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포퍼 원전+번역문

역사주의가 보지 못하는 것

이윤진이카루스 2022. 12. 10.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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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주의가 보지 못하는 것

 

역사주의의 동기들 중 하나가 역사주의자가 허용하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대안들 외에 세 번째 대안이 있다는 것을 역사주의자가 알지 못한다는 것인 듯하다: 세계가 우월한 권력들에 의하여, ‘본질적인 운명에 의하여 혹은 헤겔적 이성에 의하여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나 아니면 세계는 도박의 수준에서 비합리적인 단순한 기회의 바퀴라는 것. 그러나 세 번째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세계 안으로 이성을 도입할 것이라는 점; 세계는 진보하지 않을지라도, 협력에서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우리가 진보할 것이라는 점.

이 세 번째 가능성은 H. A. L 피셔(Fisher)에 의하여 그의 저서 유럽사(History of Europe)에서 (I, vii, 이탤릭체는 내가 표시함)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표현된다: ‘한 가지 지성적 흥분이.. 나에게 거부되었다. 내가 역사에서 감지한 계책이자 리듬이며 미리 결정된 형태보다 사람들은 더 현명하고 더 박식하다는 것. 이 조화들(harmonies)은 나로부터 은익된다. 파도가 파도로 이어지듯이 한 가지 위기가 또 다른 위기로 이어짐을 나는 볼 뿐인데 한 가지 위대한 사실일 뿐으로 그 사실과 관련하여 그것이 독특하기 때문에 일반화들은 있을 수 없다, 역사가에게는 다음과 같은 한 가지 안전한 규칙만 있다: 우연에 종속되고 예견되지 않은 것의 작용을 역사가가 인식해야 한다는 것.’ 역사주의에 대한 이 탁월한 공격 바로 뒤에 피셔는 계속한다: ‘이것은 냉소와 절망의 교설이 아니다. 진보에 관한 사실은 역사의 페이지에 명백하고 크게 서술된다; 그러나 진보는 자연법칙이 아니다. 한 세대가 얻은 토대가 다음 세대에 의하여 실종될지도 모른다.’

이 마지막 세 문장들은 내가 세 번째 가능성으로 지칭한 것인 우리의 책임에 대한 신념이자 모든 것이 우리에게 달렸다는 믿음을 매우 명백하게 대변한다. 그리고 피셔의 서술이 토인비에 (역사의 연구[A Study of History], V, 414) 의하여 기회의 전능에 대한 현대 서구의 믿음을 대변하는 것으로서 해석됨을 보면 흥미롭다. 역사주의자의 태도로 세 번째 가능성을 보지 못하는 역사주의자의 무능을 더 분명하게 밝힐 수 있을 것은 아무 것도 없을 터이다. 그리고 그로 인하여 역사주의자가 소위 이 기회의 전능으로부터 역사관련 장면 배후에 있는 권력의 전능에 대한 믿음으로 ㅡ 다시 말해서 역사주의로 ㅡ 도피하려는 시도가 아마도 설명된다.

ㅡ 칼 포퍼, “열린사회와 그 적들, II, 366-367쪽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