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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사회와 그 적들 (번역 수정본) 1권 플라톤의 기술적 사회학, 4장 변화와 정지

이윤진이카루스 2022. 1. 20. 16:00

 

열린사회와 그 적들 (번역 수정본) 1권 4장 변화와 정지.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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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기술적(記述的: DESCRIPTIVE)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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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변화와 정지

 

플라톤은 초기 사회과학자의 한 사람이자, 의심할 바 없이 단연코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회과학자였다. 콩트(Comte)나 밀(Mill), 그리고 스펜서(Spencer)에 의하여 이해되는 사회학이라는 용어의 의미에서, 플라톤은 사회학자였다; 다시 말해서 그는 자신의 관념론적 방식을, 사회생활의 안정에 관한 법칙과 조건뿐만 아니라 인간의 사회생활과 그 사회생활의 발전법칙에 대한 분석에 성공적으로 적용했다. 플라톤이 끼친 커다란 영향에도 불구하고 그의 가르침 중 이 부분은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그것은 두 가지 원인 때문인 듯싶다. 우선 플라톤 사회학의 많은 부분이 그의 윤리적 및 정치적 요건들과 긴밀하게 연결하여 제시되기 때문에 기술적(記述的) 요소가 대부분 간과되었다. 두 번째로 그의 많은 사상은 그렇게 많이 당연하다고 간주되어, 무의식적으로 흡수되었을 따름이며 따라서 무비판적으로 흡수되었다. 그의 사회학 이론이 그런 영향력을 갖게 된 것은 주로 이런 식이었다.

플라톤의 사회학은, 관념을 사실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과 교묘하게 섞은 것이다. 그 사회학의 관념적 배경은 물론 형상과 보편적인 변화 및 부패, 생성과 퇴보의 이론이다. 그러나 이 관념론적 기초 위에 플라톤은 자신이 살던 시대에 작용하던 사회적 및 정치적 세력뿐만 아니라 그리스 도시국가의 역사적 발전 속에서 주요 추세를 설명할 수 있는 놀라울 정도로 실재론적인 사회 이론을 구축한다.

 

I

 

사회변화에 대한 플라톤 이론의 사변적이거나 형이상학적 배경은 이미 개괄되었다. 그 배경은 불변하는 형상이나 이데아의 세계이며, 그 세계 속 시공에서 변하는 물체의 세상은 자손이다. 형상이나 이데아는 불변하고 파괴될 수 없으며 부패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완전하고, 진실하며, 실재적이고 선량하다; 사실상, ‘선량함은 한 번 국가(Republic)에서 보전하는 모든 것으로 설명되며, ‘사악함파괴하고 부패시키는 모든 것으로 설명된다. 완전하고 선량한 형상이나 이데아는 감지될 수 있는 물체들인 모조품들에 앞서고, 변화의 세계 속에서 모든 변화의 선조이거나 시발점과 같은 것이다. 이 견해는, 감지될 수 있는 물체들의 세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변화의 일반적인 추세와 주요 방향을 평가하는 데 사용된다. 그 까닭은 모든 변화의 시작이 완전하고 선량하다면 변화란 그 완전함과 선량함으로부터 갈라져 나오는 움직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변화는 틀림없이 불완전함과 사악함을 지향하며 부패를 지향한다.

이 이론은 자세하게 전개될 수 있다. 감지될 수 있는 물체가 자신의 형상이나 이데아를 더 가깝게 닮을수록 그 물체는 덜 부패하는데 왜냐하면 형상 자체가 부패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지될 수 있거나 생성된 물체는 완전한 모조품이 아니다; 정말로 모조품이란 진정한 실재의 모방일 뿐이며 겉모습이요 환상일 뿐이고 진실이 아니기 때문에, 완전할 수 없다. 따라서 감지될 수 있는 여하한 물체도 (아마도 가장 우수한 것을 제외하고) 자신의 형상을 충분히 닮아서 불변이 될 수 없다. ‘절대적이고 영원한 불변성은 단지 만물의 가장 신성한 것에만 배정된다, 그리고 신체들은 이 질서에 속하지 않는다 플라톤은 말한다. 감지될 수 있거나 생성된 물체는 신체나 인간의 영혼 같은 훌륭한 모조품이라면 처음에 극소로 변할 것이다; 그리고 가장 고대의 변화나 움직임은 영혼의 움직임 여전히 신성하다’ (두 번째와 세 번째의 변화와 반대로). 그러나 아무리 변화일지라도 모든 변화로 인하여, 감지될 수 있거나 생성된 것은 자신의 형상을 닮는 것이 축소됨으로써, 감지될 수 있거나 형성된 것이 다르게 되고 그리하여 덜 완전하게 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바와 같이 그 물체는 변할 때마다 더 변할 수 있게 되고 더 부패할 수 있게 되는데 왜냐하면 그 물체가 자체의 부동성(不動性: immobility)과 정지의 원인이었던 자체의 형상으로부터 더 멀어지기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교설을 다음과 같이 의역한다: ‘사물은 형상에 관여함으로써 생성되고 형상을 잃음으로써 부패한다.’ 이 쇠퇴 과정은 처음에는 느리다가 나중에는 더 빨라지는데 쇠퇴와 타락에 대한 이 법칙 플라톤에 의하여 자신의 거대한 대화편 마지막 편인 법률(Laws)에서 생생하게 묘사된다. 그 글은 주로 인간 영혼의 운명을 다루지만 플라톤은 영혼을 지닌모든 사물에 이 과정이 유효하다는 것을 분명히 했는데 영혼을 공유하는모든 사물이란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그는 의미한다. ‘영혼에 관여하는 변화를 모든 것은 변한다.. 그리고 그것들이 변하는 동안, 그것들은 운명의 질서와 법칙에 의하여 움직인다. 그들의 특징에서 변화가 작을수록 그들의 등급에서의 초기 쇠퇴는 덜 중요하게 된다. 그러나 변화가 증가하고 더불어 불평등이 증가하면 그들은 심연으로 그리고 지옥 지역으로 알려진 것으로 추락한다고 그는 서술한다. (글이 계속되면서 예외적으로 거대한 덕행의 몫을 부여받은 영혼은, 신성한 덕행과 교감한다면 자신의 의지력으로.. 탁월하게 덕행을 발휘하여 고양된 지역으로 옮겨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플라톤은 언급한다. 운명이라는 일반적인 법칙으로부터 자체의 영혼을 그리고 아마도 다른 영혼들 구원할 수 있는 예외적 영혼에 대한 문제는 8장에서 논의될 것이다.) 앞서 법률(Laws)에서 플라톤은 변화에 대한 자신의 교설을 요약한다: ‘어떤 변화도, 사악한 것의 변화를 제외하고, 사물에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배신적 위험 중에서 가장 심각한 것이다 그것이 지금 계절의 변화이든, 바람의 변화이든, 신체의 음식 변화이든, 영혼의 특징 변화이든.’ 그는 강조하여 말하기를: ‘이 말은 내가 조금 전에 말한 바와 같이 사악한 것만을 제외하고 모든 것에게 적용된다.’ 요컨대 변화는 사악하고 정지는 신성하다고 플라톤은 가르친다.

플라톤의 형상이나 이데아 이론이 변화의 세계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어떤 추세를 함축하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 그 이론으로 인하여, 그 세계 속에 있는 만물의 부패 가능성이 끊임없이 증가한다는 법칙이 생긴다. 그 이론은 보편적으로 증가하는 부패에 대한 엄격한 법칙이라기보다는 부패 가능성 증가에 대한 법칙이다; 다시 말해서 부패의 위험이나 개연성은 증가하지만 다른 방향으로의 예외적인 전개가 배제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마지막 인용문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매우 훌륭한 영혼은 변화와 부패에 도전할 수 있고 매우 사악한 것, 예를 들어 매우 사악한 도시는 그것을 변화시킴에 의하여 향상될 것이다. (그러한 향상이 어떤 가치를 틀림없이 자나기 위해서 우리는 그 향상을 영원하게 만들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즉 추가로 발생할 모든 변화를 중지시키는 것이다.)

이 일반론과 완전히 합치되는 것이 티마이오스(Timaeus)에서 나오는 플라톤의 종()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동물 중에서 가장 고등동물인 사람은 신들(gods)에 의하여 생성된다; 다른 종들은 사람으로부터 부패와 쇠퇴의 과정에 의하여 시작된다. 처음에는 어떤 남자들이 비겁자나 악당 쇠퇴하여 여자가 된다. 지혜가 부족한 사람들은 차츰 쇠퇴하여 하등동물이 된다. 플라톤이 말하는 바, 새는 자신의 감각을 너무 신뢰하는 무해하지만 너무 안이한 사람들이 (자기들의 감각을 너무 많이 신뢰할 터인) 변하여 태어난다는 말을 우리는 듣는다; ‘육지동물은 철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로부터 온다’; 그리고 조개류를 포함하여 물고기는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어리석고 바보 같은, 그리고 .. 가치가 없는 사람으로부터 퇴화했다.

이 이론이 인간사회와 그 역사에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 이론은 헤시오도스의 발전에 대한 비관적 법칙인 역사적 부패의 법칙을 설명한다. 우리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보고를 (마지막 장[]에 개괄된다) 믿는다면 당초에 방법론적인 요구, 즉 변화에 놓인 감지될 수 있는 물체의 경우에는 불가능한 순수하거나 합리적인 지식에 대한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형상이나 이데아 이론이 도입되었다. 이제 그 이론이 그 이상의 일을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이 방법론적 요건을 충족시키는 일에 덧붙여 그 이론은 변화의 이론을 제공한다. 그 이론으로 인하여, 감지될 수 있는 모든 물체가 변화하는 일반적인 방향이 설명되며 그리하여 인간과 인간사회에 의하여 밝혀지는 쇠퇴하는 역사적 경향이 설명된다. (그리고 그 이론은 훨씬 더 많은 일을 한다; 우리가 제6장에서 알 것과 같이, 형상 이론으로 인하여 플라톤의 정치적 요건들의 추세가 또한 결정되며 심지어 플라톤의 정치적 요건들을 실현하는 수단이 결정된다.) 내가 믿는 바와 같이 헤라클레이토스뿐만 아니라 플라톤의 철학이 그들의 사회적 경험으로부터, 특히 계급전쟁의 경험으로부터 그리고 그들의 사교적 세계가 산산조각이 나는 비참한 경험으로부터 유래했다면, 플라톤의 형상 이론이 쇠퇴로 향하는 추세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그가 발견했을 때 그 이론이 플라톤의 철학에서 왜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는지를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플라톤은 틀림없이 그 이론을 매우 신비로운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으로 환영했다. 헤라클레이토스가 정치적 발전 추세에 직접적인 윤리적 저주를 퍼부을 수 없었던 반면, 플라톤은 자신의 형상 이론에서 헤시오도스의 사고 맥락에 있는 비관적 판단을 위한 이론적 기초를 발견했다.

그러나 사회학자로서의 플라톤의 탁월함은 그의 사회적 부패 법칙에 대한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사상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위대함은 오히려 그의 관찰이 풍부하고 자세하다는 것이며 그의 사회적 직관이 놀라울 정도로 날카롭다는 것에 있다. 그는 자신의 선배들이 보지 못한 것들을 보았고, 그것들은 겨우 우리 시대에서야 재발견되었다. 나는 예를 들어 사회의 원시적 기원에 대한, 종족적 가부장제에 대한 플라톤의 이론과 일반적으로 사회생활의 전개에서 전형적인 시기를 개괄하려는 그의 시도를 언급할 것이다. 또 다른 사례는 정치적 생활과 역사적 발전의 경제적 배경을 강조한 플라톤의 사회학적 및 경제학적 역사주의이다; 마르크스에 의하여 역사적 유물론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한 한 가지 이론. 세 번째 사례는 플라톤의 가장 흥미로운 정치적 혁명에 대한 법칙으로서, 그 법칙에 따르면 모든 혁명은 분열된 지배계급을 (또는 엘리트’) 전제한다; 정치적 변화를 정지시키고 사회적 평형을 만들어내는 수단에 대한 그의 분석의 기초를 이루고 최근에서야 전체주의 이론가, 특히 파레토(Pareto)에 의하여 재발견된 법칙.

나는 이제 나아가 이 문제들, 특히 세 번째 혁명과 평형의 이론에 대하여 더 자세하게 토론하겠다.

 

II

 

플라톤이 이 문제들을 토론하는 대화편은 연대순으로 국가(Republic), 훨씬 뒤늦은 대화편인 정치가(Statesman) (혹은 Politicus), 그리고 그의 작품 중 최후 작품이자 가장 긴 법률(Laws)이다. 이 대화편들은 대동소이한데 어떤 면에서 서로 병행하며 다른 면에서는 서로 상보적이다. 예를 들어 법률(Laws)에서는 인간사회의 쇠퇴와 타락 이야기가, 중단 없이 역사시대로 합쳐지는 그리스 선사시대에 대한 설명으로 제시된다; 국가(Republic)의 유사한 글귀가, 더 추상적인 방식으로, 정부의 발전에 대한 체계적인 개요를 내놓는 반면; 정치가(Statesman)에서는, 한층 더 추상적으로, 극소수의 역사적 사건들이 언급되면서 정부의 유형들이 논리적으로 분류된다. 유사하게, 법률(Laws)에서는 연구의 역사주의적인 면이 매우 명백하게 언명된다. ‘국가의 전형이나 기원은 무엇인가?’라고 법률(Laws)에서 플라톤은 물으며 이 질문을 다음과 같은 다른 질문과 연결한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찾는 최선의 방법은.. 국가가 선(good)이나 악(evil)을 향하여 변화할 때 국가의 성장을 관조하는 방법이 아닌가?’ 그러나 사회학적 교설 안에서, 유일한 주요 차이점은 플라톤을 불안하게 만들었던 것으로 보이는 순전히 사변적인 난제에서 기인하는 듯이 보인다. 완전하여 부패하지 않는 국가를 발전의 시발점으로 전제하며, 그는 최초의 변화인 인간의 타락, 말하자면 만물을 진행시키는 것을 설명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는 다음 장에서 플라톤이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하는 것을 들을 것이다; 그러나 우선 나는 사회발전에 대한 그의 이론을 일반적으로 검토하겠다.

국가(Republic)에 따르면, 사회의 원래 형태나 원시적 형태 그리고 동시에 국가의 형상이나 이데아를 밀접하게 닮은 사회, 최상의 국가는 가장 현명한 사람들과 신()을 가장 닮은 사람들이 다스리는 왕국이다. 이 이상적인 도시국가는 완벽에 매우 가깝기 때문에 그 도시국가가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변화는 정말 발생한다; 그리고 그 변화와 동시에 모든 움직임의 추동력인 헤라클레이토스의 갈등이 개입한다. 플라톤에 따르면 내부갈등인 계급전쟁은 사리사욕, 특히 물질적 혹은 경제적 사욕에 의하여 조장되는데 사회적 역학의 주요 동력이다. 마르크스의 공식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 마르크스의 역사주의뿐만 아니라 플라톤의 역사주의에도 부합한다. 네 가지 가장 두드러진 기간 혹은 정치적 쇠퇴의 역사에서 이정표’, 그리고 동시에 존재하는 국가의 가장 중요한.. 다양성들 다음과 같은 순서로 플라톤에 의하여 묘사된다. 첫째 완전한 국가 다음에 명예와 명성을 추구하는 귀족들의 지배인 금권정치(timarchy 혹은 timocracy)’가 온다; 두 번째로 부유한 족벌이 지배하는 과두정치; ‘다음 순서로 민주주의가 태어난다인데 무법을 의미하는 자유의 지배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참주정치.. 도시의 네 번째이자 마지막 질병.

마지막 언급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플라톤은 자신에게 사회적 부패의 역사였던 역사를 마치 질병의 역사인양 간주한다: 환자는 사회이다; 그리고 나중에 우리는 알게 되겠지만 정치가는 의사가 치료자이자 구세주 되어야 한다 (그리고 역순도 성립한다). 질병의 전형적인 과정에 대한 묘사가 항상 모든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과 꼭 마찬가지로, 사회적 부패에 대한 플라톤의 역사이론에는 모든 개별 도시의 발전에 적용하려는 의도가 없다. 그러나 체제 부패의 주요 형태가 먼저 생성되는 발전의 원래 과정과, 사회변화의 전형적인 과정 양쪽 모두를 기술하려는 의도가 그 이론에 있다. 플라톤이 진화 법칙의 지배를 받는 역사 기간이라는 체계의 출범을 겨냥했음을 우리는 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사회에 대한 역사주의적 이론을 겨냥했다. 이 시도는 루소(Rousseau)에 의하여 부활하였고, 콩트(Comte)와 밀(Mill) 그리고 헤겔과 마르크스에 의하여 유행이 되었다; 그러나 당시에 이용될 수 있던 역사적 증거를 고려하면, 역사 기간에 대한 플라톤의 이론체계는 이 현대 역사주의자들의 이론체계와 꼭 같다. (주요 차이점은, 역사에 의하여 선택된 과정에 대한 평가에 놓여있다. 귀족인 플라톤은 자신이 기술한 발전을 저주한 반면, 이 현대 저술가들은 역사적 발전법칙을 믿었기 때문에 그 발전을 환영했다.)

플라톤의 완전한 국가를 자세히 토론하기 전에, 국가가 부패하는 네 가지 형태 사이에서 변천 과정 속의 경제적 동기와 계급갈등이 발휘하는 역할에 관한 플라톤의 분석을 나는 개괄하겠다. 완전한 국가가 쇠퇴하는 첫 번째 형태이자 야망에 찬 귀족들의 지배인 금권정치는 거의 모든 면에서 완전한 국가 자체와 유사하다고 언급된다. 플라톤이 존재하는 국가 중에서 이 가장 훌륭하고 오래된 국가를 스파르타와 크레타(Crete)의 도리아식(Dorian) 체제와 명시적으로 동일시하는 것과, 이 두 개의 종족적 귀족정치가 실제로 그리스 내부의 정치 생활에서 가장 오래된 존재하는 형태를 대표한다는 것을 주목하는 일이 중요하다. 스파르타와 크레타의 제도에 대한 플라톤의 탁월한 기술 대부분은 자신이 최상 또는 완전한 국가를 묘사한 특정 부분에 나타나는데, 그 국가와 금권정치가 유사하다. (스파르타와 완전한 국가 사이의 유사성이라는 자신의 교설을 통하여 플라톤은 내가 스파르타의 위대한 신화스파르타의 체제와 생활방식의 우월성이라는 영속적이고 영향력이 있는 신화 부르는 것을 가장 성공적으로 전파한 사람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최상의 국가나 이상적인 국가와 금권정치 사이의 주요 차이점은 후자(後者)가 불안 요소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한때 단결된 가부장적인 지배계급은 이제 분열하고, 다음 단계인 과두체제로의 쇠퇴를 야기하는 것은 이 분열이다. 분열은 야망에 의하여 생겨난다. 플라톤은 젊은 금권정치가에 대하여 말하기를 처음에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남편이 통치자들 중 하나가 되지 못함을 불평하는 것을 듣는다..’. 그래서 그는 야망을 품게 되고 명성을 갈망한다. 그러나 다음 변화를 야기하는 데 결정적인 것은 경쟁적이고 탐욕적인 사회적 경향이다. ‘우리는 어떻게 금권정치가 과두체제로 변하는지 기술해야 한다.. 심지어 맹인도 금권정치가 어떻게 변하는지 알 수 있다.. 이 체제를 파멸시키는 것은 재물창고이다. 그들은’ (금권정치가들) ‘과시하며 돈을 쓰는 기회를 만들어 시작하며 이 목적으로 법을 왜곡하고, 그들과 그들의 아내는 법을 지키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를 이기려고 애쓴다고 플라톤은 말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최초의 계급갈등이 출현한다: 덕행과 금전 사이나, 혹은 오랫동안 확립된 봉건적 단순함이라는 방식과 재산이라는 새로운 방식 사이의 계급갈등. 과두체제로의 변천은, ‘가진 재산이 명시된 금액에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공직을 박탈하는법을 부유한 사람들이 확립할 때 완성된다. ‘위협이나 협박이 성공하지 못하면 이 변화에는 무력이 가해진다..’

과두체제의 설립과 동시에 과두정치가들과 더 가난한 계급들 사이에 잠재적인 내전상태가 발생한다: ‘병든 신체가.. 때때로 자체와 갈등을 일으키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이 병든 도시도 마찬가지이다. 그 도시는 병에 걸리고 한 정파가 과두정치 도시로부터, 다른 정파가 민주정치로부터 외부 원조를 얻는 데 성공할 때마다 사소한 구실로도 전쟁에 휘말린다. 그리고 이 병든 국가는 심지어 외부로부터 그런 도움이 없어도 때로는 내전을 일으키지 않는가?’ 이 내전은 민주주의를 낳는다: ‘민주주의가 태어난다.. 가난한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을 죽이고, 다른 사람들을 추방하며 평등한 조건으로 나머지 사람들과 시민의 권리와 공직을 나누어 가지면서 승리했을 때..’

민주주의에 대한 플라톤의 기술은 생생하지만 아테네의 정치생활과, 플라톤이 태어나기 약 3년 전에 누구도 능가할 수 없는 방식으로 페리클레스(Pericles)가 언명한 민주주의적 신조에 대한 강력하게 적대적이고 불공평한 풍자이다. (페리클레스[Pericles]의 강령은 아래 10장에서 토론된다.) 플라톤의 기술은 탁월한 정치선전이어서 예를 들어 탁월한 학자이자 국가(Republic)를 편집한 사람인 애덤(Adam)과 같은 사람이, 플라톤이 자신이 태어난 도시를 비난하는 정치적 수사(修辭)에 저항할 수 없는 것을 우리가 고려한다면, 어떤 해악을 그 기술이 틀림없이 끼쳤는지를 우리는 평가할 수 있다. 애덤(Adam), ‘민주적인 인간의 시초에 대한 플라톤의 기술은 고대와 현대를 불문하고 문학 전 부문에서 가장 충성스럽고 우수한 서술 작품 중의 하나다라고 서술한다. 그리고 애덤이 계속해서, ‘민주적인 인간을 인간사회의 변덕쟁이로 기술함으로 인하여, 그는 항상 두드러지게 된다라고 말했을 때 우리는 플라톤이 적어도 이 사상가를 민주주의 반대자로 만드는 데 성공했음을 알 수 있으며, 우리는 그의 독소적인 글이 더 약한 정신에게 반대론 없이 제시될 때 얼마나 많은 해를 끼치는지 알고 싶을 것이다...

애덤(Adam)의 표현을 빌려 흔히 플라톤의 문체가 고상한 사고와 이미지 및 말로 가득 차 흐를, 자신의 너절한 논증을 감추기 위한, 심지어 현재의 경우에서처럼 합리적 주장이 전혀 없음을 감추기 위한 연막이 플라톤에게 다급하게 필요하다. 합리적 주장이 올 자리에 그는 독설을 사용하여 자유를 무법으로, 자율을 방종으로, 법 앞에서의 평등을 무질서로 간주한다. 방탕하고 인색하고, 무례하고, 법을 지키지 않으며, 부끄러움을 모르고, 사납고 지독한 맹수로, 온갖 변덕을 충족시키고, 오직 쾌락을 위하여 살고, 오직 불필요하고 불순한 욕망을 위하여 산다고 민주주의자들은 기술된다. (‘그들은 자신의 배를 짐승처럼 채운다가 헤라클레이토스가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민주주의자들은 존경을 어리석음이라고 부르고..; 절제를 그들은 비겁이라고 부른다..; 온건과 규칙적인 소비를 그들은 야비함과 천박함이라고 부른다, 기타 등등의 비난을 받는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사소한 일은 더 많다고 자신의 홍수 같은 수사적(修辭的) 독설이 줄어들기 시작할 때 플라톤은 말한다. 교사는 학생들을 두려워하고 학생들에게 아첨한다.., 그리고 늙은이는 젊은이에게 자신을 낮춘다.. 심술궂고 독재적인 모습을 피하기 위하여.’ (이것을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말한 사람은 아카데미의 원장이 플라톤인데, 소크라테스가 교사였던 적이 없었던 것과 심지어 늙어서도 소크라테스는 심술궂지도 않았고 독재적이지도 않았던 것을 잊는다.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를 사랑하여 젊은이에게 자신을 낮춘 것이 아니라 그들을, 예를 들어 젊은 플라톤을 자신의 동료와 친구로서 대접했다. 플라톤 자신에게 자신의 제자들에게 자신을 낮추어문제를 그들과 토론하려는 생각이 적었다고 믿을 이유가 우리에게 있다.) ‘그러나 시장에서 구매된 여자 노예뿐만 아니라 남자 노예 또한, 자신을 소유하고 있던 사람들과 완전히 같게 자유로워질 때 자유에 대한 이 모든 풍요로움의 정점이 도달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누적된 결과는 무엇인가? 시민들의 심장이 매우 약해져서 시민들은 노예제도 같은 것을 보기만 해도 화를 내게 되고 어떤 사람이 노예제도에 승복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려 하여... 시민들은 자신들 위에서 군림하는 주인을 갖지 않을 것이다라고 플라톤은 계속한다. 여기에서 결국 플라톤은 부지불식간일지라도 자신이 태어난 도시에 경의를 표한다.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노예를 인간적으로 대접했고 플라톤 자신과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자의 비인간적 정치선전에도 불구하고, 플라톤이 목격한 것처럼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노예제도 폐지 단계까지 근접했다는 것은 아테네 민주주의의 위대한 승리 중 하나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역시 증오로 고취되었지만 훨씬 더 큰 장점을 지닌 것은, 플라톤이 설명하는 참주체제와 특히 그 체제로의 변환이다. 그는 자신이 스스로 목격한 것을 기술한다고 주장한다; 의심할 바 없이 그 언급은 시라쿠사(Syracuse)의 참주인 디오니시오스(Dionysius) 1세의 궁정에서 겪은 그의 경험에 대한 것이다. 민주정치에서 참주정치로의 변천은, 민주국가 내부에서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 사이의 계급적 적대감을 어떻게 이용할지를 아는, 그리고 자신의 사설군대로 경호대를 구축하는 데 성공하는 대중적 지도자에 의하여 가장 쉽게 발생한다고 플라톤의 말한다. 처음에는 자유의 수호자로 그를 환영하던 사람들이 곧 노예가 된다; 그리고 그다음에 사람들은 참주가 틀림없이 선동하는 계속되는 전쟁..’에서 그를 위하여 싸워야 하는데 왜냐하면 참주가 사람들에게 장군의 필요성을 느끼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참주정치와 동시에 가장 비참한 국가가 이룩된다.

다양한 정부 형태에 대한 매우 유사한 연구가 국가(Republic)에서 발견될 수 있는데, 그곳에서 플라톤은 참주와 왕의, 과두정치와 귀족정치의, 그리고 민주주의의 기원을 토론한다. 존재하는 정부의 다양한 형태가 국가의 진정한 모형 혹은 형상의 타락한 모조품들로서, 모든 모조품의 표준인 완전한 국가의 타락한 모조품들로서 설명되는 것을 우리는 다시 발견하는데, 그 완전한 국가는 제우스의 아버지인 고대 크로노스(Cronos) 시대에 존재했다고 언급된다. 한 가지 차이점은 플라톤이 여기서 타락한 국가를 여섯 유형들로 구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특히 플라톤이 국가(Republic)에서 논의되는 네 가지가 끝이 아니고 몇 가지 중간 단계가 있다고 말하는 것을 우리가 기억하면 이 차이점은 중요하지 않다. 여섯 가지 유형들은 정치가(Statesman)에서 처음에는 세 가지 정부형태인 1인 통치, 과두정치, 그리고 다수통치로 구분함으로써 이룩된다. 이 정부형태 각각은 그다음에 두 유형들로 세분되어, 원형의 옛날 법을 모방하고 보전함에 의하여 유일한 진짜 원형을 모방하는지 아닌지에 따라서 한 유형은 비교적 선량하고 나머지 한 유형은 나쁘다. 이런 방식으로 세 가지 보수적이거나 합법적인, 그리고 세 가지 완전히 타락하거나 무법적인 형태들이 구분된다; 군주제와 귀족정치, 그리고 보수적인 형태의 민주주의가 장점의 순서에 따른 합법적 모방이다. 그러나 민주정치는 그 자체의 무법적 형태로 변하고, 소수의 불법적 통치인 과두정치를 통하여 1인의 무법통치인 참주정치로 더욱 악화하는데 참주정치는 플라톤이 국가(Republic)에서 말한 바와 똑같이 최악의 정치이다.

가장 사악한 국가인 참주정치는 발전의 끝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 부분적으로 정치가(Statesman)의 이야기를 반복하고 부분적으로 그 이야기와 연결되는 법률(Laws)에 있는 구절에서 표시된다. ‘운 좋게 위대한 입법가와 동시대인이 되어 그 입법가를 다행으로 만난 젊은 참주가 다스리는 국가를 나에게 제시하라. 그가 행복하게 만들기를 원하는 도시를 위하여 신()이 더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플라톤은 거기에서 소리친다. 가장 사악한 국가인 참주정치는 이런 방식으로 개혁될 것이다. (이것은 위에 인용된, ‘사악한 것의 변화는 제외하고모든 변화는 사악하다는 법률[Laws]에 있는 언급과 일치한다. 위대한 입법가와 젊은 참주에 대하여 말할 때 플라톤이 자신과 자신이 젊은 참주와 행한 여러 가지의 실험, 특히 시라쿠사를 지배하는 디오니시오스 2세를 개혁하려는 자신의 시도를 틀림없이 생각하고 있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불운했던 실험은 나중에 논의될 것이다.)

플라톤이 정치적 발전을 분석한 주요 목적 중의 하나는, 모든 역사적 변화의 추동력을 발견하는 것이다. 법률(Laws)에서 역사연구가 이 목적을 염두에 두고 명시적으로 수행된다: ‘세어지지도 않은 수천의 도시가 이 기간 동안에 태어나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들 각각은 모든 종류의 정부 하에 있지 않았던가?.. 우리가 할 수 있다면, 그토록 많은 변화의 원인을 파악해보자. 나는 우리가 그리하여 정치체제의 탄생과 변화 양쪽 모두의 비밀을 밝히기를 희망한다.’ 이 연구의 결과로 계급의 경제적 이해관계에서 나오는 적대감으로 빚어지는 내부불화인 계급전쟁이 모든 정치적 혁명의 추동력이라는 사회학적 법칙을 플라톤이 발견한다. 그러나 이 근본 법칙에 대한 플라톤의 언명은 훨씬 더 나아간다. 그는 지배계급 자체 내부의 폭동만이 지배계급을 그렇게 많이 약화시켜 그 지배가 전복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어떤 정치체제 속의 변화도 예외 없이 지배계급 자체 내부에서 출현하며 이 계급이 불화의 온상이 되었을 때만 나타난다 국가(Republic)에 있는 그의 공식이다; 그리고 법률(Laws)에서 그는 말하기를 (아마도 국가[Republic[의 이 구절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왕정이나 혹은 다른 어떤 형태의 정부가 지배자를 제외하고 어떻게 다른 사람에 의하여 전복될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이 주제를 다루면서 우리가 며칠 전에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조금 전에 우리가 한 말을 잊었는가?’ 이 사회학적 법칙은, 경제적 이해관계가 불화의 가장 개연적인 원인이라는 관찰과 함께, 플라톤이 역사를 보는 단서가 된다. 그러나 그 법칙은 더 이상의 것이다. 그 법칙은 또한 정치적 평형을 확립하는 데, 다시 말해서 정치적 변화를 중지시키는 데 필요한 조건을 그가 분석하는 열쇠이다. 이 조건이 고대의 최상 혹은 완전한 국가에서 실현되었다고 그는 전제한다.

 

III

 

완전하거나 최상의 국가에 대한 플라톤의 기술은, 진보주의자들이 지닌 유토피아적 프로그램으로 통상적으로 해석되었다. 자신이 먼 과거를 기술하고 있다고 국가(Republic)티마이오스(Timaeus), 그리고 크리티아스(Critias)에서 반복해서 주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 역사적 의도가 명백한 법률(Laws)에서의 유사한 글귀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대해서는 숨겨서 기술하려는 것이 그의 의도였다고 자주 전제된다. 그러나 내가 플라톤이 말한 것은 진심이었으며, 그가 주장하는 최상 국가의 많은 특징에는, 특히 국가(Republic)2권에서 4권까지에 기술된 바와 같이, 역사와 관련짓거나 선사시대와 관련지을 (정치가[Statesman]법률[Laws]에서 그가 설명하는 원시사회처럼) 의도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은 최상 국가의 특징 모두에게 적용되지는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철학자가 왕이 되는 것에 관하여 (국가[Republic]5권에서 7권까지에 기술된다) 플라톤 자신이 지적하는 바, 철인왕(哲人王)은 형상이나 이데아라는 영원한 세계인 하늘에 있는 도시만의 특징일 것이다. 자신의 기술에 대한 의도적으로 비역사적인 이 요소는, 나중에 플라톤의 윤리-정치적 요건과 함께 논의될 것이다. 자신의 원시 혹은 고대 정치제도에 대한 설명에서 정확한 역사적 설명을 내놓으려 의도가 그에게 없었다는 것은 물론 인정되어야 한다; 그와 같은 것을 성취하기에 필요한 자료가 자신에게 없다는 사실을 그는 틀림없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온 힘을 다하여 고대 사회생활의 종족적 형태를 재건하려고 진지하게 노력했다고 나는 믿는다. 특히 그 노력은 상당히 많은 세부사항에서 매우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이것을 의심할 이유가 없다. 플라톤이 크레타와 스파르타의 고대 종족적 귀족정치를 이상화하여 기술함으로써 자신의 그림을 완성했기 때문에 그의 입장이 다를 수 없었다. 자신의 날카로운 사회학적 직관을 사용하여 그는 이 형태들이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화석이 되었고 중지된 것을 알았다; 그것들이 훨씬 더 오래된 형태의 잔재라는 것을. 그리고 그는 이 훨씬 더 오래된 형태가 더 안정되고 더 안전하게 중지되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 매우 고대적이고 따라서 매우 훌륭하고 매우 안정된 국가를 그는 그 국가가 어떻게 불화 없이 지켜졌는지를 분명히 하는 방식으로 재건하려고 시도했다; 어떻게 계급전쟁이 예방되고 어떻게 경제적 이해관계의 영향이 최소한으로 줄여져 잘 억제되었는지를. 이것들이 플라톤이 최상의 국가를 재건하는데 주요 문제이다.

어떻게 플라톤은 계급전쟁을 피하는 문제를 해결하는가? 그가 진보주의자였다면 그는 아마도 계급이 없는 평등한 사회라는 생각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 까닭은 예를 들어 우리가 플라톤 자신이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풍자한 것으로부터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아테네에는 강력한 평등사상이 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혹시 미래에 올 국가를 건설하려 하지 않고 과거의 국가를 스파르타의 조상이요 분명히 계급 없는 사회가 아니었던 국가를 건설하려고 했다. 그것은 노예국가였으며 따라서 플라톤이 주장하는 최상의 국가는 가장 엄격한 계급차별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것은 신분제도의 국가이다. 계급전쟁을 피하는 문제는, 계급을 폐지하여 해결된 것이 아니고 도전을 받을 수 없는 우월성을 지배계급에게 부여함으로써 해결되었다. 스파르타에서처럼 지배계급에만 무기휴대가 허용되었고, 그 계급만이 정치적 권리나 다른 권리를 향유했고, 그 계급만이 교육을 받았는데 즉, 지배계급이 부리는 인간 양이나 인간 가축을 통제하는 기술을 전문적으로 훈련하는 것이다 (실제로 지배계급이 가진 압도적인 특권으로 인하여 플라톤은 다소 당혹했다; 그는 지배계급에 속하는 사람이 단순히 인간 양들의 털을 벗기는 대신에 양에게 겁을 주어’ ‘지키는 개보다는 늑대로 행동하는것을 두려워했다. 이 문제는 이 장의 후반에 고찰된다.) 지배계급이 단결하는 한, 그들의 권위에 도전하는 일이 있을 리 없고 결과적으로 계급전쟁도 있을 리 없다.

플라톤은 자신이 주장하는 최상의 국가에서 세 가지 계급을 구분하는데 수호자와 그들의 무장한 보조원 즉, 군인 그리고 노동자 계급이다. 그러나 실제로 단지 두 신분만 존재하는데 군인계급과 무장을 하고 교육을 받은 지배자들 비무장으로 교육을 받지 못한 피지배자로 인간 양이다; 그 이유는 수호자는 분리된 계급이 아니라 단지 무장 보조원의 계급에서 승격한 늙고 똑똑한 군인일 뿐이기 때문이다. 노동계급 내부에서는 유사한 세분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플라톤이 자신이 설명하는 지배계급을 다시 수호자와 무장 보조원이라는 두 계급으로 나누는 것은 주로 그가 지배자에게만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노동자, 상인, 기타 등등은 그에게 전혀 관심거리가 되지 못했고 그 사람들은 지배계급의 물질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기능만 가진 인간 가축이다. 플라톤은 심지어 지배자들이 이 계급 사람들을 위하여 그리고 그들의 사소한 문제를 위하여 입법을 하는 것을 금지시키는 데까지 간다. 이것 때문에 우리에게는 하층계급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다. 그러나 플라톤의 침묵은 온전히 지켜지지 않는다. ‘빛나는 지능이 없고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질 가치도 없지만 중노동을 하기에 적당한 강한 육체를 가진 노동자는 없는가?’라고 그는 한번 질문한다. 이 더러운 언급으로 인하여 플라톤이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에 노예를 들이지 않았다는 고무적인 비평이 생겼기 때문에 나는 이 비평이 틀렸다는 것을 여기서 지적하겠다. 자신이 주장하는 최상의 국가 어디에서도 노예 신분을 플라톤이 명시적으로 논의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가 심지어 노예라는 명칭을 피해야 하며 우리가 노동자를 지원자나 심지어 고용인으로 불러야 한다고 말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정치선전의 이유로 수행된다. 어디에서도 노예제도가 폐지되어야 한다거나 완화되어야 한다는 최소한의 제안도 발견되지 않는다. 반대로 플라톤은 노예폐지 운동을 지원했던 아테네의 심약한민주주의자들에게 경멸만 보인다. 그리고 그는 예를 들어 최상의 국가 바로 뒤에 따라오는 국가인 두 번째로 우수한 국가인 금권정치를 기술함에 있어서 자신의 견해를 분명히 드러낸다. 거기서 그는 금권정치가에 대하여 말한다: ‘그는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만큼 노예들을 멸시하지는 않기 때문에 노예를 잔인하게 다루는 경향을 띤다.’ 그러나 최상의 국가에서만 금권정치의 교육보다 우수한 교육이 있기 때문에 플라톤이 주장하는 최상의 국가에도 노예가 있으며, 노예가 잔인하게 다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적당히 멸시되었다고 우리는 결론을 내리기 마련이다. 플라톤은 노예들을 자신의 올바른 방식으로 경멸하면서도 요점을 상술하지는 않는다. 같은 그리스 인을 노예로 만드는 그리스 인들의 현행 관행을 비판하는 국가Republic)에 있는 글귀가 야만인을 노예화하는 것을 명시적으로 지지하고, 심지어 우리 시민들에게 다시 말해서 최상의 도시의 시민들 지금 그리스 인들이 같은 그리스 인들에게 하는 것처럼 야만인들에게 할 것을 권유하는 사실에 의하여 이 결론은 완전히 증명된다. 그리고 그 결론은 법률(Laws)의 내용에 의하여 한층 더 입증되는데 노예에 대한 가장 비인간적 태도가 거기서 채택된다.

지배계급만이 인간 가축의 숫자를 제한하여 그들이 위협이 되는 것을 막는 권력을 포함한 정치적 권력을 갖기 때문에, 국가를 보전하는 전체 문제는 주인계급의 내부단결을 보전하는 문제로 환원된다. 어떻게 이 지배자들의 단결이 보전될까? 훈련과 다른 심리적 영향에 의해서, 그렇지 않다면 주로 불화를 초래할 경제적 이해관계를 제거함으로써. 이 경제적 금욕은 공산주의를, 다시 말해서 사유재산의 폐지를 도입함으로써, 특히 보석을 금지함으로써, 완성되고 통제된다. (보석소유는 스파르타에서 금지되었다.) 이 공산주의는 지배계급에만 국한되어 그 계급만 불화가 없어야 한다; 피지배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는 불화는 고려할 가치가 없다. 모든 재산은 공동재산이기 때문에 아내와 아이들도 공동소유가 되어야 한다. 지배계급에 속하는 사람은 자신의 자식이나 부모를 알아볼 수가 없어야 한다. 가족은 파괴되어야 하거나 더 정확하게 군인계급 전체를 포괄하도록 확대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가족에 대한 헌신은 아마도 불화의 근원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각자는 모든 사람을 한 가족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이 제안은, 들리는 바와 같이 그렇게 참신하지도 혁명적이지도 않다; 우리는 공동의 식사라는 제도로 끊임없이 플라톤에 의하여 언급되는 개인적인 식사 금지와 같은 그런 가족생활의 사사로움에 대한 스파르타식 제한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심지어 아내와 아이들을 공동으로 소유하는 제도도, 지배계급을 모든 경제적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에 완전히 충분하지는 않다. 가난뿐만 아니라 부유함 또한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 양쪽 모두 단합에 위협이 된다. 가난은 사람들을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하여 필사적인 수단을 채택하도록 몰고 가기 때문에; 부유함은 대부분의 변화가 풍요인 위험한 실험을 가능케 하는 재산축적으로부터 발생하기 때문에. 큰 빈곤의 여지도 커다란 재산의 여지도 남기지 않는 공산체제만이 경제적 이해관계를 최소한으로 줄여 지배계급의 단결을 보장할 수 있다.

플라톤이 만들고자 하는 최상 도시의 지배계급이 채택하게 될 공산주의는 그러므로, 플라톤의 변화에 대한 근본적인 사회학적 법칙에서 유래한다; 공산주의는, 최상의 도시가 갖는 근본적인 특징인 정치적 안정에 필수조건이다. 그러나 중요한 조건일지라도 공산주의는 충분조건은 되지 못한다. 지배계급이 정말로 단합되었음을 느끼기 위해서는, 그 계급이 한 종족처럼 다시 말해서 거대한 한 가족처럼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 계급 구성원 사이의 결속이 필수적인 것만큼 그 계급 외부에서 오는 압력이 필수적이다. 이 압력은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격차를 강조하고 넓힘으로써 확보될 수 있다. 피지배자이 다르고 완전히 열등한 인종이라는 느낌이 강할수록 지배자들 사이의 단결력은 더 강해질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겨우 조금 망설인 다음에 선언되는, 계급은 서로 섞여서는 안 된다는 근본적인 원리에 우리는 도달한다: ‘한 계급에서 다른 계급으로 간섭하거나 이전하는 것은 도시에 대한 중대한 범죄행위이고 마땅히 가장 추악한 악으로 비난을 받아야 할 것이다고 플라톤은 말한다. 그러나 그런 엄격한 계급분할에는 정당성이 있어야 하고, 그 계급분할을 정당화하는 시도는 지배자는 피지배자보다 우수하다는 주장으로부터 나올 수 있을 따름이다. 따라서 플라톤은 자신이 주장하는 계급분할을, 지배자는 세 가지 점에서 인종, 교육, 그리고 그것들에 있는 가치의 규모 크게 우수하다는 3중의 주장으로 정당화하려고 시도한다. 플라톤이 주장하는 도덕적 가치는 물론 그가 주장하는 최상 국가의 지배자들이 지닌 것과 동일한데 6장에서 8장에 걸쳐 논의될 것이다; 나는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플라톤이 주장하는 지배계급의 기원과 양육, 그리고 교육에 대한 그의 생각 중 몇 가지를 설명하기만 하겠다. (이 기술을 시작하기 전에, 인종적이든 지식적이든 혹은 도덕적이든 교육적이든 개인적인 우월성으로 인하여 그런 우월성이 발견될 수 있을 터이라도, 정치적 특권이 확립될 수 없다는 나의 믿음을 말하고 싶다. 문명국가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늘날 인종적 우월성이란 허구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인종적 우월성이 확립된 사실일지라도, 그 우월성으로 인하여 혹시 우수한 사람에게 특별한 도덕적 책임이 부여될지언정 그 우월성으로 인하여 특별한 정치적 권리들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지적으로, 도덕적으로, 그리고 교육적으로 우수한 사람들에게도 같은 요구가 주어져야 한다; 그리고 특정 지성주의자들과 도덕주의자들이 내놓는 반대 주장은, 그 반대 주장이 그들 자신의 한계와 그들의 위선을 깨닫게 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그들의 교육이 얼마나 성공적이지 못했는지 보여줄 따름이라는 느낌을 나는 지울 수 없다.)

 

IV

 

지배계급의 기원, 양육, 그리고 교육에 관한 플라톤의 견해를 우리가 이해하고 싶어 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분석한 두 가지 요점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존재하는 국가들에서 예를 들어 스파르타에서 그 도시의 특징들 중 몇 가지가 여전히 감지될 수 있는 정도로 현재와 관련된 도시일지라도, 우리는 무엇보다도 플라톤이 과거의 도시를 재건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두 번째로 그가 자신이 주장하는 도시를 그 도시의 안정에 대한 조건을 목표로 하여 재건한다는 것, 그리고 그는 이 안정에 대한 보장을 지배계급 자체 내부에서, 그리고 더욱 특히, 그 계급의 단결과 힘 속에서 구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지배계급의 기원에 대해서 플라톤은 정치가(Statesman)에서, 심지어 자신이 주장하는 최상의 국가 이전인 사람이 여전히 짐승들을 다스리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 자신이 사람을 다스리면서 사람의 목동이었던시기에 대하여 말한다. ‘아내와 아이들을 소유하는 일은 없었다..이것은 훌륭한 목동에 대한 비유만이 아니다; 플라톤이 법률(Laws)에서 말하는 것을 고려하면 그것보다 더 정확하게 해석되어야 한다. 그 까닭은 법률(Laws)에서 우리가 듣는 것은 이 원시적 사회는 심지어 최초이자 최상의 도시 이전에 존재했는데, 가부장 휘하에 있는 유목민 사회라는 것이다: 정부는.. 자신이 지닌 권위를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로부터 계승한 장자의 지배로서 시작되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은 새떼처럼 그를 추종하여 모든 왕정 중에서 가장 정당한 그 가부장적 권위와 왕정에 의하여 지배를 받는 단 하나의 유랑무리를 형성한다고 플라톤은 거기서 최초의 정착 전의 기간에 대하여 말한다. 이 유목종족은 펠로폰네소스의 도시에, 특히 스파르타에 도리아인이라는 이름으로 정착한다는 말을 우리는 듣는다. 이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분명하게 설명되지는 않지만 그 정착이 실제로 폭력적인 정복이었다는 암시를 우리가 받았을 때 우리는 플라톤의 망설임을 이해한다. 우리가 아는 한 이것은 펠로폰네소스에 도리아인이 정착한 것에 대한 사실적인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플라톤의 의도는 자신의 이야기로 선사시대의 사건을 진지하게 설명하는 것이었다고 믿을만한 충분한 이유가 우리에게 있다; 도리아인 지배인종의 근원에 대한 설명뿐만 아니라, 도리아인의 인간 가축인 원주민의 기원에 대한 설명 또한. 국가(Republic)에 쓰인 유사한 글귀에서 플라톤은 땅에서 태어난 사람들인 최상의 도시에 사는 지배계급의 기원을 다룰 때, 신화적이지만 매우 날카롭게 그 정복 자체를 우리에게 기술한다. (땅에서 태어난 사람들에 대한 신화는 8장에서 다른 관점으로 논의될 것이다.) 과거에 상인과 노동자들에 의하여 세워진 도시 속으로 그들이 승리의 행진을 하는 것이 다음과 같이 묘사된다: ‘대지에서 태어난 이들을 무장시키고 교육시킨 다음에, 그들이 도시에 도착할 때까지 수호자들의 명령을 받으며 진군하도록 만들자. 그 다음에 주위를 둘러보고 그들의 숙영지로 가장 좋은 곳을 원주민이 법에 복종하지 않으려 하면 원주민을 통제하기에, 그리고 늑대처럼 양떼를 습격하는 외적을 물리치기에 가장 적당한 장소 발견하도록 하자.’ 플라톤이 훌륭한 지배자란 신()이든 반신(半神)이든 혹은 수호자든 인간에 대한 가부장적 목동이요, 진정한 정치적 기술 즉, 통치의 기술은 일종의 목축업자 정신, 다시 말해서 인간 가축을 통솔하고 통제하는 기술이라고 집요하게 주장하는 것을 우리가 이해할 때 원주민을 호전적 유랑민이 (정치가[Statesman]에서는 정착 이전 기간 동안의 구릉지 유목민과 동일하다) 정복하는 짧지만 의기양양한 이야기가 기억되어야 한다. 그리고 국가의 목동에게 양을 감시하는 개처럼, 지배자에게 종속되어 있는 보조원을 양육하고 훈련시키는 이 설명을 우리는 이런 관점을 통해서 생각해야 한다.

플라톤이 주장하는 최상 국가의 보조원 양육과 교육, 그리고 그에 따른 지배계급의 양육과 교육은, 그들이 지니고 다니는 무기처럼, 계급의 상징이며 따라서 계급의 특권이다. 그리고 양육과 교육은 공허한 상징이 아니라, 무기처럼 계급지배의 도구이며 이 지배의 안정 확보에 필수적이다. 양육과 교육은 이 관점으로 플라톤에 의하여 다루어지는데 강력한 정치적 무기로서, 인간 가축을 지키고 지배계급을 결집시킴에 유용한 수단으로서 다루어진다.

이것을 목적으로, 주인 계급이 하나의 우수한 주인 인종으로서 느껴야 함이 중요하다. ‘수호자들의 인종은 순수하게 지켜져야 한다, 그 후 항상 반복된 주장인 우리 자신의 인종을 무시하는 반면 우리는 동물들을 아주 세심하게 기른다는 인종주의적 주장을 전개할 때, 플라톤은 (영아살해를 옹호하여) 말한다. (영아살해는 아테네의 제도가 아니었다; 플라톤은 스파르타에서 우생학적 핑계들로 영아살해가 실행됨을 알고 영아살해는 틀림없이 고대적이어서 훌륭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경험이 많은 양육자들에 의하여 개나 말 혹은 조류에게 적용되는 것처럼, 동일한 원리가 주인 인종의 양육에 적용되어야 한다고 그는 요구한다. ‘당신들이 이런 방식으로 그들을 양육하지 않는다면, 당신들의 조류나 개의 종이 빠르게 쇠퇴할 것이라고 당신들은 생각하지 않는가라고 플라톤은 항변한다; 그리고 그는, ‘동일한 원리가 인종에게도 적용된다고 결론을 맺는다. 수호자로부터 혹은 보조원으로부터 요구되는 인종적 본성들은, 더 구체적으로, 양치기 개들의 본성들이다. ‘우리의 군인-체육선수들(warrior-athletes).. 파수견들처럼 경계에 임해야 한다고 플라톤은 요구하고 다음과 같이 묻는다: ‘분명히 파수꾼 역할에 대한 그들의 타고난 적합성에 관한 한, 용감한 젊은이와 잘 양육된 개 사이에 차이점이 없다?’ 개에 대한 그의 열정과 찬양에서 플라톤은 개에게서 진정한 철학적 본성을 감지하는 지경까지 간다; 이유인즉 배움 사랑은 철학적 태도와 동일하지 않는가?’라고 그가 말하기 때문이다.

플라톤을 둘러싼 주요 난제는, 수호자들과 보조원들에게 난폭하고 부드러운 인격이 동시에 부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사납게 양육되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한데 왜냐하면 그들이 두려움을 모르고 정복될 수 없는 정신으로 위험에 맞서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본성이 저럴 수 있다면, 그들이 어떻게 서로에게 적대하여 혹은 나머지 시민들과 적대하여 난폭해지는 것이 예방될 수 있는가?’ 정말로 개보다는 늑대처럼 행동하면서 양을 걱정할 개를 목동들이 기른다면 괴물 같을 뿐일 터이다. 그 문제는 정치적인 평형의 관점에서 혹은 더 정확하게 국가 안정의 관점에서 중요한데 이유인즉 다양한 계급들이 지닌 힘의 평형에 의지한다는 것은 불안정할 터여서 플라톤이 그런 평형에 의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피지배자들의 반발을 통한 주인계급과 그 계급의 자의적인 권력들 및 그 계급의 난폭함의 통제는 불가능한데 이유인즉 주인계급의 우수성은 도전을 받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주인계급에 대하여 유일하게 용인될 수 있는 통제는 그리하여 자기-통제이다. 지배계급이 경제적 금욕을 실천해야 하는 것, 다시 말해서 피지배자들에 대한 지나친 경제적 수탈을 삼가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지배계급은 또한 피지배자들을 다룸에서 너무 많은 난폭함을 삼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배계급 자체의 본성이 지닌 난폭함이 그 본성의 유순함에 의하여 균형이 잡혀야 이것이 성취될 수 있을 따름이다. 플라톤은 이것이 매우 심각한 문제임을 발견하는데 왜냐하면 난폭한 본성은 유순한 본성의 정반대이다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가 대변자로 삼은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당황했고 마침내 자신이 개를 다시 기억했다고 보고한다. ‘잘 길러진 개는 자기들의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천성적으로 매우 다정하지만, 이방인들에게는 아주 반대다라고 그는 말한다. 그리하여 우리가 우리의 수호자들에게 부여하려고 시도하는 특징은 본성에 반하지 않는다고 증명된다. 그리하여 주인 인종을 양육하는 목표가 확립되고 도달 가능하다고 밝혀진다. 그 목표는, 국가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에 필수적인 조건들을 분석함으로부터 도출되었다.

플라톤의 교육목표는 정확하게 동일하다. 그것은, 지배자들의 인격에서 난폭하고 유순한 요소를 혼합함에 의하여 국가를 안정시키는 순전히 정치적인 목표이다. 그리스의 상위층 자제들에 교육된 두 가지 과목들인 체육과 음악은 (후자[後者]는 음악이라는 단어의 더 넓은 의미에서 모든 문학적 과목들을 포함했다) 플라톤에 의하여 난폭함과 유순함이라는 인격의 두 가지 요소들과 상호 관련되었다. ‘인격이 음악 없이 체육에서 배타적인 훈련에 의하여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 그리고 반대되는 훈련에 의하여 인격이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 당신들은 관찰하지 않았는가?.. 체육에 배타적으로 몰입함에 의하여 남자들이 필요 이상으로 더 난폭하게 되고, 반면 음악에 대한 유사한 몰입으로 인하여 남자들은 유순해진다.. 그러나 우리의 수호자들은 이 두 가지 본성들을 모두를 결합해야 한다고 우리는 주장한다.. 이것이, 어떤 신()이 인간에게 음악과 체육이라는 두 가지 기술들 틀림없이 부여했다고 내가 말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그것들의 목표는 영혼과 신체 각각에 도움에 된다기보다는 오히려 두 개의 주요 현(; strings)을 합당하게 조율하는 것이라고 플라톤은 말하는데, 다시 말해서 영혼의 두 가지 요소인 유순함과 난폭함을 조화시키는 것이다. ‘이것들이 우리의 교육과 훈련의 체계에 대한 개요들이다라고 플라톤은 자신의 분석을 끝낸다.

플라톤이 영혼의 유순한 요소를 영혼의 철학적 성향과 동일시하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철학이 국가(Republic)의 나중 부분들에서 그렇게 지배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될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는 영혼의 선호 혹은 음악적인 교육인 문학적 교육의 선호를 전혀 중시하지 않는다. 두 가지 요소들을 균형 잡는 공평성은, 그의 시대에 아테네에서 관습적이었던 문학 선호와 비교되어 그 공평성으로 인하여 아테네의 문학 교육에 그가 가장 심한 제한을 가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만큼 더 두드러진다. 이것은 물론, 아테네의 관습보다 스파르타의 관습을 선호하는 그의 일반적인 경향의 한 부분일 뿐이다. (그의 다른 모형인 크레타는 스파르타보다 훨씬 더 반()-음악적이었다.) 문학 교육에 대한 플라톤의 정치 원리들은 단순비교에 근거한다. 스파르타는 자체의 인간 가축을 다소 너무 혹심하게만 다루는 것을 그는 알았다; 이것은 증상이나 심지어 취약성의 느낌에 대한 수용이었고 그리하여 주인계급의 초기 퇴보 증상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아테네는 노예들을 다룸에서 완전히 너무 자유적이었고 느슨했다. 플라톤은 이것을, 스파르타는 체육을 다소 너무 많이 고집하는 것으로 그리고 아테네는 물론 음악을 아주 너무 많이 고집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 단순한 추산으로 인하여 그는 자신의 견해로 최상 국가의 교육에서 틀림없이 두 가지 요소들의 척도이거나 참된 혼합인 것을 기꺼이 재건축할 수 있었고 그의 교육정책에 대한 원칙을 세울 수 있었다. 아테네의 관점에서 그것은, 모든 문학적 문제들에서 스파르타가 엄격히 통제한 스파르타의 사례를 엄격히 고수함에 의하여 모든 문학 교육을 질식시키라는 요구와 다름없었다. 시문학뿐만 아니라 음악도 자체의 평범한 용어의 의미에서 엄격한 검열에 의하여 통제되어야 하고 두 가지 모두는, 청년들이 계급 훈련을 더 의식하도록 만듦에 의하여 국가의 안정을 강화하는 데 전적으로 헌신해야 하며 그리하여 계급 이익에 더 기꺼이 부합해야 한다. 플라톤은 심지어, 청년들을 더 유순하게 만드는 것이 음악의 기능임을 망각하는데 이유인즉, 청년들을 더 용감하게 다시 말해서 더 난폭하게 만들 것과 같은 그런 음악 형태들을 그가 요구하기 때문이다. (플라톤이 아테네인임을 고려하여, 고유한 음악에 관한 그의 주장들은 그 주장들의 미신적 불관용에서 특히 더 개화된 당시 비판과 비교되면 내가 보기에 거의 믿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심지어 지금도 그에게는 자신의 편에 선 많은 음악가들이 있는데 아마도 그 이유가 그 음악가들이 음악의 즉, 음악이 지닌 정치적인 힘의 중요성에 대한 그의 고견에 의하여 아첨을 받기 때문이다. 교육자들에게도 동일한 효과가 있고 심지어 철학자들에게는 훨씬 더 많은 효과가 있는데 왜냐하면 그들이 통치를 해야 한다고 플라톤이 요구하기 때문이다; 8장에서 토론될 요구.)

영혼 교육 즉, 국가 안정을 보존하는 교육을 결정하는 정치적 원리들로 인하여 신체의 안정도 결정된다. 목표는 단지, 스파르타의 목표이다. 아테네 시민들은 일반적인 다재다능함으로 교육되는 반면, 지배계급은 국가의 내외부로부터의 적들을 공격할 준비가 된 전문적인 군인들의 계급으로서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플라톤은 요구한다. 남녀 아이들은 실제로 전쟁을 시야에 두고 말을 타야한다; 그리고 말타기가 안전하게 수행될 수 있다면, 그 아이들은 전투에 소집되어 피를 맛보게 되어야 한다; 우리가 어린 사냥개들에게 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라는 말을 우리는 두 차례 듣는다. 현대적인 전체주의적 교육을 강화되고 지속적인 동원(mobilization) 형태로서 규정하는 어떤 현대 작가의 기술이 플라톤의 교육 체계 전체에 정말로 매우 잘 들어맞는다.

이것이, 현명하지만 굳어버린 목동이 자신의 양을 다루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플라톤의 최상 혹은 가장 오래된 국가에 대한 이론이자 자체의 인간 가축을 다루는 도시에 대한 이론의 개요이다; 너무 잔인하게는 아니지만 적당히 경멸하며... 스파르타의 사회제도들에 대한 그리고 그 제도들의 안정 및 불안정조건들에 대한 분석으로서, 그리고 더 경직되고 원시적인 종족적 삶의 형태들을 재건하려는 시도로서, 이 기술은 정말로 탁월하다. (이 장[]에서 다만 기술적[記述的: descriptive] 면이 다루어진다. 윤리적인 면들은 나중에 토론될 것이다.) 통상적으로 단순한 신화적이거나 유토피아적 사념으로서 간주된 플라톤의 글 중에서 많은 글이 사회학적 서술 및 분석으로서 이런 방식으로 해석될 있다고 나는 믿는다. 예를 들어 정착민들을 복속시키는 의기양양한 전쟁 무리들에 대한 그의 신화를 우리가 바라보면, 기술적(記述的: descriptive) 사회학의 관점에서 그의 신화는 매우 성공적임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사실상 그 신화는, 국가의 기원에 대한 흥미로운 (아마도 너무 포괄적일지라도) 현대적 이론의 선례라고 심지어 주장할 수 있을 터인데 그 현대적 이론에 따르면 중앙집권적이고 조직된 정치권력은 일반적으로 그런 정복에서 기원한다. 플라톤의 글에는 우리가 현재 평가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이런 종류의 기술들이 있을 것이다.

 

V

 

요약한다. 자신이 경험한 변하는 사회적 세상을 이해하여 해석하려는 시도로, 플라톤은 체계적인 역사주의적 사회학을 아주 상세하게 전개했다. 그는 존재하는 국가들을, 변하지 않는 형상이나 이데아의 부패하는 모조품들로서 간주했다. 그는 국가에 대한 이 형상이나 이데아를 재건하려고 혹은 적어도 그 형상이나 이데아를 닮은 사회를 가능한 한 긴밀하게 기술하려고 시도했다. 고대의 전통들과 함께, 훨씬 더 오래된 종족적 사회들의 중지된 형태들에서 자신이 인지한 스파르타와 크레타의 사회제도들에 자신이 그리스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가장 오래된 사회생활의 형태들 대한 자신의 분석 결과들을 그는 자신의 재건축 재료로 이용했다. 그러나 이 재료를 합당하게 이용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제도들의 훌륭하거나 원초적이거나 고대적인 특징들과 그 제도들의 부패 증상을 구분하기 위한 원칙이 그에게 필요했다. 이 원칙을 그는 정치혁명에 대한 자신의 법칙에서 발견했는데 그 법칙에 따르면 지배계급에서의 불화와 경제적 사건들에 대한 지배계급의 집착이 모든 사회적 변화의 근원이다. 그리하여 그가 말하는 최상의 국가는, 불화 및 부패의 모든 싹과 요소를 가능한 한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방식으로 재건될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지배계급의 경제적 금욕과 양육 및 훈련에 의하여 보증된 지배계급의 중단없는 통합에 필요한 조건들을 목표로 스파르타 국가로부터 그 최상의 국가는 건설될 수 있었다.

존재하는 사회들을 이상적인 국가의 부패하는 모조품들로서 해석하여, 플라톤은 인간의 역사에 대한 헤시오도스의 다소 조악한 견해들을 이론적 배경과 풍부한 실용적 적용성으로 즉각 보완했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하는 불화에서 그리고 역사의 부패시키는 힘들 뿐만 아니라 추동력을 자신이 인식한 계급갈등에서 사회적 변화의 원인을 발견하여, 현저하게 실재론적인 역사주의적 이론을 그는 전개했다. 그는 이 역사주의적 원리들을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쇠퇴와 추락에 대한 이야기에 그리고 특히 민주주의 비판에 적용했는데 민주주의를 그는 여성적으로 나약하고 퇴행적으로서 묘사했다. 그리고 나중에 법률(Laws)에서 그가 그 원리들을 페르시아 제국의 쇠퇴와 몰락 이야기에 또한 적용하고 그리하여 제국과 문명의 역사에 관하여 쇠퇴--몰락이라는 긴 연속물의 단초를 마련했다고 우리는 부언할 것이다. (O. 슈펭글러[Spengler]의 악명 높은 서구의 쇠퇴[The Decline of the West]는 아마도 그 연속물의 최악이지만 마지막은 아니다.) 이 모든 것은, 종족적 사회의 붕괴에 대한 그의 경험을 설명하고 합리화하는 시도이자 매우 인상적인 시도로서 해석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변화에 대한 최초의 철학을 전개하게 된 경험과 유사한 경험.

그러나 플라톤의 기술적(記述的: descriptive) 사회학에 대한 우리의 분석은 여전히 미완이다. 쇠퇴와 몰락에 대한 그의 이야기들 그리고 그것과 함께 거의 모든 나중 이야기들은, 우리가 지금까지 토론하지 않은 적어도 두 가지 특징을 드러낸다. 이 쇠퇴하는 사회들을 어떤 종류의 생명체로서 그리고 쇠퇴를 늙음과 유사한 과정으로서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도덕적 부패인 영혼의 추락과 쇠퇴가 사회적 몸체의 그것과 동행한다는 의미에서 그 쇠퇴는 충분히 당연하다고 그는 믿었다. 플라톤이 말하는 최초의 변화 이론에서 숫자에 대한 그리고 인간의 타락에 대한 이야기에서 이 모든 것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이 이야기와, 형상 및 이데아 교설에 대한 그 이야기의 연관성은 다음 장에서 토론될 것이다.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