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성의 내력과 특징
우리가 세 가지 명제들 u, a 그리고 b를 정의할 수 있는 언어가 존재하여 u는 참인 보편법칙이고 a는 A를 기술하며 b는 B를 기술하며 그래서 b가 u와 a의 논리적 귀결이라는 조건으로 그리고 그 조건만으로 사건 A는 사건 B의 원인이고, 사건 B는 사건 A의 결과이다. (여기서 ‘사건[event]’이나 ‘사실[fact]’이라는 용어는 나의 저서 과학적 발견의 논리[The Logic of Scientific Discovery], 88쪽 이하에서 ‘사건’에 대한 나의 정의의 의미론적 설명에 의하여, 가령, 다음과 같은 정의에 의하여 정의될 것이다: 사건 E는 상호적으로 번역될 수 있는 단칭명제들 집합의 공통적 지시대상[designatum]이다.)
원인과 결과의 문제에 관한 몇 가지 역사관련 언급들이 여기서 추가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원인 개념은 (즉, 그의 형상인[formal cause] 및 질료인[material cause], 그리고 그의 작용인[efficient cause]; 나의 언급이 목적인[the final cause]에도 성립할지라도 그 목적인으로 인하여 여기서 우리에게 관심이 생기지 않는다) 전형적으로 본질주의적이다; 그 문제는 변화나 움직임을 설명하는 것이고, 그 문제는 사물들의 숨겨진 구조를 참조함에 의하여 설명될 수 있다. 이 본질주의는 이 문제에 관한 베이컨과 데카르트 및 로크 그리고 심지어 뉴튼의 견해들에서도 여전히 발견될 수 있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이론으로 인하여 새로운 견해에 대한 길이 열린다. 모든 물리적 몸체들의 공간적 외연이나 기하학적 형태에서 그는 그 몸체들의 본질을 보았고 이것으로부터 몸체들이 서로에게 작용하는 유일한 방법은 밀치기(pushing)에 의해서라고 결론을 내렸다; 하나의 움직이는 몸체는 또 다른 몸체를 그 몸체의 장소로부터 반드시 밀치는데 왜냐하면 두 몸체들 모두가 확장되고 그리하여 동일한 공간을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필연에 의하여 결과는 원인을 따르고 참으로 인과적인 모든 설명은 (물리적 사건들에 관한) 틀림없이 밀치기를 통해서이다. 이 견해는 여전히 뉴튼에 의하여 전제되었는데 그는 따라서 자신의 중력이론에 ㅡ 물론 밀치기보다는 당기기(pull)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ㅡ 대하여, 철학에 관하여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도저히 그것이 만족스러운 설명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터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여하한 종류의 ‘원격 행동’에 대한 혐오의 형태로 물리학에서 그것은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한다.ㅡ버클리(Berkeley)는, 숨겨진 본질들이 뉴튼의 인력을 ‘설명하는 데’ 도입되든지 아니면 숨겨진 본질들로 인하여 데카르트의 밀치기 이론이 발생하든지, 그 본질들에 의한 설명를 최초로 비판했다; 그는, 과학이 본질적이거나 필수적인 관련관계들에 의하여 설명한다기보다는 기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설은 실증주의 특징들의 하나가 되었는데 우리의 인과적 설명 이론이 채택되면 자체의 요점을 잃는다; 이유인즉 그럴 경우에 설명이 일종의 기술(記述: description)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보편가설들, 초기조건들, 그리고 논리적 연역을 이용하는 기술이다. 흄(Hume)으로부터 (섹스투스 엠페리쿠스[Sextus Empiricus], 알-가잘리[Al-Gazzâli 등등이 부분적으로 그에 앞선다]) 인과론에 대한 가장 중요한 공헌으로 지칭될 것이 기인한다. 사건 A와 사건 B 사이의 필수적인 연관성에 관하여 우리는 어떤 것도 알 수 없다고 그는 지적했다 (데카르트의 견해와 반대로). 우리가 아마도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은, A 종류의 사건들이 (혹은 A와 유사한 사건들) 지금까지 B 종류의 사건들에 (혹은 B와 유사한 사건들) 의하여 뒤이어졌다는 것이다. 사실상 그런 사건들은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연결성이 필수적인 것임을 우리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연결성이 과거에 성립했다고 우리가 말할 수 있을 따름이다. 우리의 이론은 흄의 이 비판을 완전히 인정한다. 그러나 (1) A 종류의 사건들이 항상 그리고 도처에서 B 종류의 사건들에 의하여 뒤이어진다는 보편가설을 우리의 이론이 명시적으로 언명하기 때문에; (2) 보편가설이 참이라면 A가 B의 원인이라는 서술의 진리를 우리의 이론이 주장하기 때문에 우리의 이론은 흄(Hume)과 다르다.ㅡ다시 말해서 흄은 사건 A와 B 자체들을 보았을 따름이다; 그리고 그는 이 사건들 사이에서 인과적 연결이나 필수적 연관성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세 번째 것인 보편법칙을 추가한다; 그리고 이 법칙과 관련하여 우리는 인과적 연결이나 심지어 필수적 관련성을 말할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을 터이다: 사건 A가 사건 B의 원인이라면 그리고 그 조건으로만 (위에 제시된 우리의 의미론적 정의의 의미에서) 사건 B는 A와 인과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혹은 필수적으로 연결되어 있다).ㅡ보편법칙의 진리라는 문제에 관하여, 그들이 지닌 진리를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질문하지 않는 무수한 보편법칙들이 있다고 우리가 말할 것이다; 그리고 따라서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결코 ‘필수적인 인과적 연결’을 질문하지 않는 인과관계의 무수한 경우들이 또한 있다. 과학적 방법의 관점에서, 그 입장은 다르다. 이유인즉 우리가 과학적 법칙들의 진리를 결코 합리적으로 확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그 법칙들을 엄격하게 시험하여 거짓 법칙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것이 아마도 나의 저서 과학적 발견의 논리[The Logic of Scientific Discovery]의 핵심이다.) 따라서 모든 과학적 법칙들은 가설적 특징을 영원히 지닌다; 그 법칙들은 상정(想定)들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단칭 인과적 연결성에 관한 모든 명제들은 동일한 가설적 특징을 지닌다; 문제의 보편가설이 아무리 잘 시험될지라도 그 가설이 참인지를 우리가 결코 확신할 수 없다는 바로 그 이유로 A가 B의 원인임을 우리는 결코 확신할 수 없다 (과학적 의미에서). 그러나 우리가 대응하는 보편가설을 잘 시험하고 확인할수록 A가 B의 원인이라는 단칭 가설이 더 수용가능해진다는 것을 발견하는 쪽으로 우리가 기울 것이다.
ㅡ 칼 포퍼, “열린사회와 그 적들”, II권, 1971년, 362-363쪽 ㅡ
'칼포퍼 원전+번역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열린사회와 그 적들, II권, 1971년, 25장 역사에 의미가 있는가? (번역 수정본) (0) | 2022.12.10 |
---|---|
역사주의가 보지 못하는 것 (0) | 2022.12.10 |
과학은 사실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0) | 2022.11.29 |
열린사회와 그 적들, II권 1971년 23장 지식사회학 24장 예언철학, 그리고 이성에 대한 반역 (번역 수정본) (0) | 2022.11.27 |
모든 사고에 비합리적이거나 직관적 요소가 있지만 (0) | 2022.1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