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고대 및 중세
1장
서막
지리 및 기후 변화. 두개학(頭蓋學: craniology)의 증거. 신석기시대 및 청동기시대의 소작농. 아리안족의 도래. 유럽의 인종 혼합. 고대 에게해의 문화. 에게해의 문화가 바빌론 및 이집트에 진 빚. 동양과 서양의 차이점.
지난 3000년 동안 유럽의 지리학적 형태나 기후조건에는 변화가 없었다. 여기저기서 바다가 땅에 근접했거나 땅이 바다를 잠식했다. 여기저기서 항구에는 토사물이 쌓이고 강줄기는 바뀌었으며 언덕이 주저앉았다. 그러나 역사의 큰 흐름들은, 이와 같은 사소한 변화들에 의하여 변하지 않았고 변할 수도 없었다. 호메로스 시대의 유럽을 물리적으로 개관하면 오늘날의 유럽과 실제로 동일했다.
이것이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지리학적 증거에 따르면, 긴 시간에 걸친 세부적인 단계들에 의하여 이룩되었을지라도, 세계역사의 초기에 유럽으로서 기술되는 지역은 규모에서 두드러진 변화를 겪었다. 기후는, 현재 우리가 경험하는 것보다 당시 훨씬 더 추운 동시에 훨씬 더 더웠다. 한 때 순록 떼가 프랑스와 영국에서 돌아다녔다: 또 다른 때에는 서부유럽의 삼림에서 사냥꾼이 코끼리, 하마 그리고 검치호랑이(sabre-toothed tiger)를 ㅡ 지금은 세계의 열대지역이나 아열대지역에서만 발견될 수 있는 동물들 ㅡ 뒤쫓았다. 스칸디나비아반도, 영국제도 그리고 북부 독일의 큰 지역이 거대한 얼음판으로 뒤덮인 시기가 있었는데 아일랜드 바다와 독일 바다 및 영국해협을 인간이 건너 아프리카나 중국으로 노나 돛을 사용하지 않고 아마도 걸어 들어갔을 것이다. 아마도 30만 년 동안 펼쳐진 인간 역사의 이 긴 기간에, 유럽의 지층이 현재의 경계선에서 1백마일 서쪽으로 돌출했던 때와 발트해가 민물 호수이던 그리고 대서양이 지중해까지 뻗치지 않았고 지중해가 흑해와 연결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지질학적 시대의 한 시점에서 유럽의 전체 부분은 우리가 지금 경험하는 유럽과 아주 다른 모습을 띠고 있었던 듯하다. 에게해의 섬들은, 코끼리와 코뿔소 및 마스터돈 공룡(mastodon)이 살던 땅에선 언덕들이었다. 헝가리 평원은 카스피해까지 펼쳐진 소금기가 있는 황무지였다; 하르츠(Harz) 산맥은 섬이었다; 영국은 쪼개져 몇 조각으로 얼음이 언 황량한 바다에 떠있었다. 로마제국의 근거지는 여행자가 없는 바다 바닥 아래 숨어있었다. 후기중신세(upper miocene)까지 계속된 많은 시험이 끝난 후에야 겨우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바의 주요 유럽 선형들이 결정되었다.
유럽의 새로운 구조는 아주 중요하다. 수로는 남쪽의 지중해까지 그리고 북쪽의 발트해까지 열렸고, 다르다넬스 해협(Dardanelles)과 마르마라(Marmora) 및 보스포러스 해협을 통한 에게해와 흑해의 바닷길 연결로 인하여 유럽에 온화한 기후가 생겨서 활동과 상업에 가장 호의적인 생리학적 자극을 제공할 정도로 냉온의 차이가 적었다. 바다는 무한한 음식물의 보고였다. 유럽대륙이 긴 내륙바다에 의하여 관통되자 상호통신이 고취되어 무역과 사회가 발전하는 결과들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 적어도 프리퍄치 습지(Pripet marshes) 서쪽에 놓여있는 유럽의 저 부분에서 거대한 대륙들의 핵심에 퍼져있던 사회적 및 정치적 정체가 풀렸다. 그러나 자연의 은혜는 불공평하게 분배된다. 러시아의 거대한 평야 지대는 남쪽 변두리 지역들을 제외하고 거대한 온대 바다의 완화성 영향력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서 서부 이웃 지역들이 받는 장점들을 향유할 수 없다. 러시아 평원의 춥고 어두운 겨울은, 활동과 신중성 및 비판 정신에 해롭다. 그런 기후에서 인간은 쉽게, 편협한 지역적 편견과 체력을 앗아가는 일상사의 희생물이 된다. 같은 지리적 특징의 암울함이 혹독한 기후와 결합되어 정신에 영향을 미친다. 도처에 퍼진 체념과 순응의 정신으로 인하여 능동적 행위가 위축되고 상황처리 능력이 없어진다.
유럽의 서부에서 인간은 기후와 지리 모두에서 의하여 도움을 받았다. 구릉 지대와 산등성이들은 평탄한 지역들의 단조로움을 덜어준다. 상대적으로 말해서, 깨끗한 바다가 항상 이웃에 있다. 북부 독일을 제외하고 단조로운 긴 평야가 없고 여기서 그 평야는 상대적으로 좁고 한 면은 발트해에 인접한다. 유럽의 서부 전체에서 자연은, 인종을 새롭게 하고 격려하도록 계산된 모든 형태의 다양성을 제공하는 데 열중하는 듯이 보인다. 언덕과 계곡은 서로 섞여있다; 산등성이들은 좁은 통로들이 가로지르고 사람의 통과를 막을 정도로 결코 높지 않다. 평야에는 물이 풍부하다. 스칸디나비아 북부에는 겨울 추위가 극단적인데 항상 바다가 있고 항상 산들이 있다. 그리스나 스페인에는 여름 기온이 아주 높은데 인도에서처럼 결코 거의 참지 못할 정도가 아니다. 모든 것이 인간의 이동, 인종의 상호혼합 그리고 사고와 활동의 능동적인 습관 발달을 쉽게 만든다.
역사시대 오래 전에 인간은 유럽에 출현했다. 어떤 사람들은 인간이 아프리카에서 왔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은 러시아 남부에서 왔다고, 다시 다른 사람들은 인류의 원래 거주지가 아시아 고원지대에서 발견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인간의 시작과 인간의 초기 이동 과정이 암흑에 싸여있을지라도, 인간의 신체적 속성들에 대한 것과 인간이 통과한 문명의 단계들에 대한 것 및 인간이 처음 역사의 빛 속으로 출현했을 때 유럽에 존재하던 인종 유형들에 대한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거대한 얼음장들이 유럽대륙에서 물러가고 기후가 인간이라는 종에게 견딜만하게 되었던 신석기시대 초기에, 유럽인들은 세 가지 주요 유형들인 지중해 유형과 북유럽 유형 및 알프스 유형으로 나누어졌던 듯이 보인다; 지중해 유형과 북유럽 유형은 머리가 길다는 중요한 세부사항에서 서로 일치하지만 북유럽 유형은 아마도 기후의 영향을 받아서 지중해 유형보다 더 밝은색이고 느리게 성숙하고 더 근육이 많다. 이 두 가지 머리가 긴 유형들과 뚜렷이 대조되어 한 유형은 현대 베르베르족(Berber)을 닮고, 다른 한 유형은 현대 스웨덴인을 닮은 것이 머리가 둥글고 땅딸보들로 때때로 발칸반도 서부 알프스에서처럼 키가 크고 검은색이며 스위스와 프랑스 알프스에서처럼 다른 곳에서는 키가 작고 땅딸보인데 동양에서 유럽으로 들어온 듯이 보인다. 그들은 북유럽과 남유럽과 나누는 산맥 관문들에 밀집하여 발견될 수 있다는 사실로부터 민족학자들에게는 알프스인으로서 알려진다. 그러나 이 인종들이, 인종 의식이나 인종 배타성에 대하여 발전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고 생각될 수 없다. 알프스인들은 북유럽인들과, 북유럽인들은 지중해인들과 자유롭게 섞였다. 거의 도처에서 중간 유형들에 대한 혹은 초기 시대로부터의 생존자들에 대한 증거를 우리는 발견한다. 예를 들어 영국제도에서 “인구는 머리가 길고, 특징에서 두 가지 갈라진 인종들인데 스코틀랜드 고원지대 여러 지방들에서의 키가 크고 가늘고 검은 인종과 웨일즈 남부와 아일랜드의 여러 지방들에서의 키가 작고 거의 지중해 유형들로 거의 모든 곳에서 ‘중간 유형’이다.” 핀란드에서 아시아적인 넓은 머리 인종들은 북유럽 혈통인 머리통이 긴 인종과 뒤섞였다.
한 마디로 유럽이 다양한 풍광들의 복합체인 것과 같이, 다양한 물리적 유형들의 잡동사니 인종도 그렇다.
빙하시대가 끝나고 유럽의 수 마일이 서리가 낀 황무지로부터 복원되자 남부의 사냥꾼들이 사냥물을 찾아 부싯돌 화살과 창을 지니고 두터운 너도밤나무와 상수리나무 숲을 통과하여 북쪽으로 유랑하며 왔다. 호모사피엔스(Homosapiens)는 자연과의 긴 투쟁을 시작했다. 위험과 결핍으로 인하여 호모사피엔스의 재능이 연마되었고 그에게 신뢰감이 생겼다. 그는 추위에 대비하여 실을 잣고 직조하며 옷을 만드는 법을 배웠다. 점차 호모사피엔스는 돌을 청동기로 바꾸고 청동기를 철로 바꾸면서 숲에 사는 야생동물들에 대하여 무기를 완성했다.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발명품들인 돛과 바퀴와 동물의 가축화는 이 기록이 없는 기간에 속한다. 점차 사냥꾼은 가축을 기르고 농사짓는 기법을 습득하여 역사의 여명 수천 년 앞서서 농사꾼들이 유럽에 정착했고 유럽 땅에서 수백 년 동안 변함없는 계절의 순환을 선호하면서 파종하고 밭을 갈고 수확하고 가축인 소와 염소 그리고 양과 돼지를 길렀다. 그들은 자신들이 혹시 활용할 수 있는 재능을 이용하여 실을 잣고 건물을 지었으며 조각을 하고 도자기를 제작했고 종교가 거의 보편적이었기 때문에, 무서운 신이든 자비로운 신이든 많은 형태들로 자연을 숭배했다. 산재한 오두막들과 마을들의 이 수동적 문명 속으로 기원전 2천년 어느 시점에 새롭고 걱정스러운 힘이 주입되었다. 여기 아시아 밖에서 어떤 지속적인 물결들이나 비말들에 의해서인지 우리는 모르지만, 야생마들을 인간의 욕구에 길들이고 철을 사용하여 휘두르는 칼의 확실한 비결을 발견한 사람들이 이동했다. 이 두 가지 우세한 이점들을 지니고 새로운 인종이나 인종들의 혼혈이 지배적인 권위자로서 청동기 시대의 선사시대 유럽에 군림해서 새롭고 폭넓은 발전의 흥미진진한 원인이 되었다. 새로운 이주자들이 유럽대륙의 오래된 정착성 인구들을 말살했다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시골 사람들의 정신을 홀리는 원시적 신앙들을 지워버릴 수 있었다는 것도 아니다. 저 인구, 저 신앙들이 이날까지 지속되지만 새로운 종족적 귀족계급의 더 고급스럽고 더 활기찬 문화에 의하여 변화되었고 뒤덮였는데 그 문화는 그렇게 멀리 왔고 그렇게 빠르게 이동했다. 이 새로운 민족들이, 그들의 원래 고향에서 살면서 그들의 원래 언어를 사용할 때, 자신들을 지칭한 것이나 다른 민족들에 의하여 지칭된 것은 수수께끼인데 이유인즉 역사시대에 그들은 다른 인종들로 분리되어서 그로 인하여 공통적인 근원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페르시아인들 및 인도인들과 공통적인 언어 족보를 공유하기 때문에, 그들은 언어학자들에 의하여 인도-유럽인들이나 아리아인들로 불린다. 이 정복적인 침입자들이 상고시대 유럽의 청동기를 사용하는 민족들과 섞여서 유럽역사라는 짐을 짊어진 인종들인 그리스인들과 라틴인들 및 켈트족 그리고 튜톤족과 슬라브족이 시작된다. 인종의 순수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유럽은 에너지가 넘치는 잡종의 대륙이다.
특정 지역들에서 그리고 매우 두드러진 에게해 서쪽에서, 아리안족의 침입 오래전에 문명은 사치와 기술의 높은 점을 찍었다. 크레타와 키클라데스 제도, 미케네와 트로아드(Troad)에서 발굴된 보물들은, 인간의 손이 시대가 경과하면서 재주에서 얻은 것이 없음을 충분히 보여준다. 이다(Ida) 산의 눈 덮인 산마루가 굽어보는 저 길고 아름다운 크레타는 유럽의 섬들 가운데서 이집트에 가장 가까운데 그곳에서는, 에게해의 바닷물이 닫는 육지들을 통하거나 서쪽으로 시실리의 해안까지 자체의 영향력을 넓고 멀리 펼친 번창하는 문명이 거의 2천년 동안 (기원전 3000-1400년) 있었다.
크노소스에 있는 미노스 궁전의 폐허는, 저 먼 시대에 확보될 편리함과 사치에 대하여 놀라운 증거를 제공한다. 난방과 하수 체계 그리고 심지어 벽화에 묘사된 것과 같은 여성들의 의상들 중 몇몇에는 완전히 현대적인 분위기가 있다. 미노스 사치의 근원은 불분명하지 않다. 크노소스(Cnossos)는 섬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남쪽 도로의 북쪽 끝에 위치하여 동양의 물품을 받아서 분배했다. 저 먼 시대에 이 도시는, 수십만의 주민을 포용했을 것인데 나중에 베니스에 양도된 바와 같이 유럽의 교역 경제에서 동일한 역할을 수행하여 동서양 사이의 교역 중심지로서 활동했다. 그 후 파멸이 갑자기 그 도시를 덮쳤다. 그곳은 불탔고 약탈을 당했으며 마을은 파괴되었다. 미노스 왕조와 미노스의 권력은 역사에서 사라지고 그리스인들 사이에 반쯤 마술적인 재주와 사치 및 잔인성에 대한 기억을 남겼다.
미노스의 글자에 대한 실마리는 발견되지 않았고 이 시대에 속하는 어떤 서적도 그리스인들의 정복으로 인한 파멸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그 신비로운 민족은 여성과 남성 및 어린이를 숭배했는데 그들에 대하여 십자가가 종교적 상징이었던 듯이 보이고, 우리에게 말할 수 없고 금발의 그리스인들에게 말할 수 없었을 듯이 보이는데 그리스인들은 미케네 및 다른 곳에서 그들의 성과 궁전에서 둥지를 틀고 정착했다. 단절은 절대적인 듯이 보인다. 그러나 기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귀중한 것이 이 탁월한 인종으로부터 후손에게 계승되었다고 제안되었다. 미노스의 보석들에는 고귀한 장인 정신이 깃들고 저 먼 시대의 예술작품의 조각들은 그리스 시대에 발굴되었는데, 그리스가 예술적인 업적을 이루는 가장 위대한 시기에 그리스의 미학적 의식을 고취하는 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이 풍요로운 미노스 문화의 비밀은, 유프라테스와 나일 강 유역의 충적토 계곡들에 있는 더 오래되고 더 발전한 문명과 그 문명의 접촉에서 발견될 수 있다. 발전된 도시 생활과 사원들과 사제들의 단체들과 기록된 자료들 및 서신과 학교와 법전들 그리고 물질적 욕구의 시급성에서 벗어나서 학습을 추구하는 데 헌신하는 유한계급에 대한 증거를 우리가 발견하는 곳은 여기이다. 유럽전역이 아직 미개하고 문자가 없는 반면, 기하학과 천문학 그리고 기술공학과 토지탐사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수메르인들에 의하여 배양되었다. 여기서 또한 기원전 3000여 년 전, 칼데아(Chaldees)의 우르(Ur) 지역에서 최근의 탐사가 밝힌 바와 같이 인류는 보석 세공과 조각 그리고 장롱 제작 기술을 완벽한 수준까지 이룩했다. 수메르인들로부터 빛줄기가 히타이트인들과 크레타인들, 블레셋인들과 이집트인들 그리고 궁극적으로 많은 다양한 통로들을 통하여 아리아인 그리스인들에게까지 모든 방향으로 퍼졌다. 그러나 서양이 동양으로부터 빌려왔을지라도, 커다란 차이점으로 인하여 메소포타미아 및 이집트에서 정착된 성직자 사회 및 신정체제의 정권들이 전사들과 성직자들 및 해적들과 모험가들로 구성된 자유로운 세계로부터 분리되었는데 그 자유로운 세계는 호메로스의 서사시들에 묘사되고 그 자유로운 세계로부터, 야성적인 그리스 씨족들이 도시 생활을 시작하면서, 두드러진 유럽 세계의 문명이 적당한 과정을 거쳐 발전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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