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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세노파네스의 의한 새로운 직업윤리

이윤진이카루스 2024. 9. 24.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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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세노파네스에 의한 새로운 직업윤리

 

부록 2

크세노파네스의 진리론에

근거한 새로운 직업윤리에

대한 몇 가지 원칙

 

나는 새로운 직업윤리에 대한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싶은데, 그 원칙은 내가 오랫동안 느끼기에 매우 필요하며 크세노파네스의 진리론에 근거한 원칙들이며 크세노파네스의 도덕론 및 지적(知的) 솔직성과 연관되어 있다.

이 목적에 관하여 나는 먼저 낡은 직업윤리를 규정하고 아마도 조금 그 윤리를 희화화(戱畵化)할 것이다. 이것은 나중에 내가 제시하는 새로운 직업윤리와 비교하고 대조하기 위해서다. 이 새로운 윤리가 지식인의 직업에 관한 전통적 윤리보다 ㅡ 과학자, 의사, 법률가, 기술자, 건축가, 그리고 또한 공무원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정치가의 윤리 ㅡ 인간행동에 대한 나은 지침으로 판명된다면, 심지어 윤리 분야에서도 새로운 것들이 습득될 수 있다는 나의 주장이 허용될 것이다.

 

낡은 직업윤리와 새로운 직업윤리 모두가, 진리라는 합리성이라는 그리고 지적(知的) 책임이라는 관념들에 근거한다고 인정된다. 그러나 낡은 윤리는 개인적 지식과 확실성에 도달하는 가능성이라는 관념에 근거했다; 그러므로 권위라는 관념에 근거했다. 대조적으로 새로운 윤리는 객관적 지식이라는 그리고 불확실한 지식이라는 관념에 근거한다. 이것은 사고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하는데, 그와 함께 진리라는 합리성이라는 그리고 지적(知的) 솔직성과 책임이라는 관념들에 의하여 수행되는 역할에서의 변화를 의미한다.

낡은 이상은 진리와 확실성 모두를 소유하, 가능할 때마다 증거를 통하여 진리를 보증하는 것이었다. 이 이상은, 오늘날까지 광범위하게 수용되는데, 현자(賢者)라는 개인적 이상과 대응한다 ㅡ 물론 소크라테스식 지혜라는 이상과 대응하지 않고 오히려 창시적 선지자라는 플라톤적 이상과 대응한다: 동시에 제왕적 통치자요 권위자인 플라톤적 철학자라는 이상과 대응한다.

지식인들에 대한 낡은 지침은 이렇다: ‘권위자가 되라! (적어도 당신이 선택한 전문적 지식의 분야에서라도) 모든 것을 알고 있어라!’ 당신이 권위자로 인정되는 순간부터 당신의 권위는 당신의 동료들에 의하여 보호되리라; 그리고 물론 당신은 동료들의 권위를 보호함으로써 보답해야 한다.

여기에 기술된 낡은 윤리는 오류의 여지가 없다. 오류는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오류를 고백하는 일이 허용되지 않는다. 나는 이 낡은 직업윤리가 무관용적이라고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 게다가 그 윤리는 지적(知的)으로 항상 솔직하지 못했다: 그 윤리는 특히 의학과 정치에서 권위를 위하여 오류를 은폐하는 결과를 낳았다 (‘붕당’).

그러므로 나는 새로운 직업윤리가 과학자에게도 들어맞을 뿐 아니라 다음 12 가지 원칙에 근거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1 우리가 지닌 객관적인 추측성 지식은 사람이 통달할 수 있는 것을 점점 더 지속적으로 능가한다. 그러므로 권위자들이란 없다. 이것은

심지어 다양한 의학적 전문지식에도 성립한다.

2 모든 종류의 오류를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심지어 본질적으로 피할

수 있는 저 모든 오류도 피할 수 없다. 오류는 모든 과학자에 의하여

지속적으로 저질러진다. 오류를 피할 수 있고 그러므로 사람은 오류를

피할 의무를 지고 있다는 낡은 개념은 수정되어야 한다: 그 개념 자체가

오류이다.

3 오류를 피하기 위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한다는 것은 여전히 우리의 의무로 남는다. 그러나 우리가 오류를 피하면서 난관을

인식해야 함과, 아무도 오류 모두를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함은 정확하게 오류를 피하려는 목적이다; 심지어 직관의 안내를 받는

가장 창조적인 과학자들도 오류를 피하는 데 성공하지 못한다. 우리가

직관 없이 아무 일도 할 수 없을지라도 직관은 올바르기보다는 더 자주

틀린다.

4 오류는 우리가 지닌 가장 입증이 잘된 이론에서도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 오류를 찾아내는 것이 과학자의 구체적 임무이다.

-입증된 이론이나 많이 사용되는 실용적 기술이 오류임을 발견하면

가장 중요한 발견일 것이다.

5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저지르는 오류에 대한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

우리의 실제적 윤리개혁이 시작되어야 하는 곳은 여기이다. 이유인즉

낡은 직업윤리의 태도로 인하여 우리가 우리의 오류를 은폐하고

비밀로 감추고 가능한 한 빨리 그 오류에 대하여 모두 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6 새로운 기본 원칙은, 우리가 필요 이상의 오류를 저지르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우리가 정말로 저지르는 오류로부터 우리는 배워야 한다.

그러므로 오류를 은폐하려고 하는 것은 가장 큰 지성적 죄악이다.

7 그러므로 우리는, 오류를 부단히 경계해야 하는데, 특히 우리 자신이

저지르는 오류를 경계해야 한다. 우리가 오류를 발견할 때 우리는 그

오류를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잘못된 것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모든 면에서 그 오류를 분석해야 한다.

8 자기-비판적 태도, 솔직함, 그리고 자신에 대한 개방성은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지닌 의무의 일부이다.

9 우리가 저지른 오류들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 의하여 그 오류들이 우리에게 지적되면 수용하는 것을, 정말로 감사하면서 수용하는 것을, 우리가 배워야 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오류에 대하여 지적할 때, 우리는 항상 우리 자신이

유사한 오류를 저질렀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위대한

과학자들도 커다란 오류를 저질렀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것은

틀림없이 우리가 오류를 저질러도 일반적으로 용인될 수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주의가 게을러지는 것을 우리가 허용해서는

결코 안 된다. 그러나 오류를 피하는 것은 인간적으로 불가능하여

우리가 다른 사람들이 저지른 오류를 지적할 때 우리는 이것 또한 지적함으로써 그들을 아마도 도울 것이다.

10 우리의 오류를 몇 가지를 발견하여 수정하는 데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필요로 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가 정신적으로 확신해야 한다; 특히 다른 관념들을 지니고 다른 문화적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것. 이것으로 인하여 또한 관용이 발생한다.

11 자기-비판이 최고의 비판임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 의한 비판도 필수적임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에 의한 비판은 거의 자기-비판만큼 훌륭하다.

12 합리적 (혹은 객관적) 비판은 항상 구체적이어야 한다: 그 비판은

구체적 명제인 구체적 가설이 왜 거짓으로 보이는지, 혹은 구체적

논증이 무효로 보이는지 구체적 이유를 내놓아야 한다. 그 비판은

객관적 진리에 더 근접한다는 관념에 의하여 통제를 받아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 비판은 비개인적이어야 하지만 또한 동정적이기도

해야 한다.

 

내가 여기서 제시하는 것을 독자들이 제안들로서 고려하기를 나는 요청한다. 크세노파네스와 그의 후계자들이 처음 발견한 사람들에 속했던 것으로 보이는 바와 같이, 윤리 분야에서도 또한 비판적 토론에 의하여 토론되고 향상될 것인 제안들을 우리가 제시할 수 있음을 지적하려는 의도가 그 제안들에 있다.

과학의 추측성 특징을 더 많거나 더 적게 보편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잘못된 이론들에 대한 논박을 향한 과학자들의 태도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하는데 심지어 과학자들 자신이 내놓는 잘못된 이론들도 그러하다. 인간적인 오류가능성에 대한 태도에서 유사한 변화가 정치에서와 우리의 다양한 상황에서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 내가 민주주의적 유토피아를 꿈꾼다면, 그 유토피아는 국회의원 후보가 지난해 자신은 31가지의 중대한 오류를 범했는데 13가지 오류를 고칠 수 있었다고 자랑함으로써 표를 얻을 수 있는 유토피아일 것이다; 그의 경쟁자 후보는, 자신의 오류 중 13가지를 수정했다고 시인할지라도, 겨우 27가지 오류를 발견한 반면. 이것이 관용의 유토피아가 될 것임을 나는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ㅡ 칼 포퍼 저, 아르네 피터슨 편집, ‘파르메니데스의 세계’, 2007,

62-65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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