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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풍에 반대하여
(원래 출간의 의도가 없었던 서한)
서언. 약 14년 전 나는 클라우스 그로스너(Klaus Grossner) 씨로부터 서한 한 통을 받았는데 그에 대하여 나는 이전에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는 나의 친구인 한스 알베르트(Hans Albert)를 언급했고 (독일) 철학의 상태에 관한 서면 면담을 나에게 요청했다. 나는 그의 서한에 많이 동의했고, 내가 그 서한의 몇몇 부분들에 동의하지 않았을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서한에 토론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얼마간 유보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질문들에 답변했다. 이어지는 서한에서 그로스너 씨는 자신이 계획하고 있던 저서에서 여기 아래에 인쇄된 서한의 부분들을 출간할 허락을 나에게 요청했다. 추가적인 의심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에게 허락했지만 그의 저서를 위해서만이었다: 나는 나의 저작권을 유지했고, 그의 저서에 대한 나의 기고문은 내가 명시적으로 허락하지 않으면 다시 인쇄되어서는 안 된다고 나는 강조했다. 그러나 그 후 곧바로 나의 허락도 없고 나의 권리에 대한 언급도 없이 주간지인 시간(Die Zeit)에 발췌문이 실렸다 (‘허풍에 반대하여’라는 [Wider die großen Worte] 탁월한 제목으로).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저작권은 자주 상당히 남용된다.) 나의 서한이 발췌문으로 이미 두 번 인쇄되었고 여러 번 잘못 인용되었기 때문에, 이전에 발표된 부분의 공격성에도 불구하고 그 부분을 여기서 다시 게재하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먼저 귀하의 네 가지 질문들에 (혹은 질문들의 묶음들) 답변함.
1. 나는 중등학교에서 사회주의자로서 출발했지만 학교가 그다지 자극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16세에 학교를 떠나서 대학입학시험을 (Reifeprüfung) 치르기 위하여 돌아왔을 뿐이다. 17살에 (1919년) 나는 여전히 사회주의자였지만 마르크스에 반대했다 (공산주의자들을 몇 번 만난 결과로서). 더 많이 경험을 (관리들에 관하여a) 하면서, 심지어 파시즘에 앞서서, 국가라는 기계의 권력이 증가하면 개인적 자유에 최고의 위험이 생긴다는 것과 그리하여 우리는 그 기계와 계속해서 싸워야한다는 통찰에 나는 이르렀다. 나의 사회주의는 이론적 태도만은 아니었다: 나는 가구제작을 배웠고 (지성적으로 사회주의자였던 나의 친구들과 대조적으로) 숙련공 시험을 치렀다; 나는 어린이 보호소들에서 일했다; 나는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나의 출간되지 않은 최초 저서가 ([1979년에 튀빙겐에서 모 출판사에 의하여 출간된], ‘인식론에 관한 두 가지 근본적인 문제들[The Two Fundamental Problems of Epistemology]’) 완성되기 전에, 나에게는 철학교수가 되겠다는 의도가 없었다. (과학적 발견의 논리[The Logic of Scientific Discovery]는 1934년에 출간되었다; 나는 뉴질랜드에서의 교수직을 1936년, 크리스마스에 수락했다.)
나는 늙어서도 나의 사회주의자로서의 젊은 시절에서 유래하는 많은 개념들과 이상들을 견지했다. 특히 다음과 같다:
모든 지성인에게는 매우 특별한 책임이 있다. 모든 지성인에게는 연구할 특혜와 기회가 있다. 보답으로 모든 지성인은 자신의 연구 결과들을 가능한 한 간단하고 명료하고 겸손하게 자신의 동료들에게 (혹은 ‘사회에’) 제출할 빚이 있다. 지성인들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행위는 ㅡ 큰 죄악 ㅡ 자신의 동료들과 비교하여 위대한 예언자들로서 자신을 세워서 혼란스러운 철학들을 이용하여 그 동료들에게 인상을 각인시키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간단하게 그리고 명료하게 말할 수 없는 사람은 누구나 아무 말도 해서는 안 되고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을 때까지 연구를 계속해야 한다.
비엔나에서 철학 회의가 열리는 동안 (1968년), 철학자들 사이에서 열린 텔레비전 토론회들에 초대를 받아서 그 토론회들 중 한 토론회에서 블로크(Bloch)를 발견하고 놀랐다. 우리는 몇 가지 하찮은 충돌들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나는 아주 신실하게, 내가 너무 어리석어서 그가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토론의 끝 무렵에 회장이었던 볼프강 크라우스(Wolfgang Krauss) 박사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분의 견해로 가장 필요한 것을 한 문장으로 우리에게 말해주시오.’ 내가 유일하게 간략한 답변을 제시했다. 나의 답변은 ‘다소 더 지성적인 겸손’이었다.
나는 반(反)-마르크스주의자이면서 진보주의자이다b. 그러나 마르크스와
a 역주: ‘관리들에 관하여’의 원어 표현은 of bureaucrats인데 박영태 번역은 ‘정부 관리로 있었던 경험’이다.
b 역주: ‘진보주의자’의 원어는 liberal인데 박영태 번역은 ‘자유주의자’이다.
레닌 두 사람 모두가 간단하고 직설적인 방식으로 글을 썼다는 것을 나는 인정한다. 신(新)-변증가들의 허풍에 대하여 그들은 무엇을 말했을 터인가? 그들은 ‘허풍’보다 더 심한 단어들을 발견했을 터이다. (나의 견해로, 경험-비판론에 반대하는 레닌의 저서는 매우 탁월하다.)
나의 연구들의 기초를 이루는 사회적 문제들에 관한 귀하의 질문에 대한 답변은 다음과 같다:
나의 철학적 연구들 모두는 비-철학적인 문제들과 관련된다. 나는 1952년에 이것에 관하여 서술했다 (추측과 논박[Conjectures and Refutations], 72쪽 참조): ‘진정한 철학적 문제들은 항상 철학 외부의 시급한 문제들에 뿌리를 두고, 이 뿌리들이 썩으면 그 문제들은 죽는다.’ 그리고 나는, 문제들이 뿌리를 둔 영역들의 보기들을 인용했는데 정치, 사회생활, 종교a, 우주론, 수학, 자연과학 그리고 역사였다.
나의 ‘과학적 발견의 논리’의 이 뿌리들에 대한 기술은 추측과 논박(Conjectures and Refutations])의 1장, 33-8쪽에서 (1957년) 발견될 것이다. (추측과 논박[Conjectures and Refutations]은 아직 독일어로 번역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내가 충분히 훌륭한 번역자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복사본 1부가 [귀하를 위하여] 우편물에 있다.)
‘역사주의의 빈곤(The Poverty of Historicism)’에 관하여, 저 제목의 나의 저서인 독일어본의 나의 서문 말미에서 (ix쪽에서 viii쪽 끝에 있는 마지막 문단) 헌사 (v쪽) 참조하시라.
2. 이것에 관해서는 나중에 더 많이 서술함.
3. 현재 나는, 폴 아서 쉴프(Paul Arthur Schilpp) 편집, ‘현존하는 철학자들의 장서(Library of Living Philosophers)’에 대한 나의 기고문들을 다루고 있다. (이 책들 중 몇 권은, 아인슈타인 편을 포함해서, 이미 독일에서 출간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다루고 있는 편은 ‘칼 포퍼의 철학’으로 명명되고 그 편은 (a) 소위 ‘지성적 자서전’, (b) 약 25명에 의한 (철학자들뿐만 아니라 과학자들 몇 명을 포함하여) 비판적인 기고문들 그리고 (c) 나의 답변들을 담고 있다.
나의 현재 글들은 주로, 물리학과 다른 과학들 특히 사회과학들에서 비합리주의와 주관론에 대항하는 투쟁에 바쳐진다. 나의 저술들은, 늘 그러한 바와 같이, 다루기 어려운 문제들을 가능한 한 정확하게 언명하려는 시도들이다. (심지어 나의 과학적, 논리적 저술들도 ㅡ 예를 들어 물리학에 관한 ㅡ 우리의
a 역주: ‘종교’는 박영태 번역에서 누락되었다.
사회적 및 정치적 병폐들과 관련된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시도들이다.)
예를 들어 해결책에 더 신중해지거나 내가 제시한 해결책으로부터 출현하는 새로운 문제들을 추구하기 위하여 ㅡ 혹은 새로운 연관사항을 추적하기 위하여 ㅡ 내가 여러 해 전에 해결한 문제들로 나는 또한 반복적으로 돌아온다.
여기에 그 문제들을 목록이 있다:
구획설정의 문제. 과학/비-과학; 합리성/비합리성.
모든 위장을 한 귀납의 문제; 경향들, 보편자들 그리고 ‘본질’을 포함하여; 정의(定義: definition)의 문제 (공준[公準: postulate] 정의의 불가능성과 모든 정의들의 비-본질적인 본성).
실재론의 문제 (실증주의에 대항하여). 자연과학들의 그리고 인문학의 방법론.
사회과학들에서의 그리고 역사학에서의 문제들과 문제 상황들의 역할. 일반적인 문제-해결의 문제.
객관성의 문제. 타스키(Tarski)의 진리론; 내용, 진리 내용, 진리에 대한 근사치. 논리에서의 객관성 (연역이론), 수학, 확률론, 물리학에서의 확률, 시간과 시간의 방향에 관한 문제.
다윈의 자연선택론의 위상. 자연선택론의 개선 (발전적 추세들에 대한 선택적 설명). 인간의 언어와 그 발전. 정치적 제안들의 언어.
비결정론과 선택. ‘제3의 세계’ 이론과 논리적 및 비-논리적 가치론.
심신 문제. 특히 이론들의 역사에 (헤시오드[Hesiod]와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에서부터 바로 양자론까지) 관한 수많은 역사관련 문제들.
이것은 긴 목록이다 (그리고 나의 저서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부분적으로 이해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많은 것을 생략했고 나는 여전히 이 모든 문제들과 다른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나의 출판을 목록 참조하시라; 많은 저술들이 출판되지 않았을지라도.
4. 나는 마르쿠제(Marcuse)에 관하여 한 마디도 서술한 적이 없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나의 견해로, 이 격렬한 비난에 관여하는 것은 가치가 없다. (아래 요점 2 참조. 수렁이다!) 내가 올바르게 기억한다면, 1966년 캘리포니아에서 나는 처음 마르쿠제를 만났지만 (1950년에 우리는 동시에 하버드에 있었을지라도) 우리는 아무것도 토론하지 않았다. 나의 친구이자 동료인 크랜스튼(Cranston)이 지녔던 것과 동일한 견해를 마르쿠제에 관하여 나는 지니고 있다. 열린사회와 그 적들(The Open Society) (불행하게도 이 제목에 대한 독일어 번역은 보잘것없다), 1권의 9장에서 탐미주의(aestheticism)에 관하여 나는 이미 서술했다. (마르탱 뒤 가르[Martin du Gard]에 의한 좌우명 참조.) 대체로 마르쿠제는 뒤 가르의 소설 티보 가의 사람들의 무르랑(Mourlan)이 말하는 것을 반복한다. 나의 비판은 열린사회와 그 적들(The Open Society)의 9장에서 발견될 수 있다.a 물론 나는, 마르쿠제가 자신의 현재 자세를 (‘부정적 철학’) 채택하기 오래전에 9장에서 이 비판을 썼고 뒤 가르는 자신의 저서를 이미 1936-40년에 출간했다.
나의 견해로, 파시스트들 중에서 ‘이상주의자들’과 마르쿠제 사이의 차이점은 거의 무시될 수 있다.
이제 나는 귀하의 요점 2로 선회한다.
2. 귀하의 서한에 있는 이 질문들의 무리는 많은 분야를 포함한다. 나는 나의 인식론으로써 시작해야겠다.
귀하는 나의 저서들을 읽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증주의적 논쟁(The Positivist Dispute)에 관한 아도르노(Adorno)의 저서의b 103쪽에 실린 나의 두 번째 논지를 또 한 번 보시라.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논지는 진지하게 의도된 것이다. 우리의 무지를 결코 잊지 않은 것이 중요하다. 그리하여 우리는 결코 어떤 것을 아는 척해서도 안 되고 우리는 결코 허풍을 사용해서도 안 된다.
내가 위에서 (요점 1) 큰 죄악으로 지칭한 것은 ㅡ 4분의 3만 교육을 받은 자의 거만함 ㅡ 우리가 지니지 못한 지혜를 주장하면서 빈말을 내뱉고 있을 따름이다. 그 방식은 역설적인 헛소리를 가미한 항진명제들(恒眞命題들: tautologies)과 진부한 표현들이다. 또 다른 방식은 이해 불가능한 허풍을 약간 서술하고 때때로 진부한 표현들을 추가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런 ‘심오한’ 책에서 자기 자신이 이미 지니고 있던 사고들을 발견했다고 아첨을 받는 독자
a 역주: 앞의 두 문장의 원문은 On the whole, Marcuse merely repeats what Mourlan says in du Gard. My criticism can be found in chapter 9 of The Open Society.인데 박영태 번역에 누락되었다.
b 역주: ‘아도르노(Adorno) 저서의’의 원어 표현은 of the Adorno's book인데 박영태 번역은 ‘아도르노(Adorno) 등이 편집하여 만든’이다.
에 의하여 향유될 것이다. (벌거벗은 임금님이a 유행한다는 것을 오늘날 누구도 알 수 있다.)
학생이 대학이 입학하면 어떤 기준들을 자신이 적용해야 하는지 그에게는 생각이 없고 그리하여 그는 자신이 발견하는 기준들을 채택한다. 철학과들 (그리고 특히 사회학들) 대부분에서 지성적 기준들이 허풍과 추정된 지식을 (이 모든 교수들은 아주 많이 아는 듯이 보인다) 허용하기 때문에 심지어 머리가 좋은 학생들도 완전히 바뀐다.b 그리고 ‘지배적인’ 철학의 허위 주장에 의하여 화가 난 저 학생들은 철학을 반대하는 학생들이 되는데 그렇게 되는 게 마땅하다. 그 학생들은 그 다음에, 이 주장들이 ‘지배계급’의 주장들이라고 그리고 마르크스에게 영향을 받은 철학이 나을 터이라고 잘못 믿는다. 그러나 현대의 좌파 헛소리는 일반적으로 현대의 우파 헛소리보다 훨씬 더 나쁘다.
신(新)-변증가들은 무엇을 배웠나? 문제들을 해결하여 진리에 더 근접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그들은 배우지 않았다. 자신들의 동료 인간들을 단어들의 바다에 익사시키는 방법을 그들이 배웠을 따름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이 사람들과 승강이하고 싶지 않다: 그들에게는 기준들이 없다.
학생 소요사태 전체 기간 동안에 런던정경대학의 나의 학과에 (철학, 논리학, 과학적 방법 관련) 당시까지 혁명 지향적 학생이 단 한 명 있었음을 알면 당신에게 아마도 흥미로울 것이다. 그 학생에게는 자신의 견해를 제시할 많을 기회가 있어서 불평할 이유가 없었다. 나의 학과 동료교수들과 나는 권위주의적이거나 독단적인 방식으로 가르친 적이 없다. 우리의 학생들은, 중요한 것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동의하지 못하면, 항상 (내가 1946년에 그 학과를 맡은 이래) 강의에 개입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그리고 학생들은 저열하게 취급된 적이 없다.c 우리는 스스로 위대한 사상가들로서 내세운 적이 없다. 나는 누구의 믿음도 바꾸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나는 누차 강조했다: 나는 단지 학생들 앞에
a 역주: ‘벌거벗은 임금님’의 원어 표현은 the emperor's new clothes인데 박영태 번역은 ‘황제(유명한 배우들)의 새로운 의상’이다.
b 역주: 앞의 두 문장의 원문은 When a student comes up to university he has no idea what standards he should apply, and so he adopts the standards he finds. Since the intellectual standards in most departments of Philosophy (and particularly of Sociology) permit pomposity and presumed knowledge (all these people seem to know an awful lot), even good heads are completely turned.인데 박영태 번역은 ‘한 학생이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을 때 어떤 기준에 따라 지원해야 하는지를 모른다면, 그는 스스로 발견하여 채택한 기준에 따라 지원하게 된다. 대부분의 철학과(그리고 특별히 사회과학)에서 지적 수준을 평가하는 기준이 과장과 추정에 불과한 지식까지도 용납하기 때문에(이러한 사람들 모두는 매우 많은 것을 아는 것처럼 보인다), 지적 재능이 뛰어난 머리가 좋은 학생들까지도 완전하게 우쭐거리도록 만들어버린다.’이다.
c 역주: 이 문장의 원문은 and they were never treated condescendingly.인데 박영태 번역은 ‘그렇다고 이들이 상냥하고 친절하게 대우를 받은 것은 아니다.’이다.
문제들과 시험적 해결책을 놓아두었다. 물론 나의 자세를 ㅡ 내가 무엇이 옳다
고 생각하는지 무엇이 틀렸다고 생각하는지 ㅡ 매우 분명히 했다.
그래서 나는 어떤 철학적 교설이나a 새로운 계시를 (한스 알베르트[Hans Albert]를 제외하고, 귀하가 귀하의 서한에서 언급하는 모든 사람과 달리) 제
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문제들과 시험적 해결책을 제시하고 이 시험적 해
결책들은 비판적으로 검토된다.
이로 인하여 나 자신과 귀하가 언급하는 다른 철학자들 사이의 커다란 차
이점이 조금 밝혀진다. 문제들을 해결하는 철학자는 없다. 나는 언급하는 것을 주저하지만 실제로 근본적인 철학적 문제들 전체를 ㅡ 예를 들어 귀납의 문제 ㅡ 내가 풀었다고 나는 믿는다. (이 시험적 해결책들은 ㅡ 늘 그러하듯이 ㅡ 새롭고 풍요로운 문제들을 만들어냈다.)
내가 자격도 없이 그렇게 많은 성공을 거두었을지라도, 내가 문제를 풀었다는 사실은 주로 무시된다. (한스 알베르트는 독일에서 예외적인 훌륭한 인물이다.b)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심지어 문제와 해결책을 면전에서 바라볼 때도, 문제와 해결책을 인식하지 못한다: 이것들은 그들의 관심 분야 밖에 놓여있을 따름이다.
나는 철학자들을 비판하는 것을 꺼린다. 철학자들을 비판하는 것은, 칼을 빼 들고 c 그들이 이미 가라앉고 있는 수렁 속으로 그들 뒤따라 뛰어들어 그들과 함께 침몰하는 것일 따름일 터이다 (나의 친구 칼 멩거[Karl Menger]가 예전에 언급한 바와 같이). (한스 알베르트도 그런 모험을 했지만 아직 가라앉지 않았다.) 그들을 비판하는 대신,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들을 토론함에 의하여 나는 새롭고 더 좋은 기준들을 세우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오만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이 유일하게 올바른 행동 과정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것으로 인하여 왜 내가 마르쿠제나 하버마스(Habermas)에 관하여 한 마디 말도 발표한 적이 없는지가 (1970년 3월 26일자 Times Literary Supplement에 실린 나의 서한까지인데 그 서한의 복사본을 귀하에게 보내고 있다) 설명된다.
실증주의적 논쟁(The Positivist Dispute)에 실린 아도르노와 하버마스의 기본적인 논지는, 사회학에서의 사실적 지식과 가치판단들은 불가분하게 연결된다는 주장이다 (만하임[Mannheim]에 의한). 만하임에 대한 나의 비판에서 [열린사회와 그 적들, II권, 역사주의의 빈곤; 또한 실증주의적 논쟁
a 역주: ‘교설’의 원어는 doctrine인데 박영태 번역은 ‘이설’이다.
b 역주: 이 문장의 원문은 Hans Albert is the great exception in Germany.인데 박영태 번역은 ‘이러한 점을 알고 있는 한스 알베르트는 독일 이외의 지역에서는 대단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다.’이다.
c 역주: ‘칼을 빼들고’의 원어 표현은 sword drawn인데 박영태 번역은 ‘갈 집에서 나온 칼이라고 할 수 있는 (그들을 따라)’이다.
Positivist Dispute>, 11번째 논지 이전 마지막 문단에서 13번째 논지까지로 부터] 나는 이 전체 주제를 다루었는데 그곳에서 나는 만하임의 지식사회학의
허위성이 아니라 오히려 하찮음과 무관성을 증명하려고 시도한다. 나를 반대하
는 사람들은, 내가 제시한 요점들에 대하여 진지한 토론을 제시하는 대신에, 만하임의 논지를 옛 단어들 및 새로운 단어들로 반복할 뿐이다. 분명히 이것은 나의 비판들에 대한 답변이 아니다.
이제 나는 새로운 요점으로 선회하는데 그 요점은 귀하의 철학사전과 (귀하의 기고문에서) 관련되고 그 요점에서 나는 이 사전을 비판한다.
5. 나는 단어들을 가지고 논쟁한 적이 없다. 그러나 ‘실증주의’와 ‘신-실증주의(neo-positivism)’라는 표현들은 하버마스에 의하여 논쟁에 도입되었는데 거의 우스꽝스러운 내력을 지녔다.
(a) 실증주의. 그 표현은 콩트(Comte)에 의하여 도입되었다. 그 표현은 원래 다음과 같은 인식론적 입장을 의미했다. 실증적인, 다시 말해서, 비-가설적인 지식이 있다. 이 실증적인 지식은 출발점으로서 그리고 근거로서 유지되어야 한다.
(b) 도덕적 및 법률적 실증주의. 헤겔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예를 들어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나 자신을 포함하여) ‘합리적인 것은 실재적이다’라는 헤겔의 이론이 실증주의의 한 가지 형태라고 논증했다: 도덕적 및 법률적 가치들은 (예를 들어: 정의[正義: justice]) 실증적 사실들에 (지배적인 관습과 지배적인 법률) 의하여 갈음된다. (하버마스를 아직도 홀리는 것은 바로 이 헤겔의 가치들과 사실들의 융합이다: 하버마스가 사실적인 것으로부터 규범적인 것을 구분하지 못하게 막는 것은 이 실증주의의 잔재들이다.)
가치들과 (규범들)과 사실들의 이 실증주의적 융합은 헤겔적 인식론의 결과이다; 게다가 일관적인 인식론적 실증주의자는 틀림없이 또한 도덕적 및 법률적 실증주의자이다. 내가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이것은
옳음 = 힘
혹은
오늘의 힘 = 옳음을
의미한다;
내가 꼭 마찬가지로a 저항하는 입장은 도덕적 미래주의(futurism)이다:
내일의 힘 = 옳음.
(c) 에른스트 마흐의 실증주의. 마흐와 나중에 버트런드 러셀은 자신들의 저서들 몇몇에서 버클리(Berkeley)의 감각주의(sensationalism)를 수용했다:
실재(esse) = 지각(percipi),
다시 말해서 개략적으로 감각들을 제외하고 존재하는 것은 없다. 그들은 이것을 콩트의 실증주의와 결합시켰다: 지식은 사실들에 대한 기술들로 (그리고 설명들과 가설들로가 아니라) 구성된다.
(d) 비엔나 학파의 ‘논리실증주의(Logical Positivism)’는 마흐와 러셀의 실증주의를 수학에 대한 러셀의 ‘논리주의적’ 수리철학(‘logistic’ philosophy of mathematics)과 결합시켰다. (이것은 당시에 ‘새로운 실증주의’로 지칭되었고 지금도 흔히 그렇게 지칭된다.)
(e) 이제 나의 차례이다.
나는 비엔나에서 (1930-7년) 그리고 영국에서 (1935-6년) 모든 형태의 실증주의에 반대하여 논증했다.
1934년에 나는 과학적 발견의 논리를 출간했다. 이것은 실증주의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러나 비엔나 학파의 중심인물이었던 슐릭(Schlick)과 프랑크(Frank)는 아주 관용적이어서 자신들이 편집 중이던 연재물을 위하여 그 저서를 수용했다.
이 관용의 한 가지 결과가, 그 저서를 일별만 한 사람이 나를 실증주의자로 간주한 것이었다.
이로 인하여 포퍼가 실증주의자라는 널리 믿어지는 허구가 생겼다. 무수한 담론들에서, 주석들에서 혹은 종속절들(從屬節들: subordinate clauses)에서 그 허구는 자행되었다. 내가 실증주의자라는 이 유행을 누군가가 ‘배우자’마자 그리고 그 사람이 공개적으로 이 견해에 몰두하자마자, 그는 그다음에 나중에 실증주의라는 개념을 변경하려고 일반적으로 시도하여 나에게 그 개념을 적용한다. 이것은 때때로, 특히 나의 저서들을 전혀 읽지 않았거나 나의 저서들을 매우 피상적으로만 읽은 사람들에게 이미 발생했다. 이것은 모두 상대적으로
a 역주: ‘꼭 마찬가지로’의 원어 표현은 just as인데 박영태 번역에 누락되었다.
중요하지 않은데 왜냐하면 그것은 단지 단어들의 (‘실증주의’) 문제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단어들에 관하여 논쟁을 벌이지 않는다.
그러나 나의 입장은 실증주의와 더 다를 수 없을 터이다. (유일한 유사점은, 해석학자들이 어떤 자연과학에도 최소한의 관심도 갖지 않는 반면 나는 물리학과 생물학에 매우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특히 나는:
반(反)-귀납주의자;
반(反)-감각주의자;
이론적인 것과 가설적인 것의 우세를 옹호하는 사람;
실재론자이다.
나의 인식론은, 자연과학이 ‘측정들’로 시작하는 게 아니라 훌륭한 개념들로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과학적 진보는 사실들의 축적이나 설명을 본질로 하지 않고 대담하고 혁명적인 개념들을 본질로 하는데 그 개념들은 그다음에 날카롭게 비판되고 검토된다a.
사회적 문제들에 관한 한, 나는 실용적인 접근을 강조한다: 사악한 행위들에 대한, 방지될 수 있는 고통에 대한 그리고 방지될 수 있는 자유의 결핍에 대한 싸움 (지상낙원의 약속들과 대조적으로) 그리고 사회과학들에서 나는 위조 습관에 대항하여 싸운다.
실제로 나의 입장은 가다머(Gadamer)의 입장처럼 (예를 들어) 실증주의와 동떨어져 있다.
이보시오, 자연과학은 실증주의적 방식으로 나아가지 않고 주로 ‘편견들’로써 작용하는 방법을 이용한다는 것을 나는 발견했다 ㅡ 그리고 이것은 실증주의에 대한 나의 비판의 토대이다. 그러나 가능한 곳마다, 자연과학은 새로운 편견들이자 비판될 수 있는b ‘편견들’을 사용하여 그 편견들을 엄격한 비판에 부친다. (이것은 모두 1934년, 과학적 발견의 논리에서 [1959년에 영어로 처음 출판됨] 발견될 수 있다.) 나는 심지어 이런 의미에서 ‘편견’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편견들을 비난했던 베이컨이 자연과학의 방법을 오해했음을 밝혔다; 나의 논문집 추측과 논박, 특히 14쪽에 다시 실린 나의 소책자 지식과 무지의
a 역주: ‘그 개념들은 그다음에 날카롭게 비판되고 검토된다’의 원어 표현은 관계대명사절 계속적 용법으로 which are then sharply criticized and examined인데 박영태 번역은 ‘예리하게 비판되고 검토된 (대담하고 혁명적인 아이디어)’이다.
b 역주: ‘비판될 수 있는’의 원어 표현은 that can be criticized인데 박영태 번역은 ‘비판된’이다.
근원에 관하여(On the Sources of Knowledge and Ignorance), 1960년
참조.
그리하여: 나를 가다머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은 자연과학의 ‘방법’에 대한 나은 이해, 진리에 대한 논리적 이론과 비판적 태도이다.a 그러나 나의 이론은 그의 이론과 꼭 마찬가지로 반(反)-실증주의적이고, 원문적 해석은 (해석학) 정말로 과학적인 방법들을 사용한다는 것을 나는 밝혔다. 게다가 실증주의에 대한 나의 비판은 놀라울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많은 세월이 흐른 후에 실증주의에 대한 나의 비판은 비엔나 학파의 생존한 회원들에 의하여 주로 수용되었다; 그리하여 철학사가인 존 패스모어(John Passmore)는 다음과 같이 서술할 수 있었다: ‘실증주의는 철학적 운동으로서 죽을 수 있게 죽었다.’
나는 단어들과 명칭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新’-)실증주의라는 명칭은 읽기도 전에 비판하는 광범위한 습관의 증상일 뿐이다. 귀하의 철학사전 때문에 나는 이것을 분명히 해야겠다. 그런 유행어들을 통하여 사물들을 토론하는 사람들과 나는 토론하지 않는다.b 위 칼 멩거의 언급을 참조하라. 이런 길은, 단어들에 관한 현학적 말싸움이라는 무한한 늪 속으로 빠져들 따름이다. 나는 나의 시간을 더 잘 이용하기를 희망한다: 더 시급한 문제들을 연구하는 데.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다른 회원들에게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과학적 발견의 논리를 읽는 ㅡ 그리고 반증하는 ㅡ 과제가 벨머[Wellmer] 씨에게 떨어졌다. 그의 손안에서 가다머의 저서 진리와 방법[Truth and Method]은 인식론과 방법론에 정반대가 된다. 그러나 아무것도 서로 맞지 않는다.c)
아도르노와 하버마스는 나의 입장을 비판함에서 전혀 명료하지 않다. 요컨대: 나의 인식론이 실증주의적이기 (그들은 그렇게 믿는다) 때문에 그 인식론 때문에 내가 사회적인 현상을 어쩔 수 없이 옹호한다고 그들은 믿는다. 다시 말해서: 나의 (상상되는) 인식론적 실증주의로 인하여 내가 도덕적 및 법률적 실증주의를 어쩔 수 없이 수용한다. (저것이 헤겔에 대한 나의 비판이었다.) 내
a 역주: 이 문장의 원문 what separates me from Gadamer is a better understanding of the ‘method’ of the natural science, a logical theory of truth and the critical attitude.인데 박영태 번역은 ‘나와 가다머를 분리시키는 내용은 자연과학의 방버, 논리적 진리론, 비판적 태도에 관해 더 잘 이해해야 알 수 있다.’이다.
b 역주: 이 문장의 원문은 I do not have discussions with those people who discuss things in terms of such catchwords.인데 박영태 번역은 ‘나는 그러한 중요 항목들에 대해서 많은 토론을 했던 사람들과 토론을 벌인 적은 없다.’이다.
c 역주: 앞의 두 문장의 원문은 In his hands, Gadamer’s Truth and Method becomes the antithesis of epistemology and methodology. But nothing fits together.인데 박영태 번역은 ‘이 책의 내용은 가다머의 《진리와 방법(Truth and Method)》의 인식론과 방법론에 관한 반대 논제(antithesis)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벨머의 서평과 나의 책의 내용이 서로 일치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이다.
가 진보주의자일지라도 (혁명적이 아닌) 나의 인식론은 지성적 및 과학적 혁명들을 통한 지식의 성장론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불행하게도 간과했다. [새롭고
훌륭한 개념들을 통해서.]
아도르노와 하버마스는 자신들이 무엇을 비판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
리고 가치들과 사실들은 분석적으로 해체 불가능하게 연결된다는 그들 자신의
이론은 헤겔에게서 유래하는 도덕적 및 법률적 실증주의라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소위 ‘실증주의적 논쟁’에 관한 저서의 개요. 이 저서는 깃발을 잘못 달고 항해하고 있다. 게다가: 나의 기고문은 시간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 최초였고 실제로 다른 모든 기고문들을 불러왔는데 토론의 근거가 되려는 의도를 지녔다. 나의 기고문은 명료하고도 정확하게 언명된 27편의 논지들로 구성되었는데 그 논지들을 토론되어야 했고 토론될 수 있었을 터이다. 그러나 나의 논지들은 이 긴 저서에서 언급된 적이 없고 나의 기고문은 그 저서의 중간에서 단어들의 바다에서 익사한다. 나의 논지들과 논증들이 답변되지 않았다는 검토사항도 언급되지 않았다. 그 방법은 (논증들이 결여되는 곳에서, 그 논증들을 단어들의 급류로 대체하라) 성공했고 익사한 나의 논지들과 논증들은 잊혔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다시 말해서, 전체 ‘실증주의적 논쟁’) 매우 조심스러울 뿐이고 자체의 무의미함에서 거의 기괴하다.
전체의 요약. 내가 예리하게 정의된 과학적 문제들을 거의 항상 다룰지라고 반복적인 주제가 나의 모든 저서를 관통한다: 비판적 논증을 선호하여 ㅡ 빈말들에 반대하여 그리고 지성적 불손과 오만에 반대하여 ㅡ 쥘리앙 방다(Julien Benda)가 지칭한 바와 같이 지식인들의 배반에 반대하여 (열린사회와 그 적들의 4판 영어본 및 5판 영어본, II권, 393쪽 참조). 우리가 지성적 솔직함을 이룩하려고 충분히 열심히 노력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 지성인들이 거의 모든 고통에a 대하여 비난을 받아야 한다고 나는 확신한다 (열린사회와 그 적들 참조). (결과적으로 가장 고집불통인 반[反]-지성주의가 아마도 결국 승리할 것이다.)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허위 예언자들에 대하여 다양한 공격을 수없이 하면서 이것을 말해서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예를 들어 야스퍼스와 하이데거에 관하여 몇 마디를 매우 냉혹하고 간략하게 나는 언급했다 (열린사회와 그 적들, 영어본 및 독일어본 II권의 인명 색인 참조).
하버마스 교수와의 토론을 거절하는 나의 이유들을 귀하는 알고 싶을 듯하다.
a 역주: ‘모든 고통’의 원어 표현은 all misery인데 박영태 번역은 ‘모든 지적 궁핍’이다.
여기 나의 이유들이 있다. 그 이유들은 (1) ‘실증주의적 논쟁’에서 포퍼와 아도르노 사이의 논란에 대한 하버마스 교수의a 후기의 초입에서 유래하는 인용구들로 (주목하시라, 1970년 3월 26일까지 나는 아도르노나 하버마스에 관하여 한 마디도 공표한 적이 없다) 그리고 (2) 나의 번역들로 구성된다. 많은 독자들은 원문에 대하여 내가 합당한 번역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들이 옳을 것이다. 나는 합리적으로 경험을 한 번역가지만 아마도 나는 이 과제에 너무 어리석을 것이다. 이것이 어떠하든 나는 최선을 다했다:
원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나는 느낀다
그리고 나의 사랑하는 독일어로 다음에
신성한 원문을 충실하게 번역해야 한다고.
외국어b 단어들의 의미가 명료하다면 (협력[co-operation] = 협동[team work]; 적대[antagonism] = 반대[opposition]) 그 단어들을 회피하는 것이 나의 번역 과제 아니고 오히려 나의 유일한 관심은, 모든 문장의 다소 빈약한 정보적 내용을 가능한 한 분명하게 만드는 것으로 인하여 원문보다 번역이 더 길어질지라도, 가능한 한 그 정보적 내용을 분명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버마스는 아도르노에게 유래하는 인용구로써 시작하는데 그는 아도르노를 칭찬한다 (155쪽).
[하버마스의 논문으로부터c 인용구들] [나의 ‘번역’]
사회적 총체성은, 자체가 통합하는 그리고 사회는 사회적 연결들로
자체가 구성되는 것에 덧붙여 자체의 어떤 구성된다.
생활도 영위하지 않는다.
사회적 총체성은 자체의 개별적 요소들을 이 다양한 연결들은 어떤
통하여 자체를 생산하고 재생산한다. 방식으로 사회를 생산한다.
개인의 생활, 협조 그리고 적대로부터 협조과 적대가 이 연결들
a 역주: ‘하버마스 교수의’의 원어는 his인데 박영태 번역은 ‘아도르노의’이다.
b 역주“ ‘외국어’의 원어는 foreign인데 박영태 번역은 ‘낯선’이다.
c 역주: ‘논문’의 원어는 essay인데 박영태 번역에 누락되었다.
이 총체성을 분리하는 것은 더 이상 사이에서 발견될 것이다;
가능하지 않고, 그리고 (이전에 서술된
바와 같이) 사회는 이
연결들을 본질로 하기
때문에 사회는 이
연결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전체에 대한 통찰 없이 단지 요소의 그러나 그 반대도 또한
기능들을 통해서 요소를 이해하는 것도 참이다: 다른 연결들a 없이
가능하지 않은데 그 전체의 본질은 연결들 하나도 이해될 수 없다.
개별적 실체 자체의 움직임에 본질적으로
존재한다.
체제와 개별적 실체는 상호적이어서 (위의 내용 반복)
그들의 상호성으로 이해될 수 있을 뿐이다.
(여기에 제시된 통합성이라는 교설은 수도 없이 여러 번 표현되었고 매우 빈번히 더 좋았다; 그러나 단어들은 매번 더 장중해졌다.)
이제 하버마스 교수 자신은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아도르노는 범주들을 통하여 사회를 아도르노는 헤겔을 연상시키는
사회를 이해하는데 그 범주들은 용어사용법을 이용한다.
자체가 헤겔의 논리로부터 유래함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는 엄격하게 변증법적인 의미에서 이것은, (원문 그대로) 전체가
사회를 총체성으로서 보는데, 그 의미는 전체의 부분들의 총화
전체는 전체의 부분들의 총화 이상이라는 이상이라고 그가 말하지 않는
서술을 통하여 전체를 유기적으로 이유이다;
이해하는 것을 금지한다;
a 역주: ‘다른 연결들’의 원어는 others인데 박영태 번역은 ‘나와 다른 사람들의 존재를 전제하지
않고서는’이다.
총체성은, 어떤 집합 내부의 모든 원소들을 (원문 그대로) 전체는a
결합함에 의하여 그 집합의 논리적 원소들의 집합이 또한 아니다.
한도들이 결정될 수 있을 터인 집합도
아니다.
기타 등등: 예를 들어 동일한 쪽 더 밑에서 우리는
생활의 사회적 상호관계들의 총체성... 우리는 모두 어떤 방법으로 서로 관련된다...를
발견한다
혹은 157쪽에서
이론들은, 구문론적으로 구속력이 있는 이론들은 비문법적으로
체계 내부에서 우리가 원하는 대로 우리가 언명되어서는 안 된다;
구축할 도식을 규제하고 있다. 그것과 별도로, 당신은
당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할 수 있다.
이 이론들은, 특정 대상 영역의b 실재적 이론들은, 적용될 수 있다면
다양성을 충족시킨다면, 그 영역 안에서 특수한 분야에 적용될 수
사용될 수 있다고 판명된다. 있다.
불행하게도 많은 사회학자들, 철학자들, 기타 등등은c 전통적으로 단순한 것을 복잡하게 그리고 사소한 것을 어렵게 만드는 지독한 게임을 자신들의 합법적인 과제로서 간주한다. 저것이 그들이 수행하도록 배운 것이고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똑같이 할 것을 가르친다. 그런 것에 관하여 실행될 수 있는 것은 절대적으로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파우스트도 사태를 바꿀 수 없었다. 우리가 지닌 바로 그 귀는 지금쯤 불구가 되어서 매우 큰 허풍만 들을 수 있다.
a 역주: ‘전체’의 원어는 the whole인데 박영태 번역에 누락되었다.
b 역주: ‘대상 영역’의 원어 표현은 object domain인데 박영태 번역은 영역이 누락되고 ‘대상의’이다.
c 역주: ‘기타 등등’의 원어 표현은 et al.인데 박영태 번역에 누락되었다.
사람들은 말을 들으면 정말로 믿고,
그들과 함께 가는 생각들이 틀림없이 있지.
이것이 다음과 같은 마술적 지식의 숨겨진 커다란 힘에 대하여 괴테가a 계속 말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당신이 생각을 할 수 없다면,
나에게 윙크만 해줘,
그러면 나는 공짜로 그것을 당신에게 주지.
귀하가 이미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나는 마르크스를 반대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내가 칭찬하는 그의 많은 언급들 가운데는 다음 것이 있다: ‘’변증법은 자체의 신비화된 형태로 독일의 유행이 되었다...‘.
변증법은 아직도 그렇다.
이것이 이 논쟁에 끼어들지 않은 나의 변명이지만 나의 개념들을 가능한 한 간단하게 언명하는 것을 다루기를 선호하는 나의 변명이다. 이것은 종종 쉽지 않다.b
비고 (1984년)
마르크스로부터의 인용문은 (나의 서한의 말미) 자본론(Das Kapital), 2판본, 1872년, 822쪽에서 유래한다. 동일한 쪽 앞에서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나는 거의 30년 전 헤겔의 변증법이 여전히 유행할 때 그 변증법의 신비화 하는 면을 비판했다.’
마르크스는 그것이 아마도 영원히 그렇게 남을 것으로 의심하지 않았다.
a 역주: 주어 ‘괴테’는 박영태 번역에 누락되었다.
b 역주: 이 문장의 원문은 This is often not easy.인데 박영태 번역에 누락되었다.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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