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먹는다
이리저리 쪼개어 시간을 먹는다,
지랄총량법칙에서 야금야금 없애면
마지막에 없어지는 것?
지랄은 동물이고
죄짓고 사는 사람의 것이지.
불행 아니고 다행인데
동물에게 명상이나 참선 없기 때문.
신호는 동물도 서로 주고받고
기초적 표현도 내놓지만
설명하는 존재는 인간뿐
지적하고 항의하는 능력
더욱 인간의 몫인데
왜 그럴까?
아테네의 현인처럼
육체는 내가 아니라고
말하면 늦었을까
다시 태어날까,
명상의 시간 통하여
참선과 침묵의 동굴에서?
산다는 것
동물에게 무조건이지만
인간에게 동물 기간 지나면 조건이 된다.
늙으면 모두 필요하지 않으니 혼자 살아라?
예수와 석가모니의 고독
최후까지 남아
죽음보다 고통스럽지 않았을까.
혼자 살아갈 만큼 현명하냐고,
고독이 죽음에 이르는 병이 아니라
어차피 홀로 가는 길이니 즐길 수 있겠나?
후기:
‘인생은 백치가 떠드는 이야기와 같아
음향과 분노로 가득 차 있고
아무 의미도 없다.’
It is a tale
Told by an idiot, full of sound and fury,
Signifying nothing.
ㅡ 맥베스(Mcbeth)의 마지막 독백, Tomorrow, and tomorrow, and tomorrow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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