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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북한편도 한국편도 아니다.... 구동존이 자세 필요" -중국 초대 한국 대사 장팅옌 -

이윤진이카루스 2012. 1. 5. 10:50

“중국은 북한편도 한국편도 아니다…구동존이 자세 필요”

한-중 수교 20돌 오늘의 동북아, 내일의 세계
장팅옌 초대 주한 중국대사 인터뷰
* 구동존이 : 求同存異: 차이점을 인정하면서 같은 점을 추구함

 

김정일, 유능하고 지혜로워 인기
김정일 사후 북한 정세 안정돼
질서정연하게 여러 문제 처리
주변국, 평화·안정 위해 노력해야

“김일성 주석에게 첸치천 외교부장이 직접 장쩌민 주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한국과 수교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북한의 사회주의 건설을 지지하는 입장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 했다. 김일성 주석은 ‘중국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했다. 분위기가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북한의 양해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장팅옌(76) 초대 주한 중국대사는 북한 김일성 주석에게 한-중 수교 결정을 통보하러 갔던 1992년 7월15일의 기억을 지금도 생생히 떠올린다. 그는 첸치천 당시 외교부장과 함께 특사단의 일원이었다. 한달여 뒤인 8월24일 한국과 중국은 수교합의서에 서명했다. “두 나라 외무장관이 합의서에 서명하는 순간, 양국관계 역사의 새로운 페이지가 펼쳐지는 감동을 느꼈다.”

장 전 대사는 한-중 수교와 한-중 관계 초기 역사의 ‘주역’이다. 수교협상 당시 중국 외교부 아주국 부사장(부국장)으로 비밀협상에 참여했고, 수교가 이뤄지자마자 첫 주한대사로 부임해 6년 동안 활약했다. 지난 12월 말 베이징의 인민우호협회에서 만난 장 전 대사는 여전히 유창한 한국어로 한-중 수교와 한반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는 “한-중 수교는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1982년 중국에선 냉전 사고에서 벗어나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사상에 따라 한국과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결정이 있었다. 덩샤오핑은 한국의 존재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수교하면 중국, 한국,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다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1992년 5~7월 양국 대표단은 극비리에 수교협상을 진행했다. 장 전 대사는 “수교협상을 비밀리에 하는 것은 우리도, 한국도 희망했다. 한국은 ‘서울에서 하면 눈이 많다. 베이징에서 하자’는 뜻을 전해왔다”고 회상했다. “한국은 대만과의 외교관계를 고려해야 했고, 중국으로서도 북한이 한-중 수교를 좋아하지 않고 심지어 ‘한국과 수교하지 말라’는 의사를 물밑에서 전해오는 상황을 고려해야 했다.”

베이징서 2차례, 서울서 1차례
3개월간 극비리에 수교협상
김일성, 장쩌민 메시지 전달받고
중국의 결정 존중한다고 밝혀

협상은 베이징에서 2차례, 서울에서 1차례로 마무리됐다. 장 전 대사는 “6개월 넘게 걸리지 않을까 예상했으나 3개월 만에 협상이 다 끝났다”며 “중국과 수교하면 대만과 단교해야 한다는 요구에 한국은 난색을 보였으나 북방정책을 추진한 노태우 대통령이 직접 결단을 내렸다”고 했다. 또 “한국 쪽이 한국전쟁 문제를 특별하게 제기하지는 않았고, 대한민국의 영토 완정(완전한 보전)을 인정하라고 주로 요구했다”며 “중국도 한반도는 원래 하나이고 당분간 두 나라로 분단돼 있지만 최종적으로는 통일될 것으로 보고, 이에 맞춰 우리 정책도 어느 정도 수정했다”고 했다.

 





한-중 수교로 무엇이 가장 달라졌느냐는 질문에 그는 “전쟁 위험이 낮아지고 한반도 정세가 점차 평화와 안정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 원래 불가능했던 6자회담, 북-미 회담이 가능해졌고, 남북관계도 지난해 긴장 국면이 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어느 정도 완화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중-한 수교 이후부터 중국의 한반도 정책이 달라졌다”며 “중국은 북한 편도 아니고 한국 편도 아닌 균형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화는 한반도 정세로 흘러갔다. 장 전 대사는 “김정일 위원장도 여러 차례 만났다. 1983년 6월 김 위원장이 첫 외국 방문으로 중국을 방문했을 때 만났고 그해 9월 중국 대표단이 북한 건국 35돌 기념행사에 참석했을 때도 수행했는데 김 위원장이 주재한 특별만찬에서 함께 건배도 하고 술도 같이 마셨다”고 회상했다. 그는 직접 만나본 김 위원장에 대해 “유능하고 지혜롭고 인기도 있었다”고 평가했다.

천안함 이후 신뢰문제 드러나
한반도 안정이 무엇보다도 중요
중국이 한-미동맹 납득하듯
한국도 북-중관계 이해해야

김 위원장 사후 북한 정세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북한은 아주 질서정연하게 여러 문제를 처리하고 있는 느낌이다. 정세도 안정이 되고 있고 잘 처리돼 가고 있다. 북한 내부가 안정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전망했다. 아울러 “주변 국가 모두 남의 위기가 있는 시기를 이용해 뭘 하겠다는 태도를 피해야 하고, 평화와 안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방향에 대해서는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 이틀 전에 대형마트를 시찰한 것을 보면 중국의 개혁개방을 따라 배우려는 움직임이 아닌가 하는 해석도 있다”며 조심스럽게 경제개혁을 기대하기도 했다.

» 1992년 8월27일 한-중 수교에 따라 서울 명동에 들어선 중국대사관 정원에서 페이자이 주한 중국 임시대사가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처음으로 게양하고 있다. 보도사진연감
초대 주한 중국대사로서 한-중 관계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제안도 많았다.

그는 “첫 주한 중국대사로서 영광이고 기뻤지만, 어깨에 무거운 사명을 지고 부임했다”며 “두 나라가 수십년 동안 외교관계도 없이 지내 한국의 상황도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잘할 수 있을까 심정이 무거웠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첫 주한 중국대사로 지내는 동안 큰 어려움이 없었고 업무도 순조로웠다. 수교 초기였고 밀월기, 고조기였다”고 평가했다.

현재 한-중 관계에서 갈등이 드러나고 한국인들 사이에서 ‘중국위협론’이 확산되는 상황에 대해 장 전 대사는 “수교협상에 참여한 우리로서도 상상 못할 만큼 한-중 관계가 발전했지만,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는 아직 부족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천안함 사건 이후 양국간 이해와 신뢰 문제가 드러났다. 한국은 중국이 북한 편 아닌가 하는데, 아니다. 긴장을 낮춰야 한반도에서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 길로 나갈 수 있다. 한국분들이 이 문제에 대해 중국 처지를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

한-미 동맹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한국과 미국동맹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이해한다. 역사적, 현실적 원인이 있기 때문에 중국도 한국이 미국과 절대로 관계하지 말라고 요구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신 “한국도 중국-북한의 관계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과 수교 이후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잘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고 있다. 그것이 한반도 전체의 평화와 안정에 도움이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중국은 북한 편도 아니고 한국 편도 아니다.” 그는 여러 차례에 걸쳐 한반도 안정이 가장 중요하다는 중국의 뜻을 밝혔다.

한-중 관계의 미래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현재 갈등과 이견이 약간 많아진 것은 한-중 관계가 발전·심화되고 교류가 많아진 결과”라며 “한-중 관계가 이전보다 퇴보한 것은 아니고, 갈등이 양국관계의 주류가 아닌 지류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아울러 “대화와 협상을 통해 이해를 깊게 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고, 한순간에 해결할 수는 없어도 이후에 해결되도록 하는 ‘구동존이’(차이점을 인정하면서 같은 점을 추구함)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베이징/글·사진 박민희 특파원 minggu@hani.co.kr

 


» 장팅옌 초대 주한 중국대사와 아내 탄징(오른쪽)은 모두 20년 전 한-중 수교협상에 참여했다.
장팅옌은 누구
덩샤오핑 등 조선어 통역북-중관계 중요한 증인

장팅옌 전 대사는 1958년 베이징대 동방어과(조선어 전공)를 졸업한 뒤 외교관 생활 41년 중 15년은 북한에서, 6년은 한국에서, 나머지 기간엔 본부에서 한반도 관련 업무를 맡았으며, 은퇴 뒤에도 지금까지 한중우호협회 부회장으로 한평생 한반도와 긴 인연을 맺었다. 북-중 관계의 중요한 증인이기도 하다. 저우언라이 전 총리와 덩샤오핑 전 중앙군사위 주석 등 중국 지도자들의 조선어 통역으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여러번 만났다.

초대 중국대사로 활동하는 동안 그는 한국인들과의 사이에 “감동적인 일들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길을 걷고 있는데 친근감을 보이며 말을 걸어와 대화를 한 일도 여러번 있었고, 차를 타고 가다 길을 잃어 지나가는 차의 기사에게 길을 묻자 못 찾아갈까봐 계속 우리 차를 따라오면서 길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장 전 대사는 아내 탄징과 함께 부부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딴 ‘옌징’이란 필명으로 <무궁화의 나라 한국> <출사한국> 등 한국을 소개하는 책들을 펴내고 있다. 탄징도 한-중 수교 당시 외교부 아주국 1등 서기관으로 수교협상에 참여했던 외교관이다. 베이징/박민희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