿠후 내지 바쿠후와 친근한 관계에 있던 한슈(藩主)들이 개항 요구에 응하는데 있어서 무엇보다도 염려했던 것은 “이같은 굴욕을 받아들이고 또 바쿠후의 힘과 위엄(武德)이 쇠약해졌다는 점이 드러나게 되면, 다른 나라는 차치해두고라도 전국의 크고 작은 다이묘오들까지도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 나라들 다스리는 정치도 결코 이전과 같지 않게 될 것입니다. 혹시 사태가 아시카가(足利)씨가 통치(統治)하던 시대의 말기 상황처럼 될까봐 여간 걱정이 되는 게 아닙니다”(嘉永 6年 8월 7日 松平慶永 「對幕府上書」)라고 하고, 또 “이들을 힘으로 물리치는 정책을 채택하지 않고서 행여 너무 관대하고 미약한 조치를 취하기라도 하게 되면, 아래 사람들은 위에서 정말로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알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간악한 백성들이 바쿠후의 위광(威光)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어 다른 마음을 품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나라를 유지하고 또 다이묘오들과 백성들을 다스리기 어렵게 될런지도 모릅니다”(德川齊昭, 前揭 上書)라고 한 것처럼, 바쿠후의 통제력이 느슨해지는 틈을 타서 일어날 제후 내지 일반 백성들의 반역이었다. 봉건권력은 외부를 두려워하기 보다 먼저 내부를 경계했던 것이다. 아니 오히려 내부를 두려워했기 때문에 외부를 두려워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순수<純> 피치자로서의 서민에 대해서는 바쿠후.한을 통털어 봉건 지배자 일반의 깊은 의구심이 집중되고 있었다. (위에서 본 나리아키처럼) 일찌기 1842년(天保 13) 로오쥬우(老中) 미즈노 타다쿠니(水野忠邦)가 아편전쟁에서 칭(淸)나라가 맥없이 패배하는 것에 자극받아 1825년(文政 8)의「무이념타불령(無二念打拂令)」을 완화했을(이른바 「天保薪水令」) 때, 그것에 반대하여 강경한 양이론을 바쿠후에 진언했다. 그런데 그 논거는 오로지 “나라안 백성들의 풍속이 순박하기는 하지만, 거칠기는 어부(漁夫)들이 가장 심합니다. 이제 오랑캐를 물리치라는 명령을 내린다 하더라도 행여 그들이 바다에서 오랑캐들과 접촉할 위험이 있습니다. 지금 그 명령을 폐기하신다면 무역(貿易)의 간악함을 결코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청컨대 얼마동안은 을유(乙酉)의 명령(1825년의 無二念打拂令)/ 지은이)에 따라 순박한 백성들을 온전한 통치 하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라는 점에서 찾았다. 이런 우민관(愚民觀)에 기초한 서민들에 대한 불신, 그리고 외국세력과의 결탁에 대한 의혹이 대외관계가 밀접하게 되어 감에 따라 어떻게 지배층에 뿌리를 깊게 내리게 되었는가 하는 점은 당시의 문헌에서 쉽게 엿볼 수 있다. 그리고 마치 그와 같은 불신에 대응이라도 하듯이 일부 상인들은 준엄한 단속망을 뚫고서 외국 선박들과 활발한 밀무역을 전개하기도 했다. 거기에는 확실히 타카시마 슈우한이 “이윤에 눈이 멀게 되는 상인들은 언제나 그렇기 때문에, 죄를 범해서 엄한 형벌을 받는 사람들도 적지 않게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런 행실을 바꾸려 한 것 같지도 않습니다. 어떤 일이 터지기라도 한다면 그들이 이윤을 위해서 적들과 더불어 과연 무슨 짓을 할 것인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고 지적한 것(앞의 상소문)과 같은 그런 내면적인 긍지를 갖지 못하고 이윤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은 천민 근성이 작용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리아키가 품고 있는 것과 같은 우민관(愚民觀)이 정당한 것은 아니며, 앞에서 말한 것처럼 그런 파렴치함이야말로 상인들을 가치질서의 최하위에 위치하게 한 봉건체제 및 도덕에 의해 반사적(反射的)으로 생겨난 부산물에 다름아니었다. 일반 서민들의 경우 종래 모든 정치적 능동성을 부정당하고 오로지 통치의 객체로서 사생활의 좁은 부분으로 내몰려온 그들에게서 갑작스레 국민적 책임의식 같은 것을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1964년(元治 元年) 8월 솔선해서 양이(攘夷)를 실행했던 쵸오슈우(長州) 한이 영국. 미국. 프랑스. 네덜란드 연합함대의 공격을 받아 무력하게 시모노세키(馬關)의 포대(砲台)를 점령당하는 비운(悲運)에 처했을 때, 서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던가. 당시 영국 군함에 있으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사건을 목격했던 어네스트 사토우(E. Satow)에 의하면 "일본인들은 작업하고 있는 부대에 매우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주었으며, 스스로 자진하여 대포 나르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여러 가지로 귀찮게 했던 장난감들을 철거하는 것을 분명히 기뻐하고 있었다. 이 놀라운 광경!! 위에서의 국민에 대한 불신과 아래에서의 정치적 무관심은 이리하여 서로 맞물려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다년간에 걸친 봉건적 관계가 가져다 준 참혹한 현실이었다. 그리고 요코이 쇼오난이 1860년(萬延 元年) “일본 전국의 형세는 어떤 통일된 통제체제 없이 여러 조각으로 완전히 분열되어 있었다. 1853년 페리가 일본에 와서 일본을 정부가 없는(無政事) 그런 국가라고 꿰뚫어본 것을 보면 역시 매우 뛰어난 직관과 통찰력을 가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지금 꺼리고 피하는 것(忌諱)을 무릅쓰고서 감히 논해본다면, 바쿠후가 제후들을 대하는 초기의 제도는 그 병력을 소모시키려는 것이었다. 산킨코오타이(參覲交代)를 비롯해, 각각 영지의 크기에 비례하여 건물을 짓는데 협조하게 했으며, 바쿠후의 영지와 산에서 화재 훈련 및 검문소의 수비들을 하게 했으며, 또 근래에 이르러서는 변경지역을 지키게 하는 등 온갖 사역(使役)을 다 시켰는데, 그 부담이 결국에는 각 한(藩)의 피폐한 백성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또 금.은.화폐로부터 제반 제도에 이르기까지 포고하고 시행하는 이른바 권부<覇府>의 막강한 권력<覇柄>에 의해 토쿠가와 가문만의 편리를 도모하는 사적인 운영으로 인해 결코 천하를 편안하게 만들지 못했으며 서민들을 자식처럼 여기는 정치.교육<政敎>을 시행해본 적이 없다. 페리가 정부가 없는 그런 국가라고 한 것도 실로 당연한 일이었다”(「國是三論」)라고 단정했을 때, 그는 그야말로 토쿠가와 봉건제 260년간의 지배를 일괄적으로 정리요약했던 것이다.

 

   위 글에서 우리는 페리 제독의 함대가 가까이 오자 ‘우물 안의 개구리’같은 의견을 내놓으면서 미국의 함대에 대항하려는 막부의 모습과 그 막부가 내국인들이 미국인들과 내통할까 걱정하는 풍경, 그리고 미국인들에게 기꺼이 협조하는 일반시민들의 행태를 볼 수 있다.

   종족주의라는 ‘닫힌 사회’에는 지배자와 피지배자라는 두 개의 계급이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지배자가 ‘깡패’이듯이 백성을 괴롭히고, 보다 큰 깡패인 지배자에게는 아부하는 ‘야쿠자’들이 날뛴다. 미국에서 마피아나 일본의 야쿠자는 가족(family)이나 민족을 기반으로 하는 깡패조직이다. 이 성(城)에 갇힌 ‘닫힌 사회’의 사람들은 밀려오는 우수한 외국문명을 선망하며 자기들끼리는 서로 헐뜯고, 무시하고, 잡아먹어 버리는, 열등의식에 가득 찬 인간들이다. 니체는 호머 이전의, 즉 그리스가 지중해로 뻗어 나가기 전의 ‘닫힌’ 그리스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그리스인들의 삶에서 경쟁이 없으면 즉각 호머 이전의 파괴하려는 증오와 욕망이라는 지독한 야만의 지옥이 나타난다.’ 물론 니체의 주장대로 열린 그리스 즉, 지중해로 뻗어 나가서 식민지를 개척하던 그리스인들의 삶은 경쟁만으로 구성되지는 않는다. 한 국가가 해외로 진출하려면 사회구성원들이 서로 경쟁도 하지만, 협력도 하는 것이다. 마치 서구열강들이 동양을 정복하던 근세에 기독교와 산업문명이 협력했듯이.

   니체가 묘사하는 ‘경쟁이 없는 호머 이전의 파괴하려는 증오와 욕망이라는 지독한 야만의 지옥’은 박경리가 쓴 장편소설 “토지”에서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삼강오륜이 지배하는 이조시대에서 양반과 하층백성인 서민과 종의 신분은 철저하게 구분된다. 흉년에 겉보리 몇 말을 빼앗다시피 한 농토로 거부가 되어버린 최 참판 댁을 위주로 살아가는 소작인들과 종들의 갈등은 주로 음모와 폭력으로 계급적 갈등을 겪는다. 상민과 종에 대한 천시와 학대로 점철된 이 소설의 초기부분은 아무리 선비적인 관념을 높이 보아, 최 참판 가의 윤 씨 부인과 그 아들 최치수, 또 하나뿐인 윤 씨 부인의 손녀 최서희가 동네에 물질적 혜택을 베풀고 소작인들의 생계를 돌보아 준다 하여도 최 씨 가가 평사리에서 영원히 부유하고 존귀하게 살아가려는 욕망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이 소설에서 최서희는 이렇게 독백을 한다: ‘... 모멸의 뭇시선 속에서 그러나 난 이렇게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게야. 나는 손상당하지 않어! 최참판 가문은 손상되지 않는단 말이야! 알겠느냐? 나는 지키는 게야. 최서희의 권위를. 최참판 가문의 권위를 지키는 게 아니라 되찾는 게야. 영광도 재물도,...’

   이 소설에는 아름다운 부분도 있다. 무당 딸이라는 시대적 차별 때문에 헤어졌다가 만나야 했던 월선과 이용의 사랑은 지순한 사랑의 승리를 보여 준다. 그러나 작가가 의도했든 아니든, 이 소설의 전반적인 흐름은 계급사회 속에 내재하는 증오, 욕망, 그리고 폭력성을 묘사한다. 토지, 아니 자연은 아름답다. 하지만 그 속에 살아가는 인간은 자연에 순응만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니며, 더욱이 동양적 순환론인 음양관이나 운명론에 예속된 존재도 아니다. 인간은 음양론과 운명론을 초월하려는 의지를 지닌 정신적인 존재이다. 그래서 역사는 퇴보나 정체가 아닌 진보를 이룰 수 있다. 박경리 씨의 토지에서 일본인 오가다는 일본 민족주의의 폭력성을 이렇게 폭로한다:

 

인간의 총체는 인류가 아닌가, 민족은 부분이다. 인간의 비극은 인류의 비극이요 민족의 비극도 인류의 비극이다. 개인이건 민족이건 생존을 저애하고 압박하는 것은 죄악이며, 근본적으로 부조리다. 이런 말 하는 나를 이상주의자라 흔히들 비웃지만, 하지만 염치없는 이기주의를 어찌 옳다 하겠느냐. 애국, 애족만 내세우면 범죄도 해소되는 그 기만을 수긍할 수가 없다. 그리고 나는 민족을 부정하지 않았다. 약육강식의 민족주의를 부정했을 뿐이야.... 인간의 생명과 존엄은 본질적으로 어느 누구도 침해하고 억압할 권리는 없어. 사회주의 유물론을 눈의 가시처럼 생각하는 일본의 보수파들, 그들이야말로 알고 보면 철저한 유물론자 아니겠느냐? 신도니 황도니 그것 다 허울에 불과한 거야.... 애국심이나 국수주의는 출발에 있어선 아름답고 도덕적이다. 그러나 그것이 강해지면 질수록 추악해지고 비도덕적으로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게다. 빼앗긴 자나 잃은 자가 원망하고 증오하는 것은 합당하지만, 또 민족주의를 구심점으로 삼는 것은 비장한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도끼 들고 강탈한 자의 애국심, 민족주의는 일종의 호도 합리화에 불과하고 진실과는 관계가 없어. 흔히들 국가와 국가 사이, 민족과 민족 사이엔 휴머니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들 하지. 그 말은 국가나 민족을 업고서 저지르는 도둑질이나 살인은 범죄가 아니라는 것과도 통한다. 하여 사람들은 얼굴 없는 하수인, 동물적인 광란에도 수치심 죄의식이 없게 된다. 군중은 강력하지만 군중 속의 개인들은 무책임하고 방종하다. 권력이 그것을 조종할 때 권력은 인간의 부정적인 면 포악한 속성을 식지(食指)가 움직이는 곳으로 풀어주고 사냥해온 물소의 고기 한 점 던져주면서 국수주의의, 애국애족의 이리를 만드는 거지. 박애주의다, 평등이다, 그 밖의 수없이 많은 슬로건은 일주일에 한 번씩 바뀌는 극장 앞의 영화 프로 같은 게야. 사실 우리는 조선을 동정하기 앞서 우리 자신을 동정해야 하며 약자에게 포악할 자유만이 허용되는, 그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 오가다의 말을 통하여 박경리 씨는 일본이 감행한 과거 침략의 배경을 일본 민족주의, 국수주의, 군국주의로 본다. 과거 일본사회는 공산주의보다도 더 사악한 계급사회였다. 정점에 천황이 존재하고, 그 다음에 귀족들이 백성을 다스리며, 무사가 일반 백성 위에 군림하는 계급사회인 과거 일본에서, 천황과 일본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사람들이 백성들이었다. 그리고 일본의 국수주의는 결국 팽창정책으로 나타나며, 이 팽창정책을 뒷받침하는 것이 군국주의이다. 다시 말해서 일본의 국수주의는 일본의 민족주의적 본질을 굳게 지키는 것을 넘어서 서양식 무기로 무장하여 군국주의적인 제국주의가 된다. ‘민족은 역사의 무대(Stage of History)에서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헤겔의 국가주의적 파시즘이 구체화되는 것이다. 그리고 오가다의 주장처럼 민족주의 속의 ‘군중은 강력하지만 군중 속의 개인들은 무책임하고 방종하다’가 아니고 마루야마 마사오의 저서에서 인용된 바와 같이 ‘우물 안 개구리와 같은 좁은 소견’을 벗어나지 못했던 일본정부와 영국 소설가 새뮤얼 버틀러(Samuel Butler)의 표현처럼 ‘코를 잡혀 쉽게 끌려갔기’ 때문에 파시스트적 자국정부에 순종했던 일본국민들이었다.

   나는 오백 년 이조의 역사가 동양 전체의 낙후된 역사의 일부임을 본다. 어떤 이는 세계가 과학발달, 항해술의 발달, 민주주의 혁명으로 전 세계가 용트림하던 때 한국은 5백년이나 잠자고 있었다고 비난한다. 동양에서는 거대한 중국이 서양의 세력에 무릎을 꿇은 다음에 한국과 일본이 무너졌다. 물론 현대적 무기로 무장한 서양인들은 거대한 보물로 떠오르는 중국에 집중포화를 퍼붓고, 주변소국의 식민지화를 뒤로 미루었던 사실은 식민화의 순서에서 당연한 과정이었다.

   반계 유형원과 같은 실사구시 경제학을 주장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무한궤도를 도는 주자학적 논리를 반대하고 과학적인 국가운영을 주장하였지만, 오백 년을 지켜 온 굳건하다 못해 모든 생활을 지배한 음양과 충절의 논리는 인간의 도리라는 한 마디로 모든 백성의 뇌리를 지배했다. 그리고 그러한 인간의 도리는 유교를 통치 도구로 이용하는 위정자의 음흉한 음모로 더욱더 세밀화 되고 강화된다.

   박경리 씨 같은 이는 동양에 몰려오는 서구문명의 기초를 신식무기로 무장한 무장 세력의 강압적 침략으로 본다. 그리고 그이는 주장한다, 이 서양의 야만적 세력이 물러가고 다시 이조의 선비적 정신문명이 꽃피는 역사가 올 것이라고. 그러나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이씨조선의 역사는 절대왕정이라기보다는 소위 ‘선비’라는 사람들의 양반층이 왕과 세력다툼을 벌이며,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계급사회를 구축한 귀족정치체제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는 소위 ‘선비’라는 사람들이 지배하는 이조의 양반정치에 저항했던 수많은 민란을 볼 수 있으며, 그 저항을 묘사한 소설도, ‘홍길동전’, ‘춘향전’에서부터 ‘임거정’에 이르기까지 많이 볼 수 있다. 이 문제를 한국전쟁을 연구한 미국 시카고 대학 교수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는 이렇게 설명한다:

 

전통적인 한국정부는 거의 새로운 메이지 정부의 반대였다. 이조는 경제에서 주로 수입을 거두어들이기 위하여 책임을 졌지만 항상 넉넉하기보다는 적정수준이어서, 잉여수입을 경제성장으로 사용하려는 의도가 없었다. 이조는 이런 의미에서 전통적인 중국정권이나, 주 임무가 단기간의 정권유지나 적응이었던 다른 관료적 정권과 비견될 수 있었다. 이조의 제도는 시간을 두고 적대적인 세력의 균형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적은 변화와, 고정된 상태의 독재적인 경제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사소한 조절에서 적응적이었고, 심지어 신축적이었다. 옛 한국정부가 고도로 중앙집권적이어서 사회와 관련하여 매우 강력했다고 묘사하는 최근의 연구와 반대로, 제임스 펄레이스(James Palais)는 이조가 토지귀족들이 두드러지는 사회에 의하여 지배당하여, 허약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겉으로 중앙집권적 독재구조는 귀족권력의 실제를 가린 겉모습이었을 뿐이다.” 귀족계급은 특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국가의 힘을 사용했다; 이것은 일본의 병탄 바로 전 해까지 일어났다. 한국에서 귀족계급과 국가는 이용 가능한 잉여자원을 두고 경쟁했는데, 후자가 자주 패배했다. 관료구조는 귀족들의 요구에 적응했으며, 따라서 보통 강력한 정부에게 있는 자율성과 징수능력이 부족했다. 그 대신에 전통적인 한국이 가졌던 것은 강력한 계급구조로, 중앙정부의 침투를 저지하는 능력에서 “진짜 중세의 귀족계급”을 거의 닮은 “귀족신분과 사적인 토지소유권의 혼합”이었다. 이조는 인내하면서 비교적 제한된 부(富)의 총화를 놓고 귀족계급과 패배하는 전쟁을 치렀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조는 공공분야와 민간분야 사이의 현대적 구분을 생각할 수 있었으며, 국가 전체의 성장을 위하여 부(富)의 축적을 장려하려고 공공분야가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대신에 농업적 수축과 유사한, 현존하는 자원으로부터 더 많이 얻는 새로운 방법을 발견하거나, 현존하는 자원으로부터 더 많이 얻는 그 노력을 배가하려는 일종의 정치적 수축활동이 있었다.

이조는, 그러므로, 심장부에서는 강력했지만 지방에는 약하고 가는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었다. 토지계급은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고 농민을 지배하기 위하여 국가를 이용했다. 그러나 그 지배는 불완전했다; 연합은 무지러질 수 있었고, 그래서 농민반란은 재발하는 현상이었다. 19세기말에, 이 국가는 일본이든 서구국가든 신흥 산업 강국의 침략에 대응하는데 완전히 무능한 것으로 판명되었는데, 이곳에서 반복할 필요가 없는 너무나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대신 강조되어야할 것은 토지귀족들이 국가를 자기지배를 영속화하는데 사용하는 것에 성공한 것은 한국이라는 국가의 외부 압력에 저항하는 그 능력을 치명적으로 약화시켰다.

 

   제임스 펄레이스는 위 글에서 이조의 역사를 이 씨 왕가와 양반들의 권력투쟁의 역사로 본다. 결국 일반국민은 두 세력의 권력다툼에서 착취를 당하다가 일본의 침략을 맞게 된다. 펄레이스는 양반들이 이 씨 왕가를 견제했기 때문에 이조는 근대산업을 일으킬 자본축적이 불가능했고, 결국 양반 때문에 한국은 근대 산업열강들의 침략을 받아 식민지가 된다고 주장한다.

   박경리 씨가 주장하는 선비적 정신문명의 복원은 마치 역사는 반복될 것이라는 주장과 유사하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조의 선비문명이 고도의 정신적 문명이라고 주장할 근거를 나는 알지 못한다.

정신적이든, 물질적이어서 침략적이든 문명은 생존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정신은 육체 없이 존재하지 않으며 육체는 정신적 작용에 의하여 움직이는 것이다. 따라서 기(氣), 즉 서양적 관점에서 감정을 중시하는 퇴계 이황의 주기론(主氣論)과, 이(理), 즉 이성을 중시하는 율곡 이이의 주리론(主理論)의 대립은 터무니없다. 이 양 이론의 대립은 호반과 문관의 대립처럼 기나긴 세월을 거치며 이조의 이념투쟁을 이루고, 위정자들은 이 소모적인 싸움을 이용하는 것이다.

   나는 이성(理性)의 중요성을 감정의 중요성과 비교하여 우위에 둔다. 이성은 수학과 과학의 기초를 이루며 결국 아테네의 철학자들이 중요시하는 수학도 이성을 중요시하는 이념에서 나왔다. 그러나 한 국가가 외적의 침략으로 속수무책일 때, 양반은 왕을 수행(?)하여 도망치고, 일반 백성과 스님들이 무기를 들고 대항하는 우리의 역사는 너무 처절한 무이성(無理性)의 땅이었다. 평화 시에는 이론으로 싸우고, 전시(戰時)에는 도망하는 이론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평화 시에는 무의미한 이론의 싸움에 눌리다가, 전쟁 시에는 참패당하는 감정은 무슨 용기란 말인가? 여기에서 아테네인이 말하는 이성과 감정, 즉 정신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의 묘사를 들어보자. 나는 이렇게 정신과 몸의 관계를 농축하여 설명한 글을 본 적이 없다:

 

데모크리투스가 파메니데스와 프로타고라스에 의하여 영향을 받았다고 우리가 가정한다면, 데모크리투스의 이성과 감각에 대한 유명한 대화는 이 두 견해 사이의 대화로 묘사될 것이다. 그 이유는 이성이 감각을 공격하는데: ‘달콤한 것도 관습에 의해서이고; 쓴 것도 관습에 의해서이고; 추운 것도 관습에 의해서이고; 색깔도 관습에 의해서이다. 실제로, 원자와 공간만 있잖아.’ 감각(프로타고라스)이 대답한다: ‘불쌍한 지성아! 우리들로부터 증거를 가져가는 네가 우리를 전복시키려고 해? 우리가 전복되는 것은 네 자신의 몰락이다.’

 

   석가세존이 세상을 떠난 후 3천년 후에 미륵불이 세상에 도래하여 세상은 평화로워질 것이라고 불교에서 이야기한다. 그러나 우리가 기다리는 미륵불은 오지 않는다. 이스라엘인들이 그렇게 갈망했던 하느님은 무조건 평화를 선사하지 않는다. 그 까닭은 평화란 인간에게 맡겨진 인간의 문제이지, 하느님이나 미륵불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하느님에게만, 미륵불에게만 평화의 문제가 맡겨진다면, 중세에 있었던 성직자들의 사악한 행패와 중들의 타락은 왜 발생하였는가?

   만약 영원한 평화가 온다면, 그런 평화로운 사회는 무수한 인간 사이의 갈등을 거치면서 싸움이란 무익한 것이다, 죽이고 상처를 입히는 사회에는 끊임없는 복수의 악순환만 있다는 깨달음이 온 세계에 도래하는, 그래서 사상과 힘이 균형을 이루되, 부단히 사상이 서로 배우고 발전하는 세상에만 영구적인 평화가 나타난다. 우리는 이런 평화의 전조를 다민족 국가인 미국 사회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흑인과 라틴 아메리카인, 아시아와 유럽인의 가치관이 공존할 수 있는 미국사회는 계속해서 가치관이 충돌을 일으키며 발전하는 사회이다. 미국에 앞서서 유럽 또한 각 민족이 서로의 가치관 때문에 전쟁을 벌이다가 오늘날에서야 서로의 가치관을 인정하면서 세계의 어느 대륙보다도 더욱 협력하여 발전하는 땅이 되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아프리카와 중남미, 아시아 대륙은 여전히 국가나 민족적 가치관으로 인하여 갈등과 전쟁을 겪는 아픔의 땅이다.

   삼강오륜이라는 기본적 도덕으로 이조는 질식할 것 같은 계급사회를 이루고 있었다. 임금과 백성을, 부부와 부모와 자식을 침범할 수 없는 영역에 가두어 구분 짓는 삼강오륜이란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계급사회를 철통같이 지키려는 음모에 지나지 않는다. 통치자와 백성, 부모와 자식, 부부의 역할에 일정한 구획이 어찌 없겠는가? 그러나 오늘날 민주주의 사회에서 임금이란 통치자에 대한 허무맹랑한 정의(定義)에 지나지 않으며, 정보통신이 강조되는 후기 산업사회에서 섬세한 여성의 업무 능력은 빛을 발휘한다. 자식과 부모가 친한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그 사이의 갈등 또한 영원히 발생하는 도덕적 문제이다. 결코 평등한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인본주의적 민주관계에서 성립되지 않고, 사회구조를 정교하게 계급 화하려는 통치음모에서 시작되어 바위처럼 굳어진 사회적 도덕인 삼강오륜은 인간의 창조적 능력을 저해하는 강압적 수단으로 작용한다.

   삼강오륜이 강조되지 않는 지금도 남아있는 원시부족의 도덕개념을 조사해보라. 아마존과 아프리카, 남태평양과 아시아 대륙의 오지, 북극 지방과 사막의 사람들. 그들 모두 인간사회에서 발생하는 도덕적 문제에 대한 대응책을 가지고 있다. 삼강오륜을 모른다고 그 이방인의 사회문화가 진정 야만적인가? 그들 나름의 사회도덕이 동 아시아적 가치관에 의하여 재단될 수 있는가? 이국의 문화적 관습을 중시하라고 주장한 헤로도투스(Herodotus)의 여행기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과거의 중국적 가치관만이 보편성을 지닌 세계적 가치관이었다면 오늘날은 미국적 가치관만이 전 세계를 지배해야 되지 않겠는가? 더구나 미래는 통신의 발달로 국가나 민족의 개념이 희박해지는 시대라고 미국의 사회학자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는 말한다:

 

과거의 국가는 성공적인 산업화를 목적을 위하여 필요했기 때문에 많은 가난한 나라들이 필사적으로 국가적 일체감을 확립하려고 싸우는 바로 역사적 순간에, 부유한 나라들은, 산업화를 넘어 달려가면서 국가의 역할을 줄이고, 교체하거나 평가절하하고 있다. 우리는 다음 몇 십 년이 세계의 국가 이후 민족들뿐만 아니라 국가 이전 민족들을 상당히 대표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적 제도의 창조에 대한 갈등으로 분열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고도 기술의 환경 속에서의 민족주의는 대신에 지역주의가 된다. 용광로를 만들려는 압력은 새로운 인종성격에 의하여 자리가 바뀐다. 대중매체는, 대중문화를 만들어내는 대신에, 대중문화를 비대중화한다. 나중에 이 모든 발달상황은 출현하는 에너지 종류의 다양성과 대량생산을 초월하는 진보와 병행한다.

 

   우리에게는 강력한 국가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강력한 국가를 건설하기 위하여 우리는 국가가 무엇인가 하는 본질적인 문제를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지나온 역사 속에서 국가는 어떤 모습으로 국민들에게 나타났는지 알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여러 사람들이 말하는 국가의 모습을 알아보자:

 

국가? 그게 무엇인가? 자 그렇다면! 자, 당신의 귀를 열라, 왜냐하면 이제 나는 당신에게 민족의 죽음에 대해서 말할 것이니까. 국가란 모든 냉혹한 괴물 중에서 가장 냉혹하다. 국가는 냉혹하게 거짓말도 한다; 그리고 이 거짓말은 국가의 입으로부터 기어 나온다: ‘나, 국가는 국민이다.’ 이것은 거짓말이다! 민족을 창조하고 그 민족들에게 믿음과 사랑을 준 것은 창조주들이다: 그러므로 창조주들은 생명에 봉사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덫을 놓고 국가라고 부르는 것은 파괴자들이다: 파괴자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칼과 백가지 욕망을 걸어둔다. 민족이 여전히 존재하는 곳에는, 사람들은 국가를 이해하지 못하고 국가를 사악한 눈과 관습 및 법에 반하는 죄악으로 증오한다.

나는 당신에게 이 징표를 주겠다: 모든 사람은 선과 악에 대하여 그 징표 자신의 언어로 말한다: 그 징표의 이웃은 이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 징표는 이 언어를 스스로 관습과 법에서 발명했다. 그러나 국가는 선과 악에 대하여 모든 언어로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국가가 무엇을 말하든지, 국가는 거짓말만 한다 - 그리고 국가가 무엇을 소유하든지, 훔친 것이다. 국가에 대한 모든 것은 거짓이다; 국가는 훔친 이빨로 깨문다. 국가의 배때기조차도 거짓이다. 선과 악에 대한 언어의 혼동; 나는 이 징표를 국가의 징표로 당신에게 제공한다. 정말로. 이 징표는 죽음으로의 의지를 표시한다! 정말로, 이 징표는 죽음의 설교자에게 손짓한다! 많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태어났다: 국가는 잉여인간들을 위하여 창조되었다! 국가가 그들, 많은-너무-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유혹하는지 보라! 국가가 그들을 어떻게 삼키는지, 그리고 씹는지, 그리고 다시 씹는지를! ‘지구상에 하느님의 주재하는 손가락인 나보다 더 위대한 것은 없다’ - 그렇게 그 괴물은 으르렁거린다. 그리고 귀가 얇고 근시만 무릎을 꿇는 것은 아니다! 아, 국가는 당신, 위대한 영혼인 당신들에게도 그 음울한 거짓말을 속삭인다! 아, 국가는 자신을 낭비하기를 좋아하는 풍부한 마음을 알아낸다! 그렇다, 국가는 당신, 낡은 하느님의 정복자인 당신도 알아낸다! 당신은 전투에서 싫증이 났고 이제 당신의 싫증은 우상에게 봉사한다! 당신의 싫증은 이 새로운 우상 주위에 영웅과 명예로운 사람들을 배치하고 싶어 한다! 당신의 싫증은 양심의 햇빛 - 이 냉혹한 괴물 속에서 태양 볕을 쬐고 싶어 한다! 당신이 이 새로운 우상을 숭배한다면, 그 우상은 당신에게 모든 것을 줄 것이다: 그래서 국가는 자신을 위하여 당신 미덕의 욕망과 당신의 자신만만한 눈초리를 산다. 국가는 많은-너무-많은 사람들을 유혹하기 위하여 당신을 이용하고 싶어 한다. 그렇다, 지옥의 교활한 장치가 고안되었다, 성스러운 명예의 치장으로 딸랑거리는 죽음의 말(馬)! 그렇다, 자신을 삶으로 치장하는 많은 사람들을 위한 죽음이 고안되었다: 정말로, 죽음의 모든 설교자들에게 충심의 봉사를! 나는 그것을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모든 사람이 독배를 드는 사람들이 있는 곳인 국가라 부른다: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모든 사람이 자신을 잃는 국가: 보편적인 점진적 자살이 삶이라고 불리는 국가.

이 넘치는 사람들을 보라! 그들을 발명가들의 작품과 현명한 사람들의 보물을 훔친다: 그들은 자신의 절도를 문화라고 부른다 - 그리고 그들은 모든 것을 병(病)과 재난에 돌린다. 이 넘치는 사람들을 보라! 그들은 늘 아프고 나쁜 기질을 토해놓고 그것을 신문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서로 잡아먹고 소화시키지도 못한다. 이 넘치는 사람들을 보라! 그들은 재산을 얻고 그 재산 때문에 자신을 더욱 가난하게 만든다. 그들은 권력을 원하고, 권력의 지렛대인 많은 돈을 원한다 - 이 무기력한 인간들! 이 잽싼 원숭이가 기어가는 것을 보라! 그들은 서로의 위로 기어가고, 그래서 다투다가 진흙과 심연에 빠진다. 그들 모두는 왕좌를 향하여 기를 쓴다: 그들이 가진 것은 광증(狂症)이다 - 마치 행복이 왕좌에 앉아있는 것처럼! 자주 오물이 왕좌에 앉아있다 - 그리고 자주 왕좌는 오물 위에 또한 앉아있다. 그들 모두는 나에게 미치광이와 기어가는 원숭이로 보이고 너무 강조하는 듯싶다. 그들의 우상, 그 괴물은 나에게 불쾌한 냄새를 풍긴다: 그들 모두, 이 모든 우상숭배자들은 나에게 불쾌한 냄새를 풍긴다. 나의 형제들이여, 그렇다면 그대들은 그들의 동물 입과 식욕에서 나는 냄새에 질식하기를 원하는가? 창문을 깨고 외부의 공기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이 나쁜 냄새를 피하라! 이 인간제물의 냄새를 떠나라! 지구는 여전히 위대한 영혼들에게는 자유롭다. 정말로, 적게 소유하는 사람은 그만큼 덜 미친 것이다; 적당한 가난에게 찬사가 있을 지어다! 국가가 없어지는 곳에서만 잉여가 아닌 사람이 시작된다: 필요한 사람의 노래, 독특하고 필수적인 멜로디가 시작된다. 국가가 없어지는 곳 - 그곳을 보라, 나의 형제들이여.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무지개와 초인(超人)으로 가는 다리를?

국가는 사회가 아니다, 국가는 사회의 역사적 형태일 따름이다, 추상적인 만큼 잔인한. 국가는 역사적으로 모든 국가에서 국가에 대한 신학적 환상에 의하여 지속적으로 창조된 신(神)들과 함께 폭력과 강탈, 약탈, 한마디로 전쟁과 정복의 결혼으로 태어났다. 국가는 처음의 형태로 계속되어 현대에도 여전히 잔인한 권력에 대한 신성한 허락과 의기양양한 불평등으로 남아있다.

국가는 권위이다; 국가는 힘이다; 국가는 힘의 과시이자 몰입이다: 국가는 자신을 치장하지 않는다; 국가는 개종시키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국가가 좋은 것을 명령할 때조차도, 그 좋은 것을 방해하고 망친다, 국가가 그것을 명령한다는 이유 때문에, 그리고 모든 명령이 자유의 합당한 반발을 자극하고 흥분시키기 때문에; 그리고 선(善)은, 명령되어지는 순간부터 진정한 도덕의 관점에서, 인간의 도덕적 관점에서 (물론 신성한 것은 아닌), 인간존중 및 자유의 관점에서, 악(惡)이 되기 때문에. 인간의 자유, 도덕, 그리고 존엄은 인간이 선(善)을 행한다는 것에 정확히 달려있다, 선(善)이 명령되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선(善)을 생각하고, 의도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국가의 필요성은 궁극적(窮極的)으로 인간본성의 인정되는 불의(不義)에 의존한다고 생각하는 게 타당(妥當)하다. 이것이 없었다면, 아무도 자기 권리에 대한 침해(侵害)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었기에 아무도 국가를 필요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화려한 수식어(修飾語)를 늘어놓으면서, 국가를 인류의 최고의 업적과 목표로서 내세우고, 그럼으로써 몰상식(沒常識)의 신격화(神格化)를 성취하는 그 철학자들의 무지(無知)와 너스레를 알기는 쉽다.

국가는, 무정부주의자들의 촉구에도 불구하고, 어떤 목적을 위하여 필요한 제도로 보인다. 평화와 전쟁, 세금, 위생 상태에 대한 규칙과 독극물 판매에 대한 규정, 분배의 공정한 제도 유지: 이것들은, 다른 것들 중에서, 중앙정부가 없는 사회에서는 행하여질 수 없는 기능이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의 주류거래나 아편거래를 생각해보라. 만약 술이 세금이 붙지 않은 가격으로 구매될 수 있고, 더욱이 술이 공짜로 구해질 수 있다면, 무정부주의자가 아마도 원하는 바와 같이, 우리는 술주정이 엄청나고 파멸적으로 증가하지 않는다고 믿을 수 있을까? 중국은 아편에 의하여 파멸의 경지에 이르렀으며, 모든 애국적인 중국인은 아편거래가 제한되는 것을 보고자 한다. 그런 문제에서, 자유는 만병통치약이 아니어서, 어느 정도의 법적 제재가 국민보건을 위하여 화급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가가 어떤 형태로 존속되어야 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또한, 내가 생각하기에, 국가의 권력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에 매우 엄격하게 제한되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국가에 의하여 명령된 법에 반대하는 저항을 포함할지라도, 그 법들이 공공의 이익에 의하여 증명되지 않은 방식으로 한 무리의 내부문제에 간섭할 때, 자신들의 특권을 열렬히 보호하고 자신들의 자주성을 보전하고자 결심한 무리들에 의하지 않고는 국가권력을 제한할 방법이 없다.

국가를 기리는 일과, 국가에 봉사하는 것이 모든 시민의 의무라는 원칙은 진보와 자유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 국가란, 현재는 많은 악의 근원이라 할지라도, 특정한 올바른 일에 대한 수단이기도 하여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충동이 흔히 남아있는 한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국가는 단지 수단이며, 만약 국가가 선(善)보다 악(惡)을 더 행하지 않으려면, 매우 신중하고 절약하여 사용되어질 필요가 있는 수단이다.

우리가 봉사하여야 하는 것은 국가가 아니고 공동체, 현재와 미래의 모든 인간의 전 세계적인 공동체이다. 그리고 훌륭한 공동체는 국가의 영광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개인의 자유로운 발달에서 나온다: 일상생활의 행복으로부터, 각각의 인간이 소유한 모든 건설적인 일에 기회를 제공하는 유쾌한 일로부터, 사랑을 구체화하고 애정을 위한 위축된 능력에서 질투의 뿌리를 제거하는 자유로운 인간관계로부터, 그리고 무엇보다도 삶의 즐거움과 예술과 과학을 자발적으로 창조하는 삶의 표현으로부터. 한 시대나 한 민족을 존재가치가 있도록 만드는 것은 이러한 것들이고, 이러한 것들은 국가 앞에 굽실거림으로써 확보는 것은 아니다. 모든 훌륭한 것이 실현되어야 하는 것은 개인에게서 이며, 개인의 자유로운 성장은 세상을 다시 만드는 정치제도의 최고목표가 되어야 한다.

‘국가’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하는 일은 우리 앞에 놓인 결정적인 수십 년의 세계를 맞이하는 가장 정서적이고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이고, 어떤 기능들이 지방화 하거나 세계화하는 것보다는 그 기능들에 대하여 국가적 통제를 유지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맹목적 종족주의와 국가주의는 양쪽 모두 위험하고 퇴행적이다. 그리고 종족이나 신(神)이 부여한 우수성의 개념에 연결될 때, 그것들은 폭력과 압제를 낳는다.

천금(千金)은 엄청난 이득이요, 경상(卿相)은 존엄한 지위이다. 그러나 그대는 아직도 교제(郊祭)의 제삿소(犧牛)를 보지 못하였는가? 몇 년을 잘 먹여 기른 다음에는 아름다운 비단옷을 입혀 태묘(太廟)로 끌려가기 마련이다. 이 때야 비로소 한 마리 더러운 돼지가 되고자 한들 될 뻔이나 하겠는가. 그대는 빨리 돌아가라. 나를 더럽히지 말라. 내 차라리 더러운 진흙탕 속에서 노닐며 스스로 유쾌하게 지낼지언정 나라 다스리는 사람에게 얽매이지 않겠소, 죽는 날까지 벼슬하지 않고 내 뜻을 편안케 지켜 나가겠소.

 

   나는 위에서 무정부주의자에서 민주주의자에 이르는 여러 사람의 국가관을 인용했다. 위에 인용된 글들은 대부분이 국가권력을 부정하거나 국가권력은 제한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여기에서 나는 국가란 필요한 것이지만 그 국가의 권력은 철저히 민주주의 원칙에서 나온다는 결론을 도출하겠다. 그 까닭은 오늘날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한데, 국가의 존재가치가 쇼펜하우어의 주장처럼 외침을 막고자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국가의 국민들이 그 국경선 안에서 오랫동안 생활하였다는 사실은 그 국토의 자연환경에 익숙해져서 쉽게 생활습관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물론 한 지방이나 국가의 관습도 문명충돌에 의하여 변화하는 것이 또한 사실이지만, 혁명적 변화는 기존가치 전체의 급격한 멸실을 가져와 이성적 대응이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3. 민족주의의 근원

   만약 우리민족이 우수하다고 주장한다면 역사 속에서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된 민족이라고 뽐내다가 로마에 의하여, 그리고 근세까지 다른 민족에 의하여 박해를 당하고 심지어 히틀러에 의하여 수 백 만이 학살당한 유태민족의 운명을 우리민족이 앞으로 당하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천황의 백성이라고 떠들다가 원자폭탄을 맞은 일본민족, 게르만족의 우수성을 들먹이다가 연합국에 망해 버린 독일민족의 운명을 우리가 피할 수 있을 것인가? 유태인이 받은 박해에 대해서, 그리고 민족주의에 대해서 니체, 버트런드 러셀과 칼 포퍼의 말을 차례로 들어보자:

 

그런데, 이곳에서 그들의 에너지와 보다 높은 지능, 그들의 축적된 정신과 의지의 자본이, 고통 속의 긴 학습을 통하여 세대에서 세대로 모여져, - 그들이 민족주의적으로 나쁘게 행동하는 정도와 정비례하여 - 대중의 선망과 증오를 일으킬 정도로 그렇게 막대했고 - 문학적 추악함이 유태인들을 모든 상상 가능한 공개적이고 내부적인 불행의 희생양으로서 살육으로 이끌었던 확산이었기 때문에, 유태인들에 대한 전체 문제는 단지 민족 국가에 존재한다. 더 이상 민족을 보존하는 문제가 아니고 가능한 가장 강력한 유럽의 혼합인종을 만드는 문제가 되자마자, 유태인은 다른 민족적 잔재만큼 꼭 그렇게 유용하고 바람직한 요소다. 모든 민족과 모든 개인에게는 불쾌하고, 심지어 위험한 특성이 발견될 수 있다: 유태인은 예외가 되라고 요구하는 것은 잔인하다. 유태인에게도, 이 특성들은 비정상적인 정도까지 심지어 위험하고 불쾌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주식에 투자하는 젊은 유태인은 전적으로 인류의 가장 구역질이 나게 만드는 발명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들 모두의 잘못이 없지는 않지만, 한 민족이 모든 민족 중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역사를 경험했고, 사람이 그 민족에게 세계에서 가장 고귀한 사람(그리스도), 가장 순수한 현자(賢者)(스피노자), 가장 강력한 책, 그리고 가장 효과적인 도덕률을 빚지고 있을 때, 전체 계산에서 그 민족을 얼마큼 용서해야 하는지 알고 싶다. 게다가, 중세기라는 가장 암흑기에, 그 때는 아시아의 구름덩어리가 유럽 위에 무겁게 모여들었는데, 가장 혹독한 개개인의 압박에 직면하여 깨달음과 정신적 독립의 깃발에 매달려 아시아에 대항하여 유럽을 방어한 사람은 유태인 자유사상가, 학자, 그리고 의사들이었다. 우리는 보다 자연스럽고, 보다 이성적이며 분명히 비신화적인 세상에 대한 설명이 결국에는 다시 승리할 수 있고, 그리스-로마적인 고대의 깨달음이 중단되지 않았다는 것을 유태인들의 노력에 조금도 적지 않게 빚지고 있다. 만약 기독교가 서구를 동양화하기 위하여 많은 일을 했다면, 유태교는 서구를 반복해서 서양화하는데 중요한 도움을 주었다:

종족 감정은, 항상 최고지배자에 대한 충성심이 원인이었는데, 과거만큼이나 강하게 남아있고, 지금은 국가의 주요한 지주(支柱)이다. 거의 모든 사람이 공동의 우정과 적의로 기운이 나서, 방어와 공격에 무리를 지어, 한 무리의 구성원이라고 느끼는 것이 자기 행복에 필수적이라고 안다.

종교로서의 애국심은 보편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만족스럽지 못하다. 애국심이 겨냥하는 이점은 모든 인류를 위한 것이 아니고 자신의 민족만을 위한 이익이다. 애국심이 영국 사람에게 고취하는 바람은 독일 사람에게 고취하는 바람과 같지 않다. 애국자로 가득한 세상은 싸움으로 가득한 세상일는지도 모른다. 민족이 강력하게 애국심을 믿을수록 그만큼 더 광신적으로 그 민족은 다른 민족이 당하는 피해에 무관심하게 될 것이다. 사람이 자신의 이익을 보다 큰 집단의 이익에 종속시킬 때 인류가 되지 않을 합당한 이유가 없다. 실제로 희생을 향한 인간의 충동을 그들 자신의 국가의 국경선에서 멈추기 쉽게 만드는 것은 민족적 자존심이라는 첨가물이다. 애국심에 독을 넣고, 종교로서, 모든 인류의 구원을 목표로 하는 종교보다 열등하게 만드는 것은 이 첨가물이다. 우리는 다른 나라보다 우리 자신의 국가를 더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가 모든 인간을 동등하게 사랑하기를 바랄 수 없듯이 그것을 피하길 바랄 이유가 없다. 그러나 적당한 종교는 사랑의 불균형을 정의 사랑으로 조절하게 만들고, 인간 공동의 욕구를 깨달음으로써 우리의 목표를 보편화하도록 만들 것이다.

아무도 완전한 자유를 누리지 못하며, 또한 완전한 노예도 없다. 인간이란 자유를 가지는 한 자기행동에 도덕성을 지녀야 한다. 인간이란 자기가 속한 사회의 도덕률을 따라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식인행위(食人行爲)나 인간제물, 인간사냥 같은 관습은 전통적 도덕성에 항의함으로써 없어졌다. 인간이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가장 보람차게 살려면 사회에서 통용되는 종족적 관습이나 믿음을 비판할 줄 알아야 한다.

민족주의는 우리의 종족적 본능, 정열, 편견, 그리고 개인적 책임이라는 긴장으로부터 풀려나려는 향수에 젖은 욕망을 매혹하여, 그 개인적 책임을 집단적 책임으로 대체하려고 한다.

 

   그리고 박경리씨의 토지에서 한국인 민족주의자인 조찬하는 민족주의 자체에 심한 의혹을 부여한다:

 

민족이란.... 결국 필요에 의하여 흩어지지 않고 모인 집단, 무리를 짓는 동물들과 같이 생존을 위한 집단이 아닌가. 다만 좀 노골적으로 얘기하자면 인간은 본능을 사랑이라 하고. 외로움에서 필사적으로 도주하려는 것을 사랑이라 하고 진실이라고도 한다. 이런 불안정한 인간들을 수용한 집단을 조국이라는 말뚝을 박아놓고 한 핏줄이라는 끈으로 묶어놓고 일방 통행을 한다. 조국 ! 핏줄 ! 그것은 절대적인 것인가? 항구불멸의 것으로 이탈하면 안 되는 것인가? 생존을 위한 공동체, 그것은 과연 공동체였던가? 민족을, 국가를, 그리고 소수를 위해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들 밑깔개에 지나지 않았다.

 

   한국민족은 말할 것도 없이 유태민족이나, 게르만민족, 일본민족, 중국민족도 고유한 문명을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세계 모든 민족의 고유한 문화나 문명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문화나 문명의 고유함이란 그 민족이 살아가는, 다시 말해서 독특한 자연 속에서 생존을 위하여 전개하는 고유한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세계의 각 민족이 자기들이 처한 고유한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미국의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사회는 스스로 삶을 위한 어떤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 사회는 상황을 충족시키는 어떤 방식, 상황을 판단하는 어떤 방식을 수용한다. 그 사회의 사람들은 이 해결책을 우주의 기초로 간주한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그들은 이 해결책을 결합한다.’

   에스키모인들이 물고기나 백곰을 잡지 않고 어떻게 생존할 수 있었으며, 사막민족이 목축업을 하지 않고 농사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었으며, 겨울이 긴 한국에서 사람들이 김치 없이 어떻게 비타민 C를 섭취할 수 있었겠는가? 그 민족이 살아가는 생태환경 속의 문명이나 문화는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 고대 그리스 시인 호머의 주장이다. 또한 우리가 고향사람을 반기는 이유는 고향의 자연과 사람들의 삶에 공통된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 의견 차이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우리가 고향 사람을 만나서 하는 대화는 고향의 산천이며, 고향의 음식이며, 고향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에 관해서 이다. 그러므로 쉽게 우리는 이질감 없이 과거의 경험을 기초로 대화를 시작할 수 있으며, 그래서 서로 친근감을 쉽게 느끼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겪은 과거의 고향 경험담은 매우 왜곡되고 편파적인 판단에 의하여 사실에서 벗어나기가 쉽고, 전통이나 관습은 새로운 시각에 의한 비판이 없다면 버트런드 러셀의 주장과 같이 진보하지 않는다.

   강한 국가나 민족은 그 사회에 속하는 모든 사람들의 열망이며, 이미 강해진 국가나 민족은 다른 민족에게 눈길을 돌리며 흔히 제국주의의 길을 찾는다. 따라서 여기에서 제국주의와 민족주의의 갈등이 발생하고 문명이나 문화는 침투하고, 반격하는 유동성을 지닌다. 에스키모는 물고기 사냥을 줄였으며, 한국의 아이들은 어른들만큼 김치를 좋아하지 않는다. 에스키모의 아이들이나 한국의 아이들은 햄버거를 먹으며 콜라를 마신다. 미국인들은 태권도를 배우며 한국의 사물놀이 공연에 기립 박수를 보낸다.

   그러면 우리 정치인들이나 소위 지배자들은 왜 민족의 단일성을 강조하고 우수성을 주장하는가? 버트런드 러셀의 주장대로 종족감정은 ‘최고 지배자에 대한 충성심이 원인’이다. 그러므로 지배자들은 국민들의 인기를 얻고자 종족감정을 부추기는 것이다. 아니면 다른 목적 때문에 거짓주장으로 진실을 호도한다. 아무튼 그들이 노리는 것은 그들만의 인기나 이익이며, 그들 주장의 결과는 국민 모두에게 미치는 악영향이자 미래의 위험이다.

 

4. 민족주의 속의 계급주의

   우리는 단일민족을 강조하면서도 심리의 내부에는 오래된 계급의식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이러한 계급의식 속에서 사악한 인간의 욕심과 무지(無知)를 발견한다. 이 우월의식을 니체는 이렇게 설명한다: ‘도덕적 가치를 구별하는 일은 피지배층과 구별되는 것을 기뻐하는 지배층에서 나오거나, 노예 또는 완전히 종속된 인간들인 피지배층에서 나왔다.’ 니체에 따르면 우월의식은 남과 구별되기를 좋아하는 지배층이나 노예근성을 가진 인간에게서 발생한다. 정신적인 노예는 지배층을 자기들과 다른 ‘별종’의 인간으로 보고 그들을 숭배하고, 의지하려 한다. 인간이 지닌 우월의식은 재산과, 권력, 용모와 지식 등등에서 골고루 나타난다. 그러나 이 네 가지 요소를 골고루 가진 사람은 거의 없으며, 각 요소를 하나씩 가진 자도 전 세계적 기준에 비추어 보면 높은 피라미드의 일부를 이루고 있으며, 그 피라미드는 끊임없이 변한다. 오늘 부유한 자는 미래에도 여전히 그 재산을 소유하리라는 보장이 없으며, 오늘의 권력은 내일 없어지며, 오늘의 지식은 내일 새로운 지식에 의하여 빛을 잃는다. 불교에서 말하는 바, 제행무상(諸行無常)이며, 아테네 철학자 헤라클리투스가 말한 바, ‘만물은 변한다.’이다.

   그리고 누가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문제에서도 사람 사이에는 결코 커다란 지식차이가 나지 않는다. 더구나 더 많은 지식을 가진 자는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르기 쉽다. 칼 포퍼는 ‘우리 모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에서 다르지만, 우리의 무한한 무지(無知)에서는 우리 모두 똑 같다.’고 주장한다.

   우리 민족의 계급의식은 어느 민족에서도 마찬가지로 오래된 종족간의 싸움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 전쟁의 결과로 포로가 된 적(敵)이나 적(敵)의 가족이 노예가 되었다 - 특히 이조사회의 사농공상(士農工商)으로 구분되는 유교의 계급구조에서 강화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경직된 유교사회인 이조의 사농공상 계급구조와, 인도의 야만적인 4 계급구조인 카스트 제도를 비교해보면 너무나 유사하다. 그러나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알렉산더가 인도를 정복한 이후 원주민과 백인 사이의 혼혈을 막기 위하여 생겨난 계급구조이지만 이조의 계급구조는 최소한 자국민이 되어버린 사람들이나, 본래 자국민인 사람들에 대하여 생겨난 계급구조이다. 어떤 사회에도 사회적 계급의 구분은 있고, 심지어 현대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계층의 구분은 있기 마련이지만, 이조나 인도처럼 철저하게 백성을 계급으로 구분하여 차별하여 통치하였던 역사는 흔치 않으리라.

   박경리 씨의 토지에서 무당의 딸로 태어나 농부인 이용과의 사랑을 성취할 수 없었던 월선, 기생이 되어 강물에 투신함으로써 생을 마감하는 봉순, 백정의 사위가 되어 고뇌하다가 만주벌판에서 죽는 송관수, 수려한 외모와 지적능력에도 불구하고 학업을 포기하고 악단의 악사로 유랑하는 송관수의 아들 송영광, 그리고 출신 때문에 슬픔으로 이어지는 봉순의 딸 양현과 송영광의 사랑이 한국 땅에서 생겨난 잔혹한 계급구조의 산물이 아니고 무엇인가?

   박경리 씨의 토지는 일본의 강점 못지않게 이조사회의 계급갈등을 그리고 있다. 그런 계급사회가 인도의 경우에는 영국에 의하여, 이조의 경우에는 일본에 의하여 패망하는 사실을 두고 우리는 외적의 침략 때문 만이라고 손가락질 할 수 있는가, 우리 내부의 허점은 없었는가? 여기에서 우리는 사회주의 국가인 구소련, 중국과 북한이 제일 먼저 착수한 작업이 봉건제도 비판과 타파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한다. 공산주의자들은 자기들의 내부모순인 계급구조, 즉 봉건제도가 그들 나름대로의 민주주의에 최대의 적(敵)이며 나아가 제국주의의 침략에 매우 취약한 구습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던 것이 아닐까?

   유교는 사회계급의 안정화내지는 고착화를 이상으로 한다. 다시 말해서 유교는 근본적으로 통치이념이며, 그 통치의 수단으로 계급구조를 채택한다. 통치를 문치(文治)인 왕도(王道)와 힘의 정치인 패도(覇道)로 나눈 것은 끊임없이 왕에게 인자한 통치를 요구하는 것이지만, 이러한 유교의 왕도 요구는 마이동풍(馬耳東風)이나 다름없으며 그런 요구 자체가 무지(無知)의 소산이라고 말할 수 있다. 소위 지배자란 원칙적으로 민주정치에 반하는 것이다. 어느 날 칼 든 선조 아래서 태어난 자가 왕의 자리를 물려받거나, 스스로 칼을 들고 사람을 죽임으로써 왕이 되는 것이다. 현대적 의미로 살인범이 통치자였다. 쇼펜하우어는 왕이 지배하는 정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볼테르가 말하기를: ‘왕이 된 최초의 인간은 운 좋은 군인이었다.’ 모든 왕자는 의심할 바 없이 실제로 처음에는 승리한 지휘관이었다, 그리고 오래 동안 그 상태로 지배했다. 상비군을 얻은 후 왕자들은 백성들을 자기들과 자기들의 군인을 먹여 살리는 수단으로 여겼다, 다시 말해서 털과, 우유, 고기를 제공하기 위하여 사람이 기르는 가축 떼로서. 이것은 자연에 의하여 그리고 처음부터 지구상에서 다스리는 것은 정의가 아니고 무력이라는 사실에 근거를 둔다.

 

   이 볼테르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칼을 들고 운 좋게 죽지 않고 살인한 사람이 왕이라는 뜻이다. 운 좋다는 말을 새겨보면 우리가 듣는 무수한 영웅담은 거짓말이라는 이야기이다. 아더 왕의 전설이니, 원탁의 기사나, 징기스칸이니, 항우, 유방, 왕건, 이성계니 하는 인물들의 무용담에는 당시 겁을 주기 위하여 각색되고 과장된 이야기가 많다. 영국의 전설적인 의적 로빈 훗을 연구해본 결과 로빈 훗이라는 좀도둑이 옛날에 살았을 뿐이라고 밝혀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까지 유행하는 김두한이 같은 깡패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김좌진 장군이 독립 운동을 하다가 쫓겨, 어느 집에 들어가 처녀를 만나 만든 것이 김두한이라는 말인데 모두 남에게 겁을 주고, 자기 잘 낫다고 꾸며대는 말일뿐이다.

   국회의장을 역임하고 오랫동안 여당 정치인으로 활동했던 박준규 씨의 말에 따르면 대통령이 쓴 자서전을 보면 90%가 거짓말이라는 이야기이다. 이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사람들은 권력을 잡기 위하여, 다시 말해서 대통령이 되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었다고 그는 술회한다. 한 마디로 깡패라는 이야기이다, 필요하면 살인도 서슴지 않는. 또한 박경리 씨가 쓴 토지에서 송영광은 영웅호걸과 애국자에 대하여 냉소적인 판단을 내린다:

 

“과연 영웅 호걸이란 있습니까?”

묻는다.

“영웅 호걸, 위대한 애국자, 신출귀몰하는 의인, 사실 그런 게 있습니까?”

재차 묻는다.

“있었으니까 역사책에도 나와 있겠지.”

농치듯 말하고 홍이는 또 소리내어 웃었다.

영광은 바닥 깊이까지 들이켜듯 술을 마셨다.

“그건 말입니다, 그건 사람들이 치장을 해서 내놓은 것들입니다.”

.....

“... 왜 사람들은 남들에게 이런저런 옷을 입히기를 좋아하는 거지요? 아름다우면 추하게 입히려 하고 추하면 아름답게 입히려 하고, 반대로 아름다우면 더욱더 천상적(天上的)으로 꾸미려 하고 추하면 더욱더 지옥으로 만들려 하고, 진실은 어디 있습니까?...”

.....

“... 하하 도시 누가 구제하고 누가 구제를 받지요? 구제한다, 구제받았다, 참 우습군요. 정말 엉터리군요. 교활하고 어리석은 영웅과 교활하고 어리석은 대중이 눈가리고 아웅하는 관계 속에서 적당하게 만들어낸 것이 그놈의 구제니 구원이니, 해방, 자유 따위의 말 아닙니까?...”

 

   정치가들의 우상화가 어디 남쪽뿐이겠는가? 한강의 기적이라 하더니 기업이 무너지고 국민들이 거리로 내몰리는 IMF 구제금융의 시대가 왔다. 신문에는 미국의 한 주(州)가 되는 게 낫다는 주장이 나와도 반론하나 보이지 않았다. IMF 구제금융을 받아야 하는 사태가 되었는데 최고통치자인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자기 잘못이 아니라며 남에게 손가락질하고 청문회도 출석을 거부한다. 그러면 수많은 가정이 파괴되고 가족들이 집단자살하고, 국민들이 고혈압과 우울증으로 죽어 가는 이 사태가 누구 책임인가? 당신들이 정치 잘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을 믿은 국민들 책임인가?

   어느 날 갑자기, 그야말로 갑자기 정부는 군사반란자들을 잡아들이고 재판을 시작한다. 명분은 ‘이 문제를 처리하지 않고는 정치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국민을 어떻게 보는 짓인지 모르겠다. 살인한 군사 반란자들이 호화롭게 이 땅에서 거들먹거리며 사는 것을 국민들이 허락할 것으로 보는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기괴한 논리를 펼치던 사법부가 그들을 감옥에 잡아넣어 사형이니 무기징역이니 하더니 그 다음에는 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이 군사반란자들이 대통령권한으로 사면되어 감옥에서 나온다. 그것까지야 대부분의 국민들이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지만, 그들이 감옥을 나온 다음 즉시 여의도 광장에서 차를 질주하여 살인한 사람 같은 죄수들 여러 명이 사형 집행되었다. 나는 아연했다.

   그런 ‘정신병자들’에 의하여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정말로 미안한 일이고 그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지만 그 정신병자들은 처벌할 수 없다. 그들은 정상인이 아니고 ‘정신병에 걸린’ 사람들이기 때문에 격리, 치료의 대상이지 처벌의 대상이 아니다. 더구나 그 사람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이고 돈을 쥐던 사회에서 탄생한,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그런 ‘의지박약하고 불쌍한’ 사람들이 아닌가? 국제사면위원회에서 그렇게 반대를 했는데도 그 사람들은 사형 당하고, 수백 명을 의도적으로 학살하고도 반성의 기미도 보이지 않는 군사반란자들은 감옥에서 나오는 이 한국적 현실은 개탄을 넘어 분노를 일으킨다. 군사정권은 끝났으되 권위적인 정권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우리의 현대사에서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권위주의는 시민의 각성과 그에 따른 권위주의에 반대하려는 의지가 없다며 없어지지 않는다. 권위주의자란 어떤 사람들인가?

   권위주의자들이란 대개 자기의 영향력에 순종하고, 그 영향력을 믿으며, 고분고분한 사람을 골라 쓴다. 그러나 그렇게 하게 되면 2등급만 고르게 된다. 그 이유는 반항하고, 의심하며, 권위에 도전하는 사람은 제외되기 때문이다. 권위주의자는 지적으로 용감한 사람들, 즉 자기 권위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가장 귀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물론, 권위주의자들은 자기들에게 창의력을 알아보는 능력이 있다고 늘 믿는다. 그러나 그들이 믿는 것은 자기들의 의도를 재빨리 잡는 일일뿐이다. 그들은 이 차이점을 영원히 모를 것이다.

   필리핀에서 마르코스의 독재가 기승을 부리며 부정선거로 필리핀 국민들을 매수할 때, 신 추기경은 소리쳤다, ‘마르코스가 주는 돈을 받으라, 그 돈은 여러분의 돈이다. 그러나 표는 바르게 찍어라’고. 그리고 거의 일생을 흑백 차별주의에 저항하여 감옥에 갇혀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넬슨 만델라는 대통령이 된 후에 후임자에게 ‘친구를 조심하라. 가까이서 당신을 칭찬하는 사람을 조심하라’고 충고하였다. 도대체 이런 사람들이 우리나라에는 없다.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월터 리프만(Walter Lippman)도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이 귀한 존재라고 주장한다:

 

반대는 필수적이다. 훌륭한 정치가는, 다른 이성적인 인간처럼, 항상 자기를 열렬히 지지하는 사람으로부터 보다는 반대자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운다. 그 이유는 반대자들이 어디에 위험에 놓여있는지를 그에게 보여 주지 않으면, 그의 지지자들이 그를 커다란 불행으로 밀고 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치가가 현명하다면, 그는 자주 자기 친구들로부터 구원되기를 간구할 것인데, 그 까닭은 친구들이 그를 파멸시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플지라도, 정치가는 반대자가 없지 않게 해달라고 간구하여야 한다. 그 이유는 반대자들이 그를 이성과 훌륭한 판단의 길로 지켜 주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재학 시에도 졸업 후에도 가장 혜택을 누리는 서울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설문조사를 했더니 절반가량이 도망가겠단다. 누가 이 나라를 위해서 싸우겠는가, 누가 목숨을 바치겠는가? 김일성 종합대학생들도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대학만 졸업하면 공산당의 주요직책을 맡고 계급이 올라가는 김일성 종합대학 학생들과, 남한사회에서 지위가 보장되는 서울대학교 학생들과 어쩌면 엘리트 중심사회라는 면에서 그렇게 같은가? 남한이나 북한은 아직도 엘리트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모른다. 하기야 겨우 50년의 민주주의 역사를 가진 한국인들이 수백 년에 걸쳐 발전해온 서구식 민주주의를 이해한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리라.

   긴 역사를 가졌다고 민주주의가 저절로 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한국의 어느 국회의원은 미국의회에 가서 연설하기를 ‘미국은 역사가 짧은 나라다’라고 미국인들의 면전에다 대고 모욕을 했다. 나는 이 한국의 국회의원이 무사히 귀국한 사실이 놀랍다. 전체 역사를 보아도 미국의 역사는 영국과 유럽 역사의 연장이므로 한국의 역사보다 짧지 않다. 하물며 미국의 민주주의 역사는 한국의 민주주의에 비하여 매우 길다. 1776년 미국의 독립선언을 미국 민주주의의 기점으로 본다하여도 - 미국의 역사는 영국역사의 연장이라고 보면 그 민주주의 역사는 더 길어진다 - 1945년 일본으로부터의 해방을 우리 민주주의의 기점으로 보아서 약 200년의 차이가 난다.

   이승만 정권은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하다가 6.25를 맞는다. 오래 동안 6.25 한국전쟁을 연구해오고 이 전쟁에 관한 한 권위자로 꼽히는 미국 시카고 대학의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 교수는 북진통일 정책이 6.25 한국전쟁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이승만 밑에는 일본제국주의자들에게 충성하던 한국인들이 군사적 능력도 없는 채 ‘북진통일’을 외쳤다. 군사력을 제대로 갖추고 남한의 사정을 꿰뚫어 보던 북쪽에서 보면 가관이었을 것이다. 더욱 가증스러운 것은 서울사수를 공언하던 이승만이 기차를 타고 남쪽으로 도망친 일이다. 그 다음에는 온갖 수단을 통한 부정선거에다 결국 이 나라에서 쫓겨나 하와이에서 맞은 비참한 죽음.

   이승만은 왜 일제의 앞잡이 노릇하던 한국인을 그대로 써먹었을까? 이승만은 독립운동을 하면서 자신이 조선왕조 이 씨 가문임을 내세워 한국의 왕자라고 주장하고 다닌 사람이다. 미국 명문대학의 박사출신인 이승만이 서구식 교육이 부족한 한국백성을 어떻게 보았겠는가? 차라리 먹물 든 일제앞잡이 한국인이 더 나아 보였을 것이다. 결국 이승만도 민주주의자가 아닌 귀족주의자이자 권위주의자였다고 나는 판단한다.

계급이, 그리하여 권위가 지배하는 사회란 위기가 터질 때까지 태평스러워 보이는 사회이다. 그러나 계급사회나 권위주의적 사회는 겉모습과는 달리, 그 기저에는 불만과, 체념, 부정과 부패가 만연한다. 그리하여 백성들은 서로 잡아먹기를 계속하면서, 신분상승을 목적으로 산다. 이런 국민적 타락이 생기는 원인을 19세기 프랑스 사회학자 알렉시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람은 권력의 행사나 순종하는 버릇에 의하여 타락하지 않고 자기들이 믿기에 불법인 권력의 행사와, 찬탈 당하고 억압적이라고 여기는 지배에 복종하면서 타락한다.’

   현대 한국사회의 무수한 무질서가 어디에서 왔겠는가? 한국사회의 무질서와 부패와 타락은 이조시대 이후 계속된 정치가들의 부도덕 때문이다. 국민들은 정치가들이나 소위 사회지도층(?)의 사악한 행위에 절망하고 같이 타락하는 것이다. 소위 정치가라는 자들이 집단을 만들어 싸움질이나 일삼고, 비이성적인 행태로 자기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우리 사회에서 학생들과 국민이 보고 배우는 것이 포악한 왕따 만들기와 패싸움과, 무자비한 폭력 밖에 무엇이 있겠는가? 지도자들이 먼저 잘못을 저질러 놓고 법이라는 무기로 백성을 잡아들이던 우리 사회에서. 국민들은 외국이민을 꿈꾸고, 세금을 내려 하지 않는다. 전쟁이 나면 도망하려는 생각뿐이고, 공중도덕 같은 것은 내팽개치고, 우리 가족만 안전하다면 사회야 어찌 되던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어차피 도둑들이 다 해먹는 세상인데? 도덕적 틀이 무너진 사회는 결국 내부혁명이나 타민족의 침략으로 망하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이렇게 민주적 전통, 즉 도덕적(합법적) 틀이 없는 사회를 토크빌은 경고하고 있다:

 

유럽에는 원주민이 자기가 살고 있는 장소의 운명에는 무관심한 채 자신을 일종의 정착민으로 여기는 나라가 있다. 그곳에서는 커다란 변화가 그의 동의 없이 일어나고 (우연히 그가 그 사건을 알지 못하면) 자신도 모르게 일어난다; 아니, 더구나, 자기 마을의 상황이나, 거리의 경찰, 교회와 교구의 수리는 그와 관계가 없다; 그 까닭은 그가 이 모든 것을 자기와 무관하다고 간주하고 정부라고 부르는 강력한 낯선 사람의 재산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는 소유정신이나 개선하려는 생각 없이 다만 이 재산들에게 생명을 유지하는 이익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일에 대한 관심부족은 몹시 지나쳐서 자신이나 자식의 안전이 마침내 위험에 처하면, 그 위험을 피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그는 팔짱을 끼고 모든 국민이 도와주러 올 때까지 기다린다. 자기 자신의 의지를 완전히 버린 이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더 복종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는 실제로 가장 낮은 관리에게 움츠려 들지만 법의 보다 강한 힘이 물러가자마자 정복당한 사람의 정신으로 법에 대든다; 그는 끊임없이 굴종과 방종 사이에서 오락가락 한다, 한 민족이 이 지경에 이르면, 관습과 법을 바꾸든지, 아니면 멸망해야 한다; 그 까닭은 공중도덕의 뿌리가 메말라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민족에는 백성이 있지만, 시민은 없다. 그러한 사회는 외부침략에 자연스런 먹이가 된다; 그리고 그들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들이 자기보다 열등하거나 자기와 유사한 국가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애국에 대한 불투명한 본능을 여전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 나라 이름에 타의에 의한 자존심이나, 자기 나라의 지나간 명성에 대한 희미한 기억이 그들에게 자기보존의 충동을 주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위에 인용한 토크빌의 묘사는 독재가 기승을 부리던 한국사회를 매우 정확하게 그리고 있다. 양반에게, 일본인 밑에서 순사 노릇하던 동족에게 굽실거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가족들이나 못살게 굴던 이조와 일제 강점기의 한국인들, 경찰에게 절절 매고, 동사무소 직원에게도 급행료를 주어야 하던 군사독재 시절의 한국인들, 심지어 은행에 저금하러 가도 은행원이 상전노릇 하던 시대. 이 땅의 주인은 일본인들이요, 이승만과 그 밑에서 아부하는 일제앞잡이들이요, 군사독재자들이었다. 국민들이 애국심을 갖겠는가? 사람들은 마구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리고 공공시설은 어느새 파괴되어 있다. 공무원이 누가 내는 세금으로 살아가는가, 정치가들이 누구 돈으로 호의호식하는가? 이 토크빌의 묘사를 공산당이 지배하는 북한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5. 계급사회의 몰락

   산업혁명 이후 세계에는 계급주의적인 봉건사회는 몰락하고 민주시민사회가 꾸준히 탄생한다. 대량생산을 가져온 산업혁명은 대량운송, 대량소비와 함께 민주주의 이념이 전 세계로 퍼져가는 시대를 낳았다. 그러므로 인간이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자유와 민주주의 사상은 유럽과 미국 방방곡곡으로 전파되었다. 이 수구와 혁신의 와중에서 여러 국가나 민족들은 기존도덕과 가치관이 무너지는 혼란을 겪는다.

혁명과 반혁명이 세계도처에서 발생했다. 그래서 프랑스나 한국에서와 같이 기존체제를 강제로 지키고자 몸부림치던 계급주의 세력은 혁명인 민중봉기나 외세의 침략에 몰락하고 만다. 이러한 역사의 흐름에서 우리는 체제고수라는 비타협적 성향이 혁명이나 외국의 침략이라는 비극을 낳으며, 내부혁명 자체도 기존 도덕이나 가치를 송두리째 뒤집는 폭력성을 낳는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도덕적 규칙이 무너진 사회를 이렇게 설명된다: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전통 중에는 소위 사회의 ‘도덕적 규칙 (제도적 ‘법 원칙’과 일치하는)’이 있다. 이것은 사회의 전통적 정의감이나, 그 정의감이 도달한 도덕성의 정도를 포함한다. 이 도덕적 규칙이, 필요한 곳에서는 갈등을 일으키는 이익 사이에서 공정한 합의를 가능케 하는 도덕적 규칙으로 작용한다. 물론 이 도덕적 규칙은 바뀔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비교적 서서히 바뀐다. 나치주의에 의하여 의식적으로 겨냥되었듯이 전통적 규칙의 파괴보다 더 위험한 것은 없다. 결국은 전통적 규칙의 파괴는 냉소주의와 허무주의, 즉 모든 인간 가치의 무시와 해체를 불러온다.

 

   유교사회인 한국의 전통사회는 계급사회였지만 일제침략과 6.25로 급격히 몰락한다. 그러는 동안에 냉소주의와 허무주의가 팽배한다. 이러한 냉소주의와 허무주의는 남, 북을 가리지 않는다. 동학운동은 결국 무자비한 동학혁명으로 치달아, 우금치 전투에서 동학군이 일본군에게 대패한 후 일본이 한반도를 강점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된다. 박경리 씨는 토지에서 이 동학혁명의 일면을 이렇게 묘사한다: ‘이동진은 하동 강가, 송림에서 동학군에 의하여 양반 서리들의 목이 추풍낙엽같이 떨어지고 피가 강을 이루었을 때도 동학을 나쁘다 하지 아니했다. 상현은 부친만큼 역사를 보는 눈이 없었다.’

   한일합방이 되자 노비문서를 불사르고 노비를 스스로 속량한 후 만주로 독립운동을 하러 떠나는 청백리 집안의 이동진. 그는 ‘동학군에 의하여 양반 서리들의 목이 추풍낙엽같이 떨어지고 피가 강을 이루었을 때’ 과연 ‘나쁘다 하지 아니했다’가 올바른 판단일까? 마치 인민재판식의 처형과 피의 보복이 대량으로 시행되었는데, 정당한 행위였을까?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을 생각나게 하는 대목이다. 양반이라면, 서리라면 무조건 죽임을 당하는 비이성적 폭력 행위가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용인된다면, 역사에는 단절 밖에 없다. 동학운동이 내세운 이념을 나는 동조하고 기리지만, 피로 얼룩진 동학혁명은 청일전쟁으로 이어지고 일본이 한국을 통째로 삼키는 반동적 폭력을 불러온다. 역사를 보는 눈은 지배자의 억압에 대한 피지배자의 보복적 혁명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동학군에 의한 양반과 서리의 무차별적인 학살이 당연한 역사라면 이조 오백 년의 선비사회를 극찬하는 박경리 씨는 자가당착에 빠진다.

   혁명은 폭력을 낳으며, 폭력은 허무주의를 낳는다. 일제 강점기로부터 시작되는 우리 문학의 허무주의, 따라서 말초적 쾌락주의까지 가는 타락의 극치를 나는 본다. 6.25 한국전쟁 이후 우리 사회를 보라. 재벌이라는 자들은 국민에게 싸구려 물건을 만들어 돈을 번다. 정치가들에게 돈을 주고 재벌은 이권을 따낸다. 뇌물 바치고 만든 물건이 제대로 만들어지겠는가? 그 이권으로 딴 공사가 제대로 시행되겠는가? 철근 빼먹고, 콘크리트 눈가림으로 치고, 만든 물건은 쉬 부서지고. 아파트 무너지고, 다리도 무너지고, 국민들은 다치고 죽고.

   젊은이들은 재벌기업의 배지를 자랑스레 달고 다니고 처녀들은 남편감이 어느 회사에 다니며, 판검사나 의사는 아닌지를 묻는다. 그런 재벌의 총수가 이 나라에서 대통령 후보까지 되었다. 이제는 나라를 다스리겠다는 뜻이다. 이 사람은 자기 회사 노동자들이 한국 역사상 최초로 합법적 파업을 결의하자 일본의 야쿠자를 동원하여 ‘진압’하려 했던 사람이다. ‘모든 인간 가치의 무시와 해체’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 결과가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 금융을 받는 국가 부도사태이다. 도덕경(道德經)과 장자(莊子), 영국의 정치가 찰스 제임스 폭스(Charles James Fox)는 그런 사회를 이렇게 묘사한다:

 

백성이 굶주리는 이유는 상층부가 너무 많이 세금을 받아먹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성들이 굶주린다. 백성이 다스려지기 어려운 이유는 상층부가 무슨 짓인가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성은 다스려지기가 어렵다. 백성이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이유는 상층부가 자기 생활을 너무 사치스럽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볍게 여긴다.

궁정은 깨끗하게 잡초가 뽑혔지만 밭에는 잡초가 무성하고 차고는 텅 비어있다. 화려한 색깔의 옷을 입고, 날카로운 칼을 차고, 음식을 싫어하고, 재화가 남아도니, 그것이 도적이 아닌가?

수치를 모르는 자가 부유하고 말 많은 자가 인기 있다. 그러므로 위대한 명성과 거대한 재산은 수다와 몰염치에 있다.

독재체제의 가장 더러운 종류는 무엇인가? 몇 명의 자신들은 자유로운 채, 수 백 만의 자기 동료인간들에게 가장 추하고 역겨운 독재를 행하는 것; 무죄가 압제의 희생이 되는 것; 근면이 강도질 때문에 고생하는 것; 순수한 노동자가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독재적 파괴의 사치와 강탈을 위하여 땀을 흐리는 것.

 

   이것이 우리가 지나왔던 독재사회이자 계급사회가 아닌가? 계급사회의 전형인 스파르타를 버트란드 러셀은 이렇게 설명한다: ‘전쟁은 덮어두고, 스파르타의 현실은 이론과 똑 같았던 적은 없다. 스파르타가 번성할 때 살았던 헤로도투스는 스파르타 인들은 뇌물을 거절하지 않았다고 놀라운 비평을 한다. 이것은 재산을 경멸하고 단순한 삶을 사랑하는 것이 스파르타 교육에서 심어진 중요한 것의 하나였음에 반대가 된다. 스파르타의 여자들은 정숙했다고 우리는 듣지만, 왕위 계승자가 어머니 남편의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배제되는 일이 여러 번 발생했다. 스파르타 인들은 굽힐 줄 모르게 애국적이었다고 우리는 듣지만 플라태아 전투의 승자인 파우사니아스 왕은 페르샤의 왕 케르케스의 돈을 받고 배신자로 끝났다. 그런 불쾌한 일들을 제쳐 두고도, 스파르타의 정책은 항상 사소하고 촌스러웠다. 아테네가 소아시아의 그리스인들과 인근 섬들을 페르시아 인들로부터 해방시켰을 때 스파르타는 무관심했다; 펠로폰네소스 반도가 안정하다고 생각되면 다른 그리스인들의 운명에는 무관심했다. 그리스 세계를 연합하려는 시도는 스파르타의 특수주의에 의하여 무산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스파르타가 무너진 뒤까지 살았는데, 스파르타의 헌법에 대하여 매우 적대적으로 설명한다. 그가 말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너무나 달라서 그가 같은 곳을 말하는지 믿기 어렵다, 예를 들면, “입법가는 전체 국가를 강하고 절제심이 있도록 만들기를 원해서 남자의 경우에는 자기 의도를 수행했지만 여자들은 무시해서 여자들이 모든 종류의 무절제와 사치 속에서 살았다. 결과는, 그런 국가에서, 대부분의 호전적인 종족이 지닌 방식을 닮아서, 특히 시민이 자기 아내의 지배를 받게 되면 재산이 너무 높게 평가받는다. 심지어 일상생활에는 쓸모가 없고 단지 전쟁에서만 필요한 용기에 대해서도 스파르타 여자들의 영향은 해를 끼쳤다. 스파르타 여인들의 방종은 태초부터 존재해서 예상되던 것이었을 뿐이다. 그 까닭은, 전통이 전하는 바, 리쿠루구스가 여자들을 법으로 다스리려 하자 여자들이 반발하여 그는 포기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계속해서 스파르타 인들의 탐욕을 비난하는데 그 탐욕을 재산의 불평등 분배 때문이라고 여긴다. 땅을 팔 수는 없었지만 주거나 상속될 수는 있었다고 그는 말한다. 모든 땅의 5분의 2가 여자들 소유였다고 그는 추가로 설명한다. 결과는 시민의 수가 크게 줄어든 것이었다: 한 때는 만 명이었는데 테베 인들에 의하여 패망할 때는 천 명 이하였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스파르타 헌법의 모든 면을 비난한다. 그는 집정관들이 자주 매우 가난하여 뇌물로 매수하기가 쉬웠고; 그들의 권력은 너무 커서 심지어 왕들도 어쩔 수 없이 그들에게 아첨을 하여 헌법이 민주주의로 바뀌었다고 그는 말한다. 보통 시민들과 관련된 엄격함은 너무 가혹해서 시민들이 비밀스런 불법적 감각적 쾌락에 몰두한 반면, 집정관들은 너무 많이 방종하고 헌법에 위배되는 방식으로 산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스파르타가 부패했을 때 글을 썼지만, 몇 가지 점에서 그는 자기가 언급하는 사악함은 초기부터 존재했다고 분명히 말한다. 그의 어조는 매우 냉정하고 현실적이어서 그를 믿지 않기가 어렵다, 그리고 그것은 법에서 지나친 엄격함의 결과에 대한 모든 현대적 경험과 일치한다. 그러나 사람의 상상 속에서 패망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설명하는 스파르타가 아니다; 그것은 플루타크가 쓴 신비로운 스파르타였으며, 플라톤의 국가에서 나오는 철학적으로 이상화된 스파르타였다. 여러 세기를 지나오면서, 젊은이들은 이 작품들을 읽었고, 리쿠르그스같은 사람들이나 철학자 왕이 되려는 욕망을 불탔다. 이상주의와 권력 사랑이라는 결과적인 결합은 사람들을 반복하여 타락시켰고 현대에도 여전히 그렇게 하고 있다.’

   계급이 지배하는 사회란 한마디로 비판이 없는 사회다. 반항하는 자는 추방되거나 살해된다. 이조시대의 혹독한 계급구조에 반기를 들었던 대표적인 사람이 허균이다. 허균도 그랬지만 동학혁명의 전봉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민란이 근본적으로 계급구조에 대한 저항이었고 그 결과는 외세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내부민중의 요구를 압살하는 지배층의 승리로 끝났고, 허균과 전봉준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갔다. 그러나 인간의 정당한 요구를 거부하는 지배층도 사라진다. 소크라테스는 살인자인 권력자들에게 경고한다: ‘그리고 나는 나를 죽이는 당신들에게 예언한다, 내가 떠난 다음에 곧 당신들이 나에게 가한 처벌보다 훨씬 더 무거운 벌이 당신들을 기다린다는 것을... 당신들이 사람을 죽여서 당신들의 사악한 삶을 비난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당신들은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명예롭지도 않은 도피방식이다; 가장 빠르고 고귀한 방식은 다른 사람을 없애는 것이 아니고 당신들 자신을 고치는 것이다.’

   인간에게 지옥이란 실제로 죽은 후에 염라대왕에게 심판 받고 가는 곳이 아니다. 아니, 아직 죽음의 세계에서 돌아와 증언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적어도 우리는 내세(來世)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 그리고 영혼의 세계란 야만적 시대에 원시인들이 꿈을 꾸면서 만난 세상이라고 니체는 설명한다. 그러나 실제 세상에도 상상 속의 지옥은 있다. 한 인간이 일생을 마무리하는 자리인 임종(臨終)에서 지나온 자기의 생애를 돌아보면서 자기가 저지른 악행이 자손에게 오래 동안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는 것이 지옥이다. 혼자만 영원히 살 것같이 이기심과 오만으로 점철된 인생은 자손들이 본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 세상에서 자기의 죽음이 찾아왔을 때 생전에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대를 이어 계속되는 악업을 본다. 영혼의 세상과, 실제 세상의 지옥을 니체와 아테네의 철학자 헤라클리투스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야만적인 원시문화의 사람은 꿈속에서 두 번째 실제 세상을 알 수 있다고 믿었다: 이곳에 모든 형이상학의 근원이 있다. 꿈이 없었다면, 사람은 세상을 둘로 나누는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영혼과 몸의 분리도 또한, 삶의 추론이 영혼인 것과 같이, 꿈의 가장 오랜 생각과 연결되어 있어서, 영혼에 대한 모든 믿음의 근원과 아마도 신(神)에 대한 믿음의 근원 또한 생겨났다. ‘죽은 자들이 계속해서 산다, 그 까닭은 그들이 꿈속에서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것이 수천 년을 통하여 사람이 전에 내린 결론이었다.” ‘사람이 죽을 때는 그들이 기대하지도 상상하지도 못했던 것이 기다린다.’

   압박 받는 국민들은 자기 지배자에게 증오를 나타낸다. 마침내는 다른 민족이 침략해와서라고 가증스러운 지배자가 없어진다면 환영한다. 나는 박정희 시대의 숨 막히는 독재사회, 계급사회를 기억한다. 국민 대부분이 경제 발전이라는 달콤한 사탕에 아파트를 사고, 자가용 자동차를 사는 꿈에 젖어 인간의 존엄과 자유가 내팽개쳐지고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이들이 의문사로, 고문으로 죽어갈 때를 나는 기억한다. 미국의 법률가 패트릭 헨리는, ‘쇠사슬과 노예상태를 대가로 구매될 만큼 삶은 그리도 귀하고 평화는 그리도 달콤한가? 나는 다른 사람들이 무슨 길을 택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로서는, 자유를 달라, 아니면 나에게 죽음을 달라!’라고 외쳤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너무나 진부한 이야기이다. 우리에게 아파트와 자가용 자동차가 그렇게 귀한 삶이었는가? 수많은 달동네 주민들이 강제로 이주당하고, 공장에서는 어린 소년소녀들이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을 때 우리 대부분은 그들을 외면하지 않았던가? 빈곤의 문제를 연구하여 1998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하버드 대학 경제학 교수 아마티아 센(Amartya Sen)은, ‘굶주림은 정기적으로 선거가 있고 자유언론이 있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심지어 매우 가난한 민주국가에서도 발생한 적이 없다. 반대로 군사독재와 식민지 정권, 일당독재국가에서는 굶주림이 발생했다. 심지어 지금도, 우리가 굶주림으로 위협받고 있다고 알고 있는 두 개의 국가에는 - 수단과 북한 - 민주주의라는 보호우산이 없다’라고 주장한다.

   거슬러 올라가 소위 보릿고개라는 배고픈 비극이 일제 식민지하와, 이승만 독재체제 하에도 존재한 이유를 나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일부 국민이 굶주려도 국가가 번영할 수 있다면 좋다는 논리가 성립하는가, 국가란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시민 각자가 자신의 번영을 위한 권리와 선택의 자유를 가진다는 주장은 아담 스미스(Adam Smith)의 국부론을 기초로 근대국가의 이념이 되었지만, 아담 스미스의 진짜 의도는 윤리가 우선하는 도덕성이었다고 런던 경영대학원 교수였던 찰스 핸디(Charles Handy)는 지적한다.

   국가의 번영을 위하여 희생되어도 좋은 일부국민을 어떻게 선정하는가, 국민이 없는 국가가 어떻게 존재하는가, 그런 발상은 스탈린의 발상과 무엇이 다른가? 박정희 독재시절의 소위 ‘국민교육헌장’에 명시된 ‘우리는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고’라는 구절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인간을 존중하고’가 아니고 ‘능률과 실질을 숭상’한다? 이 문제를 찰스 핸디는 이렇게 설명한다:

 

혼란의 일부는 효율과 경제성장이 진보의 필수적 요소라고 확신하여 우리가 효율과 경제성장을 추구하는 데서 발생한다. 이 목표를 추구하면서 우리는 다른 것을 위하여 측정되도록 되어서는 안 되고, 모든 것의 척도가 되어야 하는 것은 개별 인간인 우리 남녀(男女)라는 것은 잊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 효율 속에서 우리 자신을 잃고, 효율 자체를 다른 목적에 대한 수단이 아니고 본질적인 목적으로 취급하기 쉽다... 우리는 아담 스미스의 개념을 우리 각자가 자신의 이익을 돌보면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 신비롭게 상황을 만들어 우리 모두에게 최고의 상황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뜻으로 잘못 해석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개인의 권리와 모든 사람을 위한 선택의 자유를 공포하였다. 그러나 자신을 스스로 억제하지 않으면, 이웃과 자손에 대한 배려가 없으면, 그런 자유도 방종과 이기심만 된다. 아담 스미스는 경제학 교수가 아니고 윤리철학 교수였는데, 자기 이론을 도덕적 사회에 기초를 두고 세웠다. 그는 국부론을 쓰기 전에 안정된 사회란 여러분의 동료 인간을 존중할 도덕적 의무인 “동정심”에 뿌리를 둔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결론적 작품인 도덕감에 대한 이론을 썼다.

다른 사람들이 포식할 때 어떤 사람들은 굶주려야 할 이유가 없다. 자유는 방종이나, 폭력, 심지어 전쟁을 뜻할 필요는 없다. 몇몇 사람들의 부유함은 반드시 다른 사람들의 빈곤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에게는 그 모순을 해결할 지식과 의지가 부족할 뿐이다.

 

   철학과 정치학, 그리고 경영학 교수로 활동했던 미국의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심지어 생산수단이 근로자의 소유라고 말하고 버트런드 러셀은 ‘복지란 수 십 만의 동등하게 지독한 희생을 당하고 가함으로써만 확보될 수 있다고 믿는 민족은 무엇이 민족적 복지인지에 대한 정신적 개념이 없는 민족이다’라고 주장한다. 나는 더 본질적으로 질문하겠다. 누가 누구를 교육한다는 말인가, 정치가가 국민들을 교육할 정도로 도덕성과 지식을 겸비하고 있는가? 정치가의 도덕성과 지식 문제는 나중에 상세히 다루겠다.

소위 ‘한강의 기적’은 노동자들이 생명을 단축해가며 만든 ‘잔혹’의 결과였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것이 아니다. 인간의 피와 땀으로 만든 것이다. ‘무엇이 민족적 복지인지에 대한 정신적 개념이 없는 민족’이 만든 그 ‘기적’이 오래갈 리가 없다. 그래서 아테네의 철학자 데모크리투스와 칼 포퍼 경은 자유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말한다: ‘가난한 민주주의는 귀족정치나 군주제와 함께 한다고 주장되는 번영보다 낫다, 자유가 노예상태보다 나은 것과 꼭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의 자유를 멸시해서도 안 되고 수프를 얻기 위하여 팔아서도 안 된다 (창세기 25장 34절); 가능한 가장 높은 생산성을 얻기 위해서도 안 된다, 심지어 자유를 희생하고 효율을 산다는 것이 가능할지라도 안 된다.’ ‘자유를 잃으면 자유가 없는 사람들 사이에는 심지어 평등도 없다.’

   인간의 진보는 물질적인 풍요로움에 달려있지 않다. 다시 말해서 물질적 풍요는 인간진보의 결과나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소크라테스는 일생동안 물질적인 풍요를 경계하라고 주장했다: ‘노소(老少)를 같은 방식으로, 그들의 몸과 재산을 그들의 가장 중요한 것과 그들을 사로잡는 근심으로 만들지 말라고, 그러나 더 정확하게는 그것을 그들의 영혼을 완성하는데 주라고 설득하기 위하여 이곳저곳으로 다니는 것이 나의 한 가지 일입니다’

   자유와 민주주의가 무시된 채 물질적인 풍요를 추구하다가 지구상에서 멸망해버린 국가는 많다. 성경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가 그런 도시이며, 지중해 해상무역의 중심지였던 카르타고는 결국 로마의 공격으로 멸망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진보는 정치적인 자유인 민주주의에 달려있다고 우리는 말할 수 있다: ‘결국 진보는 주로 정치적인 요인에 달려 있다; 사고의 자유를 보호하는 정치제도인 민주주의에 달려 있다’

   한국에서 독재체제 하의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니었다. 그 평화는 썩어가는 고인 물과 같은 사회의 긴장과 체념이었다. 토크빌의 설명을 빌면 이렇다: ‘사회가 조용하면, 그것은 그 사회가 자기의 힘과 행복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고 그 사회의 약점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 사회의 약점 하나가 그 사회의 생명을 앗아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악(惡)을 느끼지만 누구에게도 치료법을 찾을 용기나 힘이 없다. 현재의 욕망과, 불만, 슬픔, 기쁨이 가시적이고 영구적인 것이 이르지 못한다, 무기력으로 끝나는 늙은이의 열정처럼.’

   그 때 적지 않은 사람들이 누구라도 좋으니 이 독재를 끝내 주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마치 군인들의 유혈진압에 광주시민들이 미국의 힘을 기대했듯이. 이 비판 없는 계급사회는 자생력을 잃고 토크빌과 찰스 핸디의 주장대로 외부민족의 침략으로 망하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분명한 것은 불의하다고 파악되는 사회는 시민들로부터 정성이나 헌신을 얻지 못한다. 그런 사회는 결국 자신을 파괴할 운명을 지닌다.’ 로마나 아즈텍, 마야문명의 멸망도 이 계급구조가 큰 역할, 아니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이조의 멸망도 이 경직된 유교주의 이념에 따른 계급사회의 당연한 결과였다. 결국 일본 제국주의도 숨통을 조이는 계급사회였지만, 나는 많은 한국인들이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동조하여 이조의 멸망을 도왔다고 생각한다.

 

6. 민족주의라는 망상

   집단적 우월의식인 민족주의나, 개인적 우월의식은 이성을 마비시키는 감정주의에서 나온다. 이성이 마비된다면 우리는 진실에 가까이 갈 수 없고, 환상과 거짓에서 헤매게 된다. 이러한 상태는 일종의 정신병으로 보아야 한다. 인간은 어린 시절을 통하여 아무리 집단적 정서에 얽매인다 하여도 결국 진리를 추구한다. 어쩔 수 없는 환경 때문에, 또 생존하여 번식한다는 인간의 동물적 본능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젊은 시절을 일상생활에 매달리지만 자식들이 성장한 후의 여생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수수께끼를 알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야 하는 답답한 심정에 사로잡힌다.

   인간의 동물적 본능을 다루는 형이하학(形而下學)이 더 이상 기능하지 않는 세월이 오면, 인간에게는 정신과 지식의 세계를 다루는 형이상학(形而上學)만이 남아있다. 아니, 인간은 처음부터 머리를 쓰며 살도록 진화된 동물이다. 사람 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뼈와 털로 감싸고 있고 그렇게 뼈와 털로 감싸진 부분은 머리 밖에 없다. 그러므로 니체는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진리라고 주장하며, 쇼펜하우어는 ‘세상이 멸망하더라도 진실이 번창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우리의 질문에서 휴식, 평화와 쾌락을 구하는가? 아니다, 진리 만이다 - 그것이 가장 불쾌하고 추하다 할지라도.

필랄레테스: 나는 당신의 결론을 부정한다! 다른 사람들이 단순한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내가 거짓말들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 내가 중시하는 것은 진실이다, 그러므로 나는 진실에 반대되는 것을 존중할 수 없다. 재판관의 좌우명이: 세상이 멸망하더라도 정의가 행하여지도록 하라 인 것과 꼭 마찬가지로 나의 좌우명은: 세상이 멸망하더라도 진실이 번창하게 하라 이다. 모든 직업은 유사한 표현을 지녀야 한다.

 

   인간 사회는 늘 시끄럽다. 그 이유는 인간이 가진 가치관이 서로 충돌하기 때문이다. 그런 인간사회의 소란을 계급으로 통제하려하거나 독재로 재갈을 물리려 하는 일은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지배자들이 노려온 음험한 음모였다. 그 지배자가 왕이었건, 성직자였건, 군인이었건 지배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유를 외치는 시민들이다. 이 시끄러운 민주주의 사회를 플라톤은 ‘무질서’와 ‘혼란’의 사회로 규정하고 독재정치가 온다고 위협한다. 시끄러울 수밖에 없는, 그래서 시끄러움이 당연한 사회는 이렇게 설명된다:

 

갈등 없이는 인간적인 사회란 없다: 갈등 없는 사회는 친구들의 사회가 아니고 개미들의 사회일 것이다. 그런 사회가 이룩된다 할지라도, 그런 사회가 이룩됨으로써 파괴될 가장 중요한 인간의 가치들이 있다, 그리고 그 인간의 가치들은 그러므로 우리로 하여금 그런 사회를 만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분명히 갈등의 감소를 이룩하여야 한다. 그래서 이미 우리는 여기에 가치나 원칙의 충돌의 본보기를 가지고 있다. 이 본보기들은 가치나 원칙의 충돌이 열린사회를 위하여 귀중하고 정말로 필수적이라는 것을 또한 보여 준다.

사회가 평화로울수록, 시민들은 그만큼 더 겁이 많게 된다; 시민들이 상존하는 고통에 익숙하지 못할수록, 세속적 처벌은 억지책으로 그만큼 더 충분하게 되고 종교적인 위협은 그만큼 더 빠르게 필요 없게 된다...고도로 개화된 민족에게는, 마침내, 심지어 처벌도 매우 불필요한 억지책이 된다; 수치에 대한 두려움, 허영에 몸이 떨리는 현상이 계속적으로 매우 효과가 있어서 부도덕한 행위는 저질러지지 않는다. 세련된 도덕은 세련된 두려움과 함께 증가한다.

 

   계급사회란 실제로 노예사회를 말한다. 실제로 뇌물로 기업을 꾸려가던 어느 기업인은 국회청문회에서 자기 회사원들을 ‘머슴’이라고 불렀다. 이 기업인은 정치인들에게 뇌물을 살포하고 국민이 저금한 돈을 빌려 사업을 벌이는 ‘도적’이었다. 도적이 양심을 가지고 살아가려는 회사원들을 ‘머슴’으로 부려먹는 사회! 성급한 젊은이들이 좌경화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인지도 모르겠다.

   국회의 특정 위원회에는 시민단체들이 방청을 할 수 없다. 교사들은 위엄을 드높이고 학생들에게 명령으로 일관한다. 가정에서 가장(家長)은 절대적인 권한을 갖는다. 재벌은 자기 아들이 능력이 있든 없든 재산을 대물림한다. 독일의 문호 괴테(Goethe)는 이 대물림을 경고하여 ‘만약 당신이 그것을 소유할 의도이면 당신은 먼저 당신의 선조로부터 당신이 물려받은 것을 스스로 얻어야 한다.’라고 주장하지만 한국사회에서는 이런 괴테의 기본적 요구가 이루지지 않는다. 남자는 여자보다 우선하며, 성희롱도 그럴 수 있다는 식으로 넘어간다. 나이 많은 사람은 어린 사람보다 무조건 존경받아야 한다. 무엇인가 서열을 정하지 않고는 안심되지 않는 것이 계급사회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천성적으로 자유를 추구하고 비판적인 인간의 정신이 제대로 발달할 수 없다. 범죄와 사기행위가 만연한다. 앞에서는 칭찬하고 뒤에서는 욕하는 이중인격으로 사람들은 살아간다. 사회가 죽어 가는 것이다. 정당하고 자유로운 경쟁이 없는 사회는 이렇게 묘사된다: ‘우리 자신의 단기적 이익을 추구하고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손에 넣으려는 욕망은 증오를 계속 낳고, 협력과 동반자 관계를 파괴하며, 진보를 좌절시키고, 변호사를 기르고 관료 체제의 강화를 낳는다.’

   전형적인 계급사회인 이조는 임진왜란과 청나라의 침략으로 두 번이나 나라를 빼앗긴 뒤 결국 일본 제국주의의 먹이가 된다. 안중근이 이토오 히로부미를 살해한 뒤 일본 재판정에서 끝까지 주장한 것은 ‘나는 한국 군인이다’라는 것이었다. 이 안중근의 주장을 우리는 잘 이해해야 한다. 안중근이 주장하는 군인이라는 의미는 자기는 개인적 원한에 의하여 사람을 암살하는 살인범이 아니고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적을 물리치는 군인의 사명으로 이토오를 쏘았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자기는 일본군에 잡혔으니 전쟁포로라는 주장이다. 전쟁포로는 제네바 협정에 의하여 석방된다. 더구나 안중근은 가톨릭 신자였으며 한국 가톨릭은 안중근의 행위를 의로운 일로 추인한다.

   반면 안중근의 거사가 있자 국내의 유림들은 일본에 진사사절단을 보낸다며 야단법석을 떤다. 진사사절단이 무엇인가? 사과를 하러 가는 한국인 대표단이다. 안중근의 행위가 잘못되었다고 사죄하러 일본에 가는 한국의 지식인들. 이 사절단의 의미는 우리를 매우 당혹스럽게 하며, 자칫하면 일본의 지배를 정당화시키는 구실이 된다. 이러한 한국인의 이중성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될까?

   일본은 천황을 위주로 엘리트집단이 통치하던 계급사회였다. 조선도 아직 이조의 양반문화를 그리는 유림이 지배하는 계급사회였다. 계급사회를 지배하는 엘리트는 고대 아테네에서처럼 다른 나라의 엘리트와 쉽게 동맹을 맺어 민주주의를 외치는 백성들을 압살한다. 그러니 일본의 엘리트와 조선의 엘리트는 일본의 엘리트 이토오를 죽인 평범한 군인 안중근을 용서할 리가 없다. 기미독립선언을 한 33인의 소위 ‘민족 대표들’은 독립 선언이 끝난 후 태화관이라는 음식점에 모여 일본 경찰이 체포하러오기를 기다린다. 이들 또한 조선의 엘리트로, 일본의 엘리트와 쉽게 결탁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들 중 여럿은 나중에 친일파로 변신한다. 박경리 씨가 쓴 토지에서 민족의 독립을 위하여 싸우는 관수는 조선의 엘리트인 양반을 이렇게 성토한다: ‘정사를 틀어쥐고 있는 양반놈들. 그눔의 자석들은 세상이 바뀌는 것보담 남의 나라 종놈 되는 편을 원했으니께. 그러니께 송두리째 넘어갔지. 땅도 넘어가고 백성도 넘어가고’ 이 말은 고대 아테네에서 민주주의 혁명이 일어났을 때 독재국가 스파르타에서 비밀리에 원조를 받아 자국 아테네의 민주세력을 압살했던 아테네의 귀족들의 행태와 다르지 않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났을 때 유럽의 전제군주들을 찾아다니며 구원을 요청했던 프랑스귀족들의 행태와 같다. 아직도 한국인들은 엘리트를 믿는가?

   이조 말에 일어났던 동학혁명도 엘리트통치에 저항했던 백성들의 피로 얼룩진 민주혁명이었다. 또한 인류의 역사상 가장 잔혹했던 전쟁으로 꼽히는 6.25 한국전쟁도 계급사회가 그대로 남아있던 남쪽과, 공산주의자들, 그리고 자유와 민주주의의 의미를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국민들이 뒤엉켜 일어난 자유와 압박의 대결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비참했다고 나는 상상한다.

 

7. 지도자라는 허상

   아직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계급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자신의 지위상승을 위하여 온갖 일을 모두하고 지도자를 우러러본다. 많은 매체에 쓰인 글을 보면 결론은 ‘최고지도자의 결단이 있어야’ 어떤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이다. 그리고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은 대개 한국의 소위 지식층이다. 지도자가 무엇인가? 우리 역사에서 지도자나 지배자, 또는 통치자는 어떤 인물이었던가? 우리 역사상 가장 뛰어난 인물들인 죽인 자들이, 그리고 국민을 살해하고 도둑질을 밥 먹듯 하고, 쉽게 도망친 자들이 소위 지도자란 인간들이 아닌가?

   통치자를 이렇게 혹평을 받으며, 따라서 권력은 시민들이 끊임없이 경계해야 하는 ‘난폭한’ 힘이다:

나에게는 통치자란 도덕적으로나 지적(知的)으로 평균을 넘는 적이 드물며, 자주 평균 이하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나는 우리가 물론 동시에 가장 훌륭한 통치자를 얻으려고 노력해야 할지라도, 정치에서 가장 나쁜 통치자에게 가능한 한 잘 대비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정치적 노력 모두를 우리가 우수한, 또는 심지어 유능한 통치자를 얻는데 성공할 것이라는 약한 희망에 거는 것은 나에게 미친 짓으로 보인다.

권력이란 옳게는 거대한 강에 비교되어질 것이다; 그 한계 안에 가두어져 있는 동안, 권력은 아름답고 유용하다, 그러나 그 강둑을 넘치면, 권력은 마구잡이 어서 막을 수가 없다; 권력은 자기 앞에 있는 모든 것을 짓누르고 권력이 오는 곳마다 파괴와 황폐를 가져온다. 그리하여, 이것이 권력의 속성이라면, 우리는 적어도 우리의 의무를 다하자, 그리고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현명한 사람들처럼 무법의 권력에 대항하는 유일한 방어벽인 자유를 지지하는 우리 최선의 심각한 사고를 사용하자, 그 사고는 모든 시대에서 생존했던 최고의 사람들의 피를 권력의 난폭한 욕망과 제한 없는 야망에 희생하였다. 우리는 권력에 있는 사람에게 모든 적당한 복종심을 표해야 하는 반면, 우리가 이해하기를 권력이 우리자신이나 우리의 동료 백성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곳에서 우리는 동시에 권력에 대하여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의무이자 모든 정직한 사람의 의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현명한 자가 통치해야 한다는 주장은 엉터리없는 플라톤의 주장이다. 우선 현명하다는 기준이 없다. 더욱이 가장 현명하다는 사람이 가장 흉악한 살인자나 도둑, 비겁자이었음을 역사는 보여 준다: ‘권력정치의 역사는 국제범죄와 대량학살의 역사일 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들을 반대하려는 얼마간의 노력을 포함하여). 이 역사가 학교에서 교육되고 가장 흉악한 범죄자 중 몇 명은 역사의 영웅으로 칭송된다.’ 그런 역사적 사실을 보면서도 현명한 자를 지도자로 추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가장 흉악한 인간을 지도자로 추대해야 한다는 주장과 비슷하다. 현명한 사람이 통치자, 즉 왕(王)이 되어야 한다는 플라톤의 주장을 러셀은 이렇게 반박한다: ‘현대적 개념으로 플라톤을 대하면 두 가지 일반적인 문제가 나타난다. 첫 번째 문제는: “지혜” 같은 것이 있는가? 두 번째는: 그런 것이 있다고 치고, 그 지혜에게 정치권력을 줄 헌법이 만들어질 수 있겠는가?... 사람은 적당한 훈련에 의하여 정치적 지혜를 받을 수 있다고 제시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의문이 떠오른다: 무엇이 적당한 훈련인가?’

   교육이나 훈련을 통하여 정치지도자가 탄생할 수 없다. 그러므로 정치를 연구하는 교육과정은 있어도, 정치지도자를 육성하는 교육과정은 독재체제 하에서나 존재한다. 그리고 그 독재체제 하에서 육성된 정치가는 세뇌를 통하여 로봇처럼 독재자의 하수인 노릇을 하기 마련이다. 그 전형이 플라톤이 주장하는 스파르타식 ‘집단수용소’이다. 그러한 교육 자체의 심각한 문제를 칼 포퍼는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너무나 사실적으로 플라톤이 우리의 중등학교와 대학의 발명자라고 일컬어진다. 나는 이 파멸적인 교육제도가 인류를 완전히 파멸시키지 않았다는 사실보다, 인류에 대한 낙관적인 견해를 위한 더 나은 주장을 알지 못하며, 진리와 정당함을 향한 인류가 지닌 파괴할 수 없는 사랑, 인류의 독창성과 단호함과 건강의 더 나은 증거를 알지 못한다. 그렇게 많은 인류지도자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올바르고, 지적(知的)이고 자신들의 임무에 헌신적인 많은 노소(老少)가 있다. ‘나는 때때로 어떻게 끼쳐진 해(害)가 더 분명히 감지되지 않는지 의아해 한다. 그리고 어떻게 젊은 남녀들이 그들의 성장을 비틀고 저해하려고 거의 의도적으로 행하여진 기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합리적이고 단정하게 성장할 수 있는지. 몇 명은 의심할 바 없이 상처를 입었고, 그 상처로부터 그들은 일생동안 고통을 당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더 나빠지지 않았고, 몇 명은 거의 더 나아졌다. 이유는 대부분의 경우에 젊은이들이 자기들이 받는 교육에 절대적으로 반항했고, 선생들이 무슨 짓을 하건 선생들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선생들이 하는 짓에 심각하게 주목하도록 만들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라고 새뮤얼 버틀러는 말한다.

 

   그리하여 버트런드 러셀은 결론을 내리며, 플라톤에 대하여 근본적인 비판을 한다: ‘ “현명한” 사람들의 집단을 발견하여 그들에게 정부를 맡기는 문제는 그러므로 풀리지 않는 문제이다. 그것이 민주주의에 대한 최종적 이유이다’ ‘플라톤은 부자유에 대한 제안을 그 제안들이 미래시대를 기만하는 방식으로, 감추는 재주를 소유하고 있었고, 미래시대는 국가라는 플라톤 작품에 무엇이 제안으로 포함되어 있는지 깨닫지도 못하고 그 작품을 찬양했다... 플라톤을 칭찬하는 것은 항상 옳았지만 플라톤을 이해하는 것은 항상 올바르지 못했다. 이것이 위대한 사람의 공통적인 운명이다. 나의 목표는 반대이다. 나는 그를 이해하기를 원하지만, 그를 전체주의를 옹호하는 동시대의 영국인이나 미국인처럼 존경하지 않는다.’

   현명한 사람이 통치해야 한다는 이 플라톤의 주장은 루소에게서 ‘다수의 의지에 의한 통치’로, 헤겔에게서는 ‘민족이나 국가의 통치’로, 그리고 마르크스에게서는 ‘프롤레타리아의 통치’로 변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원시사회의 통치자는 어떠했는지 살펴보자. 원시사회의 통치개념을 살펴보려면 지금도 지구상에 남아있는 부족집단의 통치자를 연구하면 된다. 이 문제를 연구한 미국의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Marvin Harris)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무리 당 50인이나 마을 당 150인으로는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을 친밀하게 알고 있어서, 상호 교환의 결속은 사람들을 단결시킬 수 있었다. 사람들은 받을 기대를 하며 주었고, 줄 기대를 하며 받았다. 동물 포획이나, 야생 음식물 채취, 기초적 농업 형태의 성공에서 우연함이 큰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어느 날 잡는 행운을 누린 사람은 다음 날 나누어 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피할 수 없는 곤경에 대비하는 최선책은 인심을 쓰는 것이었다. 인류학자 리처드 고울드(Richard Gould)에 의하여 표현되는 것처럼, “위험이 클수록 그 만큼 나눔의 정도도 크다”였다. 상호 교환은 작은 사회의 은행이었다.

로버트 덴턴(Robert Dentan)이 중부 말레이지아의 세마이(Semai) 족 가운데서 현지답사를 하면서 발견한 바처럼, 아무도 다른 사냥꾼에게 받은 고기에 대하여 감사하지 않는다. 밀림의 열기를 통과하여 돼지 몸통을 하루 종일 싸워서 힘들게 끌고 집으로 온 다음에, 사냥꾼은 사냥물이 동등한 부분으로 나누어지도록 하고 전체 무리에 준다. 덴턴은 받은 부분에 대하여 감사를 표하는 것은 얼마나 주고받을지를 계산하는 인색한 종류의 사람임을 보여 준다고 설명한다.

추장이 명령을 할 때는 불복종하는 사람을 처벌할 확실한 물리적이 수단이 없다. 그래서 추장이 “추장 직위”에 남고 싶으면 거의 명령을 하지 않는다...에스키모 가운데는 한 무리가 뛰어난 사냥꾼을 따르고 사냥 장소선택에 관하여 그의 의견을 존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다른 모든 문제에서는 “지도자의” 의견이 다른 사람의 의견만큼 중요성을 지니지 않는다. 유사하게, 쿵 족 가운데는, 각 무리는 인정된 "지도자들"을 가지고 있고 그들 대부분은 남성이다. 이 사람들은 다른 사람보다 분명히 말하고 조금 경청되지만 공식적인 권위가 없어서 명령할 수 없고 설득할 뿐이다. 리가 쿵 족에게 강력한 우두머리의 의미로서 “추장”이 있는지 묻자, 그들은 그에게 말했다, “물론, 우리에게는 추장이 있지! 실제로 우리는 모두 추장이지... 우리 각자는 자신에 대한 추장이다.”라고 그들은 리에게 말했다.

추장 자리는 실망스럽고 성가신 직업이 될 수 있다. 브라질의 킹구(Xingu) 국립공원의 메히나쿠(Mehinnacu) 족과 같은 브라질 인디언 무리 가운데서 추장은 하루 밤 동안 밖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열정적인 스카웃 대장을 생각나게 한다. 아침에 제일 먼저 일어나서, 추장은 마을 마당 가운데 서서 주민들에게 소리쳐서 동료들을 깨운다. 할 일이 있으면,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 추장이고 다른 사람보다 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추장이다. 그는 힘든 일뿐만 아니라 양보에서도 본보기가 된다. 낚시나 사냥 원정 다음에, 그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잡은 것을 내놓고; 다른 무리와의 교역에서, 그는 가장 좋은 품목을 자신이 가지지 않도록 조심한다.

덴턴의 설명에 따르면 추장은

강요가 아니라 화해로 평화를 유지한다. 그는 개인적으로 존경받아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그로부터 멀어지거나 그의 말을 듣지 않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언제나 훌륭한 추장은 문제에 대한 자기의 일반적 느낌을 판단하고, 그 느낌에 자기 판단을 두어서, 그는 여론을 형성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여론의 대변자이다.

 

   아프리카의 쿵 족을 연구한 리처드 리는 지도자를 견제하는 방식을 원주민의 설명으로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그렇지, 젊은이가 많은 동물을 잡으면 그는 자신을 두목이나 큰사람으로 여기게 되고 나머지 우리는 자기 하인이나 열등 인간으로 여기게 된다. 우리는 이것을 받아들일 수 없고, 우리는 뽐내는 사람을 거부하는데 그 이유는 언젠가는 그의 자존심이 누구를 살해하도록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그의 사냥물을 가치 없다고 말한다. 이 방법으로 우리는 그의 가슴을 식히고 그를 부드럽게 만든다.’

아프리카 쿵 족이 한 ‘그는 자신을 두목이나 큰사람으로 여기게 되고 나머지 우리는 자기 하인이나 열등 인간으로 여기게 된다. 우리는 이것을 받아들일 수 없고, 우리는 뽐내는 사람을 거부하는데 그 이유는 언젠가는 그의 자존심이 누구를 살해하도록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바로 아테네 민주주의의 기본이념이다. 어떤 인간도 다른 인간보다 우위에 있지 않다는 이념이 민주주의 핵심인 것이다. 나는 여기서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과연 한국국민들은 아프리카 쿵 족만큼 민주주의의 이념을 알고 있는가? 한국국민의 삶은 아프리카 쿵 족만큼 자유로운가? 라는 고민이다.

   아직도 링컨이 주장한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가 민주정부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많은 한국인들에게 나는 질문을 던진다. 100%에 가까운 국민의 찬성률을 자랑하는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인 공산주의 국가가 과연 민주정부인가? 또한, 여기에서 우리는 경직된 유교가 가져온 사회계급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알 수 있다. 인위적으로 사회계급을 설정함으로써 동양사회는 원시사회에도 존재하는 기본적인 평등권이 무시되는 계급사회가 된 것이다. 남녀를 가리고, 노소를 가리고, 통치자와 백성을 가리며, 품계를 정하는 동양사회가 어떤 사회인가? 우리는 지금 그 폐해에서 완전히 벗어났는가?

누가 통치해야 하는가? 라는 문제에 대한 적확한 답변은 이렇다:

 

나는 위에서 플라톤의 기만적인 질문 ‘누가 다스려야 하는가?’가 정치철학자들에 의하여 분명히 거부된 적이 없다는 불행한 사실을 언급했다. 루소는 똑같은 질문을 했지만 반대의 대답을 했다. ‘국민들의 의지가 다스릴 것이다 - 소수가 아니고 다수의 의지’; ‘국민’과 ‘국민의 의지’는 신화적 신격화를 불러오기 때문에 진실로 위험한 대답. 마르크스도 완전히 플라톤의 방식으로 묻는다: ‘누가 다스릴까, 자본주의자냐 프롤레타리아냐?’ 그리고 그는 또한 대답을 내놓는다: ‘다수; 소수가 아니고; 자본주의자가 아니고 프롤레타리아가 지배해야 한다.’ 루소나 마르크스와 반대로 우리는 투표나 선거의 다수결에서 피 흘림 없이 그리고 가능한 한 최소한의 자유제한으로 결정을 해내는 방법만을 본다. 물론, 다수는 자주 잘못된 결정에 도달해서, 우리는 소수가 다수결이 번복할 수 없는 권리와 자유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해야 한다. 내가 말한 것은 유행하는 용어인 ‘대중’, ‘엘리트’ 그리고 ‘대중의 봉기’가 플라톤주의와 마르크스주의에서 시작된다는 나의 제안을 뒷받침할 것이다. 루소와 마르크스가 플라톤의 대답을 단지 뒤바꾸기 만했듯이 몇몇 마르크스의 적(敵)들은 마르크스주의의 대답을 뒤바꾸었다: 그들은 ‘엘리트의 봉기’로써 ‘대중의 봉기’를 상쇄하기 원했고, 그리하여 플라톤의 대답과 지배하겠다는 엘리트의 주장으로 회귀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이 모든 접근방식은 잘못되었다. 하느님이여 우리를 마르크스주의를 바꾸기만 하는 반(反) 마르크스주의로부터 우리를 구하소서: 우리는 그것을 너무 잘 안다; 심지어 공산주의도 이태리와, 독일, 일본을 지배했고 제거하는데 세계대전이 필요했던 반(反) 마르크스주의 ‘엘리트’보다 더 나쁘지 않다. ‘그러나’, 교육받은 자들과 반쯤 교육받은 자들 또한 계속해서 묻는다, ‘내 투표가 전혀 교육받지 못한 거리 청소부의 투표보다 더 무게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 옳을 수 있는가? 교육받지 못한 무리들보다 더 멀리 보는, 그러므로 중요한 정치적 결정에 더 큰 영향을 미칠 교육적인 엘리트는 없는가?’ 대답은 교육받은 자와 반쯤 교육받은 자는 어떤 정도로든 보다 큰 영향을 미친다 이다. 그들은 책과 신문을 쓰며, 그들은 가르치고 강의하며, 그들은 토론에서 말하며 그들은 자기들 정당의 구성원으로 자기들의 영향이 느껴지도록 만들 수 있다. 이것으로써 나는 교육받은 자들의 보다 큰 영향을, ‘거리 청소부’와 비교하여 옳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현명하고 착한 자의 지배라는 플라톤의 개념은, 내가 믿는 바, 무조건적으로 거부되어야 한다. 결국 누가 지혜와 어리석음 사이에서 판단하는가? 가장 현명한 자와 가장 훌륭한 자가 십자가형을 받지 않았던가 - 그리고 정확히 현명하고 선하다고 인정받던 자들에 의해서가 아니던가? 우리는 우리의 정치 제도를 지혜와 선함, 진실함과 사심 없는 업적을 판단하는 임무로 짐을 지울 작정인가? 실제 정치의 문제로서 엘리트 문제는 절망적으로 해결 불가능하다: 실제로 엘리트와 이익집단은 구분될 수없다. 그러나 이 ‘대중’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대중과 엘리트에 대한 이 모든 어리석은 말에는 한 알갱이의 진실도 없다. 우리가 마주치는 - 그리고 괴롭힘을 당하는 - 그 대중이란 구체적인 사람들의 무리가 아니고, 가령, 자동차와 오토바이의 무리이다. 그러나 자동차 운전자도 오토바이 타는 사람도 대중의 구성원이 아니다; 반대로, 그는 우리가 말할 수 있는 바, 홀로 일하는, 다른 모든 사람에 대하여 생존을 위한 싸움에 다가가는 고쳐지지 않는 개인주의자이다.

 

   이 글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가 받았던 일본 제국주의의 성격을 알 수 있다. 과거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이태리, 일본을 지배하던 사회는 ‘공산주의보다 더 나쁜’ 엘리트주의인 것이다. 그리고 엘리트란 ‘이익집단과 구별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엘리트이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존재하는 비민주적인 집단이라는 의미이다. 엘리트가 이익집단이며 권력자에게는 순응하는 순응주의적 집단이라는 진단은 영국의 역사가 폴 죤슨(Paul Johnson)에 의하여서도 밝혀진다. 결국 세계대전이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서야 제거할 수 있었던 사악한 우월의식이 엘리트의식인 것이다. 장자(莊子)에서도 지식인은 도적(盜賊)으로 비유된다:

20세기에, 아이디어를 추구하여 실현하려는데 폭력을 쓰려는 욕망은 지식인의 원초적 죄악이 되었다. 예를 들어, 행동하는 잔인한 인간들과 그들을 길이 계승하는 스탈린, 모택동, 카스트로, 호치민을 지식인들이 반복적으로 찬양하는 표현을 생각해보라. 지식인들은 때때로 “필요한 살인”의 숫자인 살육의 수량을 부인한다; 그들은 거의 항상 필요하다면 사회주의적 유토피아가 폭력을 기초로 건설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수용해왔다. 지식인들은 나치의 유태인 학살에 이르는 사건의 모든 단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1970년 대 캄보디아에서 민족의 5 분의 1에서 3 분의 1이 굶주려 죽거나 살해당한 사건은 전적으로 한 무리의 지식인들이 저지른 짓이었는데, 그들은 내가 “사르트르의 자식들”이라고 부르는 대부분 장 폴 사르트르의 제자이고 숭배자들이었다.

지식인들을 경계하라. 그들은 정치권력으로부터 충분히 떨어져야 할뿐만 아니라, 그들이 집단적 충고를 내놓으려 할 때는 특별한 의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지식인들의 위원회, 회의, 연맹을 경계하라! 그 까닭은 지식인들이란 고도의 개인주의적이면서 비판적인 사람들이 아니고, 실제로 자기들이 구하고 귀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의 승인에 의하여 형성된 무리 내에서 극도의 순종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이 자주 비이성적이고, 잔인하고 비극적인 행동 과정을 만드는 문화적 분위기를 조성하도록 하기 때문에 그들을 단체로 위험하게 만든다. 항상 기억하라, 사람이 아이디어보다 먼저 와야지 아이디어가 사람보다 우선할 수 없다는 것을.

세간에서 이른바 지식인이란 큰 도적을 위하여 재화를 축적하는 자가 아닌가? 성스러운 자는 큰 도적을 위하여 그 재화를 지키는 자가 아닌가?

   고대의 왕으로부터 히틀러와, 무솔리니에 이르기까지 그 큰 도적을 위하여 재산을 축적하고, 그 재산을 지키고, 학살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이 소위 지식인이요, 지성인이라는 이야기이다. 소위 엘리트라는 자들의 반란은 고대 아테네에서 시작된다. 아테네에서 시민혁명의 물결이 일자 아테네의 귀족들은 독재국가 스파르타의 세력을 끌어들여 민주화운동을 압살한다. 그러나 아테네의 민주주의자들은 민주투쟁을 계속하여 8개월 만에 결국 스파르타도 아테네의 민주주의자들과 평화조약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혁명이 시작되자 유럽대륙의 왕족과 귀족들은 서로 동맹을 맺어 민주혁명의 열기를 막으려고 한다. 그러나 프랑스혁명은 성공하고 유럽의 왕족과 귀족들은 몰락의 길을 걷는다. 일본, 독일, 이태리가 맺은 파시스트 추축 동맹도 국가주의적이자 엘리트주의적 특성을 지니는데, 역시 시민들의 민주혁명을 억압하려는 목적이었지만 민주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의 저항에 와해된다.

   그러면 왜 엘리트주의자들의 지배는 세계대전을 불러오는가? 아테네에서처럼, 유럽대륙에서처럼, 일본-독일-이태리의 추축 동맹에서처럼, 엘리트주의자들은 세계 여러 곳을 뒤져서라도 같은 ‘귀족’의 힘을 빌려 민주주의를 압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 세계에 걸쳐 존재하는 귀족들이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고자 서로 협조하여 민주세력을 탄압하게 되므로, 민주주의자들이 귀족주의자들에게 대항하여 벌이는 전쟁은 세계대전이 되고 만다. 중세에서 근세에 이르기까지 유럽대륙의 귀족들이 프랑스어를 사용하고, 한국, 일본의 지식인들이 자국의 글자를 무시하고 한자(漢字)를 공식적인 글로 사용한 사실이 귀족들의 연대를 의미하지 않는가?

   그러면 공산주의자들에 대항하는 민주주의자들의 싸움은 왜 세계대전을 야기하지 않는가, 공산주의자들의 주장에는 온 세계의 프롤레타리아 지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첫째 이유는 칼 마르크스(Karl Marx)는 프롤레타리아가 지배하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예언하면서도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주장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자본주의 체제의 내부모순에 의하여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붕괴하여 공산주의가 도래하는 것은 ‘자연법칙’이기 때문에 ‘사회는 사회진보의 자연적인 단계를 뛰어넘을 수도 없고 펜을 움직여 그 단계를 세상으로부터 떨쳐낼 수도 없다’고 주장하면서 그러나 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진보의 ‘산고(産苦)를 줄여서 경감할 수 있다’고 마르크스는 주장한다. 또한 마르크스는 유산자들 역시 자본주의 체제에 얽매여 어쩔 수 없이 노동자들을 수탈한다고 - 이윤은 노동자들에게 배분하기 보다는 재투자를 통하여 기업의 경쟁력을 높여야 유산자들은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 믿었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에 의하여 혁명은 언명되지 않는다. 둘째로 일반 시민들에 지나지 않는 프롤레타리아들은 구태여 정치를 하겠다고 대들지 않는다. 부언하여, 억압받는 자들은 귀족정치를 뒤엎는 데는 찬성해도 그 자리를 차지하는 데는 머뭇거리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에서 도망친 선조를 왕으로 받아들이고, 서울 사수를 외치다 도망간 이승만을 다시 대통령으로 받아들이는 한국 백성이 그런 사례에 해당될 것이다. 이런 현상은 “압제 하에 있던 사람들도 ‘기존’ 체제가 무너지는데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투쟁을 계속했지만 전통과 신분, 높은 교육 그리고 타고난 권위감에 의지하는 귀족들에 대한 승리를 이용하는데 주저했다”로 표현될 것이다.

   이 인용문이 설명하는 바는, 억압받는 백성들은 귀족들을 물리친 뒤에도 필사적으로 권력을 잡으려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까닭은 권력의 부패와 승리에 집착하지 않는 성향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혁명이 성공한 후에, 백성들에게는 혁명의 혼란 속에서 빠져나와 본래의 생업으로 돌아가겠다는 정신이 되살아난다. 혁명의 목적은 압제자를 제거하는 것이지 혁명을 성취한 백성이 지배자가 되겠다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승만의 계속되는 독재에 국민들은 그를 결국 추방하며, 박정희는 죽음으로 최후를 맞는다. 독재자들이 제거되는 정치적 상황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흔히 들리는 소식이다. 그리고 그런 소식은 온 세계 시민들의 환영을 받는다. 그래서 칼 포퍼는 ‘나에게는 지배자란 도덕적으로나 지적(知的)으로 평균을 넘는 적이 드물며, 자주 평균 이하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말한다. 최고의 학벌과 많은 경력을 가진 지배자들이 어떻게 평균이하의 도덕적이나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을 수 있을까? 우선 도덕적 문제를 스콧 펙과 칸트, 니체의 생각으로 들어보자:

 

정치권력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의지대로 하도록, 공개적으로 또는 은밀하게, 위협하는 능력이다. 이 능력은 왕위나 대통령직이나, 아니면 돈에 존재한다. 이 능력은 그 직위를 차지하고 있거나 돈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정치권력은 선함이나 지혜와는 관계가 없다. 매우 어리석고 사악한 사람들이 지구상에서 왕으로 걸어 다녔다. 영혼의 힘은, 그러나, 완전히 개인의 내부에 존재하여서 다른 사람을 위협하는 능력과 관계가 없다. 커다란 영혼의 힘을 지닌 사람은 부유하거나 때때로 지도력이라는 정치적 지위를 지닐는지 모르지만 정치적 권위는 보잘것없고 부족하기 마련이다.

악한 사람들은, 자기들의 모습이 비추어지기 때문에 빛을 증오하고, 자기들의 타락을 드러내기 때문에 선함을 증오하고, 자기들의 태만을 폭로하기 때문에 사랑을 증오한다. 그들에게는 자의식에서 오는 고통을 피하기 위하여 빛과, 선함과, 사랑을 파괴하는 경향이 있다.

왕이 철학자가 되거나, 철학자가 왕이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또 권력을 가지게 되면, 어김없이 이성적이고 자유로운 판단이 흐트러지기 때문에, 그런 일이 발생하는 게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러나 왕이나 지배계층이 철학자들을 억압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발언할 수 있는 권리를 남겨 주어야 한다.

가능한 한 작은 국가. 정치적, 경제적 조직 모두는 가장 재능 있는 사람들이 맡을 가치가 없다; 그런 사람의 낭비는 정말로 최악보다 나쁘다. 그런 조직은 보다 열등한 머리들이 맡는 분야이고, 열등한 머리들이 아닌 사람들은 그런 일을 맡아서는 안 된다.... 도둑들에 대비하여 사회를 안전하게 만들고, 모든 직업과 활동을 위하여 안전하고 무한히 편안하게 사회를 만드는 것, 국가를 좋고 나쁜 의미에서 하느님으로 만드는 것 - 이것들은 천하고, 보잘것없고, 전혀 필수적인 목표가 아니어서, 사람이 최고의 가장 희귀한 목적을 위하여 유보해두어야 하는 최고의 수단과 도구를 가지고 살아가면서 싸워야 하는 것들이 아니다. 우리가 가진 시간이란, 아무리 절약에 대하여 이야기한다할지라도 과소비자이다: 우리의 시간은 매우 소중한 영혼을 낭비한다.

대체로, 과학적 방법은 적어도 연구의 어떤 다른 결과만큼 중요하다: 그 이유는 과학적 정신이 방법을 통찰하는데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방법들이 실종되면, 그렇다면 모든 과학의 결과는 미신과 터무니없는 소리의 새로워진 승리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영리한 사람들은 과학의 결과에 대하여 자기들이 원하는 만큼 배울는지도 모른다 - 그러나 그들의 대화에서, 특히 그들의 가설에서 그들은 과학적 정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사람은 늘 주목할 것이다; 그들은 긴 훈련을 통하여 모든 과학적인 사람들의 영혼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사고의 변화에 관한 본능적인 불신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어떤 문제에 관하여 조금이라도 어떤 가설을 발견하는데 만족한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그것 때문에 열정이 불타고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견해를 갖는다는 것이 그것에 대하여 열광하고 그 때부터 계속해서 자기들 가슴에 신념으로 그것을 누르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것이 설명되지 않으면, 그들은 자기들의 머리에 들어와서 설명처럼 보이는 최초의 개념에 관하여 열광한다 - 그것은 전향적으로, 특히 정치의 분야에서 가장 나쁜 결과가 된다. 그 이유 때문에 모든 사람은 적어도 한 과학을 바닥에서 위로 지금 공부하여야 한다: 그러면 그는 방법이 무엇을 의미하고 최고도의 신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도자의 지적 능력은 특정 분야에서 전문가들의 전문적 지식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지도자들은 전문가의 지식을 ‘재빠르게 파악하여 자신의 목적에 이용하는 기회’를 놓치지 않을 따름이다. 이런 정치가들의 놀음에 반대하는 전 세계적인 비정부조직(NGO)의 운동이 거세다. 외국에서 악성질병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 패망 베트남의 지도자들, 아프리카의 독재자들, 한국의 독재자들을 어찌 지적으로 일반백성보다 더 나은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모든 권력은 썩는다.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라고 영국의 역사가 액튼 경은 말한다. 그리고 권력과 방종을 경계하는 목소리는 계속된다:

 

자유는 억제되지 않으면 스스로 망한다.

무제한적인 권력은 그것을 소유한 사람들의 정신을 타락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나는 법이 끝나는 곳에 독재가 시작된다는 것을 안다.

대중과 함께하면 편안하다. (우리가) 듣는 지식이라는 것은 대중의 기능보다 못하다.

천한 신분이라도 스스로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이 백성이다.

심지어 당신의 몸도 당신 것이 아니다. 어떻게 당신이 도(道)를 소유하겠는가? 순 임금이 물었다, 이게 나의 몸이 아니라니요? 그렇다면 누구의 것입니까? 승이 대답했다, 당신 몸은 우주가 쌓아 놓은 형상이다. 당신의 생명도 우주의 조화로운 형태이기 때문에 당신 것이 아니다. 당신의 성격도 우주를 따르기 때문에 당신 것이 아니다. 당신의 자손도 우주가 허물을 벗는 것이기 때문에 당신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어디로 가고, 왜 사는지, 음식이 왜 그런 맛이 나는지 알지 못한다. 그것은 우주의 생기(生氣)라고 불릴 따름이다. 그러니 어찌 무엇을 얻어 소유한다는 말이요?

나로서는 항상 일반 대중의 믿음이 건전한 행정의 유일한 견고한 기초라고 생각했다.

어떤 합법적으로 규정되어 선출된 시민들도 실제로 전체 시민보다 더 현명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유교에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의미는 교양을 쌓고, 가족을 부양하고, 나라를 다스리고, 세계를 편안케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교양을 쌓고 가족을 부양하는 수신제가(修身齊家)만으로도 한 인간이 일생을 보내도 완성하지 못하는 막중한 일이다. 공부하는 일만 하여도 일생동안 모두 할 수 없는 일인데 어찌 나라를 다스리겠다고, 나아가 온 세계를 다스리겠다고 나서는가? 물론 유교에서는 수신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친다 할지라도.

   순 임금처럼 도(道: 진리)를 소유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통치자들이요, 나폴레옹처럼 세계를 정복하겠다고 대드는 사람이 지배자이다. 이 과대망상증 환자들이 벌리는 행위를 칼 포퍼는 ‘낭만적 깡패주의(romanticized gansterism)’라고 부른다. 낭만적 깡패주의란 망상에 빠져 마구 폭력을 휘두른다는 뜻이다. 그 폭력적 행위를 통하여 지배자들은 지구상에서 천국을 이룩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런 망상 속의 소위 영웅들이 벌이는 천국 건설은 폭력을 낳고, 결과는 모든 사회적 유산이 파괴되는 야만적 상태가 도래할 따름이다:

 

천국을 이루려는 우리의 꿈은 지구상에서 실현될 수 없다. 우리가 이성에 의존하고, 우리의 비판능력을 사용하기 시작하자마자, 개인적 책임이라는 명령을 느끼고, 그 책임의 명령과 함께, 지식을 발전시키는데 기여해야 할 책임을 느끼자마자 우리는 종족적 마술에 완전히 복종하는 상태로 돌아갈 수는 없다. 지식나무의 열매를 먹은 사람들에게, 천국은 사라졌다. 종족주의라는 영웅시대로 돌아가려고 우리가 애를 쓸수록, 그만큼 확실히 우리는 종교재판과, 비밀경찰과, 낭만적 폭력에 도달한다. 이성과 진실을 억압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인간적인 모든 것을 가장 잔인하고 난폭하게 파괴하고 끝나야 한다. 자연의 조화로운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 우리가 돌아선다면 길 전부를 가야 한다 - 우리는 동물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이 과대망상증 환자들은 인간을 사랑하지 않고 자기들 머릿속에 들어 있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사랑하여, 그 아이디어를 세상에서 실천하겠다고 대든다. 그러나 그들이 내놓는 아이디어인 천국 건설은 오류투성이고 국민의 동의를 거치지 않은 자기들만의 횡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는 인류의 철학적 부분이 두 무리로 나뉜다고 믿는다: 사람에 흥미를 갖고 사람을 걱정하는 사람들과; 아이디어에 흥미를 갖는 사람들. 첫 번째 무리는 실용주의자들을 형성하여 최고의 정치가가 되는 경향이 있다. 두 번째 무리는 지식인들이고; 그들이 아이디어에 열정적으로 집착하면, 열정적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 쓰이면, 그들은 거의 틀림없이 자기들이 손에 넣는 권력을 남용한다. 그 이유는 지식인들이란 다스림이 대한 그들의 아이디어가 사람들로부터 나오게 하는 대신, 먼저 원칙으로부터 그들의 아이디어를 꺼내서 그 다음에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그 아이디어를 적용하려고 하면서 과정을 뒤집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지식인들은 인류를 사랑하고 인류의 향상과 행복을 위하여 일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이 사랑하는 것은 인류를 구성하는 실제 인간이라기보다는 인류에 대한 아이디어이다.

그들이 주로 주목하는 초점은 당연히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그 아이디어의 전개이다; 그들은 완전한 의미에서 자기중심적이 된다. 지식인의 무관심이나 적대감은 자기 아이디어를 위한 계획에 맞지 않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자기 무리 안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자기 생활에 할당된 역할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도 쏟아진다.

얼마나 많은 종교 전쟁이 사랑과 친절의 종교 때문에 일어났는지 우리 모두는 기억한다; 영원한 지옥의 불로부터 영혼을 구하겠다는 진정으로 친절한 의도로 얼마나 많은 사람의 몸이 산채로 화형 되었는지 우리는 모두는 기억한다. 우리가 의견의 영역에서 권위적 태도를 버릴 때만, 주고받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우겠다는 마음의 태도를 확립할 때만, 우리는 신앙심과 의무로 고무된 폭력 행위를 억제하리라고 기대할 수 있다.

백성을 사랑하는 일은 백성을 해치는 일의 시작이다.

자신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은 별로 행복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사람이 이것에서 많은 행복을 느낀다면 그것은 실제로 사람이 자신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이상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니체는 ‘신념이란 거짓말보다 더 위험한 진리에 대한 적이다’ 그리고 ‘신념은 개관적 진리의 증거를 조금도 보여주지 않는다. 이곳에서 인간의 길이 갈린다: 여러분이 영혼과 쾌락의 평화를 갈구한다면, 믿어라; 여러분이 진리에 헌신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질문하라’고 주장한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라 할지라도 특정분야의 전문가일 뿐이지만, 정책이 수립되어 시행되는 사회적 분야는 다양한 분야가 관련되어 있다. 더구나 전문가가 지닌 ‘전문적인’ 지식은 결코 완전하지도 않고 최고의 지식도 아니다. 그러므로 전문가의 권리고 자격은 자기 전문분야에 대한 지식을 사회에 제공하는 역할에서 끝나야 한다: ‘사람은 어떤 분야에서 달인이 되면 보통, 그 이유 때문에, 대부분의 다른 것에서 완전한 아마추어로 남았다; 그러나 그 사람은 반대로 판단할 따름이다, 소크라테스가 이미 발견한 바와 같이.’ 소크라테스는 한 분야에 전문가인 사람은 모든 분야에서 전문가라고 생각하는 과대망상증을 지적하고 있다. 이 과대망상증 환자는 늘 ‘민족과 국가를 사랑하고’ ‘그래서 민족과 나라를 다스리고’ 나아가 ‘세계를 다스리겠다.’고 나선다:

 

견해를 갖는다는 것은 사람들이 그 견해에 대하여 열광하여 그때부터 그 견해를 자기들의 가슴에 신념으로서 누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어떤 것이 설명되지 않으면, 사람들은 처음 자기들의 머릿속으로 들어와 설명처럼 보이는 최초의 개념으로 흥분하는데 - 그것은 꾸준히 발달하여 최악의 결과를 낳는다, 특히 정치 분야에서.

 

   국민들은 이 허황한 ‘전 분야 전문가’를 좇아 우상을 만든다. 그러나 그 결과는 소위 정치지도자들에 대한 참담한 절망이고 환멸이다. 그래서 니체는 ‘정치가 병들어야 국민들의 정신을 차리고 문화가 꽃핀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과대망상증을 지적하고 비난하여 아테네사회가 병들어 가는 것을 막고자하였던 소크라테스는 결국 사형을 당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진실을 위하여 사형을 당하면서도 자기의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미덕은 재산으로부터 나오는 게 아니며, 미덕으로부터, 개인을 위한 것이든 사회를 위한 것이든 관계없이, 재산과 모든 다른 인간의 축복이 나온다... 당신들이 나를 죽이면 당신들은 나와 같은 종류의 또 다른 사람을 쉽게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나와 같은 종류의 사람은, 웃음을 좀 자아낼는지도 모를 은유를 사용하면, 하느님에 의하여 크고 아량 있는 말에 붙은 한 종류의 쉬파리로서 국가에 붙여진다. 그러한 자격으로 그리고 그 목적으로 하느님은 나를 그 도시에 붙였으며, 하루 종일 그리고 도처에서 나는 여러분들에게 달라붙는다, 여러분을 일깨우고 설득하고 충고하면서. 진리를 말하는 나에게 화를 내지 말라, 그 까닭은 명예롭고 성실하게 여러분들이나 다른 대중을 반대하며, 내가 반대하지 않는다면 도시 속에서 발생할 많은 불의하고 옳지 못한 일들 앞에서 강력히 반대하는 나를 아무도 살아서는 피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이 어려울지라도, 범죄를 피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렵다. 그리고 이제 나는 당신들 손에서 죽음이라는 빚을 지불하기 위하여 가지만, 그들은 진리의 손에서 범죄와 불의라는 빚을 지불하기 위하여 간다. 만약 나의 아들들이 미덕에 관해서 보다 재산이나 어떤 것에 대하여 더 많이 근심하는 듯 보이면; 또는 그들이 실제로는 하찮은 것일 때 중요한 것인 척하면, 그 경우에는 그들을 나무라시오. 떠날 시간이 왔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간다 - 나는 죽기 위하여, 당신들은 살기 위하여. 어느 것이 더 나은지는 하느님만 아신다.

 

8. 아무도 가질 수 없는 진리

   ‘누가 다스려야 하는가?’라는 문제는 ‘누가 진리를 아는가?’라는 문제와 연결된다. 이 세상에서 하느님을 본 사람이 없는 바와 마찬가지로 진리가 인간에 의하여 발견된 적은 없다. 만약 진리가 발견되었다면 그 진리에 따라서 인간의 문명이 움직이면 실수란 있을 수가 없다. 진리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문명은 허점이 적지 않고, 인간은 진리를 발견하지 못하는 불완전한 존재로 남아있다. 진리가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진리는 있다. 진리가 있다는 사실은 사람은 늙으면 죽는다는 것이 사실이 있기 때문에 무엇인가 우리로서는 알 수 없는 진리가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진리를 판단하는 기준은 없다. 진리를 모르는데 어떻게 진리를 판단하는 기준을 인간이 설정하겠는가? 이 문제는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진리는 있다 할지라도, 진리에 대한 기준은 없다.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진리 개념과 진리 기준의 개념을 혼동하기 때문에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들은 진리의 개념이 있다면 그것에 딸린 진리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한 가지 일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작동이 있어야 한다. 이제 그런 작동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확실히 분명하다. 만약 그것이 존재한다면, 우리 모두는 모든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모든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진리에 대한 기준은 있을 리가 없다. 나는 진리를 ‘규제적 개념’이라고 불러왔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는 진리에 대한 기준은 없을지라도, 거짓에 대한 기준은 많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의 진리 탐구가 비판적 탐구인 이유이다.

과학이란 확실하거나 정립된 주장이 아니며, 궁극적인 진리를 향해 끊임없이 진보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과학은 지식도 아니며, 진리에 도달했거나 개연성 같은 진리 대체물에도 도달했다고 주장할 수 없다. 그러나 과학은 동물적으로 살아가는 것 이상의 존재가치를 지니고 있다. 과학은 유용한 도구 이상이다. 진리나 개연성에 미치지 못한다 할지라도 지식에 대한 갈망과 진리탐구는 여전히 과학적 발견의 강력한 동기가 된다. 우리는 알지 못한다: 우리는 다만 상상할 따름이다. 그리고 우리의 상상은, 우리가 발견하는 법칙과 규칙성에 대한, 과학이 아닌 생각 속(생물학적으로만 설명이 가능한)의 믿음을 벗어나지 못한다.

나는, 칸트 및 다른 비판적 이성주의자들과 함께, 무한한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을 지닌 실제 세상에 대하여 완전한 지식 따위를 우리가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을 기꺼이 인정한다.

대체 지식이란 표준이 있은 다음에 비로소 옳은 것이 된다. 그 표준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우리의 삶에는 끝이 있지만, 지식에는 끝이 없다. 끝이 있는 것으로 끝이 없는 것을 좇으면, 위태로울 뿐이다.

 

   그러면 인간이 지금까지 건설한 문명의 기준은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기껏해야 유사진리에 불과하다. 그 유사진리(truthlikeness)는 또한 박진성(迫眞性: verisimilitude)로 불리기도 하는데, 진리근사치로도 표현되며 뉴튼이 발견한 자연법칙이 그 보기에 해당된다. 물론 진리근사치나 박진성으로도 인간은 지구상에서 과학을 발전시킬 수 있고, 절대 진리가 인간에 의하여 발견되지 않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그런 유사진리에 의하여 과학은 발전해왔다. 그러나 과학적 진리와는 대조적으로 대중들이 대체적으로 믿고 따랐던 사회적 기준은, 가치가 전도된 가짜기준이었다. 나는 지금 인간이 법 앞에서 모두 평등하다는 주장을 기준으로, 그리고 인간이 다른 인간이 의도하는 목적에 이용될 수 없다는 주장을 기준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간에게는 이성(理性)을 사용하여 합의나 결정에 도달할 능력이 있고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는 주장에 근거해서 이 기준을 ‘가치가 전도된 가짜기준’으로 비판하고 있다. 이 가짜기준은 정치에서 왕(王)이라든지 귀족, 엘리트, 프롤레타리아, 민중 따위로 우상화되거나, 신격화(神格化)된 권력이었다. 그리고 이 가짜기준은 동양, 특히 우리나라에서 나이 먹은 장자(長者), 고위 관리나 학자 등등이 우상화되어 그들의 말이 마치 절대적인 진리인양 사회생활에서 매우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인류가 지금까지 성심으로 고려해왔던 것은 실제도 아니고, 비현실적 상상이었고, 더 정확하게는 병든, 가장 깊은 의미로는 해로운 특성의 나쁜 본능에서 나온 거짓말이었다. - ‘신(神)’, ‘영혼’, ‘미덕’, ‘죄(罪)’, ‘초월 세계’, ‘진리’, ‘영원한 생명’ 따위의 모든 그 개념들... 그러나 인간 본성의 위대함, 그 ‘신성함’이 이것들에게서 탐색되었다... 정치와, 사회와, 교육의 모든 문제가 가장 해로운 사람들을 가장 훌륭한 사람들로 여김으로써 바닥까지 거짓이 되었다 - ‘하찮은’ 것들에 대한 멸시를 가르침으로써, 그러나 그 ‘하찮은’ 것들은 생명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에 대하여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가짜 진리가 영원할 리가 없는 까닭은 인간의식의 발달 때문이다. 만약 인간의식의 발달을 평등원칙의 발달로 간주한다면 ‘평등원칙의 점진적 발달은 섭리적 사실이다. 그 발달에는 그런 사실의 중요한 특징 모두가 있다: 그 발달은 보편적이며, 지속적이고 모든 인간의 방해를 계속해서 피해간다, 그리고 모든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사건도 그 진보에 기여한다.’라는 주장도 존재한다. 이 말의 주요 의미는 아무리 인간이 방해를 하려 해도 인간의 평등은 섭리, 즉 불가피한 사실로 점점 발달해간다는 의미하다. ‘역사란 자유를 향한 진보’라는 영국의 역사가 액튼(Acton) 경의 말과 비슷하다. 물론 이 말은 우리가 가만히 앉아있어도 평등이 온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는 없다.

   어떤 인간도 최고가 될 수 없다는 사실, 다시 말해서 어떤 인간도 아직 진리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바로 고대 아테네로부터 현재 유럽과 미국에 이르는 비판사상의 뿌리가 된다. 부언하여 인간의 문명은 진리를 설정하고 그 진리를 기준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무수한 실수를 저지르면서 상호협조와 비판으로 진리에 보다 가까이 접근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여러 사람들이 이렇게 주장한다:

 

비판만이 전 세계적으로 해로울 수 있는 유물론, 운명주의, 무신론, 자유사고, 광신(狂信), 그리고 미신의 뿌리를 자를 수 있다.

예술에서처럼, 이 상상의 세계는 우리 상상력의, 우리 직관의 산물이다. 그러나 과학에서 상상의 세계는 비판에 의하여 억제된다. 과학적 비판인 이성적 비판은 진리에 대한 규제적 개념에 의하여 인도된다. 우리는 우리의 과학적 이론이 거짓으로 판명되지 않을지를 모르기 때문에 과학적 이론을 증명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과학적 이론을 비판적 조사에 붙일 수 있다: 이성적 비판이 증명을 대신한다. 비판은 상상을 억제하지만 족쇄를 채우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상상은 예술이든, 신화든, 또는 과학이든, 모든 창조적 활동에 공통이 반면 과학은 진리에 관한 개념으로 인도되는 이성적 비판이 특징이다.

지금까지 철학자들이 경외감을 가지고 말한 진리, 즉 진리를 향한 의지는 여전히 우리를 위험에 빠뜨린다. 이 진리를 향한 의지가 우리에게 벌려놓은 의문점을 보라! 얼마나 괴상하고, 악하며, 의심스러운 문제들인가!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마치 새로 시작된 질문 같지 아니한가? 결국 우리는 의심하고, 인내심을 잃고, 짜증을 내며 돌아서야 하는 게 아닌가? 우리가 진리를 원한다고 치자. 오히려 거짓은 왜 안 되는가? 그리고 불확실은? 심지어 무지(無知)는 왜 안 되는가? 진리에는 위험, 아마도 덜한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진리를 꿈꾸는 자는 바보다, 아니 바보보다 못하다. 최고의 가치를 지닌 것들은 그 자체의 다른 근원을 가지고 있음이 틀림없다. 최고의 가치란 이 변화하고, 유혹적이며, 기만적이고 천박하며, 하찮은 세상으로부터, 욕망과 망상으로 뒤섞인 혼란으로부터 나올 수 없다! 이 판단으로 역사 속에서 모든 철학자들이 인정되는 전형적인 편견을 알 수 있으며, 그들 철학자들의 모든 논리적 순서의 배경을 알 수 있다. 철학자들의 근본적인 믿음은 부정하는 가치를 믿는 것이다.

잘못으로부터 사람을 해방시키는 것은 그로부터 무엇을 박탈하는 것이 아니고 그에게 무엇을 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어떤 일이 틀렸다는 지식이 한 가지 진실이기 때문이다.

해롭지 않은 잘못은 없다; 조만간 잘못은 잘못을 간직한 사람에게 불행을 가져온다.

왜 아무도 최고가 되어서는 안 되는가? 그 이유는 그러면 경쟁이 끝장나고 삶의 영원한 근원이 위험에 처하기 때문이다.

나머지 사람들 위로 솟아오르는 개인은 힘의 경쟁이 다시 일깨워지도록 하기 위하여 제거된다 - 현대적 의미에서는 천재의 “예외성”에 적대적이고, 일의 자연적인 질서에서는 서로를 행동하도록 자극하는 몇 명의 천재들이 늘 있다는 것을 상정하는 개념.

모든 재능은 싸움에서 밝혀져야 한다: 현대 교육가들은 소위 야망이 풀려나는 것만을 두려워하는 반면에, 그것이 그리스의 유행하던 가르침이었다.

 

   나는 여기서 로마의 시저를 암살한 브루투스(Brutus)를 서양인들이 찬양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브루투스는 ‘만약 아직도 내가 당신들을 그렇게 부른다면, 여러분 로마인들이여, 당신들이 하는 것을 생각해보라; 여러분들은 어느 날 그가 여러분 자신이 걸치게 만들 바로 그 쇠사슬들을 만들기 위하여 시저를 돕고 있다’고 외치며 로마가 독재화되는 것을 경계했다. 브루투스의 부르짖음은 바로 아테네의 도편추방제도의 정신을 대변한다. 아울러,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 암살사건이나 레이건 대통령 암살미수 저격사건도 그러한 서양 문명의 연장선상에서 연구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흔히 우리는 케네디 암살 사건이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음모이고, 레이건 저격사건 배후에는 소련이 있다는 소문성 주장을 듣는다. 그러나 케네디가 취임식에서 한 ‘당신 나라가 당신을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지 말라. 당신들이 당신 나라를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어라’ 따위의 주장은 정부를 견제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유럽과 미국의 전통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레이건 대통령은 소련을 ‘악마의 제국’이라고 불러 미국에서 논쟁을 불러왔던 적이 있다. 남의 나라 정치제도가 자기 정치제도를 본받기를 강요하지 않는 아테네 민주주의의 정신을 위배한 발언이자 지나치게 혹독한 명칭이었다. 이 레이건의 발언으로 당시 미국시민들 다수가 두려움에 몸서리쳤다. 그러나 레이건은 실현가능성이 불투명한 ‘우주 방어 계획(SDI)’을 정책으로 발표하여, 그에 상응하는 군사적 정책을 위한 경제력이 없던 소련의 고르바초프 수상으로 하여금 군비 경쟁에서 무릎을 꿇게 만들고 결국 동구 공산권과 소련연방이 몰락하는 길을 걷게 만든다. 노회한 보수주의자이자 미국대통령이었던 레이건이었다. 권력이 악용되는 것에 대한 미국 정치의 핵심은 이렇게 설명되기도 한다: ‘미국에서 확립된 정치적 판결의 주요 목적은 그러므로 권력을 악용하는 사람으로부터 권력을 빼앗고 그 권력을 다시는 얻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면 민족이 구성하고 있는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폭력을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 역사에서, 그리고 세계의 많은 국가에서, 국가를 들먹이며 거들먹거리는 자들이 히틀러 따위가 아닌가? 라는 문제에 우리는 봉착한다. 국가란 한 민족이 수천 년 동안 유지해온 ‘환상적인’ 실체가 아니다. 어떤 민족이 어떤 땅에서 오랜 기간 동안 살아왔다는 사실은 어떤 민족이 다른 민족과 서로 적대적인 동시에 우호적 교류를 하면서 그 땅에 거주해왔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에도 수많은 국가가 태어났다가 사라졌다. 그러나 이 땅에는 한국 사람들이 살고 있다. 우리는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조선이라는 국가의 국민이 아니다. 그런 국가들은 이미 우리 역사에서 사라진 국가일 뿐이다.

   국가란 결국 국가라는 조직체를 구성하는 인간의 문제이다. 국가를 구성하는 인간들이 민족주의 이념을 신봉한다면 결국 다른 나라와 마찰을 피할 수 없고, 국내정치는 독재체제로 갈 수밖에 없다. 민족의 우수성을 주장하는 한, 배타적인 독재정치가 탄생하는 기반이 성립되는 것이다. 그래서 장자에서는 ‘백성을 사랑하는 일은 백성을 해치는 일의 시작이다’라고 주장하며, 쇼펜하우어는 국가를 최고의 가치로 취급하는 사람들을 비판한다.

   영국인들의 영웅은 처음으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힐러리이다. 나일 강의 근원을 발견한 스탠리와 남극을 탐험한 스코트이다. 라듐을 연구하여 방사선을 발견한 퀴리 부인은 유럽의 영웅이다. 남극을 최초로 탐험한 아문젠은 노르웨이의 영웅이다. 최초로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는 미국에서 칭송을 받는다. 왜 한국에서는 탐험가나 학자들이 크게 존경을 받지 못하는 것일까? 아테네의 철학자 테모크리투스(Democritus)는 ‘페르시아의 왕이 되느니 한 가지 인과법칙을 발견하겠다.’ 라고 주장한다.

   인류를 위하여 커다란 업적을 남긴 이들은 붕당을 만들어 권세를 휘두르는 사람들이 아니고, 고독한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개인주의자들이다. 업적을 남긴다는 것은 그 고독한 싸움에서 인간이 세상의 문제를 발견하여 그 문제의 해결 방법을 발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직면한 문제를 발견하는 일은 떼거지로 하는 일이 아니고 인간이 자기가 속한 환경 속에서 개인적으로 행하여진다. 그러므로 이런 개인적인 승리는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정의와 옳음을 위하여 정말로 싸우는 사람은, 그가 단지 짧은 생애를 영향 받지 않을 것만 기대할지라도, 공공이 아닌 개인적인 사회적 신분을 가져야 합니다.

많이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나 무리의 소속원으로서 적당하지 않다: 그는 곧 생각하면서 그 무리를 통과하는 경향이 있다.

인생의 궁극적 목표는 오직 혼자서만 오를 수 있는 봉우리로의 고독한 여행인 개인의 정신적 성장이다. 중요한 여행은 성공적인 결혼이나 성공적인 사회에 의하여 제공되는 교육 없이는 이룩될 수 없다. 결혼과 사회는 그런 개인적 여행을 기르는 근본적이 목적 때문에 존재한다. 그러나 모든 진정한 사랑에 관해서 경우가 그러한 것처럼, 다른 쪽의 성장을 위한 “희생”은 자신과 동등하거나 더 큰 성장을 낳는다. 그 결혼이나 사회를 새로운 높은 곳으로 올리는데 도움을 주는 것은 개인이 홀로 여행했던 봉우리로부터 개인이 결혼이나 사회를 교육시키는 데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개인의 성장과 사회의 성장은 서로 의존하지만 바깥 성장의 길은 항상,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외롭다.

 

   북쪽은 공산주의라는 이름 아래 여성의 지위향상을 이루고, 국민이 야만적인 이조의 엘리트주의로부터 벗어났지만 공산당이라는 새로운 계급의 지배를 받고 있다. 남쪽은 미국의 영향으로 민주주의 틀 속에서 서구민주주의를 배우고 있지만 아직도 전근대적인 계급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계급사회가 뽐내는 것 중 하나는 거대한 건물이다. 세계 최고, 최대, 최초 따위이다. 세계 최대 교회가 남한에 있다. 2000만 권의 서적을 가진 도서관이 북한에 있다. 자료인 책만 모아 놓는다고 학문이 발전하지 않는다. 지식의 발전은, 학문의 발전은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려는 시도에서 이룩된다. 옛날 알렉산드리아에 세계최대의 도서관이 있었지만 알렉산드리아에서 과학이 발전했다는 소식은 없다: ‘지식은 자료나 사실을 감지하거나 관찰하는 일, 모으는 일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지식은 오히려 문제로부터 시작된다.’라는 말은 우리가 어떻게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우리가 우리 민족을 우수하다고 주장한다면 어째서 수많은 외적의 침입을 막지 못하고 당하고만 살았을까?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고, 그래서 ‘한(恨)의 민족’이라면 슬픈 정서를 뼛속까지 새긴 사람들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란 이 지구상에 없다. 구태여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정복자 광개토대왕을 추켜세우고 신라의 삼국통일을 위업으로 기릴 이유가 없다. ‘한(恨)의 민족’이란 질식할 것 같은 이조의 유교적 계급사회에서 나온, 그리고 그런 사회가 외적의 침략에 무기력하게 대응하다가 필경 정복당하는, 백성들의 ‘원한’일 뿐이다. 나는 영국의 박해를 오랫동안 받아온 아일랜드 출신으로, 한국을 연구하는 학생을 만난 적이 있다. 그 사람 말이 한국인의 한(恨)을 아일랜드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또 폴란드 출신의 미국인을 만나서 고향 이야기를 들었다. 유럽대륙의 강국 사이에 끼어서 침략만 당해온 폴란드 국민들에게 ‘한(恨)’이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평화란 목숨을 바쳐 자유를 지키고자하는 의지로만 얻을 수 있는 있는 것이라는 말을 믿는다. 자유는 대가없이 얻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철없는 평화주의자들의 주장대로 입으로만 평화를 주장한다고 해서 자유와 평화는 오지 않는다. 소수의 군대로 페르시아의 대군을 무찌른 아테네는 무엇이며, 막강한 히틀러의 군대에 저항하였던 영국 국민과 스위스 국민의 정신은 무엇인가? 나는 아테네와 영국, 스위스 국민들에게 주어졌던 자유가 외적을 맞아 목숨을 버리며 싸웠던 국민정신의 바탕이 되었다고 믿는다. 계급 없는 사회, 즉 민주사회란 시민들이 스스로의 자유를 위하여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하는 사회이다. 지배자가 서울을 버리고 도망치는 사회에서 누가 목숨을 버리고 자유를 위하여 싸우겠는가?

   그러면 거짓말로 국민을 기만하는 지배자를 믿을 수 없는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결국 우리 자신 밖에 믿을 것이 없다. 우리는 소위 지도자라는 자들을 철저히 감시하며 우리의 자유를 지켜 나갈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란 사실상 정부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며 국민이 스스로 일하는 것이다: ‘현 상태의 민주주의는 시민들에게 어떤 혜택도 주지 못한다, 그리고 혜택을 주리라고 기대해서도 안 된다. 사실상 민주주의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 - 단지 민주주의의 시민들만이 행동한다 (물론, 정부를 구성하는 시민들을 포함하여). 민주주의란 시민들이 다소 조직적이고 일관된 방식으로 행동할 원칙만을 제공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시민들이 조직적이고 일관되게 일할 수 있는 원칙만을 제공하는 민주정부가 있을 수 있는가? 대답은 있고 있을 수 있다 이다. 도덕경 17장에는 통치자에 관한 서술이 나온다: ‘가장 좋은 것은 있는 것을 모르는 것, 그 다음은 가까이 하며 기리는 것, 그 다음은 두려워하는 것, 그 다음은 멸시하는 것’ 이렇게 통치자가 있는지도 백성들이 모르는 최고의 정치는 동양에는 없었다. 흔히 요순시대를 그런 시대로 들지만, 요순시대란 엄격한 의미에서 부족을 다스리는 집안우두머리의 통치시대였다. 요 임금과 순 임금이 밭을 매고 소를 모는 경우란 부족우두머리가 모두 하는 일이다. 중국의 철학자 곽말약이 주장하는 대로 그런 사회에서 누구나 통치자 자리를 양보한다고 주장한다. 이 최고의 통치는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다 (지금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토크빌이 쓴 “미국의 민주주의”에는 이런 기술(記述)이 있다: ‘미국에는 성문법이 존재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성문법이 매일 행하여지는 것을 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규칙적으로 움직일지라도, 통치자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사회라는 기계를 지시하는 손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자유는 우리의 권리이자 책임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는 것은 자유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이들의 거룩한 정신이다. 아테네의 민주지도자 페리클레스(Pericles)는 ‘용기를 가진 사람에게는, 함께 오는 비겁과 불행이 그가 용기로 가득차고 일반적인 희망으로 활기찼을 때 감지되지 않은 채 그에게 닥치는 죽음 보다 훨씬 더 참기 어렵습니다.’라고 우리에게 경고한다. 이러한 믿음은 다음과 같이 기술(記述)되기도 한다: ‘서구국가들이 존경을 표하는 무명용사 기념비는 서양이 신뢰하는 것의 상징이다 - 평범한 무명인에 대한 우리 신뢰의 상징. 우리는 그가 대중에 속하는지 엘리트에 속하는지 묻지 않는다: 그는 사람이었다, 그를 모든 것으로 생각해 보라. 우리의 시대를 우리가 아는 최상의 시대로 만드는 것은 우리 동료들에 대한 믿음이고 그들에 대한 존경이다. 이 믿음의 진실성은 믿음을 위하여 희생하려는 마음으로 증명된다. 이것이 우리가 노예제도를 폐지한 이유이다.’

 

9. 맺는말

   해방 후에서 지금까지 계속된 사회적 혼란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이제 세계 속에서 그 역할을 해야 하는 당위를 가질 정도로 성장했다. 물론 세계사 속의 우리모습은 인간의 보편적 가치인 박애와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모습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러한 가치를 실현하기에는 우리의 올바른 세계관과 역사관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나 경제적인 성장에 비교해볼 때 우리의 정신적인 성장은 무척 더디게 느껴진다.

   이제 우리는 세계인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한다. 선진국들은 우리가 세계 속에서 보다 많은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뒤진 국가들은 우리를 모범사례로 뒤쫓으려 한다. 이제 우리는 다시 세계사 속에서 도약해야 하는 운명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 운명은 우리에게 다시없는 기회로 보인다. 어떻게 해야 할까? 약소국이 민족주의를 통하여 마련하려는 제국주의의 침략에 대한 대비는 민주주의를 통하여 충분히 이룩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나의 글을 통하여 지금까지 우리가 부둥켜안고 놓지 않았던 민족주의를 포기할 것을 제안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세계인들에게 마음을 여는 보다 넓은 세계관을 가져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대안은 없다. 민주주의와 박애 쪽으로 우리의 정신을 접근시키는 일 외에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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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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