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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사회와 그 적들 1권 (번역 수정본), 2장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

이윤진이카루스 2021. 12. 18. 21:13

열린사회와 그 적들 1권 2장 헤라클레이토스 (번역 수정본).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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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에 이르러서야 역사주의적 특징에서 선택된 민족이라는 교설과 비견될 수 있는 이론들을 우리는 그리스에서 발견한다. 호메로스(Homer)의 신학적 혹은 더 정확하게 다신론적 해석에서, 역사는 신()의 의지의 산물이다. 그러나 호메로스의 신()들은, 역사발전에 관하여 일반적인 법칙을 세우지 않는다. 호메로스가 강조하여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역사의 통일성이 아니라, 오히려 역사의 통일성 결핍이다. 역사의 무대에서 펼쳐지는 극작가는 한 분의 하느님이 아니다; 매우 다양한 제신(諸神)이 그 연극에서 장난을 친다. 호메로스의 해석이 유대인들과 공통되는 것은, 어떤 모호한 운명에 대한 감정 및 무대의 뒤에 있는 권력에 대한 관념이다. 그러나 궁극적 운명은, 호메로스에 따르면, 드러나지 않는다; 유대인들의 궁극적 운명과 달리, 호메로스의 궁극적 운명은 신비로 남는다.

더 두드러진 역사주의적 교설을 소개한 최초의 그리스인은 헤시오도스(Hesiod)였는데, 그는 아마도 동양적 기원들에 의하여 영향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역사발전에서 일반적인 추이나 경향(general trend or tendency)이라는 관념을 사용했다. 그의 역사 해석은 비관적이다. 그는 인류가, 황금기(the Golden Age)에서부터 내려오는 발전에서, 육체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모두, 타락할 운명이라고 믿는다. 초기 그리스 철학자들에 의하여 제기된 다양한 역사주의적 개념들의 절정기는 플라톤과 함께 도래했는데 그는, 그리스 종족의 그리고 특히 아테네인들의 역사와 사회생활을 해석하려는 시도에서, 세상에 대하여 거창한 철학적 그림을 그렸다. 그는 자신의 역사주의에서, 다양한 선배들에 의하여, 특히 헤시오도스에 의하여 강한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영향은 헤라클레이토스로부터 받았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변화(change)라는 관념을 발견한 철학자였다. 이때까지 그리스 철학자들은 동양사상의 영향을 받아서, 물질적인 것들이 건축 재료들인 거대한 구조물로 세계를 보았다. 세계는 물질의 총화였다 ㅡ (원래 동양의 천막이나 외투였던 것으로 보이는) 코스모스(cosmos). 철학자들이 자문했던 문제는 이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혹은 어떻게 세상은 건설되었으며, 세계의 참된 기본도면은 무엇인가?’였다. 그들은 철학, 혹은 물리학을 (둘은 오랫동안 구분되지 못했다) ‘자연’, 다시 말해서 세상인 이 구조물이 건설된 원초적 재료에 대한 탐구로 간주했다. 과정들(processes)이 고찰되는 한, 과정들은 이 구조물의 내부에서 진행되는 것으로 여겨졌거나 그 구조물을 건설하고 유지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는데,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다고 간주되던 구조의 안정성이나 균형을 방해하고 또 복원하기도 한다고 생각되었다. 그 과정들은 순환적 과정이었다 (구조물의 시원과 관련된 과정과는 별도로; ‘누가 그 구조물을 만들었을까?’라는 질문이 동양 사람들에 의하여, 헤시오도스에 의하여,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 의하여 논의되었다). 매우 자연스러운 이러한 접근방식은, 심지어 많은 현대인에게도 자연스러운 것으로 헤라클레이토스의 천재성에 의하여 대체되었다. 그가 도입한 견해는 그런 구조물도, 안정된 구조도, 우주도 없다는 것이었다. ‘우주는 기껏해야 멋대로 산재하는 쓰레기더미와 같다는 것이 그의 언급 중의 하나이다. 그는 세상을 한 개의 구조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과정으로 보았다; 모든 물체의 합산이 아니라 모든 사건들이나 변화들, 또는 사실들의 총화로서. ‘만물은 유전하며 정지해 있는 것은 없다가 그의 철학에서 좌우명이다.

헤라클레이토스의 발견은 오랫동안 그리스 철학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데모크리토스(Democritus),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모두 헤라클레이토스가 발견한 변화하는 세계라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로 합당하게 기술(記述)될 수 있다. 이 발견의 위대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 발견은 가공할 발견으로 기술되었고, 그 효과는 지진의 효과에 비교되었는데 그 지진 속에서 만물이.. 흔들리는 듯 보인다. 그리고 이 발견이 헤라클레이토스가 개인적으로 겪은 당시 사회정치적 격변의 혹독한 결과로서 그에게 각인되었다는 사실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자연뿐만 아니라 윤리-정치적 문제를 훨씬 더 많이 다루었던 최초의 철학자인 헤라클레이토스는 사회적 변혁기에 살았다. 그리스의 종족적 귀족계급이 새로운 민주주의 세력에게 굴복하기 시작한 것은 그가 살던 때였다.

이 혁명의 효과를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종족적인 귀족정치 속에서의 사회생활이 지닌 안정성과 경직성을 기억해야 한다. 사회생활은 사회적 및 종교적 금기에 의하여 결정된다; 모든 사람은 사회구조 전체 내부에 할당된 지위를 가지고 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지위가, 고유하고 자연스러운것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법칙에 의하여 자신에게 할당된 것으로 느낀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지위를 알고 있다.’

전승되는 바에 따르면 헤라클레이토스 자신의 지위는 에베소(Ephesus)의 제정일치 왕가의 계승자였지만, 그는 형을 위하여 자신의 권리를 포기했다. 그는 자신이 사는 도시의 정치적 삶에 참가하기를 자신만만하게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혁명의 힘을 지닌 밀물을 헛되이 막으려던 귀족들의 명분을 지지했다. 사회 및 정치적 분야에서 겪은 이 경험이 그의 작품에서 남은 글 조각들에 반영되어있다. 에베소 사람들 성인(成人) 모두는 하나하나 목매어 죽고, 도시의 통치는 아기들에게 맡겨야 한다...’라는 말은 시민들이 그의 귀족 친구 중 한 명인 헤르모도로스(Hermodorus)를 추방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시민들의 동기에 대한 그의 해석은 매우 흥미로운데, 이유인즉 그의 해석으로 인하여 반민주주의적 주장의 전형적인 특징이 민주주의 초기 이래 크게 바뀌지 않았음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들은 말한다: 아무도 우리 중에서 최고가 될 수 없다; 그리고 만약 어떤 사람이 뛰어나면 그 사람을 다른 곳으로 보내어 다른 사람들 속에 있게 하라.’ 민주주의에 대한 이 적대감은 그의 글 조각들 도처에서 터져 나온다: ‘... 군중은 자신들의 배때기를 금수와 같이 채운다... 군중은 다수는 나쁘고 소수만이 선하다는 사실을 모른 채, 음유시인들과 대중적인 믿음을 지침으로 삼는다... 프리에네(Priene)에 테우타메스(Teutames)의 아들인 비아스(Bias)가 살았는데 그의 말은 다른 사람들의 말보다 더 중요하다. (그는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악하다.’) .. 대중은 무심한데 심지어 자기들이 마주치는 사건들에도 무심하다; 또한 대중은 교훈을 파악할 수 없다 ㅡ 그들은 교훈을 파악한다고 생각할지라도.’ 같은 맥락으로 그는 말한다: ‘법은, 한 사람의 의지가 복종을 받아야 한다고 또한 명령할 수 있다.’ 헤라클레이토스의 또 다른 보수적이고 반민주주의적인 견해는, 아마도 자체의 의도에서는 아닐지라도 표현에서는 부언하여 민주주의자에게도 수용될 수 있다: ‘민족은, 법이 자신이 거주하는 도시의 성벽인 양 도시의 법을 위하여 싸워야 한다.’

그러나 헤라클레이토스가 자기가 살고 있던 도시의 옛날 법을 지키기 위하여 투쟁한 것은 성공하지 못했고, 만물의 무상함은 그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의 변화이론은 이 느낌을 대변한다: ‘만물은 변한다고 그는 말했다; 그래서 같은 강물에 두 번씩 들어갈 수 없다라고 말했다. 환멸을 맛본 그는, 현존하는 사회제도가 영원하리라는 믿음에 대항하여 주장했다: ‘우리는, “우리에게 전승된편협한 관점으로 길러진 아이들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

변화에 대한 이 강조, 그리고 특히 사회생활의 변화에 대한 강조는 헤라클레이토스 철학의 중요한 특징일 뿐만 아니라 역사주의 전체의 중요한 특징이다. 사물, 심지어 군주도 바뀐다는 것은 자신의 사회적 환경을 당연시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강렬한 인상을 반드시 남긴다. 그런 정도는 인정될 수 있다. 그러나 헤라클레이토스의 철학에서 덜 바람직한 역사주의적 특징이 하나 드러나는데 즉, 냉엄하고 불변하는 운명의 법칙을 부수적으로 믿는 것과 결합된 변화에 대한 과잉강조이다.

이러한 믿음 속에서, 처음 보기에는 변화에 대한 역사주의자들의 과잉강조와 반대가 될지라도,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 역사주의자들의 특징적인 태도를 우리는 만나게 된다. 만약 변화에 대한 역사주의자들의 과잉강조를, 변화에 대한 그들의 무의식적 저항을 극복하는데 필요한 노력의 징후로서 우리가 해석한다면, 우리는 이런 태도를 설명할 수 있다. 이것으로 인하여 또한, 자신들이 틀림없이 내뱉게 된 생소한 폭로의 기묘함을 그렇게 많은 역사주의자들이 (심지어 오늘날에도) 강조하는 정서적 긴장이 설명될 터이다. 그런 고찰들에 의하여 이 역사주의자들이 변화를 두려워하며, 그래서 그들이 심각한 내적갈등 없이는 변화라는 관념을 받아들일 수 없는 가능성이 드러난다. 역사주의자들은 변화가 불변 법칙에 의하여 지배된다는 관점에 매달림으로써, 안정된 세상을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자위하려는 듯이 보인다. (파르메니데스와 플라톤의 경우에, 우리가 살고 있는 변화하는 세상은 망상이며, 그러므로 변화하지 않는 보다 실재적인 세계가 있다는 이론을 우리는 심지어 발견할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의 경우에는, 변화의 강조로 인하여 모든 물체가 고체든 액체든 기체든 불꽃과 같다는 ㅡ 그것들은 물체라기보다는 과정이어서 그것들 모두가 불의 변형이라는 ㅡ 이론에 도달한다; 표면적으로 고체인 땅은 ([ashes]로 구성되어 있다) 변형 상태의 불일 따름이며, 심지어 액체도 (, 바다) 변형된 불이다 (그래서 아마도 기름의 형태로 연료가 될 것이다). ‘불이 최초로 변형된 것은 바다이다; 그러나 바다 중에서 절반은 땅이고 절반은 뜨거운 공기이다.’ 그래서 다른 모든 원소들은 ㅡ 땅, 물 그리고 공기 ㅡ 변형된 불이다: ‘황금이 물품들로 교환되고 물품들이 황금으로 교환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만물은 불로 교환되고 불은 만물로 교환된다.’

그러나 만물을 연소(燃燒)처럼 불꽃, 즉 과정으로 환원한 후, 헤라클레이토스는 그 과정에서 법칙, 척도, 이성, 지혜를 감지한다; 그리고 구조물로서의 우주를 파괴하고 우주가 쓰레기더미라고 선언한 다음에 그는 우주를 세계-과정에서 운명 지어진 사건들의 질서로서 다시 소개한다.

세상의 모든 과정은, 특히 불 자체는 자체의 척도(measure)’인 확정된 법칙에 따라서 발전한다. 그것은 냉엄하고도 저항할 수 없는 법칙이고, 그런 정도까지 그것은 현대 역사주의자들이 지닌 역사적 혹은 진화론적 법칙의 구상뿐만 아니라 자연법칙에 대한 현대적 구상과 닮는다. 그러나 국가에 의하여 강제되는 법과 꼭 마찬가지로, 그것은 형벌에 의하여 강제되는 이성의 명령인 한 이 구상들과는 다르다. 한편으로는 실정법이나 규준과,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법칙과 규칙성을 구분하지 못하는 이것이 종족적 금기주의(tribal tabooism)의 특징이다: 이 두 종류의 법은 동일하게 마술적으로서 취급되는 데, 그렇게 되면 인간이 만든 금기들에 대한 합리적 비판이, 자연 세계의 법칙들이나 규칙성들에 대한 궁극적 지혜나 이성을 개선하려는 노력만큼, 상상 불가능해진다: ‘모든 사건은 운명의 필연성에 의하여 진행된다... 태양은 자체의 통로라는 척도를 벗어날 수 없다; 벗어난다면 운명의 여신인 정의(正義: Justice)의 시녀들인 운명의 여신들(the goddesses of Fate)이 태양을 찾아내는 방법을 알 것이다.’ 그러나 태양이 법칙을 따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불도 태양의 형태로 그리고 (이제 우리들이 알게 되지만) 제우스의 벼락 형태로 법칙을 감시하고 그 법칙에 따라서 판단을 내린다. ‘태양은 만물을 생성하는 변화와 계절을 제한하고 판단하고 예고하고 명시하며, 절기를 지키고 수호한다... 만물에게 공평한 이 우주적 질서는 신이나 인간에 의하여 창조된 것이 아니다; 그 질서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항상 살아있는 불이며 척도에 따라 타오르고, 척도에 따라 쇠퇴한다... 그 질서가 전진하면서 불은 만물을 움켜쥐고 판단하고 집행할 것이다.’

무자비한 운명이라는 역사주의적 관념과 연결되어, 우리는 신비주의적 요소를 자주 발견한다. 신비주의에 대한 비판적 분석이 24장에서 제시될 것이다. 여기서 나는 헤라클레이토스 철학 속에 있는 반합리주의와 신비주의의 역할을 밝히고 싶을 따름이다: ‘자연은 숨기기를 좋아한다고 그는 쓰고, ‘자신의 신탁이 델피에 있는 신(), 계시하지도 은닉하지도 않지만 신은 자신의 의도를 암시로 표시한다고 쓴다. 더 경험적인 생각을 가진 과학자들에 대한 헤라클레이토스의 경멸은, 다음과 같은 견해를 채택하는 사람들에게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두뇌가 많을 필요가 없다; 이유인즉 헤시오도스와 피타고라스(Pythagoras)에게 아는 것이 없었더라면 두뇌가 많았을 것이기 때문이며, 또한 크세노파네스(Xenophanes)도 마찬가지이다... 피타고라스는 사기꾼의 시조다.’ 과학자들을 비웃는 것과 함께, 직관적 이해라는 신비성 이론이 나타난다. 이성(理性)에 대한 헤라클레이토스의 이론은, 우리가 깨어있다면, 우리는 공동의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출발점으로 시작한다. 우리는 서로 의사소통하고, 통제하고, 검토한다; 그리고 이곳에 우리가 망상의 희생물이 아니라는 확신이 놓여있다. 그러나 이 이론에는 부차적이고 상징적이며 신령스러운 의미가 주어진다. 그것은, 선택된 자들이며 깨어있는 자들이고 보고 듣고 말할 수 있는 자들에게 주어진 신령스러운 직관에 관한 이론이다: ‘사람은 마치 잠이 든 상태처럼 행동하고 말해서는 안 된다... 깨어있는 자들은 하나의 공통된 세상을 가지고 있다; 잠들어 있는 자들은 자신들의 개인적인 세상으로 돌아가라... 그들은 듣지도 말하지도 못한다... 그들이 정말로 듣는다고 하여도 귀머거리와 같다. 다음과 같은 속담이 그들에게 적용된다: 그들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 한 가지만이 지혜이다: 만물을 통하여 만물을 조종하는 생각을 이해하는 것.’ 깨어있는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경험이 되는 세상은, 이성에 의해서만 이해될 수 있는 만물의 하나됨(oneness)인 신령스러운 통합이다: ‘하나(One)는 모두(all)에게 공통적인 것을 따라야한다... 이성은 모두에게 공통적이다... 모두는 하나가 되고 하나는 모두가 된다... 유일한 지혜인 하나는 제우스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원하기도 하고 원하지 않기도 한다... 만물을 조종하는 것은 벼락이다.’

헤라클레이토스의 보편적 변화와 숨겨진 운명에 대한 철학과 관련된, 보다 일반적인 특징에 관해서는 이만큼만 말하자. 이 철학으로부터, 모든 변화의 배후에 있는 추동력에 관한 이론이 탄생한다; ‘사회 정태론(social statics)’에 반대되는 사회 동태론(social dynamics)’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그 역사주의적 특징을 드러내는 이론. 일반적이고 특히 사회생활에 관한 헤라클레이토스의 자연관련 동태론으로 인하여, 그의 철학이 자신이 경험한 사회적 및 정치적 소용돌이에 의하여 고취되었다는 견해가 확인된다. 이유인즉 갈등이나 전쟁은 모든 변화에 관한, 특히 인간 사이의 모든 차이점에 관한 창조적인 원칙일 뿐만 아니라 역동적인 원칙이라고 그가 선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형적인 역사주의자이기 때문에 그는 역사의 판단을 도덕적 판단으로서 수용한다; 이유인즉 그가 전쟁의 결과는 항상 정의롭다고 믿기 때문이다: ‘전쟁은 만물의 아버지이자 왕()이다. 전쟁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신()으로, 다른 사람들에게는 단지 사람으로 판명되어 후자(後者)를 노예로 만들고 전자(前者)를 주인으로 만든다... 전쟁이 보편적임과, 정의(正義: justice)는 ㅡ 법률소송 ㅡ 갈등임 및 만물은 갈등과 필연을 통하여 발전함을 사람은 알아야 한다.’

그러나 정의가 갈등이나 전쟁이라면; ‘운명의 여신이 동시에 정의의 시녀(侍女)’라면; 역사, 더 정확하게 말해서, 성공, 예를 들어 전쟁에서의 성공이 장점의 기준이라면 장점의 기준 자체가 변화할것임이 틀림없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자신의 상대주의에 의하여, 그리고 반대되는 것은 동일하다는 원칙에 의하여 이 문제에 맞선다. 이것은 그의 변화이론으로부터 유래한다 (변화이론은 플라톤 이론의 토대로 남고 아리스토텔레스 이론에서 훨씬 더 많이 토대로 남는다). 변화하는 것은 틀림없이 어떤 특성을 버려야 하고 반대 특성을 습득한다. 그것은 물체라기보다는 한 상태에서 반대 상태로의 이전 과정이며, 그러므로 반대되는 상태들의 통합이다: ‘찬 것은 따뜻하게 되고 따뜻한 것은 차게 된다; 축축한 것은 마르고 마른 것은 축축하게 된다... 질병으로 인하여 우리는 건강을 알게 된다... 삶과 죽음은, 깨어있는 상태와 잠든 상태이므로, 젊음과 늙음, 이 모든 것이 동일하다; 그 이유는 전자(前者)가 후자(後者)로 변하고 후자(後者)가 전자(前者)로 변하기 때문이다... 자체와 싸우는 것은, 자체에게 얽매이게 된다: 활이나 수금(竪琴)에서처럼 반동과 긴장에서 기인하는 연계나 조화가 있다... 반대되는 것들은 서로에게 속하며, 가장 훌륭한 조화는 불화로부터 발생하고, 모든 것은 갈등에 의하여 발전한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은 동일하다... 곧은 길과 굽은 길은 같은 것이다... 제신(諸神)에게는 모든 것이 아름답고 선하며 정의롭다; 그러나 사람이 어떤 것은 정의로운 것으로, 다른 것은 정의롭지 못한 것으로 채택한다... 선과 악은 동일하다.’

그러나 마지막 조각 글에 표현된 가치들의 상대주의에도 (그것은 심지어 윤리적 상대주의로서 아마도 기술[記述]될 것이다) 불구하고, 전쟁에 대한 자신의 정당성과 역사적 심판이라는 이론을 기초로 명성운명 위대한 사람의 우월성에 관한 종족주의적이고도 낭만적인 윤리의 전개를 헤라클레이토스는 멈추지 않는데, 모두가 몇 가지 매우 현대적인 관념들과 기묘하게도 유사하다: ‘싸우다가 쓰러지는 사람은 신()과 인간에 의하여 기려질 것이고... 쓰러짐이 클수록 운명은 더 명예롭고... 최고의 인간은 모든 다른 것들 위에서 한 가지 것을 추구하는데 영원한 명성이다... 한 사람이 위대하다면, 그에게는 1만 명 이상의 가치가 있다.’

기원전 500년경에 유래하는 이 초기 조각 글들에서 현대의 역사주의적이자 반민주주의적인 특징을 발견한다는 것은 놀랍다. 그러나 헤라클레이토스가 최고의 능력과 독창성을 지닌 사상가였으며, 결과적으로 그의 관념들 중 많은 관념들이 (플라톤을 매개체로 하여) 철학적 전통의 주류의 한 부분이 되었다는 사실과 별도로, 관련된 시기의 사회적 상황의 유사성에 의하여 교설의 유사성이 어느 정도 아마도 설명될 수 있다. 역사주의적 관념들은 사회적으로 커다란 변혁기에 쉽게 드러나는 듯하다. 그 관념들은 유대인들의 종족적 생활이, 바빌로니아인들의 정복에 의한 충격에 의하여 산산조각이 났을 때뿐만 아니라 그리스의 종족적 생활이 붕괴했을 때도 나타났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철학은 틀림없이 표류하는 느낌을 표현한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고대의 종족적 사회생활 형태가 해체되는 데 대한 전형적인 반발로 보이는 느낌. 현대 유럽에서, 역사주의적 관념은 산업혁명 동안에, 특히 미국과 프랑스의 정치적 혁명의 충격을 통하여 되살아났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사고를 그렇게 많이 채택하여 현대의 모든 역사주의적 운동에 전달했던 헤겔이, 프랑스 혁명에 대항하는 반동의 대변자였던 것은 단순한 우연의 일치 이상인 듯하다.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