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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역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이윤진이카루스 2023. 3. 12.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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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역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제시될 질문 한 가지는 이것이다: 어떻게 우리는 실제로 관찰서술에서 이론으로 도약하는가?

이 질문이 철학적이라기보다는 심리학적으로 보일지라도, 우리는 심리학을 불러오지 않고도 그 질문에 관하여 긍정적인 것을 말할 수 있다. 먼저 도약은 관찰서술로부터가 아니라 문제-상황으로부터라고, 그리고 이론에 의하여 우리는 틀림없이 문제를 초래한 관찰들을 설명할 수 있다(다시 말해서, 소위 초기조건인 수용된 다른 이론들에 의하여 강화되고 다른 관찰서술들에 의하여 강화된 이론으로부터 관찰들을 연역할 수 있다) 우리가 말할 수 있다. 이로 인하여 방대한 숫자의 가능한 이론들이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남는다; 그리하여 우리의 질문이 답변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로 인하여 우리가 우리의 질문을 던졌을 때 우리 염두에는 관찰서술로부터 어떻게 우리는 이론으로 도약하는가?’보다 더 많은 것이 있었다는 것이 상당히 분명해진다. 우리가 염두에 두고 있던 질문은 어떻게 우리는 관찰서술에서 좋은 이론으로 도약하는가?’였던 것으로 지금 보인다. 그러나 이것에 대한 답변은: 처음에 아무 이론으로 도약해서 그 이론을 시험함에 의하여 그 이론이 좋은 것인지 아닌지를 알아냄에 의해서이다; 다시 말해서, 비판적 방법을 반복적으로 적용하여, 많은 나쁜 이론들을 제거하고 많은 새로운 이론들을 창안함에 의해서이다. 모든 사람이 이것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다.

다른 질문들이 때때로 제시되었다. 귀납의 원래 문제는 귀납을 정당화하는, 다시 말해서 귀납적 추론을 정당화하는 문제라고 언급되었다. 소위 귀납적 추론은 항상 무효이며 그래서 분명히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함에 의하여 여러분이 이 문제에 답변한다면, 다음과 같은 새로운 질문이 틀림없이 출현한다: 어떻게 당신은 당신의 시행착오 방법을 정당화하는가? 답변: 시행착오의 방법은 관찰서술들에 의하여 허위 이론들을 제거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이것에 대한 정당화는 연역가능성의 순전히 논리적 관계인데 그 관계로 인하여, 우리가 단칭명제들의 진리를 수용하여 전칭명제들의 허위성 주장할 수 있다.

때때로 제시되는 또 다른 질문은 이것이다: 오류로 판정된 서술들보다 오류로 판정되지 않은 서술들을 선호하는 것은 왜 합당한가? 이 질문에 대하여 몇 가지 복잡한 답변이 제시되었는데, 예를 들어 실용주의적 답변들이다. 그러나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허위 이론들이 흔히 충분히 잘 작동하기 때문에, 그 질문이 출현하지 않는다: 공학(engineering)이나 운항(navigation)에서 사용되는 대부분의 공식은, 탁월한 근사치이고 취급하기가 쉬울지라도, 허위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 공식들은 거짓임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 의하여 확신적으로 이용된다.

유일한 올바른 답변은 이해하기 쉬운 답변이다: 우리는 진리를 탐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리를 발견했다는 것을 우리가 결코 확신할 수 없을지라도), 그리고 오류로 판정되지 않은 이론들이 여전히 참일지도 모르는 반면 오류로 판정된 이론들은 허위로 알려지거나 믿어지기 때문에 오류로 판정된 서술들보다 오류로 판정되지 않은 서술들을 선호하는 것이 합당하다. 게다가 우리가 오류로 판정되지 않는 이론 모두를 선호하지는 않는다 ㅡ 비판에 비추어, 경쟁하는 이론들보다 낫게 보이는 이론만을 선호한다: (잠정적으로 수용된 다른 이론들을 고려하여) 우리가 지닌 문제들을 해결하고, 잘 시험되며, 그리고 추가 시험들을 견디어낼 것이라고 우리가 생각하거나 추측하거나 희망하는 이론만을 선호한다.

귀납의 문제는, ‘미래가 과거와 같을 것이라고 믿는 것은 왜 합당한?’라고,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만족스러운 답변에 의하여 그런 믿음이 사실상 합당하다는 것이 틀림없이 분명해질 것이라고 또한 언급되었다. 나의 답변은, 매우 결정적으로 중요한 많은 양상들에서 미래는 과거와 매우 다를 것이라고 믿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이다. 미래가 여러 양상들에서 과거와 같으리라는, 그리고 충분히 시험된 법칙들이 지속적으로 유효하리라는 상정(想定)에 근거하여 행동함이 완전히 합당하다고 인정된다 (근거를 두고 행동할 나은 상정[想定]이 우리에게 없기 때문에); 그러나 우리가 지금 의존하는 몇 가지 법칙이 쉽게 신뢰될 수 없는 것으로 판명될 것이기 때문에 그런 행동과정으로 인하여 간혹 우리가 심각한 난관에 빠지리라고 믿는 것이 또한 합당하다. (한밤중의 태양을 기억하라!)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그리고 우리가 지닌 일반적인 과학적 지식으로부터 판단하여, 미래가 그럴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염두에 두고 있는 아마도 대부분의 양상에서 미래는 과거와 같지 않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아마도 심지어 말할 것이다. 물은 때때로 갈증을 해소시키지 못할 것이고, 공기는 숨 쉬는 사람들을 질식시킬 것이다. 피상적인 탈출구는 자연법칙들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에서 미래가 과거와 같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지만, 이것은 선결문제 요구의 오류(begging the question)이다. 변하지 않는 규칙성을 우리 앞에 우리가 지니고 있다고 우리가 생각한다는 조건으로만 우리는 자연법칙에 대하여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그 법칙이 변하는 것을 발견하면 우리는 계속해서 그 법칙을 자연법칙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물론 우리의 자연법칙 탐구로 인하여 우리가 그 법칙의 발견을 희망한다는 것과, 우리가 그 법칙이 있다고 믿는다고 지적된다; 그러나 특정 자연법칙에 대한 우리의 신뢰에는 그 자연법칙을 논박하는 데 실패한 우리의 비판적 시도보다 더 안전한 토대가 있을 수 없다.

귀납의 문제를 우리가 지닌 믿음들의 합리성을 통하여 표현하는 사람들은, (Hume)의 혹은 흄(Hume) 이후의 이성에 대한 회의적 절망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완전히 옳다. 과학에 대한 신뢰가 원시적인 마술적 관행들에 대한 신뢰만큼 비합리적이라는 관점을 우리는 정말로 배격해야 한다 ㅡ 두 가지 모두가 신념에 근거한 규약이나 전통인 전체이데올로기(total ideology)’를 수용하는 문제라는 관점을 배격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흄(Hume)과 함께, 우리의 문제를 우리가 지닌 믿음들의 합리성에 관한 문제로서 언명한다면 우리는 신중해야 한다. 우리는 이 문제를 세 가지로 분리해야 한다 ㅡ 오래된 우리의 구획설정의 문제, 즉 어떻게 과학과 원시적 마술을 구분하는가의 문제; 과학적이거나 비판적인 과정의 합리성 문제, 그리고 그 과정에서 관찰의 역할 문제; 그리고 마지막으로 과학적이고 실용적인 목적들을 위한 이론 수용에 관한 합리성 문제. 이 세 가지 문제 모두에 대하여 해결책들이 여기에 제시되었다.

과학적 과정의 적합성 문제 및 이 과정의 결과들에 ㅡ 다시 말해서 과학적 이론들 ㅡ 대한 (잠정적) 수용의 적합성 문제를, 합리성의 문제나 아니면 이 과정이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의 문제와 혼동하지 않도록 사람들은 또한 조심해야 한다. 실제로 실용적인 과학적 탐구에서 나은 대안들이 없기 때문에 이 믿음은 의심할 바 없이 불가피하고 적합하다. 그러나 내가 논증한 (5절에서) 바와 같이, 그 믿음은 이론적 의미에서 확실히 정당화될 수 없다. 게다가 일반적인 논리적 근거로써 과학적 추구가 성공할 것 같음을 우리가 증명할 수 있다면, 우리의 세상에 대하여 더 많은 것을 알려는 긴 인간의 역사에서 성공 같은 것이 왜 그렇게 드물었는지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을 터이다.

ㅡ 칼 포퍼, “추측과 논박, 과학적 지식의 성장”, 1989, 55-57쪽 ㅡ

 

One question which may be asked is this: how do we really jump from an observation statement to a theory?

Although this question appears to be psychological rather than philosophical, one can say something positive about it without invoking psychology. One can say first that the jump is not from an observation statement, but from a problemsituation, and that the theory must allow us to explain the observations which created the problem (that is, to deduce them from the theory strengthened by other accepted theories and by other observation statements, the socalled initial conditions). This leaves, of course, an immense number of possible theories, good and bad; and it thus appears that our question has not been answered.

But this makes it fairly clear that when we asked our question we had more in mind than, 'How do we jump from an observation statement to a theory?' The question we had in mind was, it now appears, 'How do we jump from an observation statement to a good theory?' But to this the answer is: by jumping first to any theory and then testing it, to find whether it is good or not; i. e. by repeatedly

 

󰊔󰊓 Wittgenstein still held this belief in 1946; see note 8 to ch. 2, below.

󰊔󰊔 See note 5 above.

 

applying the critical method, eliminating many bad theories, and inventing many new ones. Not everybody is able to do this; but there is no other way.

Other questions have sometimes been asked. The original problem of induction, it was said, is the problem of justifying induction, i. e. of justifying inductive inference. If you answer this problem by saying that what is called an 'inductive inference' is always invalid and therefore clearly not justifiable, the following new problem must arise: how do you justify your method of trial and error? Reply: the method of trial and error is a method of eliminating false theories by observation statements; and the justification for this is the purely logical relationship of deductibility which allows us to assert the falsity of universal statements if we accept the truth of singular ones.

Another question sometimes asked is this: why is it reasonable to prefer nonfalsified statements to falsified ones? To this question some involved answers have been produced, for example pragmatic answers. But from a pragmatic point of view the question does not arise, since false theories often serve well enough: most formulae used in engineering or navigation are known to be false, although they may be excellent approximations and easy to handle; and they are used with confidence by people who know them to be false.

The only correct answer is the straightforward one: because we search for truth (even though we can never be sure we have found it), and because the falsified theories are known or believed to be false, while the nonfalsified theories may still be true. Besides, we do not prefer every nonfalsified theory only one which, in the light of criticism, appears to be better than its competitors: which solves our problems, which is well tested, and of which we think, or rather conjecture or hope (considering other provisionally accepted theories), that it will stand up to further tests.

It has also been said that the problem of induction is, 'Why is it reasonable to believe that the future will be like the past?', and that a satisfactory answer to this question should make it plain that such a belief is, in fact, reasonable. My reply is that it is reasonable to believe that the future will be very different from the past in many vitally important respects. Admittedly it is perfectly reasonable to act on the assumption that it will, in many respects, be like the past, and that welltested laws will continue to hold (since we can have no better assumption to act upon); but it is also reasonable to believe that such a course of action will lead us at times into severe trouble, since some of the laws upon which we now heavily rely may easily prove unreliable. (Remember the midnight sun!) One might even say that to judge from past experience, and from our general scientific knowledge, the future will not be like the past, in perhaps most of the ways which those have in mind who say that it will. Water will sometimes not quench thirst, and air will choke those who breathe it, An apparent way out is to say that the future will be like the past in the sense that the laws of nature will not change, but this is begging the question. We speak of a 'law of nature' only if we think that we have before us a regularity which does not change; and if we find that it changes then we shall not continue to call it a 'law of nature'. Of course our search for natural laws indicates that we hope to find them, and that we believe that there are natural laws; but our belief in any particular natural law cannot have a safer basis than our unsuccessful critical attempts to refute it.

I think that those who put the problem of induction in terms of the reasonableness of our beliefs are perfectly right if they are dissatisfied with a Humean, or postHumean, sceptical despair of reason. We must indeed reject the view that a belief in science is as irrational as a belief in primitive magical practices that both are a matter of accepting a 'total ideology', a convention or a tradition based on faith. But we must be cautious if we formulate our problem, with Hume, as one of the reasonableness of our beliefs. We should split this problem into three our old problem of demarcation, or of how to distinguish between science and primitive magic; the problem of the rationality of the scientific or critical procedure, and of the role of observation within it; and lastly the problem of the rationality of our acceptance of theories for scientific and for practical purposes. To all these three problems solutions have been offered here.

One should also be careful not to confuse the problem of the reasonableness of the scientific procedure and the (tentative) acceptance of the results of this procedure i. e. the scientific theories with the problem of the rationality or otherwise of the belief that this procedure will succeed. In practice, in practical scientific research, this belief is no doubt unavoidable and reasonable, there being no better alternative. But the belief is certainly unjustifiable in a theoretical sense, as I have argued (in section v). Moreover, if we could show, on general logical grounds, that the scientific quest is likely to succeed, one could not understand why anything like success has been so rare in the long history of human endeavours to know more about our 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