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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명체는 문제해결 중이다 1부 2장 심신 문제에 관한 실재론자의 고찰

이윤진이카루스 2021. 2. 6. 15:34

 

모든 생명체는 문제해결 중이다 I부 2장 심신 문제에 관한 실재론자의 고찰.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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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심신 문제에 관한 실재론자의 고찰*

 

 

내가 기억하는 한, 여기서 나의 강좌는 내가 독일에서 개최한 세 번째 강좌일 따름이다. 나의 강좌는 틀림없이 만하임(Mannheim)에서는 최초이다. 나는 여기에 그렇게 자주 오지 않아서 나는 나의 주제를 신중하게 선택해야 했다.

 

I

 

원래 나는 오늘 나의 최초 저서에 관하여, 인식론에 관한 두 가지 기본적인 문제들의 해결책에 관하여 말할 것을 생각했다: 다시 말해서, 먼저 경험적 과학과 완벽하게 유의미하여 중요한 다른 분야들을 (형이상학과 같은) 사이에 구획설정을 하는 문제; 그리고 두 번째, 귀납의 문제. 그러나 이 문제들에 대한 나의 해결책들은 나의 저서 과학적 발견의 논리(The Logic of Scientific Discovery)에서 익숙하게 발견될 수 있다; 그리고 나에게 몇 가지 새롭고 지금까지 발표되지 않은 결과들이 있을지라도a, 심지어 늙은 나이에도 내가 출발한 쟁점들을 내가 넘어서지 못했다는 인상을 주는 것을 나는 염려했다.

그래서 나는 사회철학에서의 주제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또한 생각했다. 그러나 이 분야에서의 나의 저서 세 권도 또한 독일어로 번역되었고, 그것은 나의 친구 한스 알베르트(Hans Albert) 교수가 자신의 탁월한 저서 비판이성에 관한 논문(Traktat über die kritische Vernunft)에 탁월한 말들을 많이 한 분야이다.

몸과 정신 사이의 상호작용이라는 문제를 선택한 것에 대하여 나에게는 여전히 다른 이유들이 있다. 이 문제는, 아마도 해결될 수 없는 주요 수수께끼를 포함한다. 정말로 그 문제는, 철학의 가장 심오하고 가장 어려운 문제인 현대

 

* 1972년 5월 8일 만하임(Mannheim)에서 이루어진 강좌.

a 역주: 이 절의 원문은 and although I have some new and hitherto unpublished results인데

허형은 번역에 누락되었다.

 

형이상학의a 핵심적인 문제인 철학의 가장 심오하고 가장 어려운 문제를 포함한다. 그리고 그 문제는 우리 인간들에게 최고의 중요성을 띤다. 그 문제는, 현대 실존주의가 인간의 상황으로 부르고 싶어 하는 것의 근간인데 이유인즉 적어도 인간이 완벽하게 의식적이라면 인간은 정신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b. 인간은 정신적인 존재이자 자아이고, 물리학의 법칙들에 종속된 육체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된 정신이다. 이것의 거의 너무 자명해서 표현할 수 없어서, 실존주의자들은, 설명을 통하여 합리적인 것을 말하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고 이 자명함의 배후에 ㅡ 나는, 이 압도적인 자명함의 배후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ㅡ 놓인 문제들을 수용했다.

그러나 심신 관계라는 문제는 진지한 문제이다. 그 문제는 인간의 자유라는 문제를 포함하는데, 인간의 자유라는 문제는 정치를 포함하여 모든 면에서 한 가지 근본적인 문제이다; 그리고 그 문제는, 물리적 세계이자 물리적 우주로서 내가 나중에 ‘세계 1’로서 기술한 세계에서 인간의 위치라는 문제를 포함한다. 인간의 의식적인 과정들의 세계를 나는 ‘세계 2’로 지칭하겠고, 인간 정신의 객관적 창조물의 세계를 나는 ‘세계 3’으로 부르겠다. 이것에 관해서는 나중에 더 많이 말하겠다.

여기서 나는, 내가 이 주제를 선택한 또 다른 이유와 제목에서 나 자신을 실재론자로서 이미 제시한 또 다른 이유를 간략하게만 언급하고 싶다. 독일에서 나의 연구를 알고 있는 많은 철학자들과 사회학자들은 소문만 듣고 나를 ‘실증주의자’로서 기술하는데 왜냐하면 나의 최초 저서가 ㅡ 사실상 비엔나 학파(Vienna Circle)의 실증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한 ㅡ 이 동일한 비엔나 학파에 의하여 출판된 일련의 저서들에서 출판되었기 때문이다. 저 맥락에서, ‘실증주의자’라는 것은 모든 철학적 사념들을 반대하는 사람과 특히 실재론에 반대하는 사람이 되는 것에 해당한다. 내가 오늘의 주제를 선택하게 된 한 가지 이유는, 바로 자체의 제목에서 비-실증주의적인 주제를 내가 선택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형이상학’에 관하여 부언하겠다. 헤겔, 마르크스, 엥겔스 그리고 레닌은 진화에 적대적인 철학을 지적하기 위해 이 단어를 사용하는데 그 철학은 세상을 역동적인 것으로 보는 대신에 세상을 정태적(情態的: static)으로서 본다. 이 용어사용법은 항상 매우 의문스러운데 왜냐하면 변화라는 문제와 멈추지 않는

 

a 역주: ‘형이상학’의 원어는 metaphysics인데 허형은 번역은 ‘순수철학’이다.

b 역주: ‘이유인즉 적어도 인간이 완벽하게 의식적이라면 인간은 정신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의 원어 표현은 for man is a spiritual being, at least as long as he is fully conscious인데 허형은 번역은 ‘인간이라는 존재는, 적어도 그 사람이 깨어있는 동안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이다.

 

세상의 진화가 가장 오래된 소크라테스 이전 형이상학의a 문제들 중 한 가지

문제였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정태적 세상을 믿지 않고 변화하고 있는 세상을 믿는다; 그리고 내가 아는 한, 저 정태적 의미에서의 형이상학자들이 있은 이래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리하여 나는 나 자신을, 진화 이론을 수용하는 그리고 내가 아마도 부언해야 하는바, 우리의 지식 성장이라는 역동적인 문제를 과학철학에 도입한 형이상학적 실재론자라고 생각한다.

이 도입부에 마지막 요점으로서, 나 자신을 간단하고 일반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에 나는 가장 큰 가치를 부여한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의 언급들이 매우 쉽게 이해될 수 없다. 가장 어려운 부분은, 세계 1, 세계 2 그리고 특히 세계 3을 구분하는 것이다. 나는 이 난제로써 시작하겠다. 그런 다음에 추가적인 모든 것은 비교적 쉬울 것이다.

나는 물리적 사건들의 세계를 ‘세계 1’로 지칭하고 정신적 사건들의 세계를 ‘세계 2’로 부른다. 저것은 비교적 이해하기 쉽다. 난제는 내가 ‘세계 3’으로 지칭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가장 넓은 의미에서 ‘세계 3’은 인간 정신의 산물들로 구성되는 세계이다; 좁은 의미에서 그 세계는 허위 이론들을 포함하는 이론들이 세계이고, 다양한 이론들이 지닌 진리와 허위성과 관련되는 문제를 포함하는 과학적 문제들로 구성되는 세계이다. 넓은 의미에서 모차르트의 오페라들과 협주곡들과 같은 문학적이고 예술적인 작품들은 세계 3에 속한다. 그러나 여러분이 원한다면, 예술작품들의 세계는 세계 4로 지칭될 수도 있다. 저것은 언어용법적 문제이다.

중요한 것은, 심리학적인 세계 2의 문제들로부터 과학적 이론들의 세계 3을 구분하는 것이다. 그 구분은 베르나르트 볼차노(Bernard Bolzano)에 의하여 그리고 나중에 고틀로프 프레게(Gottlob Frege)에 의하여 매우 명백하게 실행되었다; 그러나 내가 설명할 것과 같이, 나는 그들 두 명 모두보다 더 멀리 나아간다.

볼차노는 ‘본질적인 서술들’의b 세계를 말했다. 이것에 의하여 그는, 우리가 명제를 생각할 때 발생하는 심리학적 사고과정들과 대조적으로 논리적 의미에서의 명제들을 의미했다. 프레게는 명제의 내용을 말했는데, 그 내용에 의하여 그도 역시 논리적 의미에서의 명제를 의미했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두 명의 수학자가 3 x 4 = 13이라는 잘못된 계산을 한다. 서로 매우 다를 과정들인

세계 2에서의 두 가지 사고과정들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3 x 4 = 13’은,

 

a 역주: ‘형이상학’의 원어는 metaphysics인데 허형은 번역은 ‘철학’이다.

b 역주: ‘본질적인 서술들’의 원어 표현은 statements in themselves'인데 허형은 번역은 ‘자명한 진술’이다.

 

가지 (논리적으로 허위인) 내용일 따름으로 한 가지 본질적인 (허위인) 명제일 따름이다. 이 명제는 본질적으로a 세계 2가 아니라 세계 3에 속한다. 우리는 그 명제에 대하여, 그 명제가 ‘3 x 4 = 12’라는 명제와 논리적으로 모순이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3 x 4 = 13이라는 이 명제가 세계 3에 속한다고 말할 수도 있는데 왜냐하면 많은 훌륭한 수학자들이 그 명제를 믿을지라도 그 명제는 객관적으로 항상 허위이고 항상 허위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세계 2와 세계 3을 구분할 수 있는데 세계 2에서는 주관적인 사고과정들이 발견될 수 있고 세계 3에서는 객관적인 명제들이나 객관적인 사고과정들이 발견될 수 있다.

이것들이 본질적으로 볼차노와 프레게의 견해들이다. 세계 3 안으로 본질적으로 참인 명제들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허위인 명제들, 그리고 문제들논증들도 받아들임에 의하여 나는 두 사람보다 멀리 나아간다.

여기서 나는, 세계 3에 관하여 특별히 두 가지 것들을 말하고 싶다: 먼저, 그 세계가 실재적이라는 것; 그리고 두 번째, 그 세계는 부분적으로 자율적이라는 것으로 그 세계에는 적어도 세계 2와 독립적인 내부 구조가 있다는 것. 먼저 그 세계의 실재성에 관하여 말하자. 모든 실재에 대한 표준은 세계 1의 물리적 대상들이다: 돌, 나무, 동물. 게다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세계 1의 대상들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을 ‘실재적’으로 지칭할 것을 나는 제안한다.

이제 나는, 세계 3에 속하는 과학이론들이 세계 1의 사물들에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가장 간단한 보기들은 고층빌딩들의 건설에서 발견될 것이다. 고층건물은 물리적 대상이다; 고층건물은 세계 1에 속한다. 그러나 고층건물은 계획에 따라서 건축되고 그 계획은 이론들에 의하여 그리고 많은 문제들에 의하여 영향을 받는다.

고층건물 건축에서 역할을 할 수 있는 계획들과 이론들 및 문제들이, 건축가들과 같은 사람들의 의식에 ㅡ 그리하여 세계 2에 ㅡ 먼저 영향을 미치고 나중에만 건설근로자들의 물리적 움직임들의 세계에 그리하여 물리적인 굴착기들과 돌과 벽돌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나는 수용한다. 이것은 가장 빈번한 경우이다: 세계 3은 통상적으로, 정신적 세계 2를 통하여 세계 1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아마도 세계 3이 세계 1에 직접적으로가 아니라 세계 2를 통해서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대부분 그럴 뿐만 아니라 늘 그렇다. 아무튼 우리의 사례는, 세계 1뿐만 아니라 세계 2와 세계 3이라는 세 가지 세계들 모두

 

a 역주: ‘본질적으로’의 원어 표현은 in itself인데 허형은 번역은 ‘자체는’이다.

 

의 실재성을 보여준다.

고층빌딩이나 교량이 붕괴한다면 ㅡ 불행하게도 가끔 발생하는 사건 ㅡ 그것은, 잘못된 주관적 믿음인 생각에서 세계 2의 오류 때문일 수 있지만 때때로 거짓 객관적 이론인 세계 3에서의 오류 때문일 수도 있다.

물론 세계 3의 실재성을 부인하는 철학자들이 있다: 그들은, 우리의 사고들이 그리하여 세계 2가 정말로 존재하지만 본질적으로 내용들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 철학자들은 이것들을 단지 정신적 추상들로서, 두뇌의 환상들로서 간주한다.

여기서 내가 옹호할 견해는, 세계 3이 틀림없이 세계 2의 유전적a 산물이지만 세계 3에는 부분적으로 자율적인 내부b 구조가 있다는 것이다.

몇 가지 훌륭한 사례들이 수학에서 유래한다. 일련의 자연수 1, 2, 3, 4...등등은 우리 언어의 산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1, 2 그리고 많이’만 아는 원시적 언어들이 있고 여러분이 5까지만 셀 수 있는 다른 언어들이 있다.

자연수의 수열은 (일반적인 인간의 언어처럼) 인간의 위대한 발명품이다. 그러나 아무도 소수들(素數들: prime numbers)을 발명하지 않았다: 소수들은 셈하기의 수열에서 발견되었다.

나는 이 중요한 요점을 다소 더 전개해야겠다.

탁월한 독일 수학자 크로네커(Kronecker)는 수학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연수는 하느님에 의하여 만들어졌다 ㅡ 다른 모든 것은 인간의 작품이다. 다른 한편으로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연수들은 인간의 작품이다; 자연수들은 인간 언어의 부산물이고 계속되는 셈하기를 발명한 부산물이다. 덧셈은, 곱셈이 그러하듯이 또한 인간의 발명품이다.

그러나 덧셈과 곱셈의 법칙들은 (예를 들어, 결합법칙[associative laws]) 인간의 발명품이 아니다. 그 법칙들은, 인간 발명품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물들이고 그 법칙들은 발견되었다. 그리고 소수들(素數들: prime numbers)의 ㅡ 단지 스스로 그리고 1로 나누어지는 가분수들(可分數들: divisible numbers)의 산물인 ㅡ 존재도 역시 발견인데 의심할 바 없이 아주 최근의 발견이다. 소수들은, 모든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 숫자들과 그 숫자들의 특별한 고유성들을 연구한 사람들에 의하여 ㅡ 실제적인 수학자들이 의하여 ㅡ 자연수들의 수열들에서 발견되었다.

역사적으로 소수들은 자연수와 함께 발명되었다고 언급될 것이다; 그러나 소수들은 틀림없이 수백 년 나중에 발견되기 이전에, 인간 의식의 세계 2 안

 

a 역주: ‘유전적’의 원어는 genetic인데 허형은 번역에 누락되었다.

b 역주: ‘내부’의 원어는 internal인데 허형은 번역은 ‘자체(구조)’이다.

 

에 존재하지 않았다. 소수들은 자연수들과 함께, 즉각적으로a 세계 3 안에 존재했다고 우리는 말할 수 있다: 그리하여 소수들은 발견되기 이전에 세계 3의 자율적인 부분에 존재했다. 소수들이 발견된 이후에, 소수들은 세계 2와 (작은 무리의 사람들에게만 일지라도) 세계 3 모두에 존재했다.

세계 3 안에서의 소수들의 존재가, 소수들의 발견으로 이어진 세계 2 내부의 사고 과정들의 원인들 중 한 가지 원인이었다고 ㅡ 에베레스트산의 존재가, 인도의 국토 탐사처가 그 산을 발견하도록 영향을 미친 원인이었던 것과 꼭 마찬가지도 ㅡ 우리는 말할 수 있고 정말로 그렇게 말해야 한다. 이로 인하여 세계 3의 자율적인 부분이 세계 2에 인과적b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진다. 그러나 세계 3의 자율적인 부분은 그리하여 또한 세계 1에 작용한다. 자신의 동료들에게 소수들이 있다고 설명한 최초의 수학자는 틀림없이 그렇게 하기 위하여 자신의 혀를 이용했다. 그러나 우리의 혀들은, 우리 신체의 다른 부분들과 같이, 세계 1에 속한다.

나중 수학자들은 소수들을 더 가깝게 연구하기 시작했고 그런 연구들은 아직 완료되지 않았다. 수 이론에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많다. 이 문제들도 또한 발견되었다; 그 문제들은 세계 3의 자율적인 부분에 속한다.

고대 수학자들은 예를 들어, 우리가 점점 더 큰 숫자들의 수열로 나아감에 따라서 소수들이 일반적으로 점점 더 희소하게 발생하거나 밀접성이 점점 떨어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소수들의 수열들은 2, 3, 5, 7로 시작된다; 2와 3은 서로 매우 근접하여 그 숫자들 사이에 어떤 자연수도 끼지 않는 유일한 소수들의 쌍이다. 그러나 서로 매우 근접하여 단지 하나의 다른 숫자에 의해서만 분리되는 소수들의 쌍들이 많다 ㅡ 예를 들어, 5와 7, 11과 13, 17과 19, 29와 31. 이 소수들은 쌍둥이 소수들로 지칭된다.

이제 나는, 소수들과 관련하여 세계 3에서 발견된 몇 가지 문제들을 언급하겠다.

첫 번째 문제. 우리가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소수들이 점점 드물어지면서, 소수들이 점진적으로 사라지는 지점이 오는가? 혹은 다시 말해서, 그 소수 뒤에 합성수들만 있는 가장 큰 소수가 있는가, 없는가?

그 문제는 유클리드 이전에 이미 제기되었을 것이지만 아무튼 그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유클리드였다. 유클리드는, 가장 큰 소수와 같은 것은 없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그리하여 그는, 자연수들의 수열에 끝이 없는 것과 꼭 마찬

 

a 역주: ‘즉각적으로’의 원어는 immediately인데 허형은 번역에 누락되었다.

b 역주: ‘인과적’의 원어는 causal인데 허형은 번역은 ‘임의의’이다.

 

가지로, 소수들의 수열에도 끝이 없음을 밝혔다. 자연수들의 수열에 대하여 증

거는 간단하다. 자연수들의 수열에 끝이 있다고 그리고 숫자 α가 가장 큰 자연수라고 전제하자. 그 경우에 우리가 숫자 α + 1을 구축만 하면, 이것으로 인하여 우리의 전제가 틀렸음이 밝혀진다. 여기서 우리는, 가장 큰 자연수가 있다는 전제에 대하여 단순한 귀류법(歸謬法: reductio ad absurdum)을 경험한다. 유클리드는, 가장 큰 소수가 있다는 전제에 대하여 다소 더 복잡한 귀류법을 창안했다. 이 놀랍게 아름다운 유클리드의 증명은,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정리를 확립한다: 소수들의 수열은 무한하다는 것. 이 정리는 세계 3에 속한다. 유클리드의 상상적 연구는 세계 2에 속한다; 그리고 그 연구는, 실제로 가장 큰 소수는 없다는 세계 3 사실에 인과적으로 의존한다.

유클리드는 그 증명을, 자신의 유명한 저서 원론(The Elements)에 서술했다. 그리하여 세계 3 정리는 파피루스에 적혀서 그 정리는 인간 유클리드의 세계 2를 통하여 세계 1을 인과적으로 수정했다. 유클리드의 아름다운 증명은 이제, 수 이론에 관한 모든 인쇄된 저서에 실린다. 그러나 저서는 기계들로 인쇄된다. 이 기계들은, 저서들뿐만 아니라, 분명히 세계 1에 속하는 물리적 대상들이다. 다시 우리는, 세계 3의 자율적인 부분에서 시작하여 세계 2를 통하여 세계 1에 인과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인과적 효과를 경험한다.

유사하지만 내가 알기에 여전히 미해결인 또 다른 문제는, 가장 큰 쌍둥이 소수가 있는지 이다. 가장 큰 쌍둥이 소수 쌍이 없다는 것을 어떤 수학자도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러나 내가 인식하는 한, 이 전제에 대한 증거는 없다. 그것은 미해결된 세계 3의 문제이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모든 수학자들에게 인과적 영향을 미친다,

저서들은 세계 1에 속한다고 나는 방금 말했다. 그러나 물론, 서적들의 내용은 세계 3에 속한다. 유클리드의 저서 원론(Elements)의 두 가지 다른 판본들 모두는. 그 판본들이 다른 한, 세계 1에 속한다; 그러나 그 판본들의 내용이 동일한 한, 그 판본들은 세계 3에서 속한다.

저서들, 도서관들, 나의 강좌 원고는 그리하여 세계 1에 그리고 세계 3에 속한다. 청중들 중에 누가 독일어를 ㅡ 아마도 나는 내가 사용하는 다소 비엔나적인 독일어를 지칭해야겠다 ㅡ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는 단지 세계 1에 속하는 면모인 나의 강좌의 청각적 면모만 듣는다. 그러나 독일어를 이해하여 나의 논증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세계 3에 속하는 나의 강좌의 면모만 중요하다.

나의 강좌의 내용을 이해하려는 여러분의 노력은 세계 2에 속한다. 여러분이 노력한다면, 여러분은 세계 3에 속하는 대상에 집중한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세계 2는 세계 3에 의하여 인과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그렇다면 세계 1과 세계 3 양쪽에 속하는 대상들이 있고, 세계 2와 세계 3 양쪽에 속하는 대상들이 있다. 나의 주요 논지는, 세계 3속하는 대상들이 ㅡ 예를 들어, 수학자가 오늘 연구하고 있는 그리고 그 수학자가 내일 발견할 아직 발견되지 않은 증명 ㅡ 또한 있다는 것이다. 그 증명은 내일 세계 2와 세계 3 양쪽 모두에 속할 것이고, 그 증명이 서술된다면 세계1에도 또한 속할 것이다. (그러나 그 증명은 이미 오늘 세계 2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증명은 서술되기 전에 세계 1에 이미 속한다고 우리는 전제할 것이다. 이유인즉 세계 2에서의 사고과정들이 아마도 두뇌 속의 사건들과 그리하여 세계 1 안에서의 물리적 사건들과 연계되기 때문이다.

 

II

 

이로 인하여 나는 심신 문제로 온다.

심신 문제는, 세계 2 안에서 우리의 사고과정들이 세계 1 안에서의 두뇌 작용들과 연계되는지와 어떻게 연계되는지의 문제이다.

해결하려는 주요 시도들은 다음과 같다.

 

1 심신 상호작용: 세계 2와 세계 1은 상호작용하여 누군가 책을 읽거나

강좌를 들을 때, 독서자나 청취자의 사고들의 세계에 작용하는 두뇌

사건들이 발생한다; 그리고 반대로 수학자가 증명을 이해할 때, 그의

세계 2는 그의 두뇌에 그리하여 세계 1에 작용한다. 그래서 이것이,

심신 상호작용의 논지이다.

2 심신 병행론: 세계 2 안에서의 사고과정 각각은, 세계 1 안의 두뇌

사건과 평행으로 달린다.

3 순수 물리주의 혹은 철학적 행동주의: 단지 세계 하나만 있는데 즉,

세계 1이고 그 세계 안에는 인간과 동물에 의한 움직임들인 인간 및

동물의 행동이 있다. 이 견해에서 내가 세계 2로 지칭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을 따름이고 내가 세계 3으로 지칭하는 것은 틀림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4 순수 심리주의(mentalism) 혹은 유심론(唯心論: spiritualism): 단지

세계 2만 존재하고 세계 1은 단지 나의 관념이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우리에게는 네 가지 시도된 해결책들이 있다: (1) 심신 상호작용; (2) 심신 병행론; (3) 순수 물리주의 혹은 철학적 행동주의; (4) 순수 심리주의.

이 시도된 해결책들 중에서 첫 번째이자 가장 오래된 것이 진지하게 고려될 자격이 있는 유일한 시도된 해결책이라고 나는 논증할 터이다.

세 번째 및 네 번째 시도된 해결책들을 간략하게 바라보자. 두 가지 해결책들 모두가, 일종의 문제 회피적 철학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전형적인 시도들이라고 나는 주장한다. 심신 관계의 문제는, 우리가 신체나 정신의 존재를 부인하자마자, 사라져서 하찮게 된다.

이 두 가지 해결책들의 논리적 구조가 그렇게 문제 회피적인 철학임을 나는 상세하게 밝힐 수 있을 터이다. 순수 물리학주의나 행동주의에는 특히 영국과 미국 및 호주 철학자들 가운데 현재 많은 지지자들이 있을지라도, 상세한 비판에 나의 시간을 쓸 정도로 충분히 진지하게 나는 그들을 고려할 수 없다.

세계 3의 존재에 대한 나의 토론에는 주로, 나의 견해로 세계 2의 존재를 세계 3과 세계 1 사이의 중간 세계로서 설정하는 논증들이 포함된다.

순수 유심론에도 많은 것이 동일하게 언급될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물질적인 본질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왜냐하면 물질에는 고도로 복잡하고 이미 부분적으로 설명된 구조가 있기 때문이다. (철학에서 본질은, 설명을 하지만 설명을 요구하지도 않고 설명할 수도 없는 필수적인 속성들을 분석되지 않은 채 지닌 것이다.) 물질이 본질은 아닐지라도, 물질적인 물체들은, 우리가 실재적인 존재적으로서 간주하는 물체들에 대한 최고의 사례들이다.

해결책들 3과 4에 대해서는 그만큼만 하자. 두 번째 시도된 해결책인 심신 병행론에 대해서는 상황이 다르다.

심신 병행론은 신체와 정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심지어 아마도 세계 3의 존재도 인정할 터이다. 심신 문제의 관점에서 병행론의 주요 동기는, 병행론으로 인하여 세상이 인과적으로 자립적인 것으로서 혹은 더 정확하게 두 가지 평행한 인과적으로 자립적인 체계들로 구성된 것으로서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여하한 물리학자에게도 특히 중요한데 왜냐하면 물리적 사건들이 정신적 사건들에 의존할 것이라는 관념이 물리학자들에 아주 혐오스럽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런 인과적 효과의 모형을 만들어내는 것은, 다시 말해서, 그런 모형을 매우 상세하게 상상하는 것은 어렵다.

이것이, 사람들이 심신 상호작용을 거부하도록 영향을 미친 실제적인 이유이다.

이제 나는 반론들로 온다. 두뇌에서 작용들이 없다면 정신적 과정들이 없다는 것을 나는 기꺼이 인정한다. 그러나 병행론에 대하여 말하면, 병행적인 정신적 작용들을 유발하지 않으면 물리적 사건들이 발생하지 않는 뇌의 한 부분이 있다고 우리는 또한 말해야 할 터이다.

더욱이 우리는, 두뇌의 저 부분의 모든 특징적인 사건들과 세계 2 안의 모든 특징적인 사건들 사이에는 1-대-1 관계들이 있다고 말해야 할 터이다.

그러나 그런 1-대-1 관계가 있는 듯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두뇌의 부분들을 제거할 수 있고 다른 부분들이 그 부분들의 기능을 떠맡는다. 기능들의 이전 가능성은 일반적으로 살아있는 생명체들 대부분의 특징인 (그리고 생명체에게서 대부분의 현상들) 듯이 보인다. 그리고 세계 1에서 몇 가지 두뇌 작용들이 없다면 세계 2에서 사고과정들이 없음을 내가 기꺼이 인정할지라도, 실제적인 병행론은 발생하지 않음을 모든 것이 암시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상황은 오히려, 세계 3에서의 사고 내용과 세계 1에서 ㅡ 가령, 저서나 강좌에서 ㅡ 그 내용의 구체화 사이의 관계와 같다. 여기서 나의 강좌는, 그 강좌의 전달이 빠르든 느리든 목소리가 높든 부드럽든, 세계 3 의미에서 동일하다. 그 강좌는 또한 또 다른 언어로 상당히 정확하게 번역될 수 있다. 그리고 저서가 다양한 판본들로 매우 다르게 인쇄될 것이다. 물론 다양한 인쇄본들과 번역본들 모두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1-대-1 대응은 없고 그리하여 실제적인 병행론도 없다.

이제 나는 나의 가장 중요한 논증으로 온다. 우리의 물리적 세계인 세계 1이, 세계 3 이론들의 결과로서 ㅡ 예를 들어, 원자이론이나 헤르츠의 전자파들 (다시 말해서, 달 로켓들의 통제를 위하여 그렇게 중요한 무선전송) ㅡ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고려하라. 우리가 이런 방식으로 세계 1을 그리고 특히 세계 1 안에서의 변화들을 바라본다면, 물리적 세계가 세계 2 및 세계 3과 인과적으로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보기에 아주 분명하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말해서 세계 1의 인과적 폐쇄를 구조하려는 시도로 인하여, 최초이자 가장 오래된 시도된 해결책인 심신 상호작용이 병행론에 (혹은 심지어 순수 물리주의에) 의하여 대체되는 주요 이유가 발생한다.

이 시도는 내가 보기에 비현실적이다. 그리고 예전의 물리학도이자 물리학 교사로서 물리학이 인과적으로 자립적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기가 왜 그렇게 어려운지를 내가 잘 알 수 있을지라도, 이 이념은 내가 보기에 사실들에 의하여 반증되는 듯하다.

물리적 세계의 인과적 폐쇄라는 이념은, 역학이 물리학의 전체이던 시절에서 유래한다. 이 이념은, 전자기파 이론을 추가할 필요성에 의하여 이미 반증된다.

우리는, 전자기력과 중력 사이의 혹은 물리학과 핵의 힘들에 관한 두 가지 분야들 사이의 관련성에 관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우리에게는 이 관련성들에 관한 역학적 ‘모형’이 없다; 그러나 이 다양한 영역들이 상호작용의 관계에 있다는 것은 ㅡ 예를 들어 태양에 있는 중력압력이, 반대로 수소원자들을 헬륨 원자들로 바꾸는 핵이 지닌 힘들의 작용을 촉발한다는 것 ㅡ 의심될 수 없다. 그러나 다양한 힘들이 ㅡ 중력, 전자기력, 핵의 힘들 ㅡ 서로 직접적으로 환원될 수 있다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인과적 폐쇄라는 이념이 단일 이론을 발견하려는 수많은 시도들을 초래했을지라도, 이 영역들 중 어떤 영역도 자립적이지 않다. 아인슈타인은 1919년부터 1955년까지 이것을 연구했다. 이런 환경에서, 물리학의 인과적 폐쇄에 독단적으로 매달리는 것은 내가 보기에 틀렸다.

요약한다: 세계 3에 속하는 우리의 이론들이 세계 2를 통하여 세계 1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세계 1의 인과적 폐쇄라는 논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그렇다면 심신 상호작용론에 반대하는 반론은 남지 않는다.

 

III

 

나의 다음 요점은 다음과 같다. 세계 3의 존재 및 세계 2에서의 사고과정들을 통하여 우리가 세계 3 대상들을 파악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인간의 자의식과 자각심과 인간의 정신을 동물의 정신과 구별되는 것으로서 설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물질은 본질이 아니라 특별히 복잡한 구조를 지닌다고 나는 이미 말했는데 그 복잡한 구조는 적어도 부분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 동일한 방식으로, 인간의 정신인 인간의 자아도 본질이 아니라 특별히 복잡한 구조이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정신은 의식으로만 구성되지 않는다: 인간의 정신에는 세계 3 이론에 뿌리를 둔 지식이 항상 동반된다.

동물들에게도 또한 과거의 경험들과 얽힌 기대들이 있다. 내가 확신하건대 여러분은, 또 다른 쥐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쥐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 ‘내가 흰색 실험복을 입은 나의 주인을 아주 잘 훈련을 시켜서 내가 이 조작기를 누를 때마다 나에게 먹이를 가져온다.’ 조건반사 이론보다 이 이야기가 훨씬 진실에 가깝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조건반사 이론을 나는 신뢰하지 않는다. 파블로프의 개에게는 틀림없이 반사들이 있지만, 그 개는 조건화되지 않는다: 그 개는 발견들을 수행한다. 불행하게도 나는 여기서 이 문제를 검토할 수 없다. 아무튼 동물들에게는 시간 의식뿐만 아니라 의향적 지식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동물들에게 시간에 대한 ㅡ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ㅡ 이론이 없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자의식에 관하여, 나에게 적어도 개괄적으로 재구축될 수 있는 생활 역사가 있다는 것을 내가 아는 것이 필수적이다. 어떤 사람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을 수 있는 병리적 상태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자기 자신의 정체에 대한 지식은 당연한 문제만이 아니라고 귀결된다. 자의식이나 자아를 발전시키는 타고난 의향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에게 자아가 있다는 것을 우리가 배우려면,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들과의 사회적 상호작용이 필요하고 무엇보다도 우리에게는 언어언어로 표현된 이론들을 배울 필요가 있다.

동물들에게도 특징이나 개성이 있을 수 있는데 그 특징이나 개성은 부분적으로 의향적이고a 아마도 또한 부분적으로 습득된다. 그러나 동물이 자체의 정체를 의식한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것들 가운데서 여기서 유관한 것은, 우리가 잠들기 이전과 깨어난 이후에 동일하다는 이론과 (다시 말해서, 물리적 신체들의 유전자 동일성[genidentity] 이론b) 우리 모두에게 신체가 있다는 이론이다; 그리고 덧붙여, 우리의 의식은 자주 꿈에 의하여 중단되지만 우리의 신체는 동일하게 남아서 최근 며칠 동안에 지녔던 사고들을 우리가 불러올 수 있고 우리의 깨어있는 상태들을 기억할 수 있다는 이론. 이것은, 동물들도 회상한다는 의미에서 단순한 회상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다.c 완벽하게 발전된 자의식을 위하여,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우리 자신을 이름으로 언급할 수 있는 언어가 틀림없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린이들은 자신들이 ‘나(I)’라는 단어로써 자신들을 언급하기 전에 자신들의 이름들을 말하는 것을 배우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론들의 세계 3과 의식적 과정들로 구성되는 인간의 세계 2 사이에는 예외적으로 중요한 상호작용이 있다; 그래서 나의 논지는, 인간들의 특징인 자의식은 이 상호작용을 통해서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IV

 

내가 여기서 개괄한 이론은 나의 지식론 및 나의 과학이론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a 역주: ‘의향적’의 원어는 dispositional인데 허형은 번역은 ‘타고난’이다.

b 역주: 이 부분의 원어 표현은 that is, the theory of the genidentity of physical bodies인데 허헝은 번역은 ‘시간이 흘러도 정체성을 유지한다는 이론이 (있다)’이다.

c 역주: 이 문장의 원문은 This is much more than mere recollection in the sense that animals too recollect.인데 허형은 번역은 ‘이것은 단순한 기억 저장과는 다르다. 그것은 동물도 할 수 있다.’이다.

 

나의 지식이론의 기초를 이루는 것은, 문제들가설들이나 이론들이나 추

측들을 통하여 그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시도들이 모든 관찰에 앞선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뿐만 아니라 논리적으로, 세상에 대한 우리의 경험에 이론들이

먼저 ㅡ 우리의 개인적인 역사와 인간의 역사 모두에서 먼저 ㅡ 온다.

인간 이전의 수준에서 이론에 상응하는 것은 의향들과 기대들이다. 동물의 영역에는, 마술과 의식(儀式: ritual)의 밀접한 선례들이 있다. 우리 인간에게 추가되는 것은 이야기-말하기(story-telling)라는 언어 형태이다.

인간 언어에서 참신성은a, 그 언어가 기술하고 논증할b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동물들 가운데도 내부 상태들의 표현들인, 경고들과 위협들과 같은 신호들이 있다.

유별나게 인간적인 언어의 발명은 발생한 사건을 보고하는 것이나 이야기하는 것과 관련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보고서들에는 희망 사항들이 자주 스며들게 된다. 이야기들은 발화되기 시작하고c, 이 이야기들이 흔히 서로 모순이 되기 때문에 진실의 문제가 ㅡ 이야기나 보고서가 (예를 들어, 사냥에 관한) 사실인지 거짓인지의 문제 ㅡ 발생한다. 이야기가 참인지 단순히 희망이 섞인 허세인지의 (어부들의 이야기들에서처럼) 문제와 동시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진리 문제가 대두한다. 동시에, 동화 말하기나 설화 말하기가 가능해진다. 그런 동화들이나 설화들 혹은 신화들은 또한 원래 이론적 설명들이다: 그리스인들 가운데서 과학의 시초들은 호머(Homer)와 헤시오드(Hesiod)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술의 시초들인 선사시대의 사냥과 동물들의 동굴 벽화들은 마술적인 이야기들이다; 이집트와 아시리아의 예술은 주로, 이야기들이나 당시 사건들에 대한 예화들을 담고 있다. 이것이, 세계 3이 발전하기 시작한 방식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인간 지식의 이론적 특징에 대하여 내가 강조하여 나는 인식론에서 세계 3에 도달했다. 우리의 인간성이 세계 3의 존재에 근거한다고 나는 정말로 생각하며, 우리의 인간성이 객관적인 세계 3 및 객관적인 진리 창조라는 개념과 신화 창조라는 개념과 관련해서만 설명될 수 있다고 나는 정말로 생각한다.

 

a 역주: ‘참신성’의 원어는 novelty인데 허형은 번역은 ‘최고의 장점’이다.

b 역주: ‘기술하고 논증하다’의 원어 표현은 describe and argue인데 허형은 번역은 ‘묘사나 주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c 역주: ‘이야기들은 발화되기 시작하고’의 원어 표현은 Stories start to be told인데 허형은 번역은 ‘사람들은 보고하는 대신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이다.

 

 

요약

 

나의 강좌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시도했다.

 

1 나는 심신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두뇌와

의식이 상호간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2 그러나 나는 그 문제를, 그 문제가 통상적으로 제시되는 방식과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제시했다.

3 나는 부분적으로 자율적이지만 상호작용하는 세 가지 세계들을

강조한다: 물리적인 세계 1, 의식적 과정의 세계 2, 그리고 인간 정신의

산물들의 세계 3.

4 특히 물리주의나 행동주의에 반대하여, 세계 2만 유일하게 세계 1에

미치는 세계 3의 영향력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세계 2가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밝히려고 시도했다.

5 나는, 물리적 세계 1이 정신적 세계 2에 의하여 이용된다는 것을

밝히려고 노력했다. 이것은, 물리학자들이 수용하기를 매우 주저하는

논지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이라는 것을 나는 밝히려고

노력했다.

6 나는 특히, 세계 2가 세계 3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거나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에 세계 3의 존재가 없으면 인간의 자의식이 이해될 수

없다는 것을 밝히려고 노력했다. 자의식은 세계 3에 머문다.

7 그렇다면 유전적으로 인간의 세계 2는, 세계 3이 세계 2의 산물인 것만큼

세계 3의 산물이다. 혹은 또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여: 우리는, 우리의

산물들이 낳은 산물인데 우리 모두가 기여하는 문명의 산물이다.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