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둘러싼 거대한 서사, 부처설화까지 빌려 짜깁기
고전 오디세이 47
끊임없는 확대 재생산의 결과물 ‘기독교 성인열전’ | |
부처설화는 기독교 교리를 입고 성인열전 ‘바를람과 요아사프’로 거듭났다. 오늘밤,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온 세계가 들떠 있다. 이것은 거대한 서사의 탄생이다. 어떤 이는 이 서사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도마(Thomas)는 예수가 다시 살아났음을 믿을 수가 없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온몸이 축 늘어진 채 죽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다른 제자들이 부활한 그를 보았다고 했지만, 그 무슨 헛구역질 같은 괴담이란 말인가. 도마는 직접 봐야 믿겠다고 했다. 아, 그래? 예수는 그에게 나타났다. “네 손가락을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하여 믿지 않는 자 되지 말고, 믿는 자 되어라.” 도마는 대답했다. “나의 주, 나의 신이시여!”(<요한복음>) 그 후 도마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정경(正經)으로 공인된 성서 안에선 그의 행적을 찾을 수가 없다. 성서는 담지 않은 도마의 인도행 반면 3세기께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 <도마행전>에는 도마가 인도로 갔다고 한다. 목수였던 도마는 인도에 가서 군다포로스 왕의 궁전을 짓는 일을 맡았는데,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건축비용을 모두 다 썼다. 왕이 궁전을 다 지었느냐고 묻자, 도마는 대답했다. ‘다 지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볼 수 없습니다. 이 땅의 삶을 떠난 후에만 볼 수 있습니다. 저는 폐하의 궁전을 하늘나라에 지었으니까요.’(이 문서는 정경에 포함되지 못했다. 도마가 예수의 쌍둥이 형제라고 하니 그럴 만도 하다.) 한편 1945년에 발견된 ‘나그함마디 문서’에는 <도마복음>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이 책에 나타난 예수의 가르침은 사뭇 다르다. 인간 세계를 초월해 존재하는 신에 대한 믿음보다는 인간 안에 빛으로 깃든 신에 대한 깨달음을 강조한다. 그 깨달음만이 옛사람에서 벗어나 새사람으로 거듭나 죽음을 이겨내고 영원한 삶으로 가는 길이라는 메시지다. 왠지 반야(般若)를 통한 참나 찾기, 성불(成佛)과 해탈의 메시지와 엇비슷하다. 그래서일까? 이 책도 역시 정경 속에 포함되지 못한 채 잊혀 있었다. 11세기의 기독교 성인열전 <바를람과 요아사프>도 도마가 인도로 갔다고 한다. 그는 예수의 가르침을 땅끝까지 전하기 위해 인도를 택했다. 인도에 도착한 도마는 각종 우상을 숭배하는 이교도의 풍속을 척결하고 인도를 기독교 복음의 땅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아베나르 왕은 기독교를 탄압하고 우상숭배의 종교 전통을 다시 세웠다. 아베나르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그의 이름이 바로 요아사프다. 아베나르는 왕자가 기독교에 물들까봐 왕궁 안에만 머물게 하고 부족함 없이 살도록 했다. 하지만 요아사프 왕자는 풍요로움 속에서도 영혼의 허기를 느꼈다. 그는 자신을 가두고 있는 담장 너머가 궁금했다. 그런 왕자에게 아버지는 말했다. “아들아, 나는 네가 마음에 역겨움을 일으키며 기쁨을 가로막는 그 어떤 것도 보지 않기를 원한다. 난 언제나 네가 안락하고 기뻐하며 살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한단다.” 왕자가 대답했다. “하지만 아바마마, 이곳에서는 제가 기쁘게 살 수 없습니다. 짓눌려 살아가는 제겐 먹을 것과 마실 것도 쓰디씁니다. 성문 밖에 있는 것들이 보고 싶습니다. 제가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면, 바깥으로 나가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왕은 안타까웠지만 왕자의 외유를 허락했다. 마침내 요아사프는 성문 바깥으로 나갈 수 있었다. 마치 인도의 왕자 고타마 싯다르타처럼. 성문을 나선 첫날, 요아사프는 팔다리가 잘린 나병환자와 장님을 보았다. 예쁘고 잘생긴 사람만 보고 자란 왕자의 눈에 일그러진 그들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수행원은 말했다. “저것은 인간이 겪어야만 하는 고통입니다. 몸을 이루고 있는 요소들이 망가지고 몹쓸 액이 고이면 저런 고통을 겪게 되지요.” 며칠 후 그는 다시 성문을 나섰고, 남루한 노인이 비틀거리는 것을 보았다. 수행원은 말했다. “이 사람은 아주 오랜 시간을 살아낸 사람입니다. 그의 사지에서 힘이 조금씩 빠져나가기에 비참한 고통에 이른 것입니다.” 왕자는 물었다. “그러면 그의 끝은 무엇인가?” 수행원은 다시 대답했다. “죽음입니다. 팔십에서 백세가 되면 사람들은 저런 노령에 이르게 되며, 이어 죽게 됩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죽음이란 사람들이 타고난 자연스러운 본성이며 피할 수가 없습니다. 어느 순간 죽음은 사람들을 찾아옵니다. 그 누구도 그 매정한 방문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태어나 자라다가 이내 병들고 늙어 마침내 죽어야만 하는 것. 낙엽처럼 하릴없이 흩날리는 존재. 요아사프 왕자는 지금껏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삶의 진실에 홀연히 마주섰다. “나도 언젠가는 죽음이 휘어잡겠지? 내가 죽으면 산산이 흩어져 더 이상 이 땅에 있지 않겠지? 아니라면 또 다른 삶과 또 다른 세계가 있는가?” 요아사프 왕자는 구원을 향한 깊고 독한 허기를 느꼈다. 마치 샤카 족의 왕자로 태어나 곱게 자라다가 사문유관(四門遊觀), 즉 네 개의 성문 바깥으로 나가 생로병사라는 인생의 참모습을 보았던 고타마 싯다르타처럼. 미칠 것만 같은 구원의 갈증을 풀기 위해 출가하여 마침내 성자(muni), 즉 깨닫는 자 붓다(Buddha)가 된 샤카무니처럼. 이제 인도의 왕자 요아사프도 종교적이고 실존적인 결단의 순간에 마주섰다. 그러나 그는 집을 나가는 대신, 집으로 찾아온 기독교 수도사 바를람을 만났다. 그에게서 기독교의 가르침을 듣고 뜨거워진 요아사프는 왕자의 지위와 황제의 논리를 버리고 바깥으로 나가 구도자로서 나머지 삶을 살았다. 이렇게 인도의 ‘부처설화’는 기독교적인 교리를 입고 기독교 성인열전 <바를람과 요아사프>로 거듭났다. 인도에서 서쪽으로 간 부처가 기독교의 성인 요아사프가 된 것이다. 이름만 봐도 그 흔적이 보인다. 산스크리트어인 붓다(Buddha)는 다른 말로 보디삿뜨바(Bodhisattva, 보살)인데, 이것이 그리스어에 와서 요아사프로 바뀐 것이다. 한편 이 성인열전의 27장에 삽입된 기독교 변증론은 문헌학적으로 흥미롭다. 그것은 애초 서기 2세기께에 아테네에서 활동하던 아리스티데스의 글이었다. 스토아 철학자였던 그는 기독교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다가 결국 기독교철학자가 되었다. 그는 로마 황제가 기독교를 탄압하자 그 앞에 섰다. “고명하시며 관대하신 카이사르 티투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누스 황제 폐하께 아테네의 철학자 마르키아누스 아리스티데스가 올립니다. 우리는 복음의 거룩한 기록에서 신의 아들이 현존하심과 그 영광을 알 수 있습니다. 신의 아들은 성령 안에서 하늘로부터 순결한 처녀를 통해 인간의 씨앗으로 더럽혀짐 없이 육체를 취하여 이 땅의 사람들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는 기독교가 유일한 진리임을 변론하고 그리스, 로마, 이집트 등 두루 퍼져 있는 온갖 다신론적인 신화가 잡스런 거짓말이라고 외쳤다. 최초의 ‘기독교 변론’으로 평가되는 이 글이 부처설화를 기독교 성인열전으로 각색하는 과정에서 짜깁기처럼 끼어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어디 이것뿐이랴? 역사상 수많은 이야기들이 예수를 둘러싸고 만들어졌고 전해지며 확대 재생산된다, 끊임없이. 도마복음, 해탈과 유사한 메시지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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