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사실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심지어 과학도 단순히 ‘사실의 집합체’가 아니다. 과학은 최소한도 수집물이며 과학과 같은 것은 수집자의 관심에, 관점에 의존한다. 과학에서, 이 관점은 보통 과학적 이론에 의하여 결정된다; 다시 말해서 사실의 무한히 다양한 사실들로부터, 그리고 무한히 다양한 사실들의 양상들로부터, 다소 미리 상정(想定)된 어떤 과학적 이론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흥미로운 저 사실들과 저 양상들을 우리가 선택한다. 과학적 방법에 관한 특정 철학자들의 학파는 이런 고찰들로부터 과학은 항상 순환으로 논증한다고, 그래서 에딩튼(Eddington)이 표현하는 바와 같이 우리 자신의 꼬리를 좇고 있는 우리 모습을 우리가 발견하다고 결론을 내렸는데, 왜냐하면 우리의 사실적 경험으로부터 우리 자신이 그 경험 속에 넣은 것을 이론들의 형태로 꺼낼 수 있을 따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옹호될 수 있는 주장이 아니다. 미리 상정(想定)된 어떤 이론과 관계가 있는 사실만을 우리가 선택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완전히 참일지라도, 우리가 이론을 확증하는 사실만을 선택해서, 말하자면, 그 이론을 반복한다는 것은 참이 아니다; 과학의 방법은 오히려 이론을 반증할 사실을 주시하여 찾는 것이다. 이것이 소위 이론 시험이다 ㅡ 그 이론 속의 오류를 발견할 수 없는지를 아는 것. 그러나 사실이란 이론을 목적으로 수집되며, 그 이론이 이 시험들을 통과한다면 그 이론을 확증할지라도, 사실이란 일종의 미리 상정(想定)된 이론의 공허한 반복 이상이다. 이론이 수행하는 예언을 뒤집는 데 실패한 시도들의 결과이며 그리하여 이론이 선호되는 효과적인 증거라는 조건에서만, 사실들에 의하여 이론이 확증된다. 그래서 이론을 시험하는 가능성을 그리하여 이론의 과학적 특징을, 구성하는 것은 그 이론을 뒤집는 가능성, 즉 이론의 오류판정 가능성(falsifiability)이라고 나는 주장한다; 그래서 이론에 대한 모든 시험은 그 이론의 도움을 받아서 도출된 예언에 시도되는 오류판정이라는 사실로 인하여, 과학적 방법의 실마리가 제공된다. 과학적 방법에 대한 이 견해는 과학의 역사에 의하여 입증되는데, 그 역사로 인하여 과학이론은 흔히 실험에 의하여 전복된다는 것과 이론이 전복되는 것은 진정으로 과학적 진보의 수단이라는 것이 증명된다. 과학이 순환적이라는 주장은 지지될 수 없다.
그러나 이 주장의 한 가지 요소는 참이다; 즉, 사실에 대한 모든 과학적 서술이 고도로 선택적이라는 것, 그 서술이 항상 이론에 의존한다는 것. 그 상황은 탐조등과 (‘정신의 양동이 이론’과 구별하여 내가 보통 부르는 바와 같이, ‘과학의 탐조등 이론’) 비교하여 가장 잘 기술될 수 있다. 탐조등을 가시적으로 만드는 것은 탐조등의 위치에, 탐조등을 비추는 우리의 방식에, 탐조등의 강도(强度), 색깔, 기타 등등에 의존할 것이다; 물론 그것이 탐조등에 의하여 조명되는 것들에 매우 크게 의존할지라도. 유사하게 과학적 서술은 주로 우리의 관점에, 우리의 이해관계들에 의존할 것인데, 과학적 서술이 기술되는 사실에 또한 의존할지라도 그 관점과 그 이해관계들은 보통 우리가 시험하기를 원하는 이론이나 가설(假說)과 연결되어 있다. 정말로, 이론이나 가설(假說)은 관점의 결정화(結晶化)로서 기술될 수 있을 터이다. 이유인즉 우리가 우리의 관점을 언명하려고 시도한다면, 이 언명은 보통, 사람들이 작업가설(working hypothesis)이라고 간혹 부르는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그 기능이 우리가 사실을 선택하고 조직하는 데 도움을 주는 잠정적 가정(假定). 그러나 이런 의미에서 작업가설이 아닌 그리고 작업가설로 남아있지 않는 이론이나 가설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확신해야 한다. 이유인즉 어떤 이론도 최종적이지 않고, 모든 이론은 우리가 사실을 선택하고 조직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모든 서술의 이 선택적 특징으로 인하여 어떤 의미에서 이론은 ‘상대적’이 된다; 그러나 우리의 관점이 다양하다면, 우리가 이것이 아니라 또 다른 서술을 제공할 터이라는 의미에서만 상대적이 된다. 이 선택적 특징은 또한 서술의 진실성에 대한 우리의 믿음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이 선택적 특징은 서술의 진위(眞僞) 문제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진실은 이런 의미에서 ‘상대적’이지 않다.
모든 서술이 선택적인 이유는, 개괄적으로 말해서, 우리 세상의 사실들에 대하여 가능한 양상들이 지니는 무한한 풍요로움과 다양함 때문이다. 이 무한한 풍요로움을 기술하기 위하여, 단어들의 유한한 수열의 유한한 숫자만을 우리는 사용할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원하는 만큼 길게 기술할 것이다: 우리의 서술은 서술을 위하여 제시되는 사실들에 대하여 항상 불완전하고, 단지 선택이며 게다가 작은 선택일 것이다. 이로 인하여 선택적 관점을 피하는 것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그렇게 시도하는 것이 전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또한 밝혀진다; 이유인즉 우리가 선택적 관점을 피할 수 있다면, 우리는 더 ‘객관적인’ 서술을 얻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무관한 서술들의 무더기만을 얻을 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론 관점은 불가피하다; 그리고 관점을 피하려는 순진한 시도로 인하여 자기-기만(自己-欺瞞)과, 무의식적 관점의 무비판적 적용만 발생할 수 있을 따름이다. 이 모든 것은 쇼펜하우어가 지칭하는 바와 같이 자체의 ‘무한한 주제’와 함께, 역사관련 서술의 경우에 가장 단호히 참이다. 그리하여 과학에서 못지않게 역사에서, 우리는 관점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가 관점을 피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인하여 틀림없이 자기-기만(自己-欺瞞)과 비판적 주시의 결핍이 발생한다. 물론 이것은, 무엇이든지 오류로 판정하는 일이나 진실문제를 가볍게 생각하는 일이 우리에게 허용됨을 뜻하지는 않는다. 사실에 대한 특정 역사관련 서술은, 그 서술의 진실성이나 허위성을 결정하는 것이 아무리 어려울지라도, 단지 참이거나 허위일 것이다.
ㅡ 칼 포퍼, “열린사회와 그 적들”, II권, 1971년, 259-261쪽 ㅡ
Even science is not merely a 'body of facts'. It is, at the very least, a collection, and as such it is dependent upon the collector's interests, upon a point of view. In science, this point of view is usually determined by a scientific theory ; that is to say, we select from the infinite variety of facts, and from the infinite variety of aspects of facts, those facts and those aspects which are interesting because they are connected with some more or less preconceived scientific theory. A certain school of philosophers of scientific method have concluded from considerations such as these that science always argues in a circle, and 'that we find ourselves chasing our own tails', as Eddington puts it, since we can only get out of our factual experience what we have ourselves put into it, in the form of our theories. But this is not a tenable argument. Although it is, in general, quite true that we select only facts which have a bearing upon some preconceived theory, it is not true that we select only such facts as confirm the theory and, as it were, repeat it ; the method of science is rather to look out for facts which may refute the theory. This is what we call testing a theory - to see whether we cannot find a flaw in it. But although the facts are collected with an eye upon the theory, and will confirm it as long as the theory stands up to these tests, they are more than merely a kind of empty repetition of a preconceived theory. They confirm the theory only if they are the results of unsuccessful attempts to overthrow its predictions, and therefore a telling testimony in its favour. So it is, I hold, that possibility of overthrowing it, or its falsifiability, that constitutes the possibility of testing it, and therefore the scientific character of a theory ; and the fact that all tests of a theory are attempted falsifications of predictions derived with its help, furnishes the clue to scientific method. This view of scientific method is corroborated by the history of science, which shows that scientific theories are often overthrown by experiments, and that the overthrow of theories is indeed the vehicle of scientific progress. The contention that science is circular cannot be upheld.
But one element of this contention remains true ; namely, that all scientific descriptions of facts are highly selective, that they always depend upon theories. The situation can be best described by comparison with a searchlight (the 'searchlight theory of science', as I usually call it in contradistinction to the 'the bucket theory of the mind'). What the searchlight makes visible will depend upon its position, upon our way of directing it, and upon its intensity, colour, etc. ; although it will, of course, also depend very largely upon the things illuminated by it. Similarly, a scientific description will depend, largely, upon our point of view, our interests, which are as a rule connected with the theory or hypothesis we wish to test ; although it will also depend upon the facts described. Indeed, the theory or hypothesis could be described as the crystallization of a point of view. For if we attempt to formulate our point of view, then this formulation will, as a rule, be what one sometimes calls a working hypothesis ; that is to say, a provisional assumption whose function is to help us to select, and to order, the facts. But we should be clear that there cannot be any theory or hypothesis which is not, in this sense, a working hypothesis, and does not remain one (이 문장은 we should be clear that절의 문장을 써서 보통 영어에서 쓰지 않는 구문을 썼다. 올바른 영어표현이 아니다. - 역자 주). For no theory is final, and every theory helps us to select and order facts. This selective character of all description makes it in a certain sense 'relative' ; but only in the sense that we would offer not this but another description, if our point of view were different. It may also affect our belief in the truth of the description ; but it does not affect the question of the truth or falsity of the description ; truth is not 'relative' in this sense.
The reason why all description is selective is, roughly speaking, the infinite wealth and variety of the possible aspects of the facts of our world. In order to describe this infinite wealth, we have at our disposal only a finite number of finite series of word. Thus we may describe as long as we like : our description will always be incomplete, a mere selection, and a small one at that, of the facts which present themselves for description. This shows that it is not only impossible to avoid a selective point of view, but also wholly undesirable to attempt to do so ; for if we could do so, we should get not a more 'objective' description, but only a mere heap of entirely unconnected statements. But, of course, a point of view is inevitable ; and the naive attempt to avoid it can only lead to self-deception, and to the uncritical application of an unconscious point of view. All this is true, most emphatically, in the case of historical description, with its 'infinite subject matter', as Schopenhauer calls it. Thus in history no less than in science, we cannot avoid a point of view ; and the belief that we can must lead to self-deception and to lack of critical care. This does not mean, of course, that we are permitted to falsify anything, or to take matters of truth lightly. Any particular historical description of facts will be simply true or false, however difficult it may be to decide upon its truth or fal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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