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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구조의 신화
이것을 믿는 사람들과 이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토론에 관한 공통적인 토대가 없고 그들의 의견들을 고려하여 그들은 필연적으로 틀림없이 서로 비웃는다.
플라톤
I
우리 시대의 지성적 삶을 더 방해하는 한 가지 양상은, 비합리주의가 그렇게 널리 옹호되는 정도와 비합리주의적 교설들이 당연시되는 정도이다. 현대 비합리주의의 한 가지 요소는 상대주의이고 (진리는 우리가 지닌 지식적 배경에 상대적이라는 교설인데 그 배경은 어떤 정도로든 우리가 사고할 수 있는 이론구조를 결정하는 것으로 예상된다: 진리는 한 가지 이론구조에서 또 다른 이론구조로 변할 것이라는 교설) 특히 다양한 문화들이나 세대들이나 역사적 기간들 사이에서 ㅡ 심지어 과학 안에서, 심지어 물리학 안에서 ㅡ 상호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교설이다. 이 논문에서 나는 상대주의라는 문제를 토론한다. 그 문제 배후에는 내가 ‘이론구조의 신화’로 지칭하는 것이 놓여있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나는 이 신화를 설명하여 비판하고, 그 신화를 옹호하여 사용된 논증들에 관하여 또한 언급한다.
상대주의를 주창하는 사람들은, 비현실적으로 높은 상호 이해의 기준들을
우리 앞에 제시한다. 그리고 우리가 저 기준들을 충족시키지 못할 때, 그들은
1965년에 처음으로 마련된 논문에 근거하는데 그 논문의 한 판본이 철학의 양위: 철학과 공공 이익(The Abdication of Philosophy: Philosophy and the Public Good) (쉴프 기념논문집[Schilpp Festschrift]), E. 프리먼(Freeman) 편집, The Open Court Publishing Co. 출판사, La Salle, 일리노이주, 1976년에 처음 출간되었다. 나는 다양한 제안들과 수정사항들에 대하여 아르네 피터센(Arne Petersen)의 혜택을 받았고 XVI절에 포함된 진단을 포함시키라고 나에게 상기시킨 것에 대하여 알랜 머스그레이브(Alan Musgrave)의 혜택을 받았다. 좌우명은 플라톤의 크리톤(Crito), 49D에서 가져왔다.
이해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것에 반대하여, 공통적인 선의와 많은 노력
이 이해에 곁들여진다면 매우 포괄적인 이해가 가능하다고 나는 주장한다. 게다가 그 노력은, 우리가 이해하기 시작한 견해에 관해서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우리 자신의 견해들에 관해서도 우리가 배운 것에 의하여 충분히 보상을 받는다.
이 논문은, 상대주의 자체의 가장 넓은 의미에서 상대주의에 대한 도전에 착수한다. 그런 도전을 제기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유인즉 오늘날 무기 생산이 점점 증가하면서 생존과 이해가 거의 동등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II
내가 전통을 칭송하고 전통의 중요성을 의식하는 사람일지라도, 동시에 나는 비정통성을 거의 정통적으로 고수한다: 정통성은 지식의 죽음이라고 나는 믿는데 왜냐하면 지식의 성장은 전적으로 의견 불일치의 존재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인정되는 바와 같이, 의견 불일치는 갈등 심지어 폭력을 유발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이것은 정말로 매우 나쁜데 이유인즉 내가 폭력을 혐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견 불일치는 토론, 논증 그리고 상호 비판을 또한 유발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이것들은 최고로 중요하다. 낫고 더 평화로운 세계를 향한 가장 훌륭한 발걸음은, 처음에 칼을 사용하는 전쟁이 지지를 받다가 나중에 때때로 말을 사용하는 전쟁에 의하여 대체되었을 때 시작되었다고 나는 제안한다. 이것이, 나의 주제가 약간의 실용적 중요성을 띤 까닭이다.
III
그러나 나는 먼저 나의 주제가 무엇인지를 그리고 ‘이론구조의 신화’라는 나의 제목에 의하여 내가 의미하는 바를 설명하고 싶다. 나는 그 신화를 토론하고 그 신화에 반대하여 논증하겠다: 널리 수용되는데 특히 독일에서 그렇게 수용되는 거짓 이야기인 신화. 독일에서 그 신화는 미국을 침공했고 미국에서 그 신화는 지식인들 사이에 거의 전체적으로 퍼지게 되었고 미국에서 그 신화는 가장 번창하는 철학 학파 중 몇몇 학파의 배경을 형성한다. 그래서 나는, 나의 글을 읽는 독자들 다수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 신화를 또한 믿을 것을 우려한다.
이론구조의 신화는, 다음과 같은 한 문장으로 서술될 수 있다.
참여자들이 기본적인 전제들에 대하여 공통적인 이론을 공유하지 않는다면 혹은 적어도 그 참여자들이 토론을 목적으로 한 그런 이론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합리적이고 유용한 토론이 불가능하다.
이것이 내가 비판하려는 신화이다.
내가 여기서 그 신화를 언명한 바와 같이, 그 신화는 냉철한 서술처럼 혹은 합리적 토론을 촉진하기 위하여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합당한 경고처럼 들린다. 몇몇 사람들은 심지어, 내가 신화로서 묘사하는 것이 논리적 원리이거나 논리적 원리에 근거한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그 신화가 거짓 서술일 뿐만 아니라 광범위하게 믿어진다면 틀림없이 인류의 통합성을 해치고 그리하여 틀림없이 전쟁의 폭력 개연성을 크게 높이는 사악한 서술이기도 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이, 내가 그 신화와 싸워서 그 신화를 반증하고 싶은 이유이다.
지적된 바와 같이, 여기서 ‘이론’에 의하여 나는 기본적 전제들의 집합이나 근본적인 원리들을 의미한다 ㅡ 다시 말해서 지식적 이론. 진리에 도달하거나 근접하려는 소망 그리고 문제들을 공유하거나 다른 사람의 목표들과 문제들을 이해하려는 의향과 같이, 정말로 토론을 위한 전제조건들일 어떤 태도들로부터 그런 이론을 구분하는 것은 중요하다.
신화에는 진리의 한 요소가 담겨있다고 나는 즉각 말하고 싶다. 참여자들이 기본적인 전제들에 대하여 공통적인 이론을 공유하지 않는다면 유용한 토론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과장이라고 내가 주장할지라도, 공통적인 이론을 공유하지 않는 참석자들 사이에서 토론은 어려울 것임을 나는 아주 기꺼이 인정한다. 이론들에 공통성이 없다면 토론 또한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이론들 사이의 중첩이 클수록 토론은 쉬워질 것이다. 정말로 모든 참석자들이 모든 요점들에 동의한다면 토론은 ㅡ 혹시 다소 싫증이 날지라도 ㅡ 쉽고, 순조롭고 합리적인 토론으로 판명될 것이다.
그러나 유용성은 어떠한가? 신화에 대하여 내가 제시한 언명에서 불가능한 것으로 선언된 것은 유용한 토론이다. 이것에 반대하여 나는 다음과 같이 직접적으로 반대인 논지를 옹호하겠다: 많은 견해들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의 토론은 유쾌할지라도, 유용하지 않을 것 같다; 크게 다른 이론들 사이의 토론은 때때로 극도로 어렵고 혹시 아주 그렇게 유쾌하지는 않을지라도 (비록 우리가 그 토론의 즐김을 배울 것이지만) 그 토론은 극도로 유용할 수 있는 반면.
토론에 대하여 그 토론 참석자들이 그 토론으로부터 더 많이 배울 수 있었다면 그 토론은 더 유용했다고 우리가 말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은 다음을 의미한다: 참석자들에게 흥미로운 질문들과 어려운 질문들이 더 많이 주어졌을수록, 그들은 새로운 답변들을 더 많이 생각하도록 유도되었고, 그들은 자신들의 견해들에서 더 많이 흔들리게 되어 토론 후에 그들은 사태를 더 많이 다르게 볼 수 있었다 ㅡ 요컨대 그들이 지닌 지식적 지평들은 더 많이 확대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유용성은 거의 항상, 토론 참석자들이 지닌 견해들 사이의 원래 격차에 의존한다. 격차가 클수록 토론을 더 유용할 수 있다 ㅡ 물론 항상 그런 토론이, 이론구조의 신화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완전히 불가능하지 않다면.
IV
그러나 다양한 이론들 사이에서 유용한 토론이 실제로 가능한가?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역사기록학의 아버지인 헤로도토스는 다소 기괴하지만 흥미로운 이야기를 페르시아의 왕 다리우스 I세에 관하여 말하는데 다리우스 I세는 자신의 제국에 거주하는 그리스인들에게 교훈을 가르치고 싶었다. 죽은 자를 화장하는 것이 그리스인들의 관습이었다. 다리우스는 ‘자신의 땅에 거주하는 그리스인들을 소환하여 그들의 부친이 사망했을 때 돈을 얼마나 주면 그 부친의 시체를 먹는 데 동의할 것인지 물었다. 그리스인들은 지구상의 어떤 것을 주어도 자신들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그다음에 다리우스는... 칼라티안들(Callatians)을 소환했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부친 시신을 먹기에 그리스인들의 입회하에 그들의 부친이 사망했을 때 돈을 얼마나 주면 그들이 부친의 시체를 화장하는 데 동의할 것인지를 통역가의 도움을 받아서 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큰 소리로 부르짖으면 다리우스 1세에게 그런 혐오스러운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간청했다’고 우리는 헤로도토스의 글에서 읽는다.
다리우스는 이론구조의 신화와 같은 것에 대한 진실성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정말로 우리에게는, 심지어 저 통역자의 도움을 받아서도 두 종류의 사람들 사이의 토론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이해하는 의향이 있다. 그것은 ‘대립’의 ㅡ 이론구조의 신화를 신봉하는 사람들에게 많이 유행하는 용어와, ‘대립’이 유용한 토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들이 우리에게 지적하고 싶을 때 그들이 사용하고 싶어 하는 용어 ㅡ 극단적인 경우였다.
다리우스 왕에 의하여 무대에 올려진 이 대립이, 헤로도토스가 설명하는 바와 같이 실제로 발생하지 않았다고 전제하자. 그 대립에는 실제로 결실이 없었을까? 나는 결실이 없었음을 부인한다. 인정되는 바와 같이, 상호 이해가 이룩되었던 듯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우리가 몇 가지 드문 경우들에서 메워질 수 없는 격차에 직면할지도 모름을 보여준다. 그러나 심지어 이 경우에도 두 종류의 사람들은 경험에 의하여 크게 동요했다는 데 그래서 그들이 새로운 것을 배웠다는 데 의심이 있을 리가 없다. 나 자신도 다리우스 왕의 궁정에서 그리스인들이 그랬던 바와 같이 사람의 시체를 먹는다는 관념을 혐오스러운 것으로서 안다. 그리고 나는 나의 독자들도 동일하게 느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느낌들로 인하여 틀림없이, 우리가 그 이야기로부터 도출하기를 헤로도토스가 원하는 감탄할만한 교훈을 우리는 훨씬 더 인지하고 더 느끼게 된다. 핀다로스(Pindar)의 자연과 규약의 구분을 언급하여 우리 자신의 관습이나 규약법률과 다른 관습이나 규약법률을 우리가 관용과 심지어 존중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헤로도토스는 제안한다. 이 특정 대립이 발생했다면, 우리가 자신의 이야기에 반응하기를 헤로도토스가 원하는 계몽된 방식으로 참석자 중 몇몇은 그 대립에 반응했었을 개연성이 높다.
이것은, 심지어 토론 없이도 다른 이론들에 깊이 빠진 사람들 가운데서 유용한 대립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대립이나 심지어 장기화한 토론도, 참석자들이 합의로 끝날 것이라고 우리는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합의는 항상 바람직한가? 토론이 열린다고 그리고 문제가 되는 쟁점이 어떤 이론이나 가설의 진실성이나 허위성이라고 전제하자. 우리는 ㅡ 즉, 합리적인 증인들이나 여러분이 원한다면 토론을 공정하게 지켜보는 사람들 ㅡ 물론 이론이 사실상 참이라면 이론이 참이라고 동의하면서 아니면 이론이 허위라면 이론이 허위라고 동의하면서 모든 참석자가 토론 끝내기를 틀림없이 좋아한다: 그러나 오직 이 경우들에서이다. 이유인즉 가능하면 토론이 참인 평결에 도달하기를 우리가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론이 사실상 허위일지라도 이론이 참이라고 합의가 이루어진다는 관념을 우리는 틀림없이 싫어한다. 그리고 이론이 참이었을지라도, 이론을 뒷받침하는 논증들이 너무 취약해서 결론을 뒷받침할 수 없다면 이론의 진실성에 관하여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우리는 틀림없이 선호한다. 그런 경우에 우리는 합의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아마도 선호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경우에, 의견충돌로 인하여 참석자들이 새롭고 흥미로운 논증들을 생성했다면 이 논증들이 결론을 내리지 못했을지라도 토론이 유용했다고 우리는 틀림없이 말한다. 이유인즉 어떤 이론을 입증하는 결론적 논증들은, 그 이론을 반증하는 논증이 때때로 상당히 강력할지라도, 가장 하찮은 쟁점들을 제외하고 모든 쟁점들에서 드물기 때문이다.
대립에 대한 헤로도토스의 이야기를 되돌아보면, 심지어 합의가 보이지 않는 이 극단적인 경우에도 대립이 유용했을 것임과 시간과 (헤로도토스가 이용할 수 있었던 듯이 보이는) 인내가 주어지면 대립이 결실을 맺었음을 ㅡ 적어도 헤로도토스 자신의 생각 속에서 ㅡ 우리는 이제 알 수 있다.
그리하여 나의 논지는, 다른 이론들 사이나 다른 문화들 사이의 격차가 논리적인 이유들 때문에 항상 완화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나의 논지는, 그 격차가 통상적으로 완화될 수 있다는 것일 따름이다. 아마도 공통적인 문제들만 있을 것이다. 이유인즉 다양한 무리들의 인간들은, 일반적으로, 생존문제와 같이 많은 것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지어 공통적인 문제들도 항상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논지는, 논리가 이론구조의 신화를 입증하지도 않고 그 신화의 부인도 입증하지 않는다는 것이지만 우리가 서로로부터 배우려고 노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성공할지는 주로 우리의 선의에,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는 우리의 역사적 상황에 그리고 우리의 문제 상황에 달렸다.
V
나는 여기서, 어떤 면에서 우리 자신과 우리 자신의 태도들이 부분적으로 헤로도토스에 의하여 묘사된 종류의 대립들 및 비결론적 토론들의 결과들이라고 제안하고 싶다.
내가 의미하는 바는, 우리 서구 문명이 다양한 문화들의 충돌이나 대립의 결과들이고 그리하여 다양한 이론들의 충돌이나 대립의 결과라는 논지에 의하여 요약될 수 있다.
우리 문명이 ㅡ 다소 크게 칭찬하여 합리주의적 문명으로서 최고로 기술될 ㅡ 매우 크게 그리스-로마 문명의 결과라는 것은 널리 인정된다. 이 문명은, 이집트와 페르시아 및 페니키아와 다른 중동 문명들과의 충돌을 통하여 심지어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 사이의 충돌 이전에 알파벳과 같은 자체의 특징 중 많은 특징을 습득했다. 그리고 기독교 시대에 우리의 문명은, 유대인 문명과의 충돌을 통하여 그리고 게르만족과 이슬람의 침입에서 기인하는 충돌들을 통하여 더욱 수정되었다.
그러나 원래 그리스의 기적인 ㅡ 그리스 운문, 미술, 철학 그리고 과학의 발흥 ㅡ 서구의 합리주의의 실제 근원은 어떠한가? 그리스의 기적은, 그 기적이 설명될 수 있는 한, 주로 문화충돌에 또한 기인한다고 나는 주장한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정말로 헤로도토스가 자신의 역사에서 우리에게 가르치기를 원하는 교훈 중 한 가지 교훈이다.
잠시 그리스 철학의 근원과 그리스 과학의 근원을 찾아보자. 그 모든 것은 그리스 식민지들에서 시작되었다: 소아시아에서, 남부 이탈리아에서, 그리고 시실리에서. 이것들은, 그리스 식민지 주민들이 동양의 거대한 문명들과 마주하여 그 문명들과 충돌하거나, 서양에서는 그들이 시실리인들과 카르타고인들 및 토스카나인들과 같은 이탈리아인들을 만난 장소들이다. 그리스의 철학에 미친 문화충돌의 충격은, 그리스 철학의 창시자인 탈레스에 관한 초기 보고서들로부터 매우 명백하다. 그 충격은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에게서 확실한데 그는 조로아스터(Zoroaster)로부터 영향을 받았던 듯이 보인다. 그러나 문화충돌이 사람들을 비판적으로 생각하게 유도할 방식은 음유시인이었던 제노파네스(Xenophanes)에게서 매우 강력하게 나온다. 다른 경우들에서 내가 그의 운문들 몇 가지를 인용했을지라도, 나는 다시 인용하겠는데 왜냐하면 그 운문들이 이 요점들을 매우 아름답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제노파네스는, 호메로스와 헤시오드의 신인동형론적(神人同形論的: anthropomorphic) 신학을 비판하기 위하여 자신이 그리스인들과 에티오피아인들 및 트라키아인들 사이의 충돌로부터 배운 교훈들을 이용한다:
에티오피아인들은 자신들의 신이 납작코에 검다고 말하고
반면 트라키아인들은 자신들의 신이 벽안에 붉은 머리를 지녔다고 말한다.
그러나 소나 말이나 사자가 신을 가지고 있어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인간처럼 조각을 할 수 있다면, 말은 자기들의 신을 말처럼, 소는 소처럼
그리고 각각은 그 다음에 신의 형체를 자체의 모습으로 각각의 종류를
형성할 터이다.
그리고 제노파네스는 이 교훈으로부터 비판적이고 중요한 결론을 도출한다: 그는 인간의 지식이 오류 가능적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신들(gods)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우리에게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탐구를 통하여 우리는 배울 것이고,
사물들을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이 사물들이 진리와 같다고 우리는 추측한다.
그러나 확실한 진리에 관하여 어떤 사람도 그것을 알지 못했고,
또한 우리는 그 진리를 알지 못할 것이다; 신들(gods)에 대해서도,
내가 말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알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우연히 사람이 최종적 진리를 발설할지라도 자신은 그것을
알지 못할 터이다: 이유인즉 모든 것은 추측들로 짜인 그물일 뿐이기에.
버넷(Burnet)과 다른 사람들이 부인했을지라도, 파메니데스(Parmenides)가 초기 사상가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사상가이고 제노파네스의 영향을 받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는, 인간의 규약에 종속되지 않는 한 가지 최종적인 진리와 인간의 추측들이자 의견들이며 규약들에 대한 제노파네스의 구분을 추구한다. 한 가지 문제나 주제에 (신들[gods]와 같은) 관하여 항상 많은 다른 의견들과 규약들이 있다. 이것은, 그것들이 모두가 사실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유인즉 그것들이 상충한다면, 기껏해야 그것들 중 오직 하나만 참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파메니데스는 (플라톤이 자연과 규약의 구분했다는 핀다로스와 동시대인) 한편으로는 진리와 실재를 다른 한편으로는 규약과 규약성 견해를 (소문, 적절한 신화) 분명하게 구분한 ㅡ 제노파네스로부터 그리고 문화충돌로부터 그가 도출했다고 우리가 말할 교훈 ㅡ 최초의 사상가였다. 그로 인하여 그는 가장 대담한 이론 한 가지에 도달했다.
문화충돌은 그리스 과학의 ㅡ 수학과 천문학의 ㅡ 발흥에 중요한 역할을 해서 우리는 다양한 충돌들 몇몇이 결실을 맺는 방식을 심지어 특정할 수 있다. 게다가 자유에 대한, 민주주의에 대한, 관용에 대한 우리의 관념들 그리고 또한 지식에 대한, 과학에 대한, 합리성에 대한 관념들 모두도 이 초기 그리스인들의 경험들로 거슬러 추적될 수 있다.
이 모든 관념들 중에서 합리성의 관념이 내가 보기에 가장 근본적이다. 우리가 지닌 근거로 보면, 합리적이거나 비판적 토론의 창안은 이 충돌들 중 몇몇 충돌과 동시에 발생한 듯이 보이고 토론은 초기 이오니아 민주체제들의 발흥과 동시에 전통적이 된 듯하다.
VI
인간의 이성에 관한 주요 과제들 중 한 가지 과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를 우리 자신에게 이해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과학의 과제이다. 이 과업에서 거의 동등한 중요성을 띠는 두 가지 다른 요소들이 있다.
첫 번째 요소는 운문적 창의성으로 다시 말해서, 이야기-말하기나 신화 만들기이다: 세상을 설명하는 이야기들의 창안. 이것들은 우선 흔히 혹은 아마도 항상 다신론적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미지의 힘들(unknown forces)이라는 손아귀에 놓인다고 느껴서 이 힘들에 대한 이야기들이나 신화들을 창안함에 의하여 세상과 인간의 생사를 이해하여 설명하려고 시도한다.
이 첫 번째 요소는 아마도 인간의 언어 자체만큼 오래되었을 것인데 지극히 중요하다. 그리고 그 요소는 보편적인 듯하다: 모든 종족들과 모든 민족들에게 흔히 동화 형태로 구성된 그런 설명적 이야기들이 있다. 설명과 설명적 이야기들의 창안은, 인간의 언어가 도움을 준 기본적인 작용들 중 한 가지 작용인 듯하다.
합리성의 두 번째 요소는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그 요소는 특히 그리스적이고 그리스에서 글쓰기가 정착된 이후에 출현한 듯하다. 그 요소는 단 한번 출현했던 듯하다. 탈레스의 제자이자 최초의 비판적 우주론자였던 아낙시만드로스와 동시에 단 한번. 그 요소는, 비판의 창안이자 다양한 설명적 신화들에 대한 비판적 토론의 ㅡ 그 신화들을 의식적으로 개선하려는 목표를 지닌 ㅡ 창안이다.
정교한 수준에서 설명적 신화-제작에 관한 주로 그리스적인 사례는 물론 헤시오드의 신통기(神統記: theogony)이다. 이것은, 그리스 신들(gods)의 근원과 행위들과 비행들에 대한 사납고 기괴한 이야기이다. 첫눈에 보기에, 신통기(神統記: theogony)가 우리 세계에 대한 과학적 설명의 발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제안할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하고 싶지 않을 터이다. 그러나 헤시오드의 신통기(神統記: theogony)에 있는 한 구절이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 있는 또 다른 구절에 의하여 무색해졌는데 아낙시만드로스에 의하여 그렇게 사용되었다는 역사적 추측을 나는 제시했다.
나의 추측을 나는 설명하겠다. 전승에 따르면, 이오니아의 우주론자들 학파의 창시자인 탈레스는 ㅡ 아낙스만드로스의 스승이자 친척 ㅡ ‘지구는 자체가 배처럼 떠있는 물에 의하여 지탱된다’고 가르쳤다. 아낙시만드로스는 ㅡ 결국 탈레스의 후계자인데 ㅡ 다소 그 우원한 신화로부터 (탈레스에 의하여 지진을 설명할 의도였던) 방향을 바꾸었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새로운 방향전환은 정말로 혁명적인 특징을 띠었는데, 이유인즉 우리가 전해 듣는 바, 그가 다음과 같이 가르쳤기 때문이다: ‘지구를 떠받치고 있은 것은 전혀 없다. 대신, 지구가 모든 다른 것들로부터 등거리에 있다는 사실로 인하여 지구는 정태적(情態的: stationary)이다. 지구의 형태는 북(drum)의 모습을 닮았다. 지구 표면의 다른 면이 반대 면에 있는 반면, 우리는 그 표면들 중 한 표면의 위를 걷는다.’
이 대담한 관념으로 인하여 아리스타쿠스(Aristarchus)와 코페르니쿠스의 관념들이 가능해졌고, 심지어 그 관념에는 뉴튼의 힘들(forces)에 대한 선행요소들이 담겼다. 그 관념은 어떻게 출현했는가? 그 관념이 탈레스의 신화를 순전히 논리적으로 비판하여 출현했다는 추측을 나는 또한 제시했다. 그 비판은 단순하다: 물에 의하여 지탱되는 배처럼 지구가 바다에 의하여 지탱된다고 말함에 의하여 우주에 있는 지구의 위치와 안정성을 우리가 설명한다면, 우리는 바다의 위치와 안정성을 설명해야 한다고 비판가가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바다를 지탱하는 것을 발견함을 의미하고 나아가 이 지탱하는 것을 다시 지탱하는 것을 발견함을 의미한다. 분명히 이것은 무한회귀(無限回歸: infinite regress)를 초래한다. 그것을 우리는 어떻게 피할 수 있는가?
대안적 설명도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보였던 이 무시무시한 난관에서 출구를 찾으면서 아낙시만드로스는 헤시오드가 일리아드로부터 개발한 구절을 기억했다고 나는 추측하는데 일리아드에서 우리가 듣는 바, 지옥 신인 타르타로스(Tartarus)는 하늘의 신인 우라노스(Uranus)가 지구 위에 있는 거리와 똑 같이 지구 밑에 있다.
그 구절은 다음과 같다: ‘9일의 낮과 밤 동안 황동 모루가 하늘에서 떨어지고 10일째 날에 모루는 지구에 도달할 것이다. 그리고 9일의 낮과 밤 동안 황동 모루는 지구에서 떨어지고 10일째 날에 모루는 타르타로스에 도달할 것이다.’ 이 구절은 아낙시만드로스에게, 지구를 중간에 두고 하늘의 아치형 지붕을 지구 위에 두고 사람들이 세상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음을 암시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대칭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타르타로스를 그 아치형 지붕의 하부 절반인 것으로서 해석함이 암시된다. 이런 방식으로, 아낙시만드로스의 구상이 ㅡ 무한회귀라는 난관을 타개하는 구상 ㅡ 우리에게 전해진 바와 같이 우리는 그 구상에 다다른다.
아낙시만드로스가 그의 스승이었던 탈레스를 초월했던 엄청난 단계에 대하여 그렇게 추측성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의 추측으로 인하여 그 단계가 훨씬 더 이해가능하게 되고 동시에 훨씬 더 인상적이 된다고 나는 느낀다: 이유인즉 나의 추측이, 매우 난해한 문제에 ㅡ 지구를 떠받쳐서 안정시키는 문제 ㅡ 대한 이성적인 해결책으로 이제 알려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탈레스에 대한 아낙시만드로스의 비판과 새로운 신화에 대한 그의 비판적 구상은, 그것들이 계속 추구되지 않았다면, 무위로 남았을 터이다. 그것들이 계속 추구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탈레스 이후에 왜 새로운 신화가 세대마다 제기되었는가? 탈레스와 아낙시만드로스가 함께 새로운 학파 전통을 ㅡ 비판적 전통 ㅡ 세웠다는 추가적 추측에 의하여 나는 이것을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그리스의 합리주의와 그리스의 비판적 전통이라는 현상을 한 학파의 전통에 의하여 설명하려는 나의 시도는, 물론, 또 다시 추측성이다. 사실상 그 시도 자체가 일종의 신화이다. 그러나 그 시도는 독특한 현상을 ㅡ 이오니아학파 ㅡ 정말로 설명한다. 이유인즉 적어도 네다섯 세대 동안 이 학파는, 새로운 세대마다, 이전 세대의 가르침들을 독창적으로 수정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 학파는 우리가 과학적 전통으로 지칭할 것을 확립했다: 적어도 500년 동안 살아남았고 무너지기 전에 몇몇 심각한 공격들에 저항했던 비판의 전통.
그 비판적 전통은, 수용된 이야기나 설명을 비판하고 그 다음에 자기 차례가 되면, 비판에 부쳐지는 새롭고 개선되고 상상적인 이야기로 나아가는 방법을 채택함으로써 설립되었다. 이 방법은 과학의 방법이라고 나는 제안한다. 이 방법은 인간의 역사에서 오직 한 번 창안되었다. 이 방법은 동부 아랍 쪽에 남아있었지만, 아테네에 있던 학파들이 관용을 모르는 기독교가 승리하면서 억압을 받았을 때 서양에서 죽었다. 이 방법은 중세기 동안에 빈자리가 느껴지고 애석하게 느껴졌다. 문예부흥기에 이 방법은 다시 창안되었다기보다는 그리스 철학과 그리스 과학의 재발견과 함께 동양에서 다시 수입되었다.
과학적 전통에 대한 이 두 번째 요소의 독특성은 ㅡ 비판적 토론의 방법 ㅡ 오래 설립된 학파들의 기능, 특히 종교적 및 반(半)-종교적 학파들의 기능을 우리가 고찰한다면 이해될 것이다. 그 학파들의 기능은, 학파 창시자의 가르침의 순수성을 보전하는 것이고 또한 항상 그렇게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교설에서의 변화들은 드물고 그 변화는 주로 오류들이나 오해들에서 발생한다. 그 변화들이 의식적으로 추진될 때 그 변화들은 통상적으로 비밀리에 추진된다 ㅡ 이유인즉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변화들로 인하여 학파가 분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오니아학파에서, 그 학파의 전통이 새로운 세대마다 스승들의 가르침으로부터 갈라지는 반면 스승들 각자의 가르침을 세심하게 보전한 학파 전통을 우리는 발견한다.
이 독특한 현상에 대한 나의 추측성 설명은, 학파 창시자인 탈레스가 자신의 제자인 아낙시만드로스에게 자기 자신이 제시할 수 있었던 것보다 지구의 표면적인 안정성에 대하여 나은 설명을 창안할 수 있는지 알아보라고 격려했을 때 그 현상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어떠했든 비판적 방법의 창안은, 문화 충돌이 없었다면 발생할 수 없었을 터이다. 그리고 그 창안은 가장 엄중한 결과들을 불러왔다. 이유인즉 4내지 5세대 안에, 지구와 달과 태양이 구형이라고 그리고 달은 ‘태양광선들을 찾아 이리저리’ 항상 ‘간절히’ 돌아보면서 지구 주위를 돈다고 그리고 이것은 달이 자신의 빛을 태양으로부터 빌려왔다는 전제에 의하여 설명될 수 있다고 파메니데스는 대담하게 제안했기 때문이다. 잠시 뒤에 지구는 자전한다는 것과 지구는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추측이 플라톤 학파에서 나타났다. 그러나 이 나중 가설들은 특히 아리스타쿠스에게서 기인하는데 너무 대담한 듯이 보여서 곧 망각되었다.
이 우주론적 혹은 천문학적 발견들은 미래 모든 과학의 초석이 되었다. 인간의 과학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이해하려는 대담하고 희망찬 시도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고대의 꿈은 뉴튼에게서 성취되었다. 뉴튼 이후에야 인류는 완전히 의식적이 ㅡ 우주에서 자체의 위치에 대한 의식적 ㅡ 되었다고 우리는 말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문화충돌의 혹은 이론들의 충돌의 결과라고 나는 제안하는데 그로 인하여 비판적 토론의 방법이 신화-만들기에 ㅡ 세상을 이해하여 우리 자신에게 설명하려는 우리의 시도들에 ㅡ 적용하게 되었다.
VII
우리가 이 발전을 되돌아본다면, 어떤 ‘대립’인 진지한 쟁점에 대한 비판적 토론이 빠르고 최종적인 결과들을 낳기를 우리가 기대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진리는 습득하기가 어렵다. 진리에는, 옛 이론들을 비판하는 데서 독창성이 필요하고 새로운 이론들을 창조적으로 창안하는 데서 독창성이 필요하다. 이것은 과학에서만 그렇고 모든 분야들에서 그렇지는 않다.
진지한 비판적 토론들은 항상 어렵다. 개인적인 문제들과 같은 비-합리적인 인간적 요소들은 개입되지 않는다. 합리적인 즉, 비판적인 토론에 참석하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본능이 자신들에 가르치는 듯한 것을 (부언하여 논쟁을 벌이는 모든 사회에 의하여 가르침을 받는 것을) 버려야 함이 특별히 어렵다는 것을 안다: 다시 말해서, 이겨내야 함이. 이유인즉 심지어 자신의 문제에 대한 가장 하찮은 설명도 ㅡ 자기 자신의 입장이나 상대방의 입장을 더 분명히 이해하는 것에 대한 심지어 가장 작은 기여도 ㅡ 큰 성공인 반면 그들이 배워야 하는 것이 논쟁에서의 승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점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승리하지만 적어도 조금이라도 여러분의 정신을 바꾸거나 설명하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하는 토론은 완전한 실패작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자신의 입장 변화는 비밀리에 이룩되어서는 안 되고 항상 강조되고 그 결과들이 탐사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합리적 토론은 드물다. 그러나 그 토론은 중요한 이상이고 우리는 그런 토론을 즐기는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그런 토론은 상대방이 의견을 전환하는 것을 겨냥하지 않으며, 자체가 기대하는 바에서 겸손하다: 우리가 사태를 새로운 관점에 볼 수 있다거나 우리가 심지어 진리에 다소 더 근접했다고 느낀다면 충분하고 충분한 것 이상이다.
VIII
이제 나는 이론구조의 신화로 돌아가겠다. 이 신화가 거의 자명한 진리로서 흔히 수용된다는 사실에 기여할 많은 경향이 있다.
이 경향 중 한 가지 경향을 나는 이미 언급했다. 그 경향은, 이성의 능력에 관하여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다가 실망해서 ㅡ 다시 말해서, 토론의 결과에 관하여 지나치게 기대해서 ㅡ 생긴다. 토론으로 인하여, 다른 상대방에 의하여 대변되는 허위에 대하여 한 상대방에 의하여 대변되는 결정적이고 당연한 지식적 승리가 발생할 것이라는 기대를 나는 의미한다. 이것은 토론으로 인하여 보통 기록되는 것이 아님이 밝혀질 때, 과도하게 낙관론적인 기대에서 생기는 실망은 토론의 유용성에 관하여 일반적인 비관론으로 바뀐다.
이론구조의 신화에 기여하여 신중히 분석되어야 하는 또 다른 경향은, 역사적 혹은 문화적 상대주의와 관련된다. 이것은, 그 시초가 아마도 헤로도토스에게서 감지될 것이다.
헤로도토스는, 그 정신이 여행에 의하여 넓어지는 다소 희귀한 저 사람 중 한 사람이었던 듯하다. 처음에 그는, 자신이 중동에서 조우한 많은 기이한 관습들과 제도들에 의하여 틀림없이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그 관습들과 제도들을 존중하고 몇몇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다른 것을 역사적 사건들의 결과들로서 간주하는 것을 배웠다: 그는 관용적이 되는 것을 배웠고, 그는 심지어 자신이 만난 야만족 주인공들의 눈을 통하여 모국의 관습들과 제도들을 보는 능력을 습득했다.
이것은 건강한 태도이다. 그러나 이 태도가 상대주의를, 다시 말해서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진리는 없고 오히려 그리스인들에게 한 가지 진리가 있고 이집트인들에게 또 다른 진리가 있으며 시리아인들에게 여전히 또 다른 진리가 있는 등등과 같은 견해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헤로도토스가 이 함정에 빠졌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그 후 이 함정에 빠졌다 ㅡ 아마도 어떤 의심스러운 논리와 결합된, 칭찬을 받을만한 관용의 감정에 의하여 고취되어.
분명히 올바른, 문화적 상대주의에 관한 개념의 한 가지 해석이 있다. 미국에서 유럽에서 그리고 대부분의 다른 나라들에서 우리가 도로의 오른편으로 운전을 하는 반면, 영국에서 호주에서 그리고 뉴질랜드에서 우리는 도로의 왼편으로 운전한다. 분명하게 필요한 것은, 도로에 대한 어떤 그런 규칙이다. 두 가지 규칙들 ㅡ 오른편 혹은 왼편 ㅡ 중 어느 것이 분명히 자의적이고 규약적인가? 크고 작은 중요성을 띤 많은 유사한 규칙들이 있는데 그것들은 순전히 자의적이고 규약적이다. 이 규칙들 가운데 미국과 영국에서 영어를 발음하고 철자를 쓰는 다양한 규칙들 있다. 심지어 전혀 다른 어휘들도 그렇게 순전히 규약적인 방식으로 관련될 수 있을 터이다. 그리고 이 두 언어의 문법적 구조들이 매우 유사하다면, 상황은 두 가지 다른 도로 운전 규칙들의 상황과 매우 유사할 터이다. 그런 어휘들이나 그런 규칙들은 순전히 규약적인 방식으로 다른 것으로서 우리는 간주할 것이다: 그것들 가운데서 선택할 것은 실제로 없다 ㅡ 적어도 중요성을 띤 것은 없다.
이와 같은 규약적 규칙들과 관습들만을 우리가 고려한다면, 이론구조의 신화가 너무 진지하게 수용될 위험은 없다. 이유인즉 도로 운전에 관한 미국인과 영국인 사이의 토론은 합의에 이를 것 같기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 자신들의 규칙들이 합치되지 않는 것을 후회하기 쉽다. 두 사람 모두, 원칙적으로 두 가지 규칙들 사이에서 선택할 것이 없다고 그리고 미국이 영국과 같이하려고 왼편 주행을 선택할 것을 기대한다는 것이 비합리적일 터이라고 합의할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영국이 현재 바람직할 것이지만 큰 비용일 들 도로 운전법 수정을 할 수 없다고 합의하기 쉽다. 그렇게 합의가 모든 요점들에 관하여 이룩된 후에, 자신들이 이미 알지 못한 토론으로부터 자신이 배운 것이 없다고 느끼면서 두 명의 당사자들은 헤어지기 쉽다.
우리가 다른 제도들과 법률들 및 관습들을 ㅡ 예를 들어 법 집행과 관련된 것들 ㅡ 고려할 때 상황은 완전히 변한다. 이 분야에서의 다양한 법률들과 관습들로 인하여 그런 법률들과 관습들 아래서 사는 사람들에게 모든 차이점이 발생할 것이다. 다른 법률들과 관습들이 상호간의 협조와 고통 경감을 제공할 것인 반면, 어떤 법률들과 관습들은 매우 잔인할 수 있다. 다른 나라들의 법률들이 자유를 덜 존중하거나 전혀 존중하지 않는 반면, 어떤 나라들의 법률들은 자유를 존중한다. 이 차이점들은 매우 중요하여, 문화적 상대주의에 의하여 혹은 다양한 법률들과 관습들은 다양한 기준들이나 다양한 사고방식들에 기인한다는 주장과 그리하여 그것들은 측정될 수도 없고 비교될 수도 없다는 주장에 의하여 배척되거나 무시되어서도 안 된다. 반대로, 우리는 이해하려고 그리고 비교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누가 나은 제도들을 지니고 있는지 우리는 알아내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제도들로부터 배우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비판적 토론은 가능할 뿐만 아니라 매우 시급하게 필요하다는 것이 나의 의견이다. 그 비판적 토론은, 흔히 정치선전들에 의하여 그리고 사실적 정보에 대한 무시 때문에 어려워진다. 그러나 이 난제들은 극복 불가능하지 않다. 그리하여 정보에 의하여 정치선전과 싸우는 것이 가능하다. 이유인즉 정보는, 가능하다면, 항상 무시되는 것은 ㅡ 인정되는 바와 같이 정보가 흔히 무시될지라도 ㅡ 아니기 때문이다.
문화적 상대주의와 이론은 폐쇄적이라는 교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우겠다는 결의에 대한 심각한 장애물이다. 그것들은, 몇몇 제도들은 수용하고 다른 제도들은 수정하며 나쁜 제도는 배척하는 방법에 대한 장애물들이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은, 우리가 ‘공산주의’의 혹은 ‘자본주의’의 전체 구조나 ‘체계’를 수용하거나 배척할 수 있을 따름이라고 생각한다. 이 소위 ‘체제들’에 대하여 우리가 생각한다면, 이론체계들과 ㅡ 이념들 ㅡ 특정 사회적 실체들을 우리는 구분해야 한다. 두 가지 모두 상당히 서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사회적 실체들에서는 이념들과의 ㅡ 특히 마르크스주의자들에 의하여 그 이념들이 예상되는 것 ㅡ 유사성이 없다.
법률에 대한 이론과 관습에 대한 이론은 합리적으로 토론될 수 없다는 신화를 지지하는 몇몇 사람들이 있다. 도덕성은 적법성이나 관습이나 습속과 동일하다고 그리하여 현존하는 다양한 법률과 관습의 체계들이 도덕성에 대하여 유일하게 가능한 표준들이기 때문에 한 가지 관습체계가 또 다른 관습체계보다 도덕적으로 나은지를 판단하거나 심지어 토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이 견해는 다음과 같은 헤겔의 유명한 공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실재적인 것은 합리적이다’ 그리고 ‘합리적인 것은 실재적이다’. 여기서 ‘인 것(what is)’이나 ‘실재적인 것’은 세상의 인공적인 법률이나 관습을 포함한 세상을 의미한다. 이것들이 인공적이라는 것은 헤겔에 의하여 부인되는데 헤겔은, 세계정신이나 이성이 그것들을 만들었다고 그리고 그것들을 만든 듯이 보이는 사람들은 ㅡ 위대한 사람들, 역사를 만든 사람들 ㅡ 그들이 지닌 열정들이 가장 민감한 이성의 도구이기 때문에, 단지 이성을 실행하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시대정신을 탐지하는 사람들이고 궁극적으로 절대정신 즉, 신(神: God) 자신을 탐지하는 사람들이다.
(이것은, 철학자들이 신[神: God]을 자신들의 개인적인 목적을 위하여 ㅡ 다시 말해서, 자신들의 위태로운 논증들에 대한 버팀목으로서 ㅡ 이용하는 저 많은 경우 중 한 가지 경우일 뿐이다.)
헤겔은 상대주의자이면서 절대주의자였다: 늘 그렇듯, 그는 적어도 두 가지 방식들을 가지고 있었고 두 가지 방식들이 충분하지 않으면 그는 세 가지 방식들을 취했다. 그리고 그는, 이론구조의 신화를 지지한 칸트 이후 철학자들의 다시 말해서 비판적 철학자들 이후이거나 합리주의적 철학자들 이후 긴 철학자 행렬에서 ㅡ 주로 독일인 ㅡ 최초의 철학자였다.
헤겔에 따르면 진리 자체는 상대주의적이기도 하고 절대적이기도 하다. 진리는 각각의 역사적 및 문화적 이론에 상대적이다: 그리하여 그런 이론들 각각에는 다른 진리 기준이 있기 때문에 그런 이론들 사이에서 합리적인 토론이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헤겔은, 진리가 자신의 상대주의적 철학의 한 부분이었기 때문에 진리는 절대적으로 참이 되기 위하여 다양한 이론들에 상대적이라는 자신의 교설을 지켰다.
절대 진리를 발견했다는 헤겔의 주장은 이제 많은 사람을 매혹하지 못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의 상대적 진리에 대한 교설과 이론구조의 신화에 대한 그의 해석에 많은 사람이 홀린다. 헤겔 이후 그 신화에 가장 큰 영향을 제공한 사람은 물론 칼 마르크스이다. 여러분에게, 각각 자체의 이론구조 안에 갇혀 계급에 묶인 과학인 ㅡ 프롤레타리아 과학과 부르주아 과학 ㅡ 그의 이념을 상기시킬 필요가 나에게는 없다, 마르크스 이후 이 관념들은, 특히 독일인 막스 쉘러(Max Scheler)와 헝가리인 칼 만하임(Karl Mannheim)에 의하여 추가로 전개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론들을 ‘지식의 사회학’으로 지칭했고 그들은, 마르크스처럼, 사람들 각자의 구상적 이론구조는 각자의 ‘사회적 서식지’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나는 이 관념들을 다른 곳에서 비판했지만, 그들의 호소 배후에 무엇이 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 관념들을 매혹적으로 만드는 것은, 모든 사람은 오류를 저지를 수 있고 편향적이기 쉽다는 참이고 중요한 통찰과 상대주의를 혼동한다는 것이다. 이 오류가능성 학설은 그 학설의 최초의 시절부터 ㅡ 제노파네스(Xenophanes)와 소크라테스에서 에라스무스까지 그리고 찰스 샌더스 퍼스(Charles Sanders Peirce)까지 ㅡ 계속해서 철학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서 나는 그 학설이 극도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인간이 지닌 오류가능성이라는 중요한 학설이 진리와 관련하여 상대주의를 뒷받침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체가 절대 진리를 ㅡ 아니면 혹시 데카르트의 명징성(clarity) 및 선명성(distinctness)과 같은, 절대 진리에 대한 기준 또는 어떤 다른 직관적 기준 ㅡ 소유한다고 주장하는 저 종류의 철학적 절대주의에 반대하여 논증하는 데 인간이 지닌 오류가능성이라는 학설은 물론 유효하게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절대 진리에 대하여 매우 다른 태도가 있는데 사실상 오류가능주의적 태도이다. 오류가능주의적 태도는, 우리의 이론들이 절대적으로 허위일 수 있다는 ㅡ 우리의 이론들이 진리에 미칠 수 없다는 ㅡ 의미에서 우리가 저지는 오류들이 절대적인 오류들일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리하여 진리의 개념과 진리에 미치지 못한다는 개념은 오류가능주의자에게 절대적 기준들을 의미할 것이다 ㅡ 우리가 절대적 기준들에 부응하고 있음을 우리가 어느 때도 확신할 수 없을지라도. 그러나 그 기준들이 일종의 조타나침반(steering compass)으로서 작용할 것이기 때문에, 그 기준들은 비판적 토론들에서 결정으로 도움을 줄 것이다.
절대적 혹은 객관적 진리에 대한 이 이론은 알프레드 타스키(Alfred Tarski)에 의하여 부활하였는데 그는, 진리에 대한 보편적인 기준이 있을 리가 없다는 것을 또한 증명하였다. 타스키의 절대적 혹은 객관적 진리 이론과 오류가능성 학설 사이에는 어떤 충돌도 없다.
그러나 타스키의 진리개념은 상대적인 개념이 아닌가? 그 개념은, 그 진리가 토론되고 있는 서술이 속하는 언어에 상대적이 아닌가?
이 의문에 대한 답변은 ‘아니요’이다. 타스키의 이론은, 어떤 언어 가령 영어로 된 서술이 사실들에 대응한다면 그리고 오직 그 조건으로만 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동일한 사실을 기술할 수 있는 또 다른 언어 가령 프랑스어가 있을 때마다, 대응하는 영어 서술이 참이라면 그리고 오직 그 조건으로만 이 사실을 기술하는 프랑스어 서술이 참일 것임을 타스키의 이론은 의미한다. 그리하여 타스키의 이론에 따르면, 서로 번역되는 두 가지 서술 중에서 한 가지 서술은 참일 수 있고 나머지 한 서술은 허위가 될 수 있음은 불가능하다. 그리하여 타스키의 이론에 따르면 진리는 언어에 좌우되지도 않고 언어에 상대적이지도 않다. 언어에 대한 참고는, 동일한 소리나 기호들이 두 가지 다른 언어들에서 발생할 것이고 그리하여 두 가지 전혀 다른 사실들 기술할 것이라는 비개연적이지만 하찮은 가능성 때문에만 이룩된다.
X
다양한 언어들 사이에서 번역하는 난제들에 대한 인식이 신화에 또한 기여했다. 한 가지 언어로 된 서술이 또 다른 언어로 번역될 수 없는 일이, 혹은 다시 말해서 한 가지 언어로 기술될 수 있는 사실이나 사태가 또 다른 언어로 기술될 수 없는 일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한 가지 이상의 언어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한 가지 언어를 또 다른 언어로 완벽하게 번역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존재할지라도 매우 드물다는 것을 물론 안다. 그러나 이 난제는 모든 번역가에게 잘 알려졌는데 여기서 토론되는 상황과 ㅡ 다시 말해서, 어떤 다른 언어로 기술될 수 있는 사태를 한 가지 언어로 기술하는 것의 불가능성 ㅡ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평범하고 잘 알려진 난제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구성되는데 즉, 다음과 같다. 프랑스어나 영어로 된 직접적이고 간단하며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서술들에는 가령 독일어로 된 고도로 복잡하고 서툰 번역이 ㅡ 독일어로 이해하기도 심지어 어려운 번역 ㅡ 필요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모든 번역가에게 알려진 평범한 난제는 문제의 서술에 대하여 여하한 번역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니라 미학적으로 합당한 번역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점이다. (나는 여기서, 운문이나 경구[警句: aphorism] 혹은 해학[bon mot]이나 미묘하게 풍자적이거나 화자의 감정을 표현하는 서술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적 서술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어려움이 출현할 것은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우리는, 하나의 용어로 된 서술어들을 포함하는 인공 언어를 만들어 이 언어로 ‘폴은 키가 크다(Paul is tall)’나 ‘피터는 키가 작다(Peter is short)’는 말할 수 있지만 ‘폴은 피터보다 키가 크다(Paul is taller than Peter)’는 말할 수 없다.
그런 인공 언어들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몇 가지 살아있는 언어들이다. 여기서 우리는 벤저민 리 워프(Benjamin Lee Whorf)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워프는, 미국 인디언의 한 종족인 호피(Hopi) 족의 언어에서 특정 시제들(時制들: tenses)의 중요성에 주목한 최초의 사람이었던 듯하다. 이 시제들은 호피족의 말을 하는 사람에 의하여, 자신이 자신의 서술에서 기술하려는 사태의 어떤 부분을 기술하는 것으로서 경험된다. 그 시제들은 영어로 합당하게 번역될 수 없는데 이유인즉 객관적인 사태의 양상들이라기보다는 화자의 특정 기대들을 언급함에 의하여 우리가 우회적인 방식으로만 그 시제들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워프는 다음 사례를 제공한다.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서술에 의하여 아마도 영어로 합당하게 번역될 두 가지 시제들이 호피 족에게 있다. ‘프레드는 나무 찍기를 시작했다(Fred began chopping wood)’와 ‘프레드는 나무를 찍기 시작했다(Fred began to chop wood)’. 첫 번째 서술은, 프레드가 얼마 동안 찍기를 계속하기를 호피족 화자가 기대한다면 사용될 터이다. 프레드가 계속해서 나무 찍기를 화자가 기대하지 않는다면 화자는 호피 말로 ‘프레드는 찍기를 시작했다(Fred began chopping)’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 화자는, ‘프레드는 찍기 시작했다(Fred began to chop)’로 번역되는 저 다른 시제를 사용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적인 요점은, 호피 족 화자는 자신의 시제들을 사용함에 의하여 자신의 다른 기대들을 표현만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오히려 두 가지 다른 사태들을 ㅡ 두 가지 다른 객관적인 상황들, 객관적인 세계에 대한 두 가지 다른 상태들 ㅡ 기술하고 싶어 한다. 한 가지 시제가 다소 반복적인 과정의 지속되는 상태의 시작을 기술한다고 언급될 것이고 반면, 나머지 한 가지 시제는 짧은 지속기간의 한 가지 사건의 시작을 기술한다. 그리하여 호피 족 화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여 호피 말을 영어로 번역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잠자기는 사건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과정이기 때문에 ‘프레드는 잠을 자기 시작했다(Fred began to sleep)’와 대조적으로, ‘프레드는 잠자기를 시작했다(Fred began sleeping)’로.
이 모든 것은 매우 많이 단순화된다: 복잡한 언어적 상황에 대한 워프의 기술 전체를 다시 서술하면 한 권의 논문이 쉽게 작성될 수 있을 터이다. 워프에 의하여 기술된 그리고 더 최근에는 콰인( Quine)에 의하여 토론된 상황들로부터 나타나는 듯이 보이는 나의 주제에 대한 주요 결과는 이렇다. 어떤 서술이 지닌 진리와 관련하여 언어적 상대성이 있을 수는 없을지라도, 어떤 서술이 특정 다른 언어들로 번역될 수 없을 가능성은 있다. 이유인즉 두 가지 다른 언어들이, 세상이 구성된 것들에 대한 혹은 세계의 기본적인 구조적 특징들에 대한 두 가지 다른 견해들을 그 언어들의 문법에 내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콰인의 용어사용법으로 이것은 언어의 ‘존재론적 상대성(ontological relativity)’으로 지칭될 것이다.
몇몇 서술들이 번역될 수 없다는 가능성은, 콰인(Quine)이 ‘존재론적 상대성’으로 지칭한 것으로부터 우리가 도출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결과에 관한 것이라고 나는 제안한다. 번역불가능성에 대한 콰인의 다양하게 두드러지지만 다소 선험적인 논증들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인간 언어들은 사실상 합리적으로 상호 번역될 수 있다. 물론 몇몇 언어들은 나쁘게 상호 번역될 수 있다 ㅡ 아마도 존재론적 상대성 때문에, 아마도 다른 이유들 때문에. 예를 들어 우리의 유머감각의 도움을 받는 것이나 지역적으로 잘 알려진 역사적 사건에 대한 언급은 전혀 번역될 수 없을 것이다.
XI
참석자들이 세계의 다양한 지역들에서 모여 다양한 언어들을 말한다면 이 상황으로 인하여 합리적 토론이 틀림없이 매우 어려워진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난제들이 흔히 극복될 수 있음을 나는 발견했다. 런던경제대학에서 나에게는 유럽과 미국 출신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중동, 인도, 동남아시아, 중국 그리고 일본 출신이기도 한 학생들이 있었다. 그리고 두 편에서 조금 인내심을 발휘한다면 그 난제들은 통상적으로 극복될 수 있음을 나는 발견했다. 극복되어야 할 주요 장애물이 있을 때마다, 그것은 통상적으로 서양의 관념들로 교화한 결과들이었다. 나쁘게 서양화된 학교와 대학에서의 독단적이고 무비판적인 가르침과 특히 서양의 장광설에서의 그리고 어떤 서양의 이념에서의 훈련은, 나의 경험으로 문화적이거나 언어적 차이점보다 합리적 토론에 대하여 훨씬 더 심각한 장애물들이었다.
이 경험들로 인하여 나는, 충돌하는 문화들 중 한 가지 문화가 자체를 보편적으로 우수한 것으로 간주한다면 문화충돌은 자체의 큰 가치를 잃을 것이고 그 한 가지 문화가 다른 문화에 의하여 그렇게 간주된다면 훨씬 더 큰 가치를 읽을 것이라는 암시를 받기도 했다: 이로 인하여 문화충돌의 큰 가치가 파괴될 것인데 이유인즉 문화충돌의 큰 가치는, 문화충돌이 비판적 태도를 일깨울 수 있다는 사실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더욱 특히, 두 가지 문화들 중 한 가지 문화가 자체의 열등성을 확신하게 되면, 상대방으로부터 배우려는 비판적 태도가 일종의 맹목적으로 수용으로 대체될 것이다: 신앙주의적이고 실존주의적인 철학자들에 의하여 그렇게 자주 기술되는 바와 같이, 새로운 마술 단체나 개종으로의 맹목적인 투신.
존재론적 상대성은 비록 편이한 의사소통에 장애물일지라도, 어둠 속으로 갑자기 뛰어드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충분히 서서히 극복될 수 있다면 문화충돌의 훨씬 더 많은 중요한 경우들에서 엄청난 가치로 증명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이유인즉 그것은, 문화충돌에서 상대방들이 자신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편견들로부터 ㅡ 예를 들어 그들의 언어의 논리적 구조에 고착되었을 이론들을 무의식적으로 당연시함으로부터 ㅡ 자신들을 해방시킬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 해방은 문화충돌에 의하여 일깨워지는 비판의 결과일 것이다.
그런 경우들에서 무슨 일이 발생하는가? 우리는 새로운 언어를 우리 자신의 언어와 혹은 우리가 잘 아는 몇몇 다른 언어들과 비교하고 대조한다. 이 언어들에 대한 비교연구에서 우리는 통상적으로 우리 자신의 언어를 메타언어(metalanguage)로서 ㅡ 다시 말해서, 우리 자신의 언어를 포함하여 연구의 대상들인 언어들에 대하여 우리가 사용하여 말하고 그 대상들인 언어들을 비교하는 언어로서 ㅡ 사용한다. 연구되고 있는 언어들을 대상 언어들이다. 연구를 실행하면서 다른 언어들이 그 존재를 당연시하는 실체들의 종류를, 우리 자신의 언어로 ㅡ 가령 영어 ㅡ 된 규칙들과 습속들(usages)이 완전히 포착하거나 기술할 수 없으므로, 우리 자신의 언어가 다소 편협할 그 규칙들과 습속들의 집합이라고 우리는 비판적인 방식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상언어로서 영어의 한계들에 대하여 이렇게 기술하는 것은, 메타언어로서의 영어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 비교연구에 의하여, 우리가 연구하고 있는 저 한계들을 정확하게 초월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흥미로운 요점은, 우리가 이것에서 성공한다는 점이다. 우리의 언어를 초월하는 수단은 비판이다.
워프(Whorf) 자신과 그의 추종자 몇 명은, 우리 언어의 구조적 규칙들에 형성된 감옥인 일종의 지식적 감옥 안에 우리가 산다고 제안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갇혀 있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은 기묘한 감옥이라고 내가 그 은유에 부언했을지라도, 나는 기꺼이 이 은유를 수용한다. 우리는 문화충돌을 통하여 그 감옥을 의식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경우에, 바로 이 의식으로 인하여 우리는 감옥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다. 우리가 충분히 열심히 노력한다면, 새로운 언어를 공부함에 의하여 그리고 그 언어를 우리 자신의 언어와 비교함에 의하여 우리는 우리의 감옥을 초월할 수 있다.
인정되는 바와 같이, 그 결과는 새로운 감옥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 감옥은 훨씬 더 크고 더 넓은 감옥일 것이다. 그래서 다시 우리는 그 감옥으로부터 고통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혹은 더 정확하게, 우리가 그 감옥으로부터 정말로 고통을 당할 때마다 우리는 자유롭게 그 감옥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그리하여 훨씬 더 넓은 감옥으로 다시 탈출할 것이다.
감옥들은 이론구조들이다. 그래서 감옥들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론구조의 신화에 반대할 것이다. 그들은, 또 다른 세계에서 오며 또 다른 이론구조로부터 온 상대방과의 토론을 환영할 것인데 이유인즉 그 토론으로 인하여 지금까지 그들이 느끼지 못한 속박들을 발견할 기회와 이 속박들을 떨칠 기회 및 그리하여 자신들을 초월할 기회가 그들에게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감옥으로부터의 이 탈출은 일상적인 문제가 아니다: 그 탈출은 오직 비판적 노력과 창조적 노력의 결과일 수 있다.
XII
이 논문의 나머지 부분에서 이 간략한 분석을, 내가 큰 흥미를 지닌 분야에서 ㅡ 과학철학 ㅡ 출현한 몇 가지 문제들에 적용하려고 시도하겠다.
이론구조의 신화와 매우 유사한 어떤 견해에 내가 도달한 이래 지금 50년이 되었다 ㅡ 그리고 내가 그 견해에 도달했을 뿐만 아니라 즉각 그 견해를 뛰어넘기도 했다. 폐쇄된 논리구조 안에서 사는 사람들과 ㅡ 마르크스주의자들, 프로이트 추종자들 그리고 아들러(Adler) 추종자들과 같은 사람들을 나는 의미한다 ㅡ 진전을 이룩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내가 알아낸 것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커다랗고 열띤 토론들에서였다. 이들 중 누구도 세상에 대하여 자신이 채택한 견해에서 흔들릴 수 없었다. 그들의 논리구조에 반대하는 모든 논증은 그들에 의하여 그들의 논리구조에 들어맞도록 해석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어렵다고 판명되면 논증자의 정신이나 사회적 관계가 항상 분석되었다: 마르크스의 이념들에 대한 비판은 계급 편견 탓이었고 프로이트의 관념들에 대한 비판은 억압 탓이었으며 아들러의 관념에 대한 비판은, 열등감을 보상하려는 시도에서 기인하는 충동인 여러분의 우월감을 증명하려는 충동 탓이었다.
이 태도들의 정형화된 모형이 절망적이고 혐오스러운 것을 나는 발견했는데, 아인슈타인의 일반이론 또한 당시 뜨겁게 토론되었을지라도 그 일반이론에 관한 물리학자들의 논쟁들에서 그런 종류의 모형을 내가 발견할 수 없어서 훨씬 더 절망적이고 혐오스러웠다.
이 경험들로부터 도출한 교훈은 이렇다. 이론들이 없다면 우리가 세상에서 우리 자신의 방향을 정할 수 없을 터이기 때문에 ㅡ 우리는 살 수 없을 터이다 ㅡ 이론들은 중요하고 필수불가결하다. 심지어 우리의 관찰들도 이론들의 도움을 받아서 해석된다. 마르크스주의자는 문자 그대로 도처에서 계급투쟁을 본다. 그리하여 마르크스주의자는, 의도적으로 눈을 감는 자들만 계급투쟁을 볼 수 없다고 믿는다. 프로이트 추종자는 도처에서 억압과 승화(昇華: sublimination)를 본다. 아들러 추종자는 열등감이, 열등의식의 발로이든 우월감의 발로이든, 모든 행위와 모든 발화에서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본다.
이로 인하여 이론들에 대한 우리의 욕구와 이론들이 지닌 힘이 엄청남이 밝혀진다. 그리하여 특정 이론에 중독되는 것을 경계함이 훨씬 더 중요하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정신적 감옥에 갇히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나는 당시 문화충돌 이론을 알지 못했지만, 사람이 자신의 생애 어느 순간에 혹시 무의식적으로 고착된 어떤 이론이라는 지식적 감옥으로부터 자신을 해방한다는 이상을 내 생각에 각인시키기 위하여 다양한 이론구조들에 대한 중독들과 나는 틀림없이 충돌했다.
순간적인 감옥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개념인 이 자기-해방의 개념은 아마도 다음 차례에 이론구조 즉, 감옥의 일부가 될 것임은 ㅡ 혹은 다시 말해서, 우리가 결코 절대적으로 자유롭게 될 수 없음 ㅡ 아주 명백하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감옥을 넓힐 수 있고 적어도 자신의 족쇄에 중독된 사람의 편협함으로부터 떠날 수 있다.
그리하여 세상에 대한 우리의 견해는 어떤 순간에도 이론을 함유한다. 그러나 이로 인하여 우리는 나은 이론들로 전진하는 데 방해를 받지 않는다. 우리는 어떻게 그것을 성취하는가? 필수적인 단계는 우리의 신념들을 언어로 언명하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우리의 신념들은 객관화되고 그리하여 우리의 신념들은 비판의 과녁들이 될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의 신념들은, 경쟁하는 이론들에 의하여 그리고 경쟁하는 추측들에 의하여 대체된다. 이 이론들에 대한 비판적 토론을 통하여 우리는 진보할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나은 이론에게 다시 말해서 어떤 덜 좋은 이론을 넘어 진보하는 것으로서 간주될 이론에게, 그 이론이 덜 좋은 이론과 비교될 수 있음을 우리는 요구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토머스 쿤(Thomase Kuhn)의 문맥에 도입된 지금 유행하는 용어를 사용하여 두 가지 이론들이 ‘동일한 기준으로 측정될 수 없지(incommensurable)’ 않음을 우리는 요구해야 한다.
예를 들어, 프톨레마이오스(Ptolemy)의 천문학은 아리스타쿠스(Aristarchus) 및 코페르니쿠스의 천문학과 결코 동일한 수준으로 측정될 수 없지 않다. 의심의 여지 없이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체계로 인하여 우리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바라볼 수 있다. 의심의 여지 없이 쿤(Kuhn)이 지칭하는 바와 같이 심리학적으로 형태 전환(Gestalt shift)이 있다. 이것은 심리학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두 가지 이론체계들을 논리적으로 비교할 수 있다. 사실상 기하체계에 맞추어질 수 있는 모든 천문학적 관찰들은 간단히 변환하는 방법에 의하여 항상 태양 중심 체계에 맞추어질 수 있다는 것은 코페르니쿠스의 주요 논증 중 한 가지였다. 세계에는 우주에 대한 이 두 가지 견해들 사이에 모든 차이점이 틀림없이 있고, 이 두 가지 견해들 사이의 격차 규모로 인하여 우리가 전율하게 될 개연성이 틀림없이 높다. 그러나 그 견해들을 비교하는 데 어려움은 없다. 예를 들어 우리는, 항성들(恒星들: fixed stars)의 회전하는 구(球: sphere)가 자체의 적도 가까이에 있는 별들에게 틀림없이 부여하는 거대한 속도들을 지적할 것인데 반면 지구의 회전은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체계 안에서 항성의 회전을 대신하는데 훨씬 더 작은 속도들을 포함한다. 원심력을 조금 실제로 알게 되면 이것은, 두 가지 이론체계들 사이에서 선택해야 했던 사람들에게 비교와 관련하여 중요한 요점으로서 작동했을 개연성이 높다.
동일한 문제들로부터 (가령, 천체들의 운동을 설명하는 것) 역사적으로 성장한 이론체계들 사이에서의 이런 종류의 비교는 항상 가능하다고 나는 주장한다.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관련된 문제들에 해결책들을 제공하는 이론들은 통상적으로 비교될 수 있다고 나는 주장하고 그 이론들 사이에서의 토론들은 항상 가능하고 유용하다. 그리고 그 토론들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발생한다.
XIII
몇몇 사람들은 이 주장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이로 인하여 과학과 과학사에 대한 나의 견해와 매우 다른 견해가 생긴다. 과학에 대한 그런 견해를 나는 간략하게 개괄하고 싶다.
그런 견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과학자들이 보통 긴밀하게 협조하여 토론에 몰두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헌신하는 공동의 이론구조들 안에서 보통 연구한다는 사실에 의하여 이런 상황이 가능해진다고 주장한다. (이런 종류의 이론구조들은 내가 보기에 칼 만하임[Karl Mannehim]이 ‘total ideologies’로 지칭했던 것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과학자들이 이론구조에 몰두하는 기간들은 전형적인 것으로서 간주된다. 그것들은 ‘정상적인 과학’의 기간들이고 이런 방식으로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정상적인 과학자들’로서 간주된다.
이런 의미에서의 과학은 그다음에 위기나 혁명 기간의 과학과 대조된다. 이것들은, 이론구조가 균열하기 시작하고 결국 부서지는 기간들이다. 그다음에 그 이론구조는 새로운 이론구조에 의하여 대체된다. 옛 이론구조로부터 새로운 이론구조로의 전환은, 논리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이유인즉 그 관점이 본질적으로 완전히 합리적이 아니고 심지어 주로 합리적이 아니기 때문에) 심리학적 및 사회학적 관점에서 연구되어야 하는 과정으로서 간주된다. 새로운 이론구조로의 변환에는 아마도 ‘진보’와 같은 것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진리에 대한 근접으로 구성되는 진보가 아니고, 경쟁하는 이론들의 상대적인 장점들을 합리적으로 토론함에 의하여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것은 그렇게 영향을 받지 않는데 왜냐하면 진정으로 합리적인 토론은 확립된 이론구조가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어떤 이론구조가 없으면, 이론에서 ‘장점’의 한 요점을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동의함이 가능하다고 심지어 생각되지도 않는다. (이 견해의 몇몇 주창자들은 심지어, 우리가 이론구조에 상대적으로만 진리를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합리적 토론이 도전을 받고 있는 이론구조라면 그 토론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것이, 두 가지 이론구조들이 ㅡ 옛 이론구조와 새로운 이론구조 ㅡ 때때로 동일한 기준으로 측정될 수 없는 것으로서 기술된 이유이다.
이론구조들이 때때로 동일한 기준으로 측정될 수 없다고 언급되는 추가적인 이유는 이러한 듯이 보인다. 이론구조는, ‘지배적인 이론’으로서 구성될 뿐만 아니라 부분적으로 심리학적 및 사회학적 실체로서 구성되는 것으로서 생각될 수 있다. 이론구조는, 때때로 심지어 세상을 보는 방식과 삶의 방식을 포함하여 지배적인 이론과 조화를 이루는 것들을 바라보는 방식이라고 우리가 혹시 지칭할 것과 함께 어떤 지배적인 이론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그런 이론구조는 그 이론구조를 추종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회적 결속력이 된다: 그런 이론구조는 그 추종자들을 함께 묶어두는데 교회들이 하는 행동과 매우 같고 정치적 및 예술적 신조들의 역할과 매우 같거나 이념들의 작용과도 매우 같다.
이것이, 같은 기준으로 측정 불가능하다는 주장에 대한 추가적 설명이다: 삶의 두 가지 방식과 세상을 바라보는 두 가지 방식이 같은 기준으로 측정될 수 없다는 것은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들이 낳은 문제들을 (문제들이 낳은 문제의 자식들) 포함하여 문제들의 동일한 계통을 해결하려고 시도하는 두 가지 이론들은 동일한 기준으로 측정될 수 없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그리고 종교와 반대로 과학에서 최고로 중요한 것은 문제들과 이론들이라는 것을 나는 강조하고 싶다. ‘과학적 접근방식’이나 과학적인 ‘생활방식’과 ㅡ 다시 말해서, 과학에 헌시하는 저 사람들의 생활방식 ㅡ 같은 것이 있음을 나는 부인하고 싶지 않다. 반대로 과학적인 생활방식은 객관적인 과학적 이론들에 대한 ㅡ 본질적인 이론들에 대한, 그리고 그 이론들이 지닌 진리나 그 이론들이 지닌 진리 근접성에 대한 ㅡ 불타는 관심을 포함한다고 나는 주장한다. 그리고 이 관심은 논증적인 관심이자 비판적인 관심이다. 그리하여 이 관심으로 인하여, 몇몇 다른 신조들처럼, 서술된 ‘동일한 기준으로 측정불가능성’과 같은 것이 생기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내가 방금 토론한 과학사 이론에 대하여 많은 반대사례들이 존재한다. 먼저 ‘이론구조’의 ㅡ 지배적인 이론의 그리고 그 이론 안에서 계속되는 연구의 ㅡ 존재가 전혀 과학의 발전에 대하여 필요한 조건도 아니고 특징적인 조건도 아님을 보여주는 반대사례들이 있다. 더욱 특히, 여러 세기 동안 과학들에서의 패권을 위하여 싸우는 몇 가지 ‘지배적인’ 이론들이 있을 것임을 보여주고 심지어 그 이론들 사이에서 유용한 토론들이 있을 것임을 보여주는 반대사례들이 있다. 이 주제에서 나의 주요 반대사례는, 물질 구성의 이론인데 그 이론에서 원자론과 연속이론들(continuity theories)이 피타고라스학파와 파메니데스 및 데모크리토스와 플라톤에서부터 하이젠베르크와 슈뢰딩거까지 싸움을 벌여서 결실을 얻었다. 이 싸움이 과학 이전역사에 속한다거나, 과학 이전의 역사에 속하는 것으로서 기술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두 번째 종류의 또 다른 반대사례는 운동학적 이론 및 현상학적 이론과 싸우는 열 이론들(the theories of heat)로 구성된다. 그리고 에른스트 마흐(Ernst Mach)와 막스 플랑크(Max Planck) 사이의 충돌은 위기의 특징도 아니었고 한 가지 이론구조 안에서 발생하지도 않았으며 정말로 그 충돌은 과학 이전으로서 기술될 수도 없었다. 또 다른 충돌은, 칸토어(Cantor)와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 (특히 크로네커[Kronecker]) 사이의 충돌인데 나중에 러셀과 푸앵카레, 힐베르트(Hilbert) 및 브라우어(Brouwer) 사이에서 언쟁의 형태로 계속되었다. 1925년에 적어도 세 가지로 뚜렷이 반대되는 이론구조들이 관련되어 있었고 그 이론구조들은 서서히 자체의 특징을 바꾸었다. 지금 생산적인 토론들이 발생했을 뿐만 아니라 많은 통합이 일어나서 과거의 비난들은 거의 잊혔다. 세 번째, 새로이 확립된 지배적인 이론을 추종하는 사람들과 확신하지 못하는 회의론자들 사이에 생산적인 합리적 토론들이 계속될 것임을 보여주는 반대사례들이 있다. 그런 것은 갈릴레오의 두 가지 세계 체계들에 대한 대화(Dialogue Concerning the Two Chief World Systems)이다. 그런 것은 아인슈타인의 ‘인기 있는’ 글들 중 몇 가지 글들이거나, E. 크레취만(Kretschmann)에 (1917년) 의한 아인슈타인의 공변원리(principle of covariance)에 대한 중요한 비판이나 최근 디키(Dicke)에 의한 아인슈타인의 일반론(General Theory)에 대한 비판이다. 그리고 그런 것은 아인슈타인의 보어(Bohr)와의 토론들이다. 후자(後者)가 생산적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옳지 않을 터인데 이유인즉 그 토론들로 인하여 양자역학에 대한 보어의 이해가 많이 향상되었다고 보어가 주장할 뿐만 아니라 그 토론들이 아인슈타인과 포돌스키(Podolsky) 및 로젠(Rosen)의 유명한 논문을 낳았다고 또한 주장하기 때문인데 그 논문은 상당히 중요한 문헌 전체를 낳았고 아직 더 많은 문헌을 낳을 것이다. 35년 동안 인정된 전문가들에 의하여 토론되는 논문은 자체의 과학적 위상과 중요성이 부인될 수 없지만 이 논문은 확실히, 1925-6년의 혁명에 의하여 확립된 이론구조 전체를 비판하고 (외부에서) 있었다. 이 이론구조에 ㅡ 코펜하겐 이론구조 ㅡ 대한 반대는, 앞의 주석에서 언급된 저 이름들과 별도로 예를 들어 드 브로이(de Broglie)와 봄(Bohm)과 란데(Landé) 및 비지에(Vigier)가 속하는 소수에 의하여 계속된다.
그리하여 토론들은 항상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과학자들의 사회를 폐쇄 사회로 변환시키려는 시도들이 항상 있을지라도, 이 시도들은 성공하지 못했다. 나의 견해로 이 시도들은 과학에 치명적일 터이다.
이론구조의 신화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론구조 안에서 이루어지는 과학의 합리적 기간들과 (폐쇄되거나 권위적인 과학의 기간들로서 기술될 수 있는) 위기와 혁명의 기간들을 (한 가지 이론구조에서 또 다른 이론구조로 거의 비합리적인 비약으로서 ㅡ 종교적 개종에 비교될 수 있는 ㅡ 기술될 수 있는) 명쾌하게 구분한다.
의심할 바 없이 기술된 바와 같은 개종들과 같은 비합리적인 비약들이 있다. 의심할 바 없이 다른 과학자들의 지도를 추종하기만 하거나 사회적 압력에 굴복하여 새로운 이론을 새로운 신조로 수용하는 과학자들이 있는데 왜냐하면 전문가들이자 권위자들이 그 이론으로 수용했기 때문이다. 과학에 유행이 있다는 것과 또한 사회적 압력이 있다는 것을 나는 유감스럽게도 인정한다.
나는 심지어, 과학자들의 사회적 공동체가 지배적인 독단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과학자들로 주로 혹은 배타적으로 구성될 날이 올 개연성이 있음을 인정한다. 그 과학자들은 보통 유행들에 의하여 휘둘릴 것이다. 이론이 최신 소란떨기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 과학자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들로 간주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그 과학자들은 어떤 이론을 수용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이것은 과학의 종말일 ㅡ 탈레스(Thales) 및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er)에 의하여 창조되어 갈릴레오에 의하여 재발견된 전통의 종말 ㅡ 것이다. 과학이 진리 탐구라면, 과학은 경쟁하는 이론들 사이에서의 합리적인 토론일 것이고 혁명적 이론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적 토론일 것이다. 이 토론은, 새로운 이론이 옛 이론보다 나은 것으로서 간주될 수 있는지 혹은 없는지를 결정한다: 다시 말해서, 새로운 이론이 진리를 향한 진보로 간주될 수 있는지 혹은 아닌지를.
XIV
거의 40년 전 심지어 관찰들도 그리고 관찰보고서들도 이론들의 영향을 받거나 여러분이 원한다면 이론구조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나는 강조했다. 정말로 이론이 함유되지 않은 관찰인 해석되지 않는 관찰과 같은 것은 없다. 사실상의 우리가 지닌 바로 눈과 귀가 진화적 적응의 ㅡ 다시 말해서, 추측과 논박의 방식에 대응하는 시행과 착오의 방식의 ㅡ 결과이다. 두 가지 방법들 모두는 환경적 규칙성들에 대한 적응들이다. 한 가지 간단한 사례가, 평범한 시각적 경험들이 그 경험들 안에 내장된 위아래에 대한 파메니데스 이전의 절대감각을 ㅡ 의심의 여지 없이 유전적으로 편향된 ㅡ 지닌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그 사례는 이렇다. 자체의 면들 중 한 면으로 서 있는 정사각형은 자체의 모서리들 중 한 모서리로 서 있는 정사각형과 다른 모습으로 우리 모두에게 보인다. 한 가지 모습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의 움직이는 데는 진정한 형태 전환이 있다.
그러나 관찰들에 이론이 함유되어 있다는 사실로 인하여 관찰들 사이나 이론들 사이에서 동일한 기준으로 측정불가능성이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주장한다. 이유인즉 옛 관찰들이 의식적으로 재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개의 정사각형은 동일한 정사각형의 다른 위치임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이것은, 유전에 근거한 해석들 때문에만 훨씬 더 쉽게 된다: 틀림없이 우리는 각각을 매우 잘 이해하는데 왜냐하면 우리의 유전자 체계들에 내장된 매우 많은 생리적 구조들을 우리가 공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심지어 우리의 유전에 근거한 생명의 원리도 초월할 수 있다고 나는 주장한다. 비판적 방법에 의하여 우리는 이것을 이룩한다. 우리는 심지어 벌들의 언어도 조금 이해할 수 있다. 인정되는 바와 같이, 이 이해는 추측성이고 초보적이다. 그러나 거의 모든 이해는 추측성이고, 새로운 언어를 이해하는 것은 항상 시작부터 초보적이다.
우리가 문화적으로 습득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우리의 타고난 이론구조들을 우리가 초월하도록 만드는 것은, 과학의 방법이자 비판적 토론의 방법이다. 이 방법으로 인하여 우리의 감각들을 초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세상을 정체가 파악될 수 있는 물체들과 그 물체들의 속성들로 구성된 우주로서 간주하는 성향 또한 우리는 초월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 성향은 우리 내부에 부분적으로 내재한다.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 이래 세상은 과정들로 구성된다고, 그리고 사물들은 표면적으로만 사물들이라고 우리에게 알려준 혁명가들이 있었다: 실제로 사물들은 과정들이다. 이로 인하여, 이론구조가 우리의 규약적인 언어에 뿐만 아니라 우리의 유전학에도 ㅡ 인간의 본성 자체로 지칭될 것에 ㅡ 뿌리를 두었을지라도 비판적 사고가 어떻게 이론구조에 도전해서 그 구조를 초월할 수 있는지가 밝혀진다. 그러나 심지어 이 혁명으로 인해서도 앞선 이론과 동일한 기준으로 측정될 수 없는 이론이 생기지 않는다: 바로 혁명의 과제는, 더 심오한 이론에 의하여 옛 사물-상태의 범주를 설명하는 것이다.
XV
특히 널리 퍼진 이론구조 신화의 매우 특별한 형태가 있다고 나는 또한 언급할 것이다. 그것은, 토론 전에 우리가 우리의 어휘에 동의해야 ㅡ 아마도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들을 정의함’에 의하여 ㅡ 한다는 의견이다.
나는 다양한 경우들에서 이 의견을 비판해서 또다시 비판할 공간이 나에게 없다. 이 의견에 반대하는 가장 강력한 이유들이 있음을 나는 분명히 하고 싶을 따름이다. 소위 ‘조작적 정의들(operational definitions)’을 포함하여 모든 정의들은, 문제가 되는 용어의 의미라는 문제를 용어들을 정의하는 것으로 변질시킬 수 있을 따름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소위 ‘원초적’ 용어들, 다시 말해서 정의되지 않은 용어들을 수용하지 않으면, 정의들을 요구함으로 인하여 무한회귀(無限回歸: infinite regress)가 발생한다. 그러나 이것들은 일반적으로 정의된 용어들 못지않게 문제가 된다.
XVI
이 논문의 마지막 절에서, 논리적 관점에서 나는 이론구조의 신화를 간략하게 토론하겠다: 나는 그 질병증상에 대하여 논리적 진단과 같은 것을 시도하겠다.
이론구조의 신화는 분명히, 우리가 근본적인 것을 합리적으로 토론할 수 없다는 교설 혹은 원리들에 대한 합리적 토론이 불가능하다는 교설과 동일하다.
이 교설은 논리적으로, 모든 합리적인 토론은 그 원리들이 몇몇 원리들로부터 혹은 그 원리들이 흔히 지칭되는 바와 같이 공리들(公理들: axioms)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잘못된 견해의 결과인데, 우리가 무한회귀(無限回歸: infinite regress)를 ㅡ 원리들이나 공리들의 타당성을 합리적으로 토론할 때 우리가 다시 원리들이나 공리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되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회귀 ㅡ 피하고 싶다면 그 원리들이나 공리들이 독단적으로 수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보통 이 상황을 본 사람들은, 원리들이나 공리들로 구성된 이론구조의 진리를 독단적으로 고집하거나 상대주의자들이 된다: 다양한 이론구조들이 있다고 그리고 그 이론구조들 사이에는 합리적 토론이 없어서 합리적 선택이 없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오류이다. 이유인즉 그 배후에는, 합리적 이론에는 수용된 전제들로부터 나온 정당성이나 증거나 증명 혹은 논리적 추론의 특징이 있어야 한다는 암묵적 가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과학들에서 진행되고 있는 종류의 토론에 의하여 우리의 철학자들은, 또 다른 종류의 토론이 또한 있다는 가르침을 아마도 받았을 것이다: 비판적 토론인데 그 토론은 이론을 증명하거나 정당화하거나 확립하려고 시도하지 않으며 이론으로부터 더 고차원적인 전제들을 도출함에 의해서는 전혀 아니고, 이론의 논리적 결론들 모두가 수용될 수 있는지 혹은 이론에 혹시 몇 가지 바람직하지 못한 결론들이 있는지를 발견해 냄에 의하여 토론되고 있는 이론을 시험하려고 시도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잘못된 비판 방법과 올바른 비판 방법을 논리적으로 구분할 수 있다. 잘못된 방법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우리의 논지나 우리의 이론을 우리는 어떻게 확립하거나 정당화할 수 있는가? 그리하여 그 질문은, 독단론이나 무한회귀 혹은 합리적으로 동일한 기준에 의하여 측정될 수 없는 이론구조들이라는 상대주의적 교설을 초래한다. 대조적으로, 비판적 토론이라는 올바른 방법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우리의 논지나 우리의 이론의 결론들은 무엇인가? 그 결론들은 모두 우리에게 수용될 수 있는가?
그리하여 올바른 방법은 다양한 이론들의 (혹은 여러분이 원한다면, 다양한 이론구조들) 결론들을 비교하는 것을 본질로 하여 경쟁하는 이론들이나 이론구조들 중 어느 것에 우리가 선호할 수 있는 듯이 보이는 결론들이 있는지를 발견하려고 노력한다. 그리하여 올바른 방법은 나은 이론들에 의하여 우리의 모든 이론들을 대체하려고 노력하지만, 우리의 모든 방법들이 지닌 오류가능성을 의식한다. 이것은 인정되는 바와 같이, 어려운 과제이지만 불가능한 과제는 전혀 아니다.
물론 이론구조의 신화를 지지하는 사람은 아마도 이 관념을 비판할 것이다. 그는 아마도 예를 들어, 내가 비판의 올바른 방법이라고 지칭한 것으로 인하여 우리가 이론구조로부터 전혀 탈피할 수 없다고 말할 것이다 ㅡ 이유인즉 그는, ‘우리가 선호할 수 있게 보이는 결론들’ 자체가 우리의 이론구조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에게는 어떤 이론구조를 비판하여 초월하는 것보다 단순한 자기-정당화의 모형이 있다고.
그러나 이 비판은 잘못되었다고 나는 주장한다. 우리가 이런 방식으로 우리의 견해들을 해석할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목표나 목적을 ㅡ 우리 자신이 그 우주의 한 부분인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를 더 잘 이해하려는 목표와 같은 ㅡ 추구하기로 결정할 수 있는데 그 목표나 목적은, 우리가 이 목표를 충족시키려고 시도하기 위하여 구축하는 특정 이론들이나 이론구조들과 독립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설명의 기준들과 방법론적 규칙들을 설정할 수 있는데 그것들은 우리가 우리의 목표를 성취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고 이론이나 이론구조가 그것들을 충족시키기가 쉽지 않다. 물론 우리는 이렇게 하지 않겠다고 결정할지도 모른다: 우리의 관념들이 스스로 강화되게 만들겠다고 결정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가 알기에 우리의 현재 관념들이 성취할 수 있는 과제만을 우리 자신에게 설정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틀림없이 그렇게 하겠다고 결정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로 그렇게 하겠다고 결정한다면, 우리가 틀렸다는 것을 배울 가능성에 우리가 등을 돌릴 뿐만 아니라 우리는 또한 현재의 우리를 만든 그리고 지식을 통한 추가적 자기-해방이라는 희망을 우리에게 제공하는 비판적 사고의 전통에 (그리스인들에게서 유래하고 문화충돌에서 유래하는) 또한 등을 돌릴 것이다.
요컨대 이론구조들은, 언어들처럼, 장애물들일지도 모른다. 이론구조들은 심지어 감옥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묘한 구상적 이론구조는, 외국어와 꼭 마찬가지로, 절대적인 장애물이 아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감옥인 이론구조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 이론구조로 침투할 수 있다. 그리고 언어 장애물을 관통하는 것이 어렵지만 시간을 들일 가치가 있고 우리의 지식적 지평을 넓힘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많은 즐거움을 선사함에 의해서도 우리의 노력에 보답할 것 같은 것과 꼭 마찬가지로, 이론구조라는 장애물을 관통하는 것도 그렇다. 이런 종류의 관통은 우리에게는 발견이 된다. 그것은 과학에서 관통을 초래했고 다시 그렇게 할 것이다.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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