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혈액 학자, 칼 란트슈타이너/조선일보

이윤진이카루스 2021. 6. 22.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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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피 수혈 악몽 끝냈다… 11억명 생명 구한 유대인 의과학자

신문A34면 1단 기사입력 2021.06.22. 오전 3:06 최종수정 2021.06.22. 오전 7:25 기사원문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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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희의 新유대인 이야기] [13] 혈액형 발견한 의과학자 오스트리아 출신 란트슈타이너

1900년 카를 란트슈타이너는 서로 다른 피를 섞으면 적혈구가 뭉쳐 덩어리를 이루는 현상을 발견, 사람의 핏속에는 항체 반응을 일으키는 서로 다른 항원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를 근거로 1901년 혈액형을 A형, B형, C형(후에 O형으로 변경)으로 분류했고, 1년 뒤 그의 제자들이 AB형도 찾아냈다. 란트슈타이너가 혈액형을 발견하기 전에는 환자가 너무 많은 피를 흘려 죽는 경우가 많았다. 의사들은 환자를 살리기 위해 송아지나 염소 피를 수혈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고통 속에 죽어갔다. 란트슈타이너가 목숨을 건 ‘도박 수혈’로부터 인류를 구한 것이다. 그의 발견이 1955년 이후 약 11억명의 목숨을 구했다는 추산도 있다. 프랑스 화가 쥘 아들레르의 그림 ‘염소 피의 수혈’(1892), 파리 의학사 박물관 소장. /AFP
인류의 생명을 제일 많이 구한 의과학자는 누구일까? 과학자들의 업적을 소개하는 한 웹사이트는 생명을 많이 구한 의사(醫師)이자 의학을 연구하는 과학자인 ‘의과학자(醫科學者)’ 분야의 1위로 혈액형을 발견해 안전한 수혈을 가능하게 한 카를 란트슈타이너를 꼽았다. 그가 구한 생명은 1955년 이래 약 11억명 정도로 추산되었다.

카를 란트슈타이너가 혈액형 분류를 규명해주기 전까지 수혈은 죽음과의 도박이었다. 과거에는 환자가 과다 출혈로 죽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임신부의 22%가 출산 시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 과거 의사들은 이런 위급 환자에게 마지막 희망의 하나로 다른 사람의 피나 송아지, 염소 피를 수혈하기도 했는데, 많은 사람이 시커먼 오줌을 싸며 고통 속에 죽어갔다. 부검해보면 핏줄 속에 피가 뭉쳐있었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혈액형이라는 개념이 없이 수혈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재수 좋으면 살고, 재수 없으면 죽었다. 이러한 목숨을 건 도박 수혈로부터 인류를 구한 의과학자가 카를 란트슈타이너다. 그는 초인적인 의과학자였다. 그가 연구한 의학 분야만 6가지이다. 생화학, 면역학, 병리해부학, 바이러스학, 혈청학, 알레르기학. 카를은 깨어있는 시간의 90%를 연구에 몰입했다.

화학·면역학 등 6가지 분야서 연구

카를은 여섯 살 때 언론인이었던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홀어머니의 보살핌 속에 외동아들로 자랐다. 그는 17세에 빈 의대에 입학해 23세인 1891년에 졸업했다. 유대인 가운데 특히 의사나 의학 연구자가 많은 이유는 그들이 신봉하는 ‘세상을 고친다’는 뜻의 ‘티쿤 올람’ 사상에 인간의 병든 몸을 고치는 것도 티쿤 올람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카를은 유대인답게 의대생 시절부터 어떤 삶이 더 값진 것인지, 어떤 삶이 하느님 보시기에 합당한 삶인지에 대해 숙고를 많이 했다. 곧 환자를 돌보는 의사의 삶과 의학 연구를 통해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의과학자의 삶 중 어떤 삶이 더 값진 것인지를 놓고 고민했다. 카를은 후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그는 의대 시절부터 서로 다른 의학 분야가 접목될 때 위대한 발견이 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졸업 후에도 여러 의학 분야를 공부해 이를 융합하는 과정에서 의미 있는 결실을 맺어야겠다고 마음먹고 평생 공부를 목표로 정했다. 카를은 화학이야말로 의학에 꼭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했다. 그는 에른스트 루트비히 실험실에서 박사 후 연구를 시작해 골수암에 대해 연구하다 더 많은 가르침을 받기 위해 생화학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3명의 스승 밑에서 돌아가면서 배우는 방법을 택했다. 그는 취리히의 한취(Hantzsch) 연구소, 뷔르츠부르크의 에밀 피셔(Emil Fischer) 연구소, 뮌헨의 밤버거(E Bamberger) 실험실에서 수년간 배움에 정진했다. 그는 이 기간에 스승들과 공저로 많은 논문을 발표했다.

오스트리아 지폐 모델이었던 란트슈타이너 - 오스트리아 1000실링 지폐의 카를 란트슈타이너. 1997년 처음 발행해 오스트리아가 유로를 쓰기 시작한 2002년까지 통용했다.
A형·B형‐ 사람마다 다른 혈액 분류

그 뒤 카를은 1년간 외과의사 밑에서 공부했다. 그 무렵 현미경을 들여다보던 의과학자들은 혈액 속에서 세균들이 죽는 모습을 관찰했다. 도대체 혈액 속 무엇이 세균을 죽이는 것일까? 의과학자들은 이 무엇에 ‘항체’라는 이름을 붙였다. 카를의 배움 욕구는 항체를 다루는 면역학으로 넓혀졌다. 그는 1896년 빈 대학 위생연구소 세균학자 막스 폰 그루버 박사의 조수가 되어, 3년간 면역 메커니즘과 항체의 특성에 대해 연구했다. 이후 카를은 원인 모르게 죽어간 많은 환자들의 사망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병리해부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1898년 그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세균학자 안톤 바이크셀바움 빈 의대 병리해부학과 교수를 찾아가 무급 조교로 일하겠으니 받아달라고 간청하여 승낙을 받아냈다. 의대 졸업 동기들은 임상 의사로 돈을 잘 벌고 있을 시기에 카를은 무급으로 연구에 정진하기로 한 것이다. 1899년 카를은 병리해부학 교수 자격증을 취득한 뒤에도 10년간 바이크셀바움 교수의 조교로 일했다. 카를은 대학에 출강하며 외국 의사들에게 병리해부학 강의를 하는 한편 법의학자로 매일 사체를 해부하며 사망 원인을 분석하는 일에 매달렸다. 병리학 강의가 생계를 위한 일이었다면 사체 해부는 연구를 위한 일이었다. 그는 10년 동안 3639구에 달하는 사체를 부검했다.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1930년 무렵 카를 란트슈타이너. 그가 1901년에 발표한 혈액형 분류가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노벨상 수상자로 결정되기까지 29년이 걸렸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카를은 수혈하다 이물질이 뭉쳐 쇼크나 황달을 일으키는 원인을 밝히기 위해 혈액에 대해 연구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의사들은 사람들의 피는 모두 같다고 생각했다. 1900년 그는 두 종류의 혈청이 더해지면 어떨 때 적혈구가 뭉쳐 덩어리를 이루는 응집 현상을 발견했다. 그는 응집 현상이 혈액의 종류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보았다. 인간은 외부 물질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단백질인 항체를 갖고 있는데, 인간의 혈액에 항체 반응을 일으키는 두 가지 종류의 항원이 있다고 그는 보았다. 어떤 사람은 A만, 또 어떤 사람은 B만, 항원이 하나도 없는 사람도 있었다. 수혈은 특정 혈액형끼리만 가능하고, 그렇지 않은 혈액형끼리 수혈하면 항체가 ‘이물질’로 간주해 위험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는 이를 근거로 1901년에 혈액형을 A형, B형, C형(후에 O형으로 변경)으로 분류했고, 1년 뒤 그의 제자들이 두 항원을 모두 갖고 있는 AB형도 찾아냈다. 1914년 리처드 루이손에 의해 혈액에 구연산나트륨을 첨가하면 응고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알려져 이후 혈액이 보관되어 필요할 때 수혈할 수 있게 되었다.

1차 대전 이후 카를은 오스트리아를 떠나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병원에서 일하다 1923년 뉴욕 록펠러 의학연구소의 초청으로 처음으로 개인 연구실을 배정받아 면역과 알레르기를 연구했다. 카를이 1901년에 발표한 혈액형 분류는 그 중요성을 인정받는 데 29년이나 걸려 1930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카를은 노벨상을 받은 이후에도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아 1940년에 Rh-형 혈액이 있음을 밝혀내어 안전한 수혈 방법을 완성하고 3년 후 눈을 감았다. 세계인의 절반 이상이 수혈을 받는다고 하니 그가 이룬 공로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코로나 시대 의과학자 지원 필요

우리나라 의대는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모이는 곳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우수한 의사들은 많이 배출되지만 의료 산업의 미래를 짊어질 의과학자들은 극히 적은 실정이다. 환자를 돌보는 임상의에게 중요한 덕목은 성실성이지만 의과학자에게는 이에 더해 미래 의료 환경에 대한 통찰력과 소명의식이 함께 요구된다. 그들이 백신 개발, 암과 치매 정복 등 새로운 의료 기술을 개발할 인재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의사는 수만명을 살리지만, 의과학자는 수억명을 살릴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의사는 안정된 삶이 보장되지만 의과학자는 경제적 불편과 불투명한 미래와 맞서야 한다. 그들에게 헌신만을 요구할 게 아니라 의과학자 양성을 위해 필요한 제도적 보완과 그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의료 벤처 생태계의 활성화가 절실하다.

다양한 업적 남긴 ‘수퍼 닥터’… 폐렴 구균 첫 발견하고

소아마비가 세균 아닌 바이러스성 질병인 것 규명해내

카를 란트슈타이너는 혈액형 분류로 수많은 생명을 살렸을 뿐 아니라 다양한 연구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이루었다. 그는 유대인답게 무엇을 하든 항상 동료들과 함께했다. 점심에는 팀원들을 모아놓고 각자의 연구 결과를 공유하면서 토론을 즐겼고 밤에는 그의 집에 모여 같이 논문을 썼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그는 동료와 함께 폐렴 구균을 발견하고, 매독의 면역학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으며, 알레르기 반응이 면역계 반응이라는 증거를 최초로 발견했으며, 소아마비가 세균이 아닌 바이러스성 질병임을 최초로 밝혀냈다,

그리고 카를은 364편의 값진 논문을 통해 “혈청학, 바이러스학, 면역학, 알레르기학' 등 4가지 의학 분야의 기초를 닦았을 뿐 아니라 3600여 사체 부검을 통해 병리해부학을 한층 더 발전시켰다. 그는 기초의학 거의 전 분야를 섭렵한 마지막 의과학자였다.

[홍익희 전 세종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