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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구조의 신화, 과학과 합리성을 옹호하여 3장 이성인가 혁명인가?

이윤진이카루스 2021. 7. 17. 10:28

이론구조의 신화, 과학과 합리성을 옹호하여, 3장 이성인가 혁명인가.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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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성인가 혁명인가?

 

 

 

 

전체적인 혁명과 관련된 문제는...

동일한 계급을 꼭대기까지 올려놓는다는 것이다.

재능있는 실천을 이룩하는 자들은

그리하여 중간쯤 가다가 멈추기로 계획할 것이다.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다음 비판적 고찰들은 독일 사회학에서 실증주의 논쟁(Der Positivismusstreit in der deutschen Soziologie)이라는 저서에 대한 대응인데 그 저서는 1969년에 발간되었고 그 저서에 대하여 나는 알지 못하고 원래 대안을 제공했다.

 

I

 

나는 그 저서의 내력 그리고 그 저서의 오해를 일으키는 제목 몇 가지를 말하면서 시작하겠다. 1960년에 나는, 튀빙겐의 독일 사회학자들 회의에서 사회과학의 논리에 관한 토론을 열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나는 수락했다 ㅡ 그리

 

이 논문은, 레이몽 아롱(Raymond Aron) 교수가 제안한 결과로 탄생했다. 나의 논문 사회과학의 논리(The Logic of the Social Sciences)’독일 사회학에서 실증주의 논쟁(Der Positivismusstreit in der deutschen Soziologie)으로 (아래 주석 1 참조) 잘못 이름이 붙은 선집의 세 번째 논문으로서 독일에서 최초로 발표되었는데 그 방식에서 무의식중에 이 실증주의 논쟁을 촉발한 것은 그 논문이었다는 것이 설명되지 않았다. (‘사회과학의 논리의 수정본에 대하여, 나의 저서 나은 세상을 찾아서[In Search of a Better World], 루틀리쥐 출판사, 런던, 1992년 참조.) 1970년 나는, 타임즈 문예 부록(Times Literary Supplement)(‘변증법적 방법론[Dialectical Methodology]’, TLS 69, 19703, 388-9) 나타난 실증주의 논쟁 책자에 대한 검토를 비판하여 그곳에 편지를 보냈다. 아롱 교수는, 내가 이 편지를 확대하여 그 책자에 대한 나의 반론을 더 완벽하게 설명할 것을 제안했다. 현재의 논문에서 나는 이것을 이행하는데 그 논문은 유럽 사회학 문서보관소(Archives europénnes de sociologie), 11, 1970, 252-62쪽에 최초로 발표되었고 그 논문은 실증주의 논쟁 책자의 영어본에 또한 첨부되었다. (테오도르 아도르노[Theodor Adorno] 편집, 글린 에이디[Glyn Adey] 및 데이비스 프리스비[David Frisby] 번역, 독일 사회학에서 실증주의 논쟁[The Positivist Dispute in German Sociology], Harper & Row 출판사, 1976년 참조.) 좌우명은 로버트 프로스트, 증인 나무(A Witness Tree)()-혁명(A Semi-Revolution)에서 가져왔다.

고 나의 개막 강좌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테오도르 아도르노 교수의 답변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언을 나는 받았다. 유익한 토론이 가능해지도록 내가 몇 가지 명확한 논지들로 나의 견해들을 언명해야 한다고 주최자들이 나에게 제안했다. 그렇게 나는 했다: 그 토론회에 대한 나의 개막 강좌는 1961년에 시행되었는데 27가지 분명히 언명된 논지들로 구성되었고 이론사회과학의 과제에 대한 프로그램의 언명이 덧붙었다. 물론 나는 이 논지들이 헤겔주의자나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도르노와 같은) 수용하기 어렵게 언명했다. 그리고 나는 그 논지들을 논증들에 의하여 최선을 다하여 입증했다. 허용된 시간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나는 근본적인 것들만 국한하여 내가 다른 곳에서 언급한 것의 반복을 피하려고 애썼다.

아도르노의 답변은 크게 힘주어 낭독되었지만 그는 나의 도전을 ㅡ 다시 말해서, 나의 27가지 논지들 ㅡ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어진 논쟁에서 랄프 다렌도르프(Ralf Dahrendorf) 교수는 큰 실망감을 드러냈다. 사회과학에 대한 나의 접근방식과 아도르노의 접근방식 사이의 두드러진 차이점들 몇 가지를 ㅡ 분명히 그는 정치적 및 이념적 차이점을 포함시켰다 ㅡ 토론하는 것이 주최자들의 의도였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나의 강좌와 아도르노의 답변에 의하여 생성된 인상은 달콤한 합의의 인상이었다고 ㅡ 그에게 충격을 남긴 사실 (포퍼 경과 아도르노 씨가 충격적으로 합의한 것처럼[as seiner Herr Popper und Herr Adorno sich in verblüffender Weise einig]) ㅡ 그는 말했다. 나는 이것에 대하여 매우 유감스러웠고 아직도 매우 유감스럽다. 그러나 사회과학의 논리에 관하여 강연하도록 초대를 받아서 나는 나의 길을 벗어나서 아도르노와 변증법적인프랑크푸르트학파를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Horkheimer], 하버마스 ) 공격하지 않았는데, 정치적 관점에서가 아니라면, 그 학파를 나는 중요한 학파로 간주한 적이 없었다. 나는 주최자들의 의도를 인식하지 못했고 1960년에 나는 심지어 이 학파의 정치적 영향력도 인식하지 못했다. 오늘날 나는 망설이지 않고 이 영향력을 비이성주의적지성-파괴적과 같은 용어들에 의하여 기술할지라도, 나는 그들의 방법론을 (그 방법론이 무엇을 의미하든) 지식적 관점이나 학자적 관점에서도 결코 진지하게 고려할 수 없을 터이다. 지금은 다소 더 알기에, 다렌도르프가 실망한 것이 옳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이전에 나의 저서 열린사회와 그 적들(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변증법은 무엇인가(What is Dialectic)?’ 발표한 논증들이 사회과학의 논리라는 제목에 속한다고 내가 생각하지 않을지라도, 그 논증들을 이용하여 그들을 공격했어야 했다 ㅡ 이유인즉 용어들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유일한 위안은, 논쟁을 회피한 책임은 직접적으로 두 번째 강연자에게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다렌도르프의 비판으로 인하여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또 다른 회원인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의 논문이 (나의 원래 강연의 거의 두 배 길이인) 나왔다. ‘실증주의라는 용어가 이 특정 토론에서 처음 나타난 것은 이 논문에서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실증주의자로 비판을 받았다. 이것은, 나의 연구를 간접적으로만 아는 사람들에 의하여 조작되고 저질러지는 오래된 오해다. 비엔나학파의 몇몇 회원들이 보인 관용적인 태도 때문에 나의 저서인 탐구의 논리(Logik der Forschung)가 그 학파의 지도적 인물 두 명인 모리츠 슐릭(Moritz Schlick) 및 필립 프랑크(Philipp Frank)가 편집한 저서들의 연재물에 발표되었는데 나는 그 저서에서 실재론적이고 반()-실증주의적 관점으로 이 실증주의적 학파를 비판했다. 그리고 저서들의 표지에 의하여 (혹은 저서들의 편집자들에 의하여) 저서들을 판단하는 사람들이, 내가 비엔나학파의 회원이고 실증주의자였다는 허구를 조작했다. 저 저서를 (혹은 나의 다른 저서를) 읽은 사람은 아무도 동의하지 않을 터이다 ㅡ 정말로 그가 먼저 그 허구를 신뢰하지 않으면 동의하지 않을 터인데, 그 허구를 신뢰하는 경우에는 그는 물론 자신의 신뢰를 입증하는 증거를 발견할 것이다.

나를 옹호하여 한스 알베르트(Hans Albert) 교수가 (또한 실증주의자가 아니다) 하버마스의 공격에 대하여 열성적인 답변을 썼다. 하버마스는 답변했고 알베르트에 의하여 두 번째로 반박을 당했다. 이 설전은 주로 나의 견해들의 일반적인 특징 및 옹호가능성과 관련되었다. 그리하여 나의 1961년 개막 강좌에 대한 언급과 ㅡ 그래서 진지한 비판 ㅡ 그 개막 강좌의 27가지 논지들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나의 강좌에 아도르노의 답변과 하버마스와 알베르트 사이의 논쟁을 붙여서 서책의 형태로 출판하는 것을 내가 동의할 것인지를 한 독일 출판사가 물은 것은 1964년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동의했다.

그러나 지금 출판된 것처럼 (1969년에 독일어로), 그 저서는 아도르노에 의한 두 가지 완전히 새로운 서문들로 (94) 구성되고 아도르노의 원래 답변이 (18) 붙은 나의 1961년 강좌 (20), 다렌도르프의 불평 (9), 하버마스와 알베르트 사이의 논쟁 (150), 해롤드 파이롯(Harold Pilot)에 의한 새로운 기고문 (28) 그리고 알베르트에 의한 긴 서문에 대한 짧고 경악한 후기(Short Surprised Postscript to a Long Introduction)’(5) 이어졌다. 이것에서 알베르트는, 사건이 1961년 아도르노와 나 사이의 토론에서 시작되었다고 간략하게 언급하고 이 저서의 독자는 그게 모두 무엇과 관련되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아주 올바르게 말한다. 이것은 그 사건의 배후 이야기를 그 저서에서 언급한 것일 따름이다. 그 저서에는, 몇몇 실증주의자들의 견해들이 그 저서에서 토론된다고 완전히 잘못 지적하는 제목을 어떻게 얻었는지의 문제에 대한 답변은 없다. 심지어 알베르트의 후기도 그 문제에 답변하지 않는다.

결과가 무엇인가? 토론을 시작하기로 의도된 27가지 논지들은 (결국 그 논지들은 토론되었다) 이 상당히 두꺼운 저서 어디에서도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ㅡ 나의 강좌에서 나오는 한두 가지 구절이 소위 나의 실증주의를 예시하기 위하여 일반적으로 문맥을 벗어나 여기저기서 언급될지라도 그 논지들 중 단 하나의 논지도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나의 강좌는 시작과 끝에서 단절되어 그 저서의 중간에 묻혔다. 나의 강좌가 (그 강좌의 현재 상황에서 내가 완전히 불만족스럽게 간주할 수밖에 없는) 그 저서에 포함된 이유를 어떤 독자도 알 수 없고 어떤 검토자도 이해할 수 없다 ㅡ 혹은 나의 강좌가 저서 전체에서 수용되지 않은 주제라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 그리하여 그 문제의 사실로서 내가 생각하는 것을 어떤 독자도 생각하지 않을 터이고 어떤 검토자도 생각하지 않았다. 나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나의 27가지 논지들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비판할지를 문자 그대로 알지 못했다. 그들이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일은, 나에게 실증주의자라는 표식을 붙이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부지불식간에, 단 한 명의 실증주의자도 포함되지 않은 토론에 큰 오해를 야기하는 명칭을 부여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고 나서 그들은 나의 짧은 논문과 토론의 원래 쟁점을 단어들의 바다에 던졌다 ㅡ 그 단어들의 바다가 부분적으로만 이해될 수 있음을 나는 발견했다.

현재 상황에서 그 저서의 주요 쟁점은, 포퍼와 같은 실증주의자는 그의 방법론에 의하여 정치적인 현재상황(status quo)을 옹호하게 되어있다는 아도르노와 하버마스의 비난이 되었다. 그것은 나 자신이 나의 저서 열린사회와 그 적들(Open Society)에서 헤겔에 반대하여 제기한 비난이었는데 헤겔의 동일철학(identity philosophy)(실재적인 것은 합리적이다) 나는 도덕적 및 법률적 실증주의로 기술했다. 나의 강좌에서 나는 이 쟁점에 관하여 어떤 말도 하지 않아서 답변할 기회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런 형태의 실증주의및 다른 형태들과 자주 싸웠다. 그리고 나의 사회이론(기대되는 결과와 이룩된 결과 사이의 비판적 비교에 의하여 통제되는 개혁인 점진적이고 비체계적인 개혁을 선호하는) 나의 방법이론과 대비된다는 것은 사실인데 나의 방법이론은 과학적 및 지식적 혁명의 이론이 된다.

 

II

 

이 사실과 혁명에 대한 나의 태도는 수월하게 설명될 수 있다. 우리는 다윈의 혁명으로부터 시작할 것이다. 생명체들은, 시행착오에 의하여 진화하고 그들의 잘못된 시행들은 ㅡ 그들의 잘못된 돌연변이들 ㅡ 오류를 지닌 생명체가 제거됨에 의하여 통상적으로 제거된다. 사람에게서는 서술적 및 논증적 언어의 진화를 통하여 이 모든 것이 근본적으로 변했다는 것이 나의 인식론의 한 부분이다. 사람은, 자기 자신의 잠정적 시행인 자기 자신의 이론들에 비판적이 되는 가능성을 이룩했다. 이 이론들은 사람의 구조나 유전자체계에 더 이상 포함되지 않는다. 이 이론들은 저서들이나 전문지들에서 언명될 것이다. 그래서 이 이론들은, 저술가들을 죽이거나 저서들을 불태우지 않고도 ㅡ 이론을 지닌 자들을 파괴하지 않고도 ㅡ 비판적으로 토론될 수 있고 허위임이 밝혀질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가능성에 도달한다: 우리의 잠정적인 가설들인 우리의 시행들은, 우리 자신의 제거 없이도, 합리적 토론에 의하여 비판적으로 제거될 것이다. 이것은 정말로 합리적인 비판적 토론의 목표이다.

가설 지참자에게는 이 토론에서 중요한 기능이 있다: 그는 잘못된 비판에 대하여 가설을 옹호해야 하고 그 가설의 원래 형태에서 그 가설이 성공적으로 옹호될 수 없다면 그는 아마도 그 가설을 수정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합리적인 비판적 토론의 방식이 확립된다면 폭력 사용은 옛말이 될 터이다. 이유인즉 비판적인 이성은 폭력에 대하여 지금까지 발견된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혁명을 위하여 ㅡ 합리적 토론의 제거적 기능에 의하여 폭력에 있는 제거적 기능을 대체하기 위하여 ㅡ 노력하는 것이 모든 지성인들의 분명한 의무이다. 그러나 이 목표를 향하여 노력하기 위하여, 명백하고 간단한 언어로 서술하고 말하기를 우리는 스스로 부단히 연마해야 한다. 모든 사고는 가능한 한 명백하고 간단하게 언명되어야 한다. 이것은, 힘든 노력에 의해서만 이룩될 수 있다.

 

III

 

나는 여러 해 동안 소위 지식의 사회학을 비판했다. 만하임(Mannheim)(그리고 쉘러[Scheler]) 말한 모든 것은 오류라고 내가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다. 반대로 그 모든 것의 많은 부분이 너무 하찮게 참이었다. 내가 싸운 것은, 사회과학자과 자연과학자 사이의 혹은 사회연구와 자연연구 사이의 객관성에 관하여 본질적인 차이점이 있다는 만하임의 믿음이었다. 내가 싸운 논지는, 사회과학들에서의 객관성이 조금이라고 성취될 수 있다면 최고급 지식인들에 의해서만 성취될 수 있을 터인 반면 자연과학들에서 객관적이 되기는 쉽다는 것이었다: 사회과학들에서의 객관성은 사회적 전통들에 헐겁게 고착되었을뿐인 자유롭게 준비된 지식에 의하여.

이에 반대하여 나는, 자연과학 및 사회과학의 객관성은 과학자들의 불편부당한 정신상태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업무의 공적(公的: public)이고 경쟁적인 특징이라는 사실에 그리하여 그 사실의 특정 사회적 양상들에만 근거한다고 강조했다. 이것이 내가 다음과 같이 서술한 이유이다: ‘“지식의 사회학이 간과하는 것은 바로 지식에 대한 사회학이다 ㅡ 과학의 사회적 및 공적 특징.’ 요컨대 객관성은 상호간의 합리적 비판, 비판적 접근이자 비판적 전통에 근거한다.

그리하여 자연과학자들은 사회과학자들보다 더 객관적인 정신을 갖고 있지 않다. 또한 자연과학자들은 더 비판적이지도 않다. 자연과학들에 객관성이 더 많다면, 이것은 명확성에 대하여 그리고 합리적 비판에 대하여 나은 전통과 더 높은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많은 사회과학자들이 헤겔주의자들로서 육성되고, 이것은 지성과 비판적 사고에 파괴적인 전통이다. 그것은 내가 칼 마르크스와 의견을 같이하는 요점들 중 한 가지 요점인데 그는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자체의 신비화하는 형태로 변증법은 독일에서 지배적인 유행이 되었다’. 그것은 아직도 독일의 유행이다.

 

IV

 

이 사실에 대한 사회학적 설명은 간단하다. 우리 모두는 사회적 환경으로부터 가치들이나 가치들 대부분을 습득한다: 흔히 모방에 의해서만 (단지 다른 사람들로부터 그 가치들을 이어받음에 의하여), 때때로 수용된 가치들에 대한 혁명적 반응에 의하여 그리고 다른 때에는 ㅡ 그것이 드물 것이라도 ㅡ 이 가치들에 대한 그리고 가능한 대안들에 대한 비판적 검토에 의하여. 이것이 어떠하든, 우리가 양육되는 전통인 사회적 및 지식적 환경은 흔히 우리가 채택하는 도덕적 및 다른 기준들과 가치들에 결정적이다. 이 모든 것은 다소 명백하다. 매우 특별한 경우지만 우리의 목표를 위하여 매우 중요한 것은 지식적 가치들의 경우이다.

여러 해 전에 나는 나의 제자들에게, ‘고압적으로그리고 이해 불가능하게말하고 글 쓰는 방법을 배우려고 사람들이 대학에 간다는 널리 퍼진 관념에 반대하여 경고했다. 당시 많은 학생들이 이 우스운 목표를 염두에 두고, 특히 독일에서, 대학에 왔다. 그리고 대학 수업 동안 이런 종류의 가치평가를 수용하는 지식적 분위기에 들어가는 저 학생들 대부분은 ㅡ 아마도 자신들의 경우에도 유사한 환경에서 육성된 교수들에게 영향을 받아서 ㅡ 길을 잃는다. 매우 모호하고 난해한 언어가 최고의 지성적 가치라는 것을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배워서 수용한다. 자신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그들이 심지어 이해할 것이나, 다른 기준들과 가치들이 ㅡ 오류에 대한 비판적 토론과 명확성을 통한 진리, 진리 탐구, 진리근사치와 같은 가치들 ㅡ 있다는 것들 그들이 깨달은 가망은 없다. 또한 고압적인모호함의 기준이 실제로 진리 및 합리적 토론의 기준과 충돌한다는 것을 그들은 알아내지 못할 것이다. 이유인즉 이 후자(後者) 가치들은 명확성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허위로부터 진리를 구분할 수 없고, 우리는 무관한 답변으로부터 문제에 대한 합당한 답변을 구분할 수 없고, 우리는 진부한 관념들로부터 훌륭한 관념들을 구분할 수 없으며 우리는 관념들을 비판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 ㅡ 그것들이 충분히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는다면. 그러나 휘황찬란함과 고압적인난해함을 묵시적으로 찬양하는 분위기에서 양육된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것이 (그리고 내가 여기서 말한 모든 것) 기껏해야 고압적인말일 터이다: 그들은 다른 가치들을 알지 못한다.

그리하여 고압적이고 자만적인 언어의 이해불가능성에 대한 숭배가 나타났다. 이것은, (비전문가에 대한) 수학의 관통 불가능하고 고압적인 형식주의에 의하여 강화되었다. 특히 독일에서 더 야심적인 사회과학들 및 철학들 중 몇몇에서 주로 무의식적이고 의문시되지 않은 기준이 된 전통적인 행위는, 거창한 언어로 극도로 사소한 것들을 서술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양육된 사람들에게, 간단하게 서술되어 예기치 않거나 논쟁의 대상이거나 혹은 새로운 것을 포함하는 저서가 제시되면 그들은 일반적으로 그 저서가 이해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함을 발견한다. 이유인즉 그 저서는 그들의 이해하기개념에 부합하지 않는데 그 개념은 그들에게 동의를 함의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즉각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을 수 있는, 이해하기의 가치가 있는 중요한 개념들이 있을 것임은 그들에게 이해될 수 없다.

 

V

 

여기에 첫눈에 보기에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차이점이 있다: 소위 사회과학에서 그리고 철학에서, 고압적이지만 다소 공허한 장광설로의 퇴보는 자연과학에서보다 더 멀리 나아갔다. 그러나 위험은 도처에서 심각해지고 있다. 심지어 수학자들 사이에서도, 사람들을 위압하려는 선동행위가 매우 적을지라도, 위압하려는 경향이 때때로 감지될 것이다. 이유인즉 다른 과학들에서 장광설 사용을 부추기는 것이, 부분적으로 전문적인 단어에서 그리고 난해성에서 수학자들과 수리물리학자들을 모방하려는 소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판적 창조성의 ㅡ 다시 말해서, 비판적 예지(銳智)와 짝을 이루는 창조성의 ㅡ 결여가 도처에서 발견될 수 있다. 그리고 도처에서 이로 인하여 최신 유행과 최신 전문용어를 쓰려고 열성적인 젊은 과학도들의 현상이 나타난다. 정상적인과학도들은 자신들의 직업과 관련하여 이론구조, 판박이 일상, 그리고 공통적이며 배타적인 언어를 원한다. 그러나 평범함이라는 장애물을 돌파하고 창문을 열어 신선한 공기를 들이고 자신이 만들어내는 인상에 관하여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잘 이해되기를 노력하는 과학자는 비정상적인 과학자요 과감한 과학자이며 비판적인 과학자이다.

정상적인 과학의 성장은 거대과학(Big Science)의 성장과 연결되는데 지식의 성장인 훌륭한 과학의 성장을 막거나 심지어 파괴하기 쉽다.

상황은 절망적은 아닐지라도 비극적이다. 그리고 소위 자연과학에 대한 사회학을 경험적으로 탐구하는 것은 과학의 부패를 돕기 쉽다. 이 위험에 중첩되는 것은 거대과학에 의하여 생성되는 또 다른 위험이다: 과학적 기술자들에 대한 거대과학의 시급한 요구. 철학박사 학위를 구하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측정과 관련된 특정 기교들에서 기술적 훈련을 받을 따름이다. 그들은, 작은 수수께끼들의 해결가능성에 의해서라기보다는 크고 분명히 해결 불가능한 수수께끼들에 의하여 유혹을 받고 영향을 받는 과학적 전통이자 비판적인 탐구 전통으로 가르침을 받지 않는다. 정말로 기술자들인 이 전문가들은 일반적으로 자신들의 한계를 의식한다. 그들은 스스로 전문가라고 칭하고, 자신들의 전문분야 외부에서 어떤 권위 주장도 배척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만만하게 그렇게 하고 전문화는 필수라고 선언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에 반대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사실에 의하면 커다란 진전은 아직도, 넓은 관심 분야를 지닌 사람들로부터 나온다.

다수인 전문가들의 관념들이 지지를 받는다면, 그것은 우리가 아는 바의 과학의 ㅡ 훌륭한 과학의 ㅡ 종말일 것이다. 그것은, 자체의 결과들에서 핵무장에 비견될 수 있는 정신적 재앙일 것이다.

 

VI

 

이제 나는 나의 요점으로 왔다. 그 요점은 이렇다. 지식적으로 최선을 다하며 세계에서 최고로 양심적으로 그렇게 하는 독일 사회학의 유명한 선도자들 몇몇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배운 대로 장황한 언어로 하찮은 것들을 말하고 있을 따름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들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치는데 제자들은 불만족스럽지만 동일하게 따라 한다. 진짜이고 일반적인 불만감은 자신들이 사는 사회에 대한 그들의 적대감에서 드러나는데, 그들 자신의 행위의 무익함에 대한 무의식적 불만의 발로이다.

나는 아도르노 교수의 글로부터 간략한 사례를 제시하겠다. 그 사례는 하버마스 교수에 의하여 정말로 신중하게 선정된 사례인데 하버마스 교수는 그 사례를 인용함에 의하여 실증주의 논쟁(Der Positivismusstreit)에 최초로 기고를 시작한다. 왼편에 나는 원래 독일어 원문을, 중간에 현 저서에서 번역된 이 원문을 그리고 오른편에 주장되는 듯이 보이는 것을 간단한 영어로 의역하여 제시한다.

 

Die gesellschaftliche 사회의 총체성은, 자체가 사회는 사회적

Totalität für kein 통합하는 것에 추가하여 관계들로 구성된다.

Eigenleben oberhalb 그리고 자체가 다음에

des von ihr Zusam- 구성되는 자체의 삶을

mengefassten, aus 영위하지 않는다.

dem sie selbst

besteht.

 

Sie produziert und 그것은 자체의 개별적인 다양한 사회적 관계들은

reproduziert sich 순간들을 통하여 자체를 어떤 방식으로 사회를

durch ihre einzel- 생산하고 재생산한다.... 생산한다....

nen Momente hin-

durch....

 

So wenig aber jenes 이 총체성은, 삶으로부터, 이 관계들 가운데는

Ganze vom Leben, 그 요소들의 협조와 협조와 적대감이 있다;

von der Kooperation 적대감으로부터 더 많이 그리고 사회가 이

und dem Antagonis- 분리될 수 없다, 관계들로 구성되기에

mus seiner Elemente 사회를 그 관계들로

abzusondern ist, 부터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so wenig kann irgen- 개별적인 실체 자체의 반대의 경우도 또한

dein Element auch 움직임에서 요소의 참이다: 관계들 어느

bloss in seinen Funk- 근원을 (Wesen, 본질) 것도 다른 모든

tionieren verstanden 지닌 전체에 대한 통찰 것들의 총체성 없이

werden ohne Einsicht 없이 요소가 작용하는 이해될 수 없다.

in des Ganze, das an 것으로서만 요소가

der Bewegung des Ein- 이해될 수 있는 것보다.

zelnen selbst sein

Wesen hat.

 

System und Einzelheit 체계와 개별적인 실체는 (앞의 사고의 반복.)

sind reziprok und nur 상호의존적이어서

in ihre Reziprozität zu 그것들의 상호성에서

erkennen. 이해될 수만 있다.

 

비평: 여기서 전개된 사회적 총체들의 이론은, 수없이 많은 철학자들과 사회학자들에 의하여, 간혹 낫게 그리고 간혹 더 나쁘게 제시되어 전개되었다. 그 이론이 오류라고 나는 주장하지 않는다. 나는 다만, 그 이론의 내용이 지닌 완벽한 하찮음을 주장한다. 물론 아도르노의 제시는 하찮음과는 매우 거리가 멀다.

 

VII

 

하버마스 교수와 진지한 문제를 토론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내가 발견하는 것은 이와 같은 이유들 때문이다. 그가 완벽하게 진지하다는 것은 나는 확신한다. 그러나 그가 상황을 고압적으로보다는 간단하게, 분명하게 그리고 겸손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가 말하는 것 대부분은 내가 보기에 사소하다. 나머지는 오류로 보인다.

내가 그를 이해할 수 있는 한, 나의 견해들로 주장되는 것에 관한 그의 핵심적 불평은 다음과 같다. 나의 이론화 방식은 ㅡ 아마도 이론이 행동을 도와야 한다고, 다시 말해서 우리의 행동을 수정하는 것을 이론이 도와야 한다고 내가 말하기 때문에 ㅡ 이론과 실행의 동일성 원칙을 위반한다고 하버마스는 판단한다. 이유인즉 우리 행동의 의도되지 않은 결과들을 예상하려고 시도하는 것이 이론과학의 과제라고 내가 말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 이론적 과제와 행동을 차별한다. 그러나 하버마스 교수는, 사회적 지식이 근본적인 사회적 태도들과 격리될 수 없기 때문에 현존하는 사회에 대한 실제적인 비판자만 사회에 관하여 진지한 이론적 논증들을 생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 견해가 지식의 사회학의 덕택임은 분명하여, 길게 다루질 필요가 없다.

나의 답변은 간단하다. 우리의 문제들을 제기하는 사람의 사회에 대한 태도에 상관없이, 그 문제가 어떻게 해결될지에 관한 어떤 제안도 우리는 환영한다: 그 사람이 분명하게 그리고 간단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ㅡ 이해될 수 있고 평가될 수 있는 방식으로 ㅡ 배웠다면 그리고 그 사람이 우리의 근본적인 무지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책임들을 인식한다면. 그러나 실제적인 혁명가로서 인정해달라는 주장을 처음 들이미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우리의 사회생활에서 혐오스러운 것을 가능한 한 많이 지적하는 데서 혁명적인 지식인의 유일한 기능을 보는 사람들에게, 사회 개혁에 관한 논쟁이 국한되어야 한다고 (그들 자신의 사회적 역할들을 제외하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혁명가들에게는 다른 사람들보다 사회적 질병들에 대한 더 큰 민감성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나은 혁명가들과 더 나쁜 혁명가들이 있을 수 있고 (우리 모두가 역사로부터 아는 바와 같이) 문제는 너무 나쁘게 행동하지 않는 것이다. 모든 혁명은 아닐지라도 대부분의 혁명으로 인하여, 혁명가들에 의하여 열망된 사회들과 매우 다른 사회들이 생겼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그리고 그 문제는 사회의 모든 진지한 비판가에 의하여 생각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로 인하여 자신의 관념들을, 장황한 전문적 용어보다는 단순하고 겸손한 언어로 표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은,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저 행운아들이 사회에 빚을 진 노력이다.

 

VIII

 

실증주의라는 용어에 관한 마지막 말이다. 단어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철저히 오해를 일으키고 잘못된 표식이 나에게 붙을지라도 나는 실제로 괘념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은, 나의 전체 생애를 통하여, ‘실증주의라는 이름의 실증주의적 인식론과 나는 싸웠다. 물론 실증주의자라는 용어가, 자연과학에 흥미를 갖는 어떤 사람도 포함하여 심지어 나 자신과 같은 실증주의에 대한 적대자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 때까지 퍼지는 가능성을 나는 부인하지 않는다. 나는 다만, 그런 과정이 솔직하지도 못하고 문제를 설명하기에 합당하지도 않다고 주장한다.

실증주의라는 표식이 완전한 실수에 의하여 나에게 원래 적용되었다는 사실은, 나의 초기 저서 발견의 논리(Logik der Forschung)를 읽으려는 사람들에 의하여 검증될 수 있다.

그러나 실증주의실증주의 논쟁이라는 두 가지 명칭 오류의 희생자들 중 한 명은 알프레트 슈미트(Alfred Schmidt) 박사인데 그는 자신을 아도르노 교수와 호르크하이머(Horkheimer) 교수의 오랜 협력자’(langjähriger Mitarbeiter)로서 기술한다. 아도르노가 실증주의 논쟁이나 유사한 경우들에서 실증주의라는 용어를 잘못 사용했다는 의견에 반대하여 아도르노를 옹호하려고 서술한, Die Zeit 신문에 보낸 편지에서 슈미트는 다양한 개별적인 과학들이 절대적으로 지식의 유일하게 타당한 방법으로 수용되는 방법’(die einzelwissenschaftlichen Verfahren als einzig gültige Erkenntnis verabsolutierende Denken)인 사고의 경향으로서 실증주의를 규정하고 그는 올바르게 그것을 감각적으로 발견될 수 있는 사실들에 대한 지나친 강조와 동일시한다. 나의 실증주의로 주장되는 것이 실증주의 논쟁(Der Positivismusstreit)이라는 저서의 책 제목을 부여하는 데 이용되었는데 이 모든 것에 반대한 싸움으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을 그는 분명히 인식하지 못했는데, 이 모든 것을 그는 실증주의로서 기술한다 (상당히 올바르게). ‘과학주의적지식론들의 편협함에 반대하여 그리고 특히 모든 형태의 감각주의적 경험론에 반대하여 사변적 이론들을 자유롭게 이용하여 연구하는 권리를 위하여 나는 항상 싸웠다.

나는, 사회과학들이 자연과학들을 모방하는 것에 반대하여 싸웠고 실증주의적 인식론이 심지어 자연과학들을 분석함에서 부적당하다는 교설을 찬성하여 싸웠는데 자연과학들은 사실상, 일반적으로 믿어지는 바와 같이, ‘관찰로부터의 신중한 일반화들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사변적이고 대담하다. 게다가 나는 38년 이상 동안 모든 관찰에는 이론이 함유되어 있다고 그리고 이론들의 주요 기능은 우리의 이론들을 증명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검토하고 반증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마지막으로 나는, 형이상학적 주장들의 유의미성과 나 자신이 형이상학적 실재론자라는 사실을 강조했을 뿐만 아니라 나는 또한 과학적 이론들의 형성에서 형이상학에 의하여 수행되는 중요한 역사적 역할을 또한 분석했다. 아도르노와 하버마스 이전에는 아무도 그런 견해들을 실증주의적으로서 기술하지 않아서 이 두 사람이 원래 내가 그런 견해들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지 못했다고 나는 생각할 수 있을 따름이다. (사실상 나는, 내가 그들의 견해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그들이 나의 견해들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한다.)

자연과학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실증주의자로서 비난을 받을 수 있다는 의견은 마르크스와 엥겔스뿐만 아니라 레닌도 ㅡ 실증주의반동의 등치를 도입하는 사람 ㅡ 실증주의자들로 만들 터이다.

그러나 용어사용법은 중요하지 않다. 용어사용법은 논증으로서 이용되어서는 안 될 따름이다. 그리고 어떤 저서의 제목은 정직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ㅡ 또한 그 제목은 쟁점을 미리 판단하려고 시도해서도 안 된다.

프랑크푸르트학파와 나 자신 사이의 본질적인 쟁점에 관하여 ㅡ 혁명 대() 점진적 개혁 ㅡ 나는 여기서 언급하지 않겠는데 왜냐하면 나의 저서 열린사회와 그 적들(Open Society)에 내가 가능한 한 최고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한스 알베르트(Hans Albert) 또한, 실증주의 논쟁에서 하버마스에 대한 답변에서와 그의 중요한 저서 비판이성론(Traktat über kritische Vernunft)에서 많은 예리한 것들을 말했다.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