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시

자아를 찾아서

이윤진이카루스 2021. 7. 6.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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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를 찾아서

 

식물이 아니라 움직이는 동물인데

마늘과 쑥을 지겹게 먹고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신화에서

사람이 된다는 게 어렵지.

 

사람,

동물들이 모두 수행하는 행위만으로 산다고?

지렁이처럼

먹이를 찾아서 앞뒤로 움직이면서.

 

인간의 역사는

불가능을 극복한 역사여서

에베레스트에서 얼음덩어리가 되고

최초로 북극해에 가서 돌아오지 못했지.

 

지혜를 찾아 비잔티움으로 떠났던 시인은

푸른 고등어가 뛰노는 지중해에서

삶의 근거를 찾았던가?

구도의 길을 찾아 해외로 돌아다녔던 각산 스님은

고향에 돌아오니 길이 보였다는데

깨어있되 고요하고 고요하되 깨어있음(소소영영[昭昭靈靈])으로

왜 고요해야 하고,

무엇에 대하여 어떻게 깨어있으라는 말인지

스님은 다시 길을 떠나야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는 것보다 어렵다고,

지옥으로 향하는 길은 찬사로 가득하다지만

누가 고독한 길을 가는가?

 

시간에 녹아버리는 본능의 세계에서

본능을 넘어서려면 시간을 벗어나면 될 일,

얼마나 두렵고 외로운 길인가.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이라고

지혜로운 자가 설파했다고 생존에만 머물면

목숨을 내놓고 싸웠던 이들은 허망하게 살았던가.

 

DNA도 변하지만 아주 느려

느긋이 돌아다니며 살면

늘그막에 틀림없이 찾아오는 충격이라니.

동물 유전자도 조작하는데

인간의 유전자도 바꾸면

삶의 지평이 확대되겠지.

어떻게?

 

너와 나, 만물은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라고

그래서 그 과정을 시간과 공간의 틀에 넣어

생각하고 추적하면 영원한 것은 없어

다시 돌아왔는데 귀향 역시 미완성이어서

또 길을 떠나야지.

어디로?

 

자유롭고 싶은가,

초월하려는 마음인가?

과정이라고,

기억하라

결정되지 않은 과정일 뿐임을.

 

 

 

후기:

그러나 우리는 심지어 우리의 유전에 근거한 생명의 원리도 초월할 수 있다고 나는 주장한다. 비판적 방법에 의하여 우리는 이것을 이룩한다. 우리는 심지어 벌들의 언어도 조금 이해할 수 있다. 인정되는 바와 같이, 이 이해는 추측성이고 초보적이다. 그러나 거의 모든 이해는 추측성이고, 새로운 언어를 이해하는 것은 항상 시작부터 초보적이다.

우리가 문화적으로 습득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우리의 타고난 이론구조들을 우리가 초월하도록 만드는 것은, 과학의 방법이자 비판적 토론의 방법이다. 이 방법으로 인하여 우리의 감각들을 초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세상을 정체가 파악될 수 있는 물체들과 그 물체들의 속성들로 구성된 우주로서 간주하는 성향 또한 우리는 초월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 성향은 우리 내부에 부분적으로 내재한다.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 이래 세상은 과정들로 구성된다고, 그리고 사물들은 표면적으로만 사물들이라고 우리에게 알려준 혁명가들이 있었다: 실제로 사물들은 과정들이다. 이로 인하여, 이론구조가 우리의 규약적 언어에 뿐만 아니라 우리의 유전학에도 인간의 본성 자체로 지칭될 것에 뿌리를 두었을지라도 비판적 사고가 어떻게 이론구조에 도전해서 그 구조를 초월할 수 있는지가 밝혀진다.

칼 포퍼, ‘이론구조의 신화, 과학과 합리성을 옹호하여’, 루틀리쥐 출판사, 1996, 58-59

 

Yet I assert that it is possible for us to transcend even our genetically based physiology. This we do by the critical method. We can understand even a bit of the language of the bees. Admittedly, this understanding is conjectural and rudimentary. But almost all understanding is conjectural, and the deciphering of a new language is always rudimentary to start with.

It is the method of science, the method of critical discussion, which makes it possible for us to transcend not only our culturally acquired but even our inborn frameworks. This method had made us transcend not only our senses but also our partly innate tendency to regard the world as a universe of identifiable things and their properties. Even since Heraclitus, there have been revolutionaries who have told us that the world consists of processes, and that things are things only in appearance: in reality they are processes. This shows how critical thought can challenge and transcend a framework even if it is rooted not only in our conventional language but in our genetics in what may be called human nature itself.

'The Myth of the Framework, In defence of Science and Rationality', Karl Popper, Routledge, 1966, p5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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