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재를 말하려면 논박을 수용하라
논박에 (토끼들이나 물방울들이나 속도들에 의하여 제공되는 것과 같은) 직면하여 우리가 원칙을 근거로, 우리의 서술들을 방어하기로 결심한다면, 우리는 실재에 관하여 말하고 있지 않다. 우리가 논박을 수용한다는 조건에서만 우리는 실재에 관하여 말한다. 라일 교수의 언어로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우리가 논박을 준수하는 방법을 안다는 조건으로만 우리는 실재에 관하여 말하는 방법을 안다. 이 각오 즉, ‘방법 지식’을 언명하고 싶으면, 우리는 과정의 규칙의 도움을 받아서 다시 그렇게 해야 한다. 실행 규칙만이 여기에서 우리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명백한데, 이유인즉 실재에 관하여 말하는 것이 실행이기 때문이다.
IX
나의 마지막 언급들로 ㅡ (c)에 관한 ㅡ 인하여 우리가 지닌 다면적인 문제의 가장 중요한 모습으로 내가 믿는 것에 대한 해답이 발견될 방향이 밝혀진다. 그러나 그 문제는 더 깊이 고찰될 수 있다고 내가 믿는다는 것을 명백히 하지 않고 나는 이 논문을 끝내고 싶지 않다. 왜 우리는 조금이라도 실재에 관하여 말하는 것에 성공할까라고 우리는 물을 수 있을 터이다. 우리가 실재에 대하여 말할 수 있기 위하여 실재에 틀림없이 확정적인 구조가 있음은 사실이 아닐까? 우리는 짙은 안개와 같을 실재에 대하여 ㅡ 그리고 다른 것과 고체 및 운동은 말고 ㅡ 상상할 수 없을 터인가? 또는 혹시 어떤 변화들이 ㅡ 예를 들어, 다소 무한한 빛의 변화들 ㅡ 안에 있는 안개와 같은 것을 상상할 수 없을 터인가? 물론 이 세상을 기술(記述)하려는 바로 나의 시도에 의하여 나는 이 세상이 우리의 언어로 기술(記述)될 수 있음을 밝혔지만, 이것은 여하한 그런 세상이 그렇게 기술(記述)될 수 있을 터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런 형태로 그 문제가 매우 중대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 문제가 너무 빨리 배격되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상 우리의 물리적 환경을 ㅡ 더 정확하게, 적당히 느리게 움직이는 중간 크기의 물리적 물체들을 ㅡ 기술(記述)하고 다루기 위한 도구로서 주로 발전한 우리의 언어에 의하여 합당하게 기술될 수 없는 세상에 우리 모두가 매우 친숙하게 익숙하다고 나는 믿는다. 내가 염두에 두고 있는 기술(記述)될 수 없는 세상은 물론, 내가 ‘염두에’ 두고 있는 세상이다 ㅡ 대부분의 심리학자들이 (행동주의자들을 제외하고), 물리학의 언어로부터 생물학의 언어로부터, 그리고 사회생활의 언어로부터 얻어진 한 무리의 은유들에 지나지 않는 것의 도움을 받아서 기술(記述)하려고 시도하지만 다소 성공하지 못하는 세상.
그러나 기술(記述)될 세상이 어떠하든, 그리고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들이 무엇이고 그 언어들의 구조가 무엇이든,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한 가지 것이 있다: 세상을 기술(記述)하는 데 대한 우리의 관심이 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참인 기술(記述)에 그리고 추론에 ㅡ 다시 말해서 참인 전제들로부터 참인 결론들로 향하는 조작들에 ㅡ 관심을 가질 것이다. 다른 한 편으로 우리의 평범한 언어들이 세상을 기술(記述)하기 위한 최고의 수단들이라고 믿을 이유는 틀림없이 없다. 반대로 그 언어들은 우리 자신의 물리적 세상을 더욱 세밀히 기술(記述)하기 위한 최고의 가능한 수단들조차도 아마 아니다. 수학의 발달은, 평범한 언어들의 특정 부분들에 관한 다소 인위적 발달인데, 그 발달로 인하여 새로운 언어적 수단으로써 새로운 종류의 사실들이 기술(記述)될 수 있음이 밝혀진다.
ㅡ 칼 포퍼, “추측과 논박, 과학적 지식의 성장”, 1989년, 212-213쪽 ㅡ
If we are determined, on principle, to defend our statements in the face of refutations (such as are provided by rabbits or drops or velocities), we are not speaking about reality. Only if we are ready to accept refutations do we speak about reality. In Professor Ryle's language, we should have to say: Only if we know how to abide by a refutation do we know how to speak about reality. If we wish to formulate this readiness or 'knowledge how', then we have to do it again with the help of a rule of procedure. It is clear that only a performance rule can help us here, for speaking about reality is a performance.1
1 With these questions, cp. my L. Sc. D.
IX
My last remarks - on (c) - indicate the direction in which, perhaps, an answer may be found to what I hold to be the most important aspect of our many-sided problem. Yet I do not wish to conclude this paper without making it quite clear that I believe the problem can be taken further. Why, we could ask, are we at all successful in speaking about reality? Is it not true that reality must have a definite structure in order that we can speak about it? Could we not conceive of a reality which would be like a thick fog - and nothing else, no solids, no movement? Or perhaps like a fog with certain changes in it - rather indefinite changes of light, for example? Of course, by my very attempt to describe this world I have shown that it can be described in our language, but this is not to say that any such world could be so described.
I do not think that, in this form, the question is a very serious one, but I also do not think that it should be too quickly dismissed. In fact, I believe that we are all most intimately acquainted with a world that cannot be properly described by our language which has developed mainly as an instrument for describing and dealing with our physical environment - more precisely, with physical bodies of medium size in moderately slow motion. The indescribable world I have in mind is, of course, the world I have 'in my mind' - the world which most psychologists (except the behaviourists) attempt to describe, somewhat unsuccessfully, with the help of what is nothing but a host of metaphors taken from the languages of physics, of biology, and of social life.
But whatever the world to be described may be like, and whatever may be the languages we use, and their logical structure, there is one thing we can be sure of: as long as our interest in describing the world does not change, we shall be interested in true description, and in inferences - that is to say, in operations which lead from true premises to true conclusions. On the other hand, there is certainly no reason to believe that our ordinary languages are the best means for the description of any world. On the contrary, they are probably not even the best possible means for a finer description of our own physical world. The development of mathematics, which is a somewhat artificial development of certain parts of our ordinary languages, shows that with new linguistic means new kinds of facts can be describ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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