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이론과 비-과학적 이론
이제 서술이나 이론의 논리적 및 경험적 논박불가능성은 쉽게 그 서술이나 이론의 허위성과 일치될 수 있다. 논리적 논박불가능성의 경우에 모든 경험적 서술과 그 서술의 부정 모두가 틀림없이 논리적으로 논박불가능하다는 사실로부터 이것은 명백하다. 예를 들어, ‘오늘은 월요일이다’와 ‘오늘은 월요일이 아니다’라는 두 가지 서술 모두가 논리적으로 논박불가능하다; 그러나 이것으로부터 논리적으로 논박 불가능한 거짓 서술이 존재한다고 즉각적으로 귀결된다.
경험적 논박불가능성에 대해서는 상황이 약간 다르다. 경험적으로 논박 불가능한 서술에 관한 가장 간단한 사례들은 소위 엄격하거나 순수한 존재서술들이다. 여기에 엄격하거나 순수한 존재서술의 사례가 있다. ‘두 번째로 큰 진주보다 열배나 더 큰 진주가 존재한다.’ 이 서술에서 우리가 ‘존재한다(There exists)’는 단어들을 시공에서 다소 확정된 지역으로 제한한다면, 물론 이 서술은 논박 가능한 서술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다음 서술은 분명히 경험적으로 논박가능하다: ‘이 순간에 그리고 여기 이 상자 속에 적어도 두 개의 진주가 있으며, 그중의 하나는 이 상자 속에서 두 번째로 큰 진주보다 10배 더 크다.’ 그러나 그렇다면 이 서술은 더 이상 엄격하거나 순수한 존재서술이 아니다; 오히려 그 서술은 제한된 존재서술이다. 엄격하거나 순수한 존재서술은 전체 우주에 적용되어서, 그 서술이 논박될 수 있을 방법이 있을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논박불가능하다. 이유인즉 우리의 우주 전체를 탐색할지라도 아마도 그 진주가 항상 우리가 찾지 않는 장소에 아마도 숨어있을 것을 우리가 알기 때문에, 요구된 진주를 우리가 발견하지 못함에 의하여 엄격하거나 순수한 존재서술이 논박되지 않을 터이기 때문이다.
더 흥미로운 경험적으로 논박 불가능한 존재서술의 사례들은 다음과 같다.
‘암에 대하여 완전히 효과가 있는 치료법이 있다, 혹은 더 정확하게, 부작용 없이 복용될 수 있고 암을 치료하는 화학적 화합물이 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 서술은 그런 화학적 화합물이 실제로 알려졌거나 주어진 시간 안에 발견될 것임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유사한 사례들은: ‘모든 전염병에 대한 치료법이 존재한다’와 ‘적당한 의식적(儀式的) 방법으로 독송되면 모든 질병을 치료하는 라틴어 문구가 존재한다.’
여기서 우리들이 참이라고 믿지 않을, 경험적으로 논박 불가능한 서술을 우리가 경험한다. 상상될 수 있는 모든 라틴어 문구를, 그 문구를 독송할 상상될 수 있는 모든 방식과 결합하여 철저히 시험하는 것이 분명히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 서술은 논박될 수 없다. 그리하여 모든 질병을 고치는 능력이 있는 주술적인 라틴어 문구가 아마도 결국 있을 논리적 가능성은 항상 남는다.
그렇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 논박 불가능한 존재서술이 거짓임을 믿는 데서 우리는 정당화된다. 우리는 틀림없이 그 서술의 거짓을 증명할 수 없다; 그러나 질병에 관하여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은 그 서술이 참이 아니라고 알려준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그 서술의 거짓을 확립할 수 없을지라도, 그런 주술적 라틴어 문구가 없다는 추측은 그런 문구가 정말로 존재한다는 논박 불가능한 추측보다 훨씬 더 타당하다.
거의 2,000년을 통하여 박식한 사람들이 이것과 매우 유사한 존재서술의 진리를 신뢰했다고 부언할 필요는 나에게 없다; 이것이 그 사람들이 철학자의 돌(philosopher's stone)을 찾는 일을 계속했던 이유이다. 그 돌을 그들이 발견하지 못한 것에 의하여 어떤 것도 증명되지 않는다 ㅡ 정확하게 존재명제들이 논박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론의 논리적이거나 경험적 논박 불가능성은 틀림없이 그 이론이 사실이라고 믿을 충분한 이유가 아니고, 그러므로 동시에 이 다섯 가지 철학이론들이 논박 불가능하여 그 이론들이 거짓이라고 믿는 나의 권리를 나는 증명했다.
약 25년 전 정확하게 경험적 이론들을 논박 가능한 이론들로서, 그리고 비-경험적 이론들을 논박 불가능한 이론들로서 정의(定義)함에 의하여 경험적이거나 과학적 이론들을 비-경험적이거나 비-과학적인 이론들로부터 구분할 것을 나는 제안했다. 이 제안에 대한 나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론에 대한 모든 진지한 시험은 그 이론을 논박하려는 시도이다. 그러므로 시험가능성은 논박가능성이나 반증가능성과 동일하다. 그리고 우리가 경험적으로 시험될 수 있는 이론들만을 ‘경험적’이거나 ‘과학적’으로 지칭해야 하기 때문에, 경험적이거나 과학적인 이론들로 구분하는 것은 경험적 논박의 가능성이라고 우리는 결론을 내릴 것이다.
이 ‘논박가능성의 기준’이 수용된다면, 철학적 이론들 즉, 형이상학적 이론들은 정의(定義)에 의하여 논박 불가능할 것임을 우리는 즉각 안다.
우리의 다섯 가지 철학 이론들이 논박불가능하다는 나의 주장은 이제 거의 사소하게 들릴 것이다. 동시에 내가 합리주의자일지라도 이 이론들은 ‘거짓’이라고 부를 자격을 갖기 전에 내가 조금도 이 이론들을 논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을 것이다. 이리하여 우리는 우리가 지닌 문제의 핵심에 도달한다:
철학적 이론들 모두가 논박불가능하다면, 어떻게 우리는 참인 철학적 이론과 거짓인 철학적 이론을 구분할 수 있을까?
이것은 철학적 이론들의 논박불가능성으로부터 출현하는 심각한 문제이다.
그 문제를 보다 분명하게 서술하기 위하여, 나는 그 문제를 다음과 같이 다시 언명하고 싶다.
우리는 여기서 세 가지 유형의 이론들을 구분할 것이다.
첫째, 논리적이고 수학적인 이론들.
둘째, 경험적이고 과학적인 이론들.
셋째, 철학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인 이론들.
이 유형들 각각에서 우리는 어떻게 참인 이론들과 거짓 이론들을 구분할 수 있을까?
첫째 이론들에 관하여 답변은 명백하다. 우리가 참인지 거짓인지를 알지 못하는 수학적 이론을 발견할 때마다 우리는, 그 이론을 논박하려고 시도함에 의하여, 처음에는 피상적으로 그 다음에는 더 엄격하게, 그 이론을 시험한다. 우리가 논박에 성공하지 못하면 우리는 그 이론을 증명하려고 시도거나 그 이론에 대한 부정을 논박하려고 시도한다. 우리가 다시 실패한다면, 이론의 진리에 관한 의심이 다시 출현하여 우리는 그 이론을 논박하려고 다시 시도할 것이고, 그렇게 계속하여 마침내 우리는 결정에 도달하거나, 우리들에 너무 어려운 것으로서 그 문제를 보류한다.
상황은 또한 다음과 같이 기술(記述)될 수 있을 터이다. 우리들의 과제는 두 가지 (또는 그 이상의) 반대이론들을 시험하는 것, 즉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우리가 결정을 내릴 때까지 우리는 그 이론들을 ㅡ 둘 중에 한 가지 ㅡ 논박하려고 노력함에 의하여 그 과제를 해결한다. 수학에서 (오직 수학에서만) 그런 결정이 일반적으로 최종적이다: 탐지를 벗어나는 무효한 증거들은 드물다.
우리가 이제 경험과학들을 바라본다면, 우리가 대체로 근본적으로 동일한 절차를 밟는다는 것을 우리는 발견한다. 다시 한 번 우리는 우리의 이론들을 시험한다: 우리는 그 이론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우리는 그 이론들을 논박하려고 시도한다. 유일한 주요 차이점은 이제, 우리가 우리의 비판적 검토에서 경험적 논증들을 또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험적 논증들은 오직 다른 비판적 고찰들과 함께 발생된다. 비판적 사고와 같은 것은 우리들의 주요 도구로 남는다. 관찰들은 우리의 비판적 토론에 맞는다는 조건으로만 사용된다.
이제 우리가 이 고찰들을 철학적 이론들에 적용한다면, 우리의 문제는 다음과 같이 다시 언명될 수 있다:
논박불가능한 철학적 이론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이론을 논박하려는 시도가 아니라면 이론에 대한 비판적 토론은 무엇으로 구성될 수 있는가?
다시 말해서 논박불가능한 이론을 합리적으로 ㅡ 즉, 비판적으로 ㅡ 평가하는 것이 가능한가? 우리가 알기에 증명될 수도 없고 논박될 수도 없는 이론을 지지하거나 반대하여 우리는 어떤 타당한 논증을 예증할 수 있을까?
우리의 문제를 사례들에 의하여 이렇게 다양하게 언명하는 것을 예시하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결정론의 문제를 다시 언급할 것이다. 칸트는 우리가 일식이나 월식을 예측할 수 있는 것처럼 정확하게 인간의 미래 행동을 우리가 예측할 수 없음을 철저하게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태양계의 현재 상태에 관해서보다 인간의 현재 상태에 대해서 ㅡ 인간의 소망과 공포, 인간의 감정들과 인간의 동기들 ㅡ 우리가 훨씬 적게 안다고 상정(想定)함에 의하여 그는 차이점을 설명했다. 이제 이 상정(想定)에는, 암묵적으로 다음 가설이 포함되어 있다:
‘인간의 미래 행동을 예측하는 데 충분할 터인 (참된 자연법칙과 연계하여) 이 인간의 현재 상태에 대한 참인 기술(記述)이 존재한다.’
이것은 물론 다시 순수하게 존재서술이어서, 그리하여 논박이 불가능하다. 이 사실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칸트의 논증을 합리적이고 비판적으로 토론할 수 있을까?
두 번째 사례로서 우리는 다음 논지를 고려할 것이다: ‘세상은 나의 꿈이다.’ 이 논지는 분명히 논박불가능할지라도, 그 논지의 진리를 신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논지를 합리적이고 비판적으로 토론할 수 있을까? 그 논지의 논박불가능성이 비판적 토론에 대한 극복될 수 없는 장애물은 아닐까?
칸트의 결정론 교설에 대하여, 그 교설에 대한 비판적 토론은 칸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함에 의하여 혹시 시작될 것이라고 아마도 생각될 것이다: ‘나의 친애하는 칸트, 충분히 자세해서 우리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참된 기술(記述)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을 따름입니다. 당신이 수행해야 하는 일은 이 기술(記述)이 무엇으로 구성될 터인지를 정확하게 우리에게 말해서 우리가 당신의 이론을 경험적으로 시험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철학적 ㅡ 다시 말해서, 논박불가능한 ㅡ 이론들은 결코 토론될 수 없어서 책임감이 있는 사상가는 합리적 토론이 가능하도록 만들기 위하여 그 이론들을 경험적으로 시험될 수 있는 이론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상정(想定)과 대등할 터이다.
나는 우리의 문제가 지금쯤 충분히 분명해졌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나는 이제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안할 것이다.
나의 해결책은 이것이다: 철학적 이론이, 함축된 ‘그 이론을 수용하든 버리든 마음대로 하라’를 지니고 다른 어떤 것과의 관련성에 대한 암시도 없이 우리에게 던져져, 세상에 대한 고립된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 이론은 정말로 토론이 불가능할 터이다. 그러나 경험적 이론에도 아마도 역시 동일하게 언급될 것이다. 뉴튼 이론이 해결하려고 의도했던 문제들을 우리에게 먼저 설명하지 않고, 누군가가 우리에게 뉴튼의 방정식을 제공한다면, 혹은 뉴튼의 논증을 제공한다면, 우리는 그 이론의 진리를 ㅡ 계시록(Book of Revelation)의 진리와 마찬가지로 ㅡ 합리적으로 토론할 수 없을 터이다. 갈릴레오와 케플러가 산출한 결과들에 대한 지식, 이 결과들에 의하여 해결된 문제들에 대한 지식, 통합된 이론에 의하여 갈릴레오와 케플러의 해답들을 설명하는 것에 관하여 뉴튼이 지녔던 문제에 대한 지식 없다면, 어떤 형이상학적 이론만큼 뉴튼 이론이 토론 불가능함을 우리가 발견할 터이다. 다시 말해서 과학적이든 철학적이든 모든 합리적 이론은, 특정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시도하는 한 합리적이다. 이론은 주어진 문제-상황에 대한 그 이론의 관계에서만 이해가능하고 합리적이어서, 이 관계를 토론함에 의해서만 이론은 합리적으로 토론될 수 있다.
이제 우리가 이론을 한 집합의 문제들에 대하여 제시된 해결책으로서 간주한다면, 이론은 ㅡ 그 이론이 비-경험적이어서 논박 불가능할지라도 ㅡ 즉각 비판적 토론에 적합하다. 이유인즉, 우리가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덜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론은 문제를 해결하는가? 그 이론은 다른 이론들보다 낫게 문제를 해결하는가? 그 이론은 혹시 문제를 변경하기만 했는가? 해결책은 간단한가? 해결책은 결실이 있는가? 다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다른 철학적 이론들과 그 이론은 혹시 모순이 되지 않는가?
이런 종류의 질문들에 의하여 심지어 논박불가능한 이론들에 대한 비판적 토론도 가능할 것임이 밝혀진다.
다시 한 번 나는 구체적인 사례를 언급하고 싶다: 버클리(Berkeley)나 흄(Hume)의 관념론이다 (내가 ‘세상은 나의 꿈이다’라는 단순화된 공식으로 갈음한 관념론). 이 저술가들이 우리에게 그렇게 허황한 이론을 제공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는 것은 괄목할만하다. 이것은 자신의 이론들이 실제로 건전한 상식과 일치한다고 버클리가 반복적으로 주장하는 것으로부터 알려질 것이다. 이제 그들이 이 이론을 제시하게 된 문제 상황을 우리가 이해하려고 시도한다면, 우리의 모든 지식은 기억-상(像)들(memory-images) 사이에서 감각-인상들(sense-impressions)과 연상들(associations)로 환원될 수 있다고 버클리와 흄이 믿었음을 우리가 발견한다. 이 상정(想定)으로 인하여 이 두 철학자는 관념론을 채택하게 되었다; 그리고 흄의 경우에 특히, 매우 탐탁지 않게 여겼다. 흄은 실재론을 감각-인상들로 환원하려는 자신의 시도에서 자신이 실패한 이유만으로 관념론자이었다.
그러므로 지식과 학습에 대한 그의 감각주의적 이론이 어떤 경우에도 부적당하다는 것과, 원치 않는 관념론적 결과들이 없는 덜 부적당한 학습 이론이 있다는 것을 지적함에 의하여 흄의 관념론을 비판하는 것이 완벽하게 합당하다.
유사한 방식으로 우리는 이제 칸트의 결정론을 합리적이고 비판적으로 토론할 수 있을 터이다. 칸트는 자신의 근본적인 의도에서 비결정론자였다: 그가 뉴튼 이론의 불가피한 결과로서 현상적 세상에 대한 결정론을 신뢰했을지라도, 그는 도덕적 존재로서 인간이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의심한 적이 없다. 칸트는 자신을 완전히 만족시키는 정도로 자신의 이론적 및 실용적 철학 사이의 결과적 갈등을 해결하는 데 성공하지 못해서, 실재적 해결책을 발견하는 데 절망했다.
이 문제-상황의 분위기에서 칸트의 결정론을 비판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우리는 그의 결정론이 뉴튼의 이론으로부터 실제로 귀결되는지를 질문할 것이다. 잠시 동안 그의 결정론은 뉴튼의 이론으로부터 귀결되지 않는다고 추측하자. 나는 이 추측의 진리에 대한 분명한 증거 때문에 칸트가 자신의 결정론 교설을 ㅡ 이 교설이 논박 불가능했을지라도 그리고 그가 바로 이 이유 때문에, 그 교설을 논리적으로 어쩔 수 없이 포기하지 않았을지라도 ㅡ 포기하도록 설득을 당했을 터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비합리주의에 대해서도 유사하다. 비합리주의는 처음에 흄(Hume)과 ㅡ 그리고 저 냉철한 분석가인 흄을 읽은 사람들은 이것이 흄이 의도한 바가 아님을 의심할 수 없다 ㅡ 함께 합리적 철학에 들어왔다. 비합리주의는 귀납을 합리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흄의 논리적 증명과 결합되어, 베이컨식의 귀납에 의하여 우리가 사실상 배운다는 흄의 신념이 낳은 비의도적 결과였다. ‘합리적인 정당화 때문에 그만큼 더 악화되었다’가 흄이 이 상황으로부터 필연적으로 도출할 수밖에 없는 결론이었다. 자신에게 불가피한 듯이 보인다면, 불쾌한 결론으로부터 위축되지 않는 진짜 합리주의자에게 특징적인 솔직성으로써 그는 이 비합리적 결론을 수용했다.
그러나 이 경우에, 흄에게 불가피하게 보였을지라도, 불쾌한 결론은 불가피하지 않았다. 우리는 사실상 흄이 믿었던 베이컨적 귀납 기계들이 아니다. 습관이나 관습은 흄이 자체에 할당한 역할을 학습 과정에서 수행하지 않는다. 그래서 흄의 문제는 해소되고 흄의 문제와 함께 흄의 비합리주의적 결론들도 해소된다.
칸트 이후의 비합리주의의 상황도 다소 비슷하다. 특히 쇼펜하우어는 비합리주의에 진정으로 반대했다. 그는 오직 한 가지 욕망으로 서술했다: 이해가 되도록; 그래서 그는 다른 독일 철학자보다 더 명료하게 서술했다. 이해가 되도록 서술하려는 그의 노력으로 인하여 그는 독일어의 위대한 극소수 거장들 중의 한 명이 되었다.
그러나 쇼펜하우어의 문제는 칸트의 형이상학의 문제들이었다 ㅡ 현상적 세상에서의 결정론의 문제, 본질적-물체의 문제, 그리고 본질적-물체들의 세상에 대한 우리 자신의 회원 자격의 문제들이었다. 그는 이 문제들을 ㅡ 가능한 모든 경험을 초월하는 문제들 ㅡ 전형적으로 합리적인 자신의 방식으로 해결했다. 그러나 그 해결책은 비합리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유인즉 쇼펜하우어가 칸트주의자여서 그런 상태로 그가 칸트식 이성(理性)의 한계를 신뢰했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 이성의 한계가 가능한 경험의 한계와 일치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여기에 다시 다른 가능한 해결책들이 있다. 칸트의 문제들은 수정될 수 있고 수정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 수정이 취해야 하는 방향은 비판적, 혹은 자기-비판적 합리주의라는 그의 근본적 관념에 의하여 표시된다. 철학적 문제의 발견은 최종적인 것이 될 수 있다; 그 발견이 한 번 이룩되면 영원하다. 그러나 철학적 문제의 해결은 최종적이 되는 적이 없다. 그 해결은 최종적 증거나 최종적 논박에 근거할 리가 없다: 이것이 철학적 이론들에 있는 논박불가능성의 결과이다. 해결책은 또한 영감을 받은 (혹은 권태에 빠진) 철학적 예언가들의 주술적 주문들에 근거할 리도 없다. 그러나 해결책은 문제-상황에 대한 성실하고 비판적인 검토 및 그 검토의 기초를 이루는 상정(想定)에, 그리고 그 문제-상황을 해결하는 다양하게 가능한 방법에 대한 성실하고 비판적인 검토에 근거할 것이다.
ㅡ 칼 포퍼, “추측과 논박, 과학적 지식의 성장”, 1989년, 195-200쪽 ㅡ
Now both the logical and the empirical irrefutability of a statement or a theory can easily be reconciled with its falsehood. In the case of logical irrefutability this is clear from the fact that every empirical statement and its negation must both be logically irrefutable. For example, the two statements, 'Today is Monday', and 'Today is not Monday', are both logically irrefutable; but from this it follows immediately that there exist false statements which are logically irrefutable.
With empirical irrefutability the situation is a little different. The simplest examples of empirically irrefutable statements are so-called strict or pure existential statements. Here is an example of a strict or pure existential statement. 'There exists a pearl which is ten times larger than the next largest pearl.' If in this statement we restrict the words 'There exists' to some finite region in space and time, then it may of course become a refutable statement. For example, the following statement is obviously empirically refutable: 'At this moment and in this box here there exist at least two pearls one of which is ten times larger than the next largest pearl in this box.' But then this statement is no longer a strict or pure existential statement; rather it is a restricted existential statement. A strict or pure existential statement applies to the whole universe, and it is irrefutable simply because there can be no method by which it could be refuted. For even if we were able to search our entire universe, the strict or pure existential statement would not be refuted by our failure to discover the required pearl, seeing that it might always be hiding in a place where we are not looking.
Examples of empirically irrefutable existential statements which are of greater interest are the following.
'There exists a completely effective cure for cancer, or, more precisely, there is a chemical compound which can be taken without ill effect, and which cures cancer.' Needless to say, this statement must not be interpreted as meaning that such a chemical compound is actually known or that it will be discovered within a given time.
Similar examples are: 'There exists a cure for any infectious disease,' and, 'There exists a Latin formula which, if pronounced in proper ritual manner, cures all diseases.'
Here we have an empirically irrefutable statement that few of us would hold to be true. The statement is irrefutable because it is obviously impossible to try out every conceivable Latin formula in combination with every conceivable manner of pronouncing it. Thus there always remains the logical possibility that there might be, after all, a magical Latin formula with the power of curing all diseases.
Even so, we are justified in believing that this irrefutable existential statement is false. We certainly cannot prove its falsehood; but everything we know about diseases tells against its being true. In other words, though we cannot establish its falsity, the conjecture that there is no such magical Latin formula is much more reasonable than the irrefutable conjecture that such a formula does exist.
I need hardly add that through almost 2,000 years learned men have believed in the truth of an existential statement very much like this one; this is why they persisted in their search for the philosopher's stone. Their failure to find it does not prove anything - precisely because existential propositions are irrefutable.
Thus the logical or empirical irrefutability of a theory is certainly not a sufficient reason for holding the theory to be true, and hence I have vindicated my right to believe, at the same time, that these five philosophical theories are irrefutable, and that they are false.
Some twenty-five years ago I proposed to distinguish empirical or scientific theories from non-empirical or non-scientific ones precisely by defining the empirical theories as the refutable ones and the non-empirical theories as the irrefutable ones. My reasons for this proposal were as follows. Every serious test of a theory is an attempt to refute it. Testability is therefore the same as refutability, or falsifiability. And since we should call 'empirical' or 'scientific' only such theories as can be empirically tested, we may conclude that it is the possibility of an empirical refutation which distinguishes empirical or scientific theories.
If this 'criterion of refutability' is accepted, then we see at once that philosophical theories, or metaphysical theories, will be irrefutable by definition.
My assertion that our five philosophical theories are irrefutable may now sound almost trivial. At the same time it will have become obvious that though I am a rationalist I am in no way obliged to refute these theories before being entitled to call them 'false'. And this brings us to the crux of our problem:
If philosophical theories are all irrefutable, how can we ever distinguish between true and false philosophical theories?
This is the serious problem which arises from the irrefutability of philosophical theories.
In order to state the problem more clearly, I should like to reformulate it as follows.
We may distinguish here between three types of theory.
First, logical and mathematical theories.
Second, empirical and scientific theories.
Third, philosophical or metaphysical theories.
How can we, in each of these groups, distinguish between true and false theories?
Regarding the first step the answer is obvious. Whenever we find a mathematical theory of which we do not know whether it is true or false we test it, first superficially and then more severely, by trying to refute it. If we are unsuccessful we then try to prove it or to refute its negation. If we fail again, doubts as to the truth of the theory may have cropped up again, and we shall again try to refute it, and so on, until we either reach a decision or else shelve the problem as too difficult for us.
The situation could also be described as follows. Our task is the testing, the critical examination, of two (or more) rival theories. We solve it by trying to refute them - either the one or the other - until we come to a decision. In mathematics (but only in mathematics) such decisions are generally final: invalid proofs that escape detection are rare.
If we now look at the empirical sciences, we find that we follow, as a rule, fundamentally the same procedure. Once again we test our theories: we examine them critically, we try to refute them. The only important difference is that now we can also make use of empirical arguments in our critical examinations. But these empirical arguments occur only together with other critical considerations. Critical thought as such remains our main instrument. Observations are used only if they fit into our critical discussion.
Now if we apply these considerations to philosophical theories, our problem can be reformulated as follows:
Is it possible to examine irrefutable philosophical theories critically? If so, what can a critical discussion of a theory consist of, if not of attempts to refute the theory?
In other words, is it possible to assess an irrefutable theory rationally - which is to say, critically? And what reasonable argument can we adduce for and against a theory which we know to be neither demonstrable nor refutable?
In order to illustrate these various formulations of our problem by examples, we may first refer again to the problem of determinism. Kant knew perfectly well that we are unable to predict the future actions of a human being as accurately as we can predict an eclipse. But he explained the difference by assuming that we know far less about the present conditions of a man - about his wishes and fears, his feelings and his motives - than about the present state of the solar system. Now this assumption contains, implicitly, the following hypothesis:
'There exists a true description of the present state of this man which would suffice (in conjunction with true natural laws) for the prediction of his future actions.'
This is of course again a purely existential statement, and it is thus irrefutable. Can we, in spite of this fact, discuss Kant's argument rationally and critically?
As a second example we may consider the thesis: 'The world is my dream.' Though this thesis is clearly irrefutable, few will believe in its truth. But can we discuss it rationally and critically? Is not its irrefutability an insurmountable obstacle to any critical discussion?
As to Kant's doctrine of determinism, it might perhaps be thought that the critical discussion of it might begin by saying to him: 'My dear Kant, it simply is not enough to assert that there exists a true description that is sufficiently detailed to enable us to predict the future. What you must do is tell us exactly what this description would consists of, so that we may test your theory empirically.' This speech, however, would be tantamount to the assumption that philosophical - that is, irrefutable - theories can never be discussed and that a responsible thinker is bound to replace them by empirically testable theories, in order to make a rational discussion possible.
I hope that our problem has by now become sufficiently clear; so I will now proceed to propose a solution of it.
My solution is this: if a philosophical theory were no more than an isolated assertion about the world, flung at us with an implied 'take it or leave it' and without a hint of any connection with anything else, then it would indeed be beyond discussion. But the same might be said of an empirical theory also. Should anybody present us with Newton's equations, or even with his arguments, without explaining to us first what the problems were which his theory was meant to solve, then we should not be able to discuss its truth rationally - no more than the truth of the Book of Revelation. Without any knowledge of the results of Galileo and Kepler, of the problems that were resolved by these results, and of Newton's problem of explaining Galileo's and Kepler's solutions by a unified theory, we should find Newton's theory just as much beyond discussion as any metaphysical theory. In other words every rational theory, no matter whether scientific or philosophical, is rational in so far as it tries to solve certain problems. A theory is comprehensible and reasonable only in its relation to a given problem-situation, and it can be rationally discussed only by discussing this relation.
Now if we look upon a theory as a proposed solution to a set of problems, then the theory immediately lends itself to critical discussion - even if it is non-empirical and irrefutable. For we can now ask questions such as, Does it solve the problem? Does it solve it better than other theories? Has it perhaps merely shifted the problem? Is the solution simple? Is it fruitful? Does it perhaps contradict other philosophical theories needed for solving other problems?
Questions of this kind show that a critical discussion even of irrefutable theories may well be possible.
Once again let me refer to a specific example: the idealism of Berkeley or Hume (which I have replaced by the simplified formula 'The world is my dream'). It is notable that these authors were far from wishing to offer us so extravagant a theory. This may be seen from Berkeley's repeated insistence that his theories were really in agreement with sound common sense. Now if we try to understand the problem situation which induced them to propound this theory, then we find that Berkeley and Hume believed that all our knowledge was reducible to sense-impressions and associations between memory-images. This assumption led these two philosophers to adopt idealism; and in the case of Hume, in particular, very unwillingly. Hume was an idealist only because he failed in his attempt to reduce realism to sense-impressions.
It is therefore perfectly reasonable to criticize Hume's idealism by pointing out that his sensualistic theory of knowledge and of learning was in any case inadequate, and that there are less inadequate theories of learning which have no unwanted idealistic consequences.
In a similar way we could now proceed to discuss Kant's determinism rationally and critically. Kant was in his fundamental intention an indeterminist: even though he believed in determinism with respect to the phenomenal world as an unavoidable consequence of Newton's theory, he never doubted that man, as a moral being, was not determined. Kant never succeeded in solving the resulting conflict between his theoretical and practical philosophy in a way that satisfied himself completely, and he despaired of ever finding a real solution.
In the setting of this problem-situation it becomes possible to
It may also be seen from Hume's frank admission that 'whatever may be the reader's opinion at this present moment,... an hour hence he will be persuaded there is both an external and internal world' (Treatise, I, IV, end of section ii; Selby-Bigge, p. 218).
criticize Kant's determinism. We may ask, for example, whether it really follows from Newton's theory. Let us conjecture for a moment that it does not. I do not doubt that a clear proof of the truth of this conjecture would have persuaded Kant to renounce his doctrine of determinism - even though this doctrine happens to be irrefutable and even though he would not, for this very reason, have been logically compelled to renounce it.
Similarly with irrationalism. It first entered rational philosophy with Hume - and those who have read Hume, that calm analyst, cannot doubt that this was not what he intended. Irrationalism was the unintended consequence of Hume's conviction that we do in fact learn by Baconian induction coupled with Hume's logical proof that it is impossible to justify induction rationally. 'So much the worse for rational justification' was conclusion which Hume, of necessity, was compelled to draw from this situation. He accepted this irrational conclusion with the integrity characteristic of the real rationalist who does not shrink from an unpleasant conclusion if it seems to him unavoidable.
Yet in this case it was not unavoidable, though it seemed to be so to Hume. We are not in fact the Baconian induction machines that Hume believed us to be. Habit or custom does not play the role in the process of learning which Hume assigned to it. And so Hume's problem dissolves and with it his irrationalist conclusion.
The situation of post-Kantian irrationalism is somewhat similar. Schopenhauer in particular was genuinely opposed to irrationalism. He wrote with only one desire: to be understood; and he wrote more lucidly than any other German philosopher. His striving to be understood made him one of the few great masters of the German language.
Yet Schopenhauer's problems were those of Kant's metaphysics - the problem of determinism in the phenomenal world, the problem of the thing-in-itself, and the problem of our own membership of a world of things-in-themselves. He solved these problems - problems transcending all possible experience - in his typically rational manner. But the solution was bound to be irrational. For Schopenhauer was a Kantian and as such he believed in the Kantian limits of reason: he believed that the limits of human reason coincided with the limits of possible experience.
But here again there are other possible solutions. Kant's problems can and must be revised; and the direction that this revision should take is indicated by his fundamental idea of critical, or self-critical, rationalism. The discovery of a philosophical problem can be something final; it is made once, and for all time. But the solution of a philosophical problem is never final. It cannot be based upon a final proof or upon a final refutation: this is a consequence of the irrefutability of philosophical theories. Nor can the solution be based upon the magical formulae of inspired (or bored) philosophical prophets. Yet it may be based upon the conscientious and critical examination of a problem-situation and its underlying assumptions, and of the various possible ways of resolving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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