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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사회와 그 적들 (번역 수정본) I권 3장 플라톤의 형상이나 이데아 이론

이윤진이카루스 2022. 1. 1. 11:08

열린사회와 그 적들 1권 (번역 수정본) 3장 플라톤의 형상이나 이데아 이론 (3).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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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플라톤의 형상이나 이데아 이론

 

 

 

I

 

플라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에 비하여, 헤라클레이토스를 당황하게 만들었던 시대보다 훨씬 더 불안정한 전쟁과 정치적 갈등의 시대에 살았다. 그가 성장하는 동안 그리스인들의 종족적 생활이 붕괴하면서 그가 태어난 도시인 아테네에는 참주정치가 나타나고, 그다음에는 참주정치나 과두정치 다시 말해서 유력한 귀족 가족이 다스리는 정치를 재도입하려는 시도에 대항하여 열정적으로 스스로를 보호하려 했던 민주정치가 나타났다. 그의 젊은 시절에 민주주의적인 아테네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주요 도시-국가인 스파르타와 지독한 전쟁에 휘말렸는데 스파르타는 고대 종족적 귀족정치의 법과 관습을 많이 보존하고 있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한 번만 중단되고 28년 동안 계속되었다. (10장에서 그 정치적 배경이 더 자세하게 검토되는데 그 전쟁은 간혹 주장되는 바와 같이 기원전 404년의 아테네 함락으로 끝나지 않았음이 밝혀질 것이다.) 플라톤은 그 전쟁 중에 태어나서 전쟁이 끝났을 때 약 24세였다. 그 전쟁은 무서운 전염병을 몰고 왔으며, 전쟁 마지막 해에는 기근과 아테네의 함락, 내전, 그리고 보통 30인 참주 정치라고 불리는 공포정치가 발생했다. 이것들을 플라톤의 삼촌 두 명이 주도하였는데, 그 두 명은 민주주의자들에게 대항하여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하려다가 실패하고 생명을 잃었다. 민주정치가 다시 수립되고 평화가 찾아왔지만 플라톤에게는 휴식이 아니었다. 플라톤이 사랑했던 스승 소크라테스는 나중에 플라톤에 의하여 플라톤 대화편의 주요 연사로 등장하는데, 재판을 받고 사형되었다. 플라톤 자신이 위험에 빠졌던 듯하다; 그는 소크라테스의 다른 동료들과 함께 아테네를 떠났다.

나중에, 그가 시칠리아를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 플라톤은 시라쿠사(Syracuse)의 참주 디오니시우스(Dionysius) 1세의 궁전에서 벌어진 정치적 음모에 연루되었으며 심지어 그는 아테네에 돌아와 아카데미를 설립한 후에도 자신의 제자 몇 명과 함께 시라쿠사 정치의 주류를 이루었던 음모와 혁명에 계속해서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궁극적으로 운명적인 역할을 다했다.

정치적 사건에 대한 이 간단한 설명에 의하여, 헤라클레이토스의 글에서와같이 플라톤의 작품에서, 플라톤이 자신의 시대의 정치적 불안정과 불안 속에서 절망적인 고통을 겪었다는 징표를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이유가 설명될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처럼 플라톤도 왕족의 피를 받았다; 적어도 전설에 따르면 그의 부계는 아티카의 최후 부족 군주인 코드로스(Codrus)의 자손이다. 플라톤이 자신의 대화편에서 (카르미데스[Charmides]와 티마이오스[Timaeus]) 설명하는 바와 같이, 플라톤은 아테네의 입법가인 솔론과 친척이던 모계를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의 삼촌인 크리티아스(Critias)와 카르미데스도 30명의 참주 중 중심적 위치에 있었는데 플라톤의 모계에 속했다. 그러한 가족 배경을 지니고 있어서 플라톤이 공적생활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고 예상될 수 있을 터이며, 실제로 그의 저술 대부분은 이런 예상을 증명한다. 그 자신은 (만약 일곱 번째 서한이 진짜라면)처음부터 정치적 활동을 갈망했지만 젊은 시절의 충격적 경험에 의하여 막혔다고 말한다. ‘모든 것이 흔들리고 목적도 없이 변화하는 것을 보고 나는 현기증과 절망을 느꼈다.’ 사회와 실제로 만물이 변화한다는 느낌으로부터 헤라클레이토스의 철학뿐만 아니라 플라톤 철학의 근본적인 충동이 나왔다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플라톤은 역사주의자 선배가 했던 바와 꼭 마찬가지로 역사 발전법칙을 제시함으로써 자신의 사회적 경험을 요약했다. 이 법칙에 따르면, 다음 장에서 더 완전하게 토론하겠지만, 모든 사회적 변화는 타락이나 부패, 또는 퇴보이다.

이 근본적인 역사법칙은 플라톤이 생각하기에 우주 법칙의 한 부분을 ㅡ 모든 피조물과 생성된 사물에 성립하는 법칙의 한 부분 ㅡ 구성한다. 변화하는 만물, 생성된 만물은 부패하는 것이 운명이다. 플라톤은 헤라클레이토스처럼, 역사에서 작용하는 힘은 우주적인 힘이라고 느꼈다.

그러나 플라톤이 이 퇴보의 법칙이 전부가 아니라고 믿었다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헤라클레이토스에게서, 발전법칙을 순환적 법칙으로 상상하는 경향을 우리는 발견하게 된다; 발전법칙은, 계절의 순환적 계승을 결정하는 법을 모방하여 상상된다. 유사하게 플라톤의 저술 중에서 아마도 봄과 여름에 상응하는 개선과 생성의 기간과, 가을과 겨울에 상응하는 퇴보와 부패의 기간을 지닌 위대한 해(a Great Year)라는 (그 길이는 일반적인 평년의 36,000배에 해당한다) 견해를 우리는 발견한다. 플라톤의 대화 중 한 편(정치가[the Statesman])에 따르면, 황금시대인 크로노스(Cronos) 시대는 ㅡ 크로노스 자신이 세상을 지배하고 인간이 지구에서 출현하던 시대 ㅡ 우리 자신의 시대인 제우스의 시대로 이어지고 그 시대에는 세상이 신들(: gods)에 의하여 버려지고 자체의 자원을 사용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점증하는 부패의 시대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치가(the Statesman) 이야기에는, 완전한 부패가 이루어진 가장 낮은 단계에서 신이 다시 우주라는 배의 키를 잡고 사물들이 향상되기 시작한다는 견해가 있다.

플라톤이 어디까지 정치가(the Statesman) 이야기를 믿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자신이 그 이야기의 전부가 서술된 대로 사실이라고 믿지 않았다는 것을 플라톤 자신이 분명히 밝혔다. 다른 한편으로 플라톤이 우주적 환경에서 인간의 역사를 생각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자신의 시대가 깊은 타락의 시대라고 ㅡ 아마도 가장 깊은 타락의 시대 ㅡ 그가 믿었다는 것과 앞선 역사 기간 전체가, 부패를 향한 내재적 경향인 역사적 전개 및 우주적 전개 모두가 공유하는 경향에 의하여 지배된다는 것을 그가 믿었다는 것. 최악의 부패 시점이 도달되자마자 이 경향이 반드시 끝난다고 그가 또한 믿었는지 아닌지는 내가 보기에 불확실하다. 그러나 인간에 의하여, 더 정확하게 초인적 노력에 의하여 우리가 운명적인 역사적 추세를 돌파하여 부패의 과정을 끝내는 일이 가능하다고 그는 분명히 믿었다.

 

II

 

플라톤과 헤라클레이토스 사이의 유사성이 크지만,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차이점을 발견한다. 역사적 운명의 법칙, 즉 부패의 법칙은 인간 이성의 힘에 의하여 뒷받침되어 인간의 도덕적 의지에 의하여 깨질 수 있다고 플라톤은 믿었다.

플라톤이 이 견해를 자신이 믿는 운명의 법칙과 어떻게 절충했는지는 아주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이 문제를 설명할 몇 가지 징표가 있다.

플라톤은 퇴보의 법칙에 도덕적 퇴보가 포함되어 있다고 믿었다. 그의 견해로, 정치적 퇴보란 아무튼 주로 도덕적 퇴보에 (그리고 지식의 부족) 달려있다; 또 도덕적 퇴보는 그다음에 주로 종족적 퇴보에 기인한다. 이것이, 인간사(人間事: human affairs)라는 분야에서 부패와 관련된 일반적인 우주적 법칙이 출현하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위대한 우주적 전환점이 인간사(人間事: human affairs)라는 분야에서의 ㅡ 도덕 및 지식 분야 ㅡ 전환점과 일치할 것과, 위대한 우주적 전환점이 그리하여 인간의 도덕적 및 지식적 노력에 의하여 발생하는 것으로 우리에게 보이는 것은 이해될 수 있다. 부패의 일반 법칙이 정치적 부패를 야기하는 도덕적 부패에서 출현한 것과 꼭 마찬가지로, 우주적 전환점의 도래는 위대한 입법가가 오면 드러날 것이라고 플라톤이 믿었을 개연성이 높은데 그 위대한 입법가의 추론 능력과 도덕적 의지는 이 정치적 부패의 기간을 끝낼 수 있다. 정치가(the Statesman)에서 황금기, 즉 새천년의 귀환에 대한 예언은 신화를 그렇게 믿는 표현의 형태이다. 어쨌든 그는 ㅡ 부패를 향해 나아가는 일반적인 역사적 경향과, 우리가 모든 정치적 변화를 중단시킴에 의하여 정치 분야에서 추가적인 부패를 중지시킬 것이라는 가능성 ㅡ 양쪽을 분명히 믿었다. 따라서 이것은 그가 애써 찾으려던 목표였다. 쇠퇴하지 않기 때문에, 변화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모든 국가의 악으로부터 자유로운 국가를 설립함으로써 이 목표를 실현하려고 그는 노력한다. 변화와 부패라는 악이 없는 국가는 최고의 완전한 국가이다. 그 국가는 변화를 모르는 황금기의 국가다. 그 국가는 중지된 국가이다.

 

III

 

변화하지 않는 그런 이상적인 국가를 믿으며 플라톤은 우리가 헤라클레이토스에게서 발견하는 역사주의의 원칙에서 근본적으로 이탈한다. 그러나 이 차이점이 중요할지라도, 이 차이점으로 인하여 플라톤과 헤라클레이토스 사이의 유사점이 한층 더 생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자신의 추론의 대담함에도 불구하고 우주를 혼돈(Chaos)에 의하여 대체하는 생각을 삼갔던 듯하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변화는 불변하는 법칙에 의하여 지배당한다는 견해에 집착함으로써 안정된 세계를 상실한 것에 대하여 자위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우리는 말했다. 역사주의의 최후 결과로부터 다시 몸을 사리는 이 경향은 많은 역사주의자들의 특징이다.

플라톤에게 이 경향은 가장 중요하다. (그는 여기서 헤라클레이토스를 가장 크게 비판한 파르메니데스의 철학에 영향을 받았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자신의 사회 변혁에 관한 경험을 만물의 세계까지 연장함으로써 일반화했고, 플라톤은 내가 암시한 바와 같이 똑같이 했다. 그러나 플라톤은 변화하지 않는 완전한 국가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만물의 영역까지 확대하기도 했다. 그는 모든 종류의 평범하거나 부패하는 것들에는 부패하지 않는 완전한 것이 또한 상응한다고 믿었다. 완전하고 불변하는 것들에 대한 이 믿음은, 보통 형상이나 이데아 이론으로 불리는데 플라톤 철학의 해심 교설이 되었다.

우리가 운명의 철칙을 부수는 일이 가능하며, 모든 변화를 중지시킴으로써 부패를 피할 수 있다는 플라톤의 신념으로 인하여 그의 역사주의적 경향에 분명한 한계가 있었음이 밝혀진다. 비타협적이고 완전히 발달한 역사주의는, 인간이 심지어 역사적 운명의 법칙을 발견한 다음에도 어떤 노력에 의하여 그 법칙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쉽게 인정하지 않을 터이다. 모든 인간의 계획과 행동이 냉엄한 발전 법칙에 관한 인간의 역사적 운명을 실현하는 수단이기 때문에, 인간이 그 법칙에 대항하여 노력할 수 없다고 그 역사주의는 믿을 터이다; 오이디푸스가 예언과 자신의 아버지가 그 예언을 피하려고 취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운명을 맞이한 것이 아니고, 그 예언과 그 조치 때문에 자신의 운명을 맞이한 것과 꼭 마찬가지로. 철저히 역사주의적인 이 자세를 더 잘 이해하고 플라톤이 자신의 운명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믿었던 정반대 경향을 분석하기 위하여 우리가 플라톤에게서 발견하는 역사주의를 역시 플라톤에게서 발견되는 완전히 반대되는 접근방식과 나는 대조하겠는데, 그 완전히 반대되는 접근방식은 사회공학의 자세(attitude of social engineering)로 지칭될 것이다.

 

IV

 

사회공학가는, 역사적 경향이나 인간의 역사적 운명에 관하여 질문하지 않는다. 사회공학가는 인간이란 자기 운명의 주인이고, 우리가 지구 표면을 변화시킨 것과 같이, 우리의 목적에 따라 우리는 인간의 역사에 영향을 미치거나 인간의 역사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사회공학가는 이 목적들이 우리의 역사적 배경이나 역사적 추세에 의하여 우리에게 부과된 것이라고 믿지 않고 그 목적들이, 우리가 새로운 사고나 새로운 예술품이나 새로운 주택, 새로운 기계류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우리 자신에 의하여 선택되거나 심지어 창조된다고 믿는다. 역사의 미래가 먼저 결정되어야만 합당한 정치적 행동이 가능하다고 믿는 역사주의자와 반대로, 사회공학가는 정치의 과학적 기초는 매우 다를 터이라고 믿는다; 정치의 과학적 기초는 우리의 소원과 목적에 따라, 사회제도의 건설이나 변환에 필요한 사실적 정보로 구성될 터이다. 그런 과학으로 인하여, 예를 들어 우리가 불경기를 피하거나 불경기를 만들어내기를 바란다면 어떤 조치를 우리가 취해야 하는지가 우리에게 알려진다; 또는 우리가 부의 분배를 더 공평하게 하거나, 덜 공평하게 만들고자 한다면. 다시 말해서 사회공학(social engineering) 같은 것을 불변하는 역사적 경향의 과학으로서 이해하는 역사주의자와 반대로, 사회공학가는 사회공학(social engineering) 같은 것을 정치의 과학적 토대로서 간주한다 (나중에 알게 되지만 플라톤은 사회공학 같은 것을 의술의 과학적 배경과 비교한다).

내가 사회공학가의 자세에 관하여 언급한 것으로부터, 사회공학가의 진영에 중요한 차이점이 없다고 추론되어서는 안 된다. 반대로, 내가 점진적 사회공학(piecemeal social engineering)’유토피아적 사회공학(Utopian social engineering)’으로 부르는 것 사이의 차이점은 이 저서의 중요한 주제의 하나이다. (내가 전자[前者]를 옹호하고 후자[後者]를 거부하여 내놓는 이유를 특히 9장에서 비교하라.) 그러나 현재 나는 역사주의와 사회공학 사이의 대조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다. 사회제도들, 다시 말해서 보험회사나 경찰, 정부나 아마도 식료품 가게 따위를 향하여 역사주의자가 취하는 태도와 사회공학가가 취하는 태도를 우리가 생각할 때 이 대조는 아마도 훨씬 더 명백해질 것이다.

역사주의자에게는 사회제도들을 주로 그 제도들의 역사적 관점, 다시 말해서 제도들의 근원, 발달, 그리고 현재와 미래의 중요성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제도들의 근원이, 인간이나 신의 입장에서 확실한 계획이나 의도 그리고 확실한 목적 추구 때문이라고 역사주의자는 아마도 주장할 것이다; 아니면 역사주의자는, 제도들이 어떤 분명하게 구상된 목적에 부합하도록 고안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어떤 본능과 열정의 즉각적 표현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아니면 역사주의자는 제도들이 예전에 확실한 목적에 부합하는 수단으로 역할을 했지만 이 특성을 잃어버렸다고 주장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사회공학가나 공학기술자는 제도들의 근원이나 설립자들의 초기 의도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 (사회공학가나 공학기술자가 사회제도 중 대다수는 인간 행동의 미필적 결과로서 성장하기만 한반면 소수만이 의식적으로 고안되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이유는 없을지라도). 더 정확하게, 사회공학가나 기술자는 자신이 지닌 문제를 이렇게 표현할 것이다. 만약 이러저러한 것이 우리의 목표라면 이 제도는 잘 고안되어 그 목적에 부합되도록 조직되었는가 예를 들어서 우리는 보험제도를 생각할 것이다. 사회공학가나 기술자는 보험이 이윤추구 사업으로 시작되었는지 혹은 보험의 역사적 임무가 공공의 복지를 위한 것인지 문제에 대해서는 크게 괘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마도 보험제도가 어떻게 이익을 증대하는지, 또는 매우 다른 것이지만 공중에게 보험제도를 제공하는 이익을 어떻게 증대할 것인지를 밝히면서 특정 보험제도에 대한 비판을 내놓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보험제도가 전자(前者)나 후자(後者)의 목적에 부합하도록 더욱 효율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할 것이다. 또 다른 사회제도의 보기로서 우리는 경찰력을 생각할 수 있다. 어떤 역사주의자들은 경찰을 자유와 안전을 보장하는 도구로 묘사하고, 다른 역사주의자들은 경찰을 계급지배와 압제의 도구로 묘사할 것이다. 그러나 사회공학가나 기술자는 아마도 경찰력을 자유와 안전을 보장하는데 적절한 도구로 만드는 조치를 제시할 것이고, 또한 경찰력이 계급지배의 강력한 무기로 변환될 수 있는 조치를 고안해낼 것이다. (자신이 믿는 어떤 목적을 추구하는 시민으로서의 자기 역할에서, 그는 이 목적들과 적합한 조치들이 채택되어야 한다고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공학기술자로서 그는 목적들과 그 목적들의 선택 및 사실들과 관련된 문제들인 취해질 조치들의 사회적 효과를 신중하게 구별할 터이다.)

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공학자나 공학기술자가 어떤 목적에 부합하는 수단으로서의 제도들에 합리적으로 접근하며, 공학기술자로서 그는 제도들을 적합성과 효율성 그리고 간편성, 기타 등등에 따라 전체적으로 판단한다고 우리는 말할 수 있다. 반면 역사주의자는 역사전개에서 이 제도들에 의하여 수행된 진정한 역할을 평가하기 위하여 ㅡ 예를 들어 신에 의하여 의도된이나 운명에 의하여 정해진이나 중요한 역사적 추세에 부합하는, 기타 등등으로 그 제도들을 평가하면서 ㅡ 이 제도들의 근원과 운명을 찾아내려고 시도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사회공학가나 공학기술자가 제도들이란 목적을 위한 수단이나 도구이다라는 주장에 몰두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러 가지 중요한 면에서, 제도들이 기계적인 도구나 기계와는 매우 다르다는 사실을 사회공학가나 공학기술자는 잘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그는, 제도들은 유기체의 성장과 유사한 (전혀 동등하지는 않을지라도) 방식으로 성장한다는 것과 이 사실이 사회공학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는 사회제도들에 대한 도구주의적철학에 매어 있지 않다. (오렌지를 도구이거나 목적에 대한 수단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흔히 오렌지를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간주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오렌지를 먹고자 하거나 아마도 오렌지를 판매함으로써 생계를 유지하고자 하면.)

역사주의와 사회공학은 때때로 전형적인 결합체로서 나타난다. 최초의 그리고 아마도 가장 영향력이 컸던 사례는 플라톤의 사회철학 및 정치철학이다. 말하자면 플라톤 철학은, 전면의 상당히 명백한 몇 가지 전문적 요소들을, 전형적으로 역사주의적인 특징들의 정교한 배치가 돋보이는 배경과 결합한다. 그 결합은, 나중에 유토피아 체제라고 묘사되는 것을 만들어낸 상당수의 사회철학자 및 정치철학자들을 대변한다. 이 모든 정치체제는, 목적 달성을 위하여 항상 실재론적인 제도적 수단들은 아니지만, 특정 제도적 수단들을 채택하라고 요구하기 때문에 어떤 종류의 사회공학을 추천한다. 그러나 우리가 나아가 이 목적들을 고려하면 우리는 이 목적들이 역사주의에 의하여 결정됨을 자주 발견한다. 특히 플라톤의 정치적 목적은 상당 정도까지 자신의 역사주의적 교설들에 의존한다. 첫째로 사회 혁명과 역사적 부패 속에서 출현하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변화를 피하고자 하는 것이 플라톤의 목적이다. 둘째로 플라톤은, 완전하기 때문에 역사전개의 일반적 추세에 영향을 받지 않는 국가를 설립함으로써 이것이 성취될 수 있다고 믿는다. 세 번째로 플라톤은 자신의 완전한 국가의 모형이나 원형이 역사의 여명기에 존재했던 황금시대인 먼 과거에서 발견되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이유인즉 세계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부패한다면 우리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점점 완전함을 발견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완전한 국가란 후세대 국가의 최초 조상, 선조 같은 것인데, 후세대 국가란 말하자면 이 완전하거나 최고, 또는 이상적국가의 타락한 자손이다; 환상도 아니요, 꿈도 아니고 우리 생각 속의 관념도 아니지만 그 안정성을 고려할 때 변화 속에 놓여 어느 순간에라도 사라질 운명인 저 모든 부패하는 사회보다 더 실재적인 이상 국가.

그래서 심지어 플라톤의 정치적 목적인 최상의 국가도 주로 자신의 역사주의에 의존한다; 그리고 국가에 대한 자신의 철학에서 참인 것은, 이미 지적된 바와 같이 플라톤 자신의 만물에 대한 일반적 철학인 형상이나 이데아 이론까지 확대될 수 있다.

 

V

 

변하는 만물, 쇠퇴하고 부패하는 만물은 (국가처럼) 말하자면 완전한 것의 자손이자 자식이다. 그리고 자식들처럼, 그것들은 자신의 원래 조상의 모조품이다. 변하는 것의 아버지나 원형을 플라톤은 그것의 형상이나 모형또는 이데아라고 부른다. 예전처럼 형상이나 이데아가 그 이름에도 불구하고 우리 생각 속의 관념이 아니라고 우리는 주장해야 한다; 그것은 환상도 아니고 꿈도 아니며 실재적인 것이다. 그것은 진정으로, 변하는 것이자 표면적인 구체성에도 불구하고 운명적으로 부패하는 모든 평범한 물체보다 훨씬 더 실재적이다; 이유인즉 형상이나 이데아는 완전하고 멸망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형상이나 이데아는 멸망하는 것들처럼, 시공 속에 존재한다고 생각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들은 공간의 외부에 존재하며 그래서 또한 시간의 외부에 존재한다 (그것들이 영원하기 때문에). 그러나 그것들은 시공과 접촉하고 있다; 그 까닭은 그것들이 생성된 것, 그리고 시공에서 발전하여 부패하는 것들의 선조이거나 모형들이어서 태초부터 틀림없이 공간과 접촉하여 왔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우리의 시공에서 우리들과 함께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감각과 상호 작용하는 평범한 것들이 감지될 수 있어서 감지될 수 있는 사물로 불리는 것처럼, 그것들은 우리의 감각으로 감지될 수 없다. 저 감지되는 것들은, 동등한 원형이나 원형의 모조품이나 자손인데, 같은 가족의 자손들이 그러한 것처럼 원형인 형상이나 이데아뿐만 아니라 서로 닮았다; 그리고 아버지의 이름으로 자손들이 이름을 받는 것처럼, 감지되는 것들 또한 그러해서 형상이나 이데아의 이름을 지닌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바와 같이, ‘그것들 모두는 형상이나 이데아의 이름을 모방하여 명명된다.

아버지에게서 이상과 고유한 모형, 그리고 자신의 열망이 신과 같이 의인화된 것; 완전과 지혜, 안정, 명예, 그리고 미덕의 구현; 아이의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자신을 만들어낸 힘; 지금은 자신을 보존하고 부지하는 힘; 그리고 그 힘의 덕행으로 자신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서 자식이 아버지를 바라보는 것과 같이, 그렇게 플라톤은 형상이나 이데아를 바라본다. 플라톤의 이데아란 사물의 원형이자 근원이다; 그것은 사물의 행동 원인이요, 사물의 존재 이유이다 ㅡ 사물이 그 덕행으로 존재하는 안정되고 지속적인 원칙이다. 그것은 사물의 미덕이자 이상이요 완성이다.

감지될 수 있는 사물들의 집합에 대한 형상이나 이데아와, 아이들로 구성된 한 가족의 아버지를 비교하는 일은 플라톤에 의하여 자신의 최후 대화편 중의 하나인 티마이오스(Timaeus)에서 전개되었다. 이 비교는 플라톤의 많은 이전 작품과 아주 일치하는데, 그 작품들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그러나 티마이오스에서 플라톤은 자신의 비유를 확대하여 형상이나 이데아를 시공에 대한 접촉으로 재현할 때 자신의 초기 가르침을 한 걸음 뛰어 넘었다. 그는 감지되는 물체들이 용기(容器)로서 움직이는 (원래 하늘과 땅 사이의 공간) 추상적인 공간을 기술하고, 그는 사물의 어머니와 그 추상적 공간을 비교한다. 사물의 어머니 안에서는 태초에 감지되는 물체들이, 자신들을 순수한 공간에 각인시키고 그리하여 자손에게 자신들의 모습을 부여하는 형상들에 의하여 창조된다. 플라톤은 우리는 세 종류의 사물을 구상해야 한다: 우선, 생성을 경험하는 것과; 두 번째로는, 그 안에서 생성이 발생하는 것; 그리고 세 번째로, 생성된 물체들이 닮아 태어나는 모형. 그리고 우리는 수용하는 원리를 어머니에게, 모형을 아버지에게, 그리고 그들의 산물을 아이에게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첫 번째인 모형을 ㅡ 조상들, 불변의 형상이나 이데아들 ㅡ 더 완전하게 계속해서 기술한다; ‘먼저 창조되지 않고 파괴되지 않으며... 어떤 감각에 의하여 보이지 않고 감지될 수도 없는 그리고 단지 순수한 사고에 의해서만 관조될 수 있는 불변의 형상이 있다고 기술한다. 이 형상이나 이데아의 단 하나에, 감지되는 것들의 자손이나 종족이 속하여, ‘물체의 또 다른 종류로 자신들의 형상 이름을 지니고 그 형상을 닮았지만 감각에 감지될 수 있고 항상 변화에서 창조되고 장소에서 생성되어 다시 저 장소로부터 사라지고, 감각에 기초를 둔 의견에 의하여 이해된다’. 그리고 추상적인 장소는 어머니에 비유되는데 그러므로 이렇게 묘사된다: ‘세 번째 종류가 있는데 공간으로 영원하며 파괴될 수 없고 모든 생성된 물체들에게 집을 제공한다...’

우리가 플라톤의 형상이나 이데아의 이론을 그리스의 특정 종교적 신앙과 비교하면 그 이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많은 원시종교에서처럼, 적어도 그리스 신의 몇 명은 이상화된 종족 조상과 영웅일 ㅡ 종족의 덕행이나 완전의 의인화 ㅡ 뿐이다. 따라서 어떤 종족이나 가족은 자신의 족보를 이런저런 신에게까지 연결시킨다. (플라톤 자신의 가족은 그 뿌리를 포세이돈 신에게까지 추적한다고 보고된다.) 이 신들이 플라톤의 형상이나 이데아의 이론이 그들의 모조품인 감지되는 물체와 관련된 (또는 플라톤의 완전한 국가가 현재 존재하는 다양한 국가와 관련된) 것과 같은 방식으로 보통 사람들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기 위하여, 일반인들이 만물의 변화 속에 포함되어 있어서 부패에 종속되는 (진실로 그것은 모든 인간 개인의 궁극적 운명이다) 반면 이 신들은 불멸이고 영원하며 완전하다고 ㅡ 또는 그런 상태에 매우 근접해 있다고 ㅡ 우리가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그리스신화와 플라톤의 형상이나 이데아 이론 사이에는 중대한 차이점이 있다. 그리스인들은 많은 신을 다양한 종족이나 가족의 선조로 경배한 반면, 이데아 이론은 인간에 대하여 단 하나의 형상이나 이데아만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까닭은 모든 이나 종류의 사물에는 단 하나의 형상만 존재한다는 것이 형상이론의 핵심 교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유사한 것들이 한 가지 형상의 모조품이나 복제물이라고 제시함에 의하여 그 교설이 가장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인 감지되는 것들의 유사성을 설명하려면, 선조의 고유함과 일치하는 형상의 고유함은 이론의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러므로 만약 두 개의 동등하거나 유사한 형상이 있다면, 그것들의 유사성으로 인하여 둘 다 세 번째 원형의 모조품이어서 그 세 번째 원형은 유일하게 진실하고 하나뿐인 형상으로 나타난다고 우리는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플라톤이 티마이오스(Timaeus)에서 표현하는 바와 같이: ‘그러므로 유사성은, 더 정확하게, 둘 사이의 하나로서가 아니라 그것들의 전형인 우수한 것을 참조하여 설명될 터이다.’ 티마이오스보다 앞선 국가(Republic)에서 플라톤은 사례로서 본질적 근거’, 즉 근거로서 형상이나 이데아를 사용하여 자신의 요점을 훨씬 더 명백하게 설명했다: ‘신은.. 하나의 본질적 근거를 만들었다, 오직 하나; 신은 둘 이상을 만들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신이 두 개만 만들고 더 이상 만들지 않을지라도 또 다른 하나가 밝혀지게 되는데 즉, 이 둘에 의하여 밝혀지는 형상이다; 저 두 개가 아닌 이것이 그렇다면 본질적 근거가 될 터이다.’

이 주장으로 인하여, 형상이나 이데아가 플라톤에게 시공에서의 모든 발전에 대한 (그리고 특히 인간 역사에 대한) 근원이나 시발점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동일한 종류의 감지되는 물체 사이의 유사성에 대한 설명 또한 제공했음이 밝혀진다. 사물들이, 공유하고 있는 어떤 덕행이나 특징, 예를 들어 백색이나 딱딱함, 또는 선함 때문에 유사하다면 이 덕행이나 특징은 그 사물들 모두에게서 틀림없이 똑같다; 그렇지 않다면 그 덕행이나 특징으로 인하여 사물들은 유사하게 되지 않을 터이다. 플라톤에 따르면, 그 사물들이 희다면 그 사물 모두가 흰색이라는 한 가지 형상이나 이데아에 관여한다; 사물들이 딱딱하다면, 딱딱함이라는 한 가지 형상이나 이데아에 관여한다. 사물들은, 아이들이 아버지의 소유물과 재능에 관여하는 의미로 관여한다; 동일한 판으로부터 나와서 서로 유사한 모든 암각이 되는 식각(蝕刻: etching)의 많은 특정 재생산품이 원본의 아름다움에 관여하는 것처럼.

이 이론이 감지되는 사물들에 있는 유사성을 설명하도록 고안되었다는 사실은, 처음 보기에 어떤 방식으로든 역사주의와 관련된 듯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역사주의와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우리에게 말하는 바와 같이, 플라톤이 이데아 이론을 전개하게 된 것은 바로 이 관련성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과 함께 플라톤 자신의 글에 있는 몇 가지 암시를 이용하여 나는 이러한 전개를 개괄하려고 시도하겠다.

만물이 끊임없이 변하는 상태에 놓여 있다면 그 만물에 대하여 확정적으로 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에게 만물에 대한 실재적 지식이 없고 기껏해야 모호하고 기만적인 견해가 있다. 우리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이 점으로 인하여 헤라클레이토스의 많은 추종자들은 불안해졌다. 플라톤의 선배로 플라톤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파르메니데스는 이성과 관련된 순수한 지식은, 경험과 관련된 기만적인 견해와 반대로, 순수한 지식의 대상물로서 단지 변하지 않는 세계를 가질 수 있으며, 이성과 관련된 순수한 지식은 사실상 그런 세계를 정말로 보여준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파르메니데스가 생각하기에 부패 가능한 세상 뒤에서 자신이 발견했다는 불변하고 분할되지 않은 실재는 우리가 살고 죽는 이 세상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러므로 그 실재는 이 세상을 설명할 수 없었다.

이것으로 플라톤은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이 변화의 경험적 세상을 많이 혐오하고 멸시했지만, 내심으로 그는 이 세상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는 세상의 부패와 급격한 변화 그리고 불행의 비밀을 파헤치고 싶었다. 그는 세상을 구원하는 방법을 발견하고 싶었다. 그는, 자신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 유령 같은 세상의 뒤에 있는 불변하고, 실재적이며, 구체적이고 완전한 세상에 대한 파르메니데스의 교설에 의하여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이 구상이 감지되는 물체들의 세상과 관련되지 않는 한 그 구상으로 인하여 자신의 문제가 해결될 수 없었다. 그가 찾던 것은 견해가 아니라 지식이었다; 변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온전히 합리적인 지식; 그러나 동시에 이 변하는 세상을, 그리고 특히 이 변하는 사회를 탐구하는 데 사용될 지식; 정치적 변화와 그 변화에 대한 기묘한 역사적 법칙. 플라톤은 정치에 대한 왕족들의 지식 비결과 사람을 다스리는 기술의 비결을 발견하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정확한 정치학은, 변화하는 세상에 대한 어떤 정확한 지식만큼 불가능해 보였다; 정치 분야에서 고정된 대상들이 없었다. ‘정부국가또는 도시같은 단어의 의미가 역사적 발달에서 새로운 단계마다 변하는데 어떻게 사람이 정치적 문제를 토론할 수 있을까? 정치이론은 헤라클레이토스 시대에서의 플라톤에게 정치적 행위만큼 틀림없이 기만적이고 요동치며 불가사의하게 보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우리에게 말하는 바와 같이, 플라톤은 매우 중요한 암시를 소크라테스로부터 받는다. 소크라테스는 윤리적 문제에 관심이 있었다; 그는 윤리 개혁가로서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의 행동 원칙을 생각하고 설명하며, 근거를 대라고 요구하여 괴롭히던 도덕주의자였다. 그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고는 그들의 대답에 쉽게 만족하지 않았다. 그가 받은 전형적인 대답으로 ㅡ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이 지혜롭다거나 혹은 아마도 능율적이거나 정당하다경건하다, 기타 등등 때문에 특정 방식으로 행동한다는 것이었다 ㅡ 인하여 소크라테스는 지혜란; 또는 능율이란; 정의란: 또는 경건함이란 무엇인가라고 자신의 질문을 계속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사물의 덕행에 대하여 조사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이 모든 다양하고 변화하는 지혜로운행동방식에 공통적인 것을 발견하기 위하여, 실제로 지혜가 무엇인지 또는 지혜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혹은 (아리스토텔레스가 표현하는 방식을 사용하여) 본질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기 위하여 예를 들어 다양한 직업에서 나타나는 지혜를 토론하였다. ‘소크라테스가 틀림없이 본질을 탐구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하는데 다시 말해서 사물의 덕행이나 행동 원인 및 용어들의 실재적이거나 불변적 혹은 본질적인 의미를 탐구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그는 보편적 정의(定義)라는 문제를 제기한 최초 인간이 되었다.’

정의겸손또는 경건과 같은 윤리적 용어를 토론하려는 소크라테스의 시도는, 당연히 자유에 관한 현대적 토론이나 (예를 들어 밀[Mill]에 의한) 권위에 관한, 혹은 개인과 사회에 관한 (예를 들어 캐틀린[Catlin]에 의한) 현대적 토론과 옳게 비교되었다. 소크라테스가 그런 용어들의 불변적이고 본질적인 의미를 탐색하면서 그 용어들을 의인화했거나 그 용어들을 마치 사물들과 같이 취급했다고 전제될 필요는 없다. 소크라테스가 그러지 않았다는 것과, 소크라테스의 의미 탐구방식이나 본질 탐구방식을 실재적 본성인 사물의 형상이나 이데아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전개한 것은 플라톤이었다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보고에 암시된다. 플라톤은 감지되는 사물 모두는 항상 변화의 상태에 있으며 그 사물들에 대한 지식은 없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교설을 유지했지만 소크라테스의 방식에서 이 난제들로부터 빠져나가는 길을 발견했다. ‘감지되는 사물들은 늘 변하기 때문에 정의를 내릴 수 없다할지라도 다른 종류의 사물들에 대한 정의(定義: definition)와 참된 지식은 ㅡ 감지되는 사물의 덕행에 대한 지식 ㅡ 있을 수 있을 터이다. ‘지식이나 사고가 대상을 가지려면, 감지되는 것들과는 별도로 몇 가지 다르고 몇 가지 불변하는 실체들이 있어야 할 터이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하며 이 다른 종류의 것들을 플라톤은 형상이나 이데아라고 불렀으며 플라톤은 감지되는 사물들은 형상이나 이데아와는 구분된다고 말했으며 모든 사물은 형상이나 이데아를 모방하여 지칭된다. 그리고 특정 형상이나 이데아와 동일한 이름을 지닌 많은 사물들은 그 형상이나 이데아에 관여함으로써 존재한다고 플라톤에 대하여 보고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설명은 티마이오스{Timaeus} 제시된 플라톤 자신의 주장과 밀접하게 일치하며, 그 설명으로 인하여 플라톤의 근본적 문제가 감지되는 사물을 다루는 과학적 방법을 찾는 것이었음이 밝혀진다. 그는 단순히 견해가 아닌 순전히 합리적인 지식을 얻고자 했다; 그리고 감지되는 사물에 대한 순수한 지식은 습득될 수 없기 때문에 그는 전에 언급한 것과 마찬가지로 감지되는 사물에 어떤 정도로든 관련되고 적용이 가능한 적어도 그런 순수한 지식을 습득할 것을 고집했다. 형상이나 이데아에 대한 지식으로 인하여, 이 요건이 충족되었는데 왜냐하면 미성년자인 자식들에 대한 아버지의 관계와 같이 형상이 감지될 수 있는 사물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형상은 감지될 수 있는 사물에 대한 설명될 가능한 대표이기 때문에 변화의 세상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에서 참고될 수 있었다.

우리의 분석에 따르면, 형상이나 이데아 이론은 적어도 세 가지 다른 기능을 플라톤의 철학에서 지니고 있다. (1) 그 이론은 매우 중요한 방법론적인 장치인데 이유인즉 그 이론으로 인하여 순수한 과학적 지식인, 심지어 우리가 즉각적인 어떤 지식을 얻을 수 없고 단지 견해만 얻을 수 있는 변하는 사물의 세상에 적용될 수 있을 터인 지식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변하는 사회의 문제를 조사하여 정치학을 수립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2) 그 이론으로 인하여 화급하게 필요한 변화 이론과 부패 이론, 생성과 쇠퇴 이론에 대한 실마리가 생기는데, 특히 역사에 대한 실마리가 생긴다. (3) 그 이론으로 인하여 사회적 영역에서 어떤 종류의 사회공학에 대한 길이 열린다; 그리고 그 이론으로 인하여 사회변화를 중지시키는 도구들을 만든 것이 가능해지는데 왜냐하면 국가에 대한 형상이나 이데아와 밀접하게 닮아서 부패할 수 없는 최상의 국가설계를 그 이론이 제안하기 때문이다.

문제 (2)인 변화와 역사에 대한 이론은 다음 4장과 5장에서 다루어질 것인데 그 장들에서 플라톤의 기술적(記述的: descriptive) 사회학이 다루어지는데, 즉 그가 살았던 변하는 사회적 세상에 대한 그의 기술과 설명이다. 문제 (3)인 사회변화의 중지는 6장에서 9장에 걸쳐서 다루어지는데 플라톤의 정치 강령을 다룬다. 문제 (1)인 플라톤의 방법론적 문제는, 플라톤 이론의 내력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으로 도움을 받아, 현재 장에 간단하게 개괄되었다. 이 토론에 나는 여기서 몇 가지 비평을 덧붙이고 싶다.

 

VI

 

플라톤과 그의 많은 추종자들에 의하여 주장되는 사물의 진정한 본질 즉, 사물의 숨겨진 실재나 본질을 발견하여 설명하는 것이 순수 지식이나 과학의 과제라는 관점을 지적하기 위하여 방법론적 본질주의(methodological essentialism)라는 명칭을 나는 사용한다. 그것은, 감지될 수 있는 사물들의 본질은 그 사물들과 다르면서 더 실재적인 것들에서 ㅡ 그 사물들의 선조들이나 형상들에서 ㅡ 발견될 수 있다는 플라톤의 기묘한 믿음이었다. 플라톤 이후의 많은 방법론적 본질주의자들,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식으로 완전히 플라톤을 뒤따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순수한 지식이라는 과제를 사물의 숨겨진 본성이나 형상 혹은 본질을 발견하는 것으로서 결정을 내리는 데 모두 플라톤과 의견일치를 이루었다. 이 모든 방법론적 본질주의자들은, 또한 그 본질들이 지적(知的) 직관의 도움을 받아, 발견되고 감지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데서 플라톤과 의견이 같다; 모든 본질은 그에 고유한 이름을, 즉 감지될 수 있는 것들이 모방되어 불리는 이름을 가진다는 것; 그리고 그 본질은 단어로 기술될 것이라는 점. 그리고 사물의 본질에 대한 기술을 그들 모두는 정의(定義: definition)’라고 불렀다. 방법론적 본질주의에 따르면 사물을 아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우리가 그것의 변하지 않는 실재나 본질을 알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가 본질의 정의(定義)을 알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이름도 알 수 있다는 것을. 따라서 실재적인 물체에 관하여 두 가지 질문이 언명될 것이다...: 사람은 이름을 내놓고 정의(定義)를 요구할 것이다; 혹은 그는 정의(定義)를 내고 이름을 요구할 것이다.’ 이 방식의 사례로 플라톤은 짝수(‘홀수의 반대로) 본질을 이용한다: ‘숫자는.. 동등한 부분으로 나누어질 수 있는 것일는지도 모른다. 만약 숫자가 그렇게 나누어질 수 있다면 숫자는 짝수로 불린다; 그리고 짝수라는 이름의 정의(定義)동등한 부분으로 나누어질 수 있는 수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름이 주어지고 정의(定義)에 관하여 질문을 받을 때 혹은 우리들에게 정의(定義)가 주어지고 이름에 관하여 질문을 받을 때, 우리가 그것을 이제 짝수동등한 부분으로 나누어지는 숫자라고 하든, 두 가지 경우들 모두에서 우리는 동일한 본질을 말한다...’ 이 사례 이후에 플라톤은 나아가 이 방식을 영혼의 실재적 본성에 관한 증거에 적용하며, 나중에 우리는 그것에 관하여 더 많이 들을 것이다.

방법론적 본질주의, 다시 말해서 본질을 밝히고 그 본질을 정의(定義)에 의하여 설명하는 일이 과학의 목적이라는 이론은, 그 반대인 방법론적 유명론(方法論的 唯名論: methodological nominalism)과 대조될 때 더 잘 이해된다. 사물이 실제로 무엇인지를 알아내고 그 진짜 본질을 정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대신, 방법론적 유명론은 다양한 환경에서 사물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그리고 특히 그 사물의 행태에 어떤 규칙성이 있는지 설명함을 겨냥한다. 다시 말해서, 방법론적 유명론은 과학의 목적을 우리가 경험하는 사물들과 사건들에 대한 기술에서, 그리고 이 사건들에 대한 설명에서, 즉 보편적인 법칙의 도움을 받아서 사물들을 기술하는 데서 찾는다. 그리고 방법론적 유명론은 우리의 언어에서, 특히 단어 더미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부터 합당하게 구축된 문장들과 추론들을 구별하는 언어규칙들에서, 과학적 기술의 훌륭한 방식을 본다; 방법론적 유명론은 단어들을, 본질의 이름들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이 과제를 위한 부차적 도구로 간주한다. 방법론적 유명론자는 에너지란 무엇인가?’운동이란 무엇인가?’ 혹은 원자란 무엇인가?’ 따위의 질문이 물리학에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음 질문들에는 중요성을 부여할 것이다: ‘태양에너지는 어떻게 이용될 수 있는가?’ 또는 행성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혹은 어떤 상황에서 원자는 빛을 발하는가?’ 그리고 자신이 무엇인가(what is)’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는 자신은 어떻게(how)’ 질문에 정확한 답변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철학자들에게, 그 철학자들이 그들의 방식으로 이룩한 과장된 잡동사니보다 방법론적 유명론자는 자신의 방식으로 이룩할 수 있는 작은 정도의 저 정확함을 많이 선호한다고 지적하여 조금이나마 답변할 것이다.

우리의 사례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방법론적 유명론은 오늘날 자연과학에서 상당히 일반적으로 수용된다. 다른 한편으로 사회과학의 문제는 아직도 대부분 본질주의적 방식에 의하여 다루어진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것이 사회과학이 낙후한 주요 이유 중의 하나다. 그러나 이 상황을 주목한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다르게 판단한다. 그들은 방법에서의 그 차이점이 필요하다고 그리고 그 차이점은 이 두 가지 연구 분야의 본성들사이의 본질적차이점을 반영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견해를 지지하여 보통 제시되는 논증들은, 사회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역사주의의 다른 면모들을 밝힌다. 물리학자는 변할지라도 어느 정도의 불변성을 지닌 에너지나 원자들과 같은 대상들을 다룬다고 어떤 전형적인 논증이 말한다. 물리학자는 비교적 변하지 않는 이 실체들이 마주치는 변화들을 설명할 수 있고, 자신이 토대로 삼아 확실히 선언할 수 있는 항구적인 것을 얻기 위해서 본질이나 형상 또는 유사한 불변하는 실체들을 구축하거나 탐지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사회과학자는 매우 다른 입장에 놓인다. 그가 흥미를 느낀 전체 분야는 변하고 있다. 사회적 영역에서는 항구적인 실체들이 없고 그 영역에서 모든 것은 역사적 변화의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어떻게 우리는 정부를 연구할 것인가? 다양한 정부제도들에 본질적으로 공통적인 것이 있다고 전제하지 않고, 다양한 역사적 기간들에 다양한 국가들에서 발견된 다양한 정부제도들에서 어떻게 우리가 정부를 인식할 수 있을 터인가? 제도가 본질적으로 정부라고 우리가 생각한다면, 다시 말해서 정의(定義: definition)로 언명할 수 있는 직관인 정부라는 것에 대한 우리의 직관과 제도가 일치한다고 우리가 생각한다면 우리는 어떤 제도를 정부라고 부른다. ‘문명과 같은 다른 사회학적 실체들에게도 동일한 효력이 있을 터이다. 우리가 그것들의 본질을 파악해서 그 본질을 정의(定義: definition)의 형태로 언명해야 한다고 역사주의적 주장은 결론을 내린다.

이 현대적 주장들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플라톤을 그 자신의 형상이나 이데아의 교설로 이끌었던 위에 설명한 주장들과 매우 비슷하고 나는 생각한다. 유일한 차이점은, 플라톤이 (원자론을 수용하지 않아서 에너지에 대하여 아는 바가 없던) 자신의 교설을 물리학 영역에도 그리하여 세계 전체에 적용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사회과학에서 플라톤의 방식에 대한 토론이 심지어 오늘날에도 화제가 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암시를 받는다.

플라톤의 사회학과 그가 그 분야에서 방법론적 본질주의를 이용한 것으로 나아가기 전에, 나는 플라톤의 역사주의와 그의 최상의 국가만을 다루겠다는 것을 매우 분명히 하고 싶다. 그러므로 나는 독자들에게 플라톤 철학의 전부를 재현하거나 플라톤 학설을 공정하고 올바르게다루는 것으로 지칭될 것을 기대하지 말라고 경고해야겠다. 역사주의를 대하는 나의 태도는 역사주의란 무용하며 그보다 더 심하다는 믿음에 근거를 두고 솔직하게 적대적으로 대하는 것이다. 플라톤 학설의 역사주의적 특징을 내가 연구함에서 그러므로 나는 강력하게 비판적이다. 내가 소크라테스에게서 나왔다고 믿는 저 부분들을 멀리 넘어서 나는 플라톤의 철학 속에서 많은 것을 찬양하지만 그의 천재성에 대한 수많은 찬사를 확산하는 것이 나의 일이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오히려 이 철학에서 내 의견으로 해악인 것을 파괴하는 데 열중한다. 내가 분석하여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플라톤의 정치 철학에서 나타나는 전체주의적 경향이다.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