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맹과 철학자
나는 (비록 내가 정신분석학자들의 정신분석에 반대하지 않을지라도) 정신분석을 하는 철학자들이나 시인들의 여전히 다소 유행하는 방법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1969년 캔터베리(Canterbury) 출신으로 나의 대학원 제자였던 노엘 브래들리(Noel Bradley) 박사가 나에게 전해 준 괴테에 대한 제안에 감명받았는데 나는 그를 1937년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에서 처음 만났다. 괴테가 아마도 완전히 색맹이었으며, 그로 인하여 색채는 백색과 흑색의 혼합이라는 ㅡ 다시 말해서 모든 색깔은 회색조라는 ㅡ 괴테가 말하는 색채론의 기묘한 이론이 설명될 것이라고 그가 제안하였다. 브래들리는 또한 임상 심리학자로서 자신의 경험에서, 색맹으로 인하여 우리의 일상생활의 실재에 대하여 회의적인 태도가 채택될 것임을 자신이 발견했다고 나에게 알려주었다; 인간의 신뢰성에 불신이 발생하고, 인간들이 당신에게 말하는 것은 자의적인 규약의 강력한 요소를 포함한다는 믿음이 발생한다고 나에게 알려주었다.
이 모든 것은 아주 합당한 듯하다; 그리고 그것은 파르메니데스 역시 완전한 색맹이었을 것임을 나에게 암시했다. 이 추측은 조악할 뿐 아니라 물론 실험이 불가능하기도 하다. 그 추측은 또한 파르메니데스를 해석하는 문제를 푸는 데 실제로 필요하지도 않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 추측은 파르메니데스의 시에 들어맞고 예기치 않게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파르메니데스는 진리의 길에서 색깔을 단 한 번만 언급하는데 그 진리의 길에서 움직임이라는 변화와 색깔의 변화는 비실재적이라고 그래서 그것들은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자 더 정확하게 규약적인 명칭 부여하기인 규약적인 단어 사용으로부터 출현하여 규약이라고 자신이 말한다. 게다가 파르메니데스의 지식론은 물론 색깔이 비실재적임을 의미하는데 파르메니데스에게 언어적 규약으로 이루어진 비실재적 세계인 시각적 현상의 세계에 속한다는 의미에서 색깔이 비실재적임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자신의 견해의 길 바로 앞부분에서 망상의 세계가 빛과 밤(night)의 (한 가지만이 ㅡ 무거운 물질로 구성된 어두운 세계 ㅡ 실재적인 반면, 이 두 가지를 실재적인 것으로서 인간이 수용하거나 인간이 규약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의) 산물이라는 파르메니데스의 논지는, 색깔은 (만약 어떤 것이라면) 색맹인 사람에게 보일 것과 같이 흑색과 백색의 혼합임을 의미한다.
아마도 이 심리적이거나 더 정확하게 생리학적인 추측의 가장 암시적인 측면은, 그 추측으로 인하여 경험의 세계를 향한 파르메니데스의 양면적인 태도에 대한 심리학적인 배경이 설명될 터라는 점이다: 경험의 세계를 그가 여신의 계시에 포함함과 동시에 그가 경험의 세계를 전적으로 배척하는 것; 동시에 자신이 기만적인 말들을 사용하고 있다는 엄숙한 경고를 내놓는 여신.
ㅡ 칼 포퍼 저, 아르네 피더슨 편집, “파르메니데스의 세계”, 2007년, 124-125쪽 ㅡ
'칼포퍼 원전+번역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르메니데스의 새로운 지식론 (1) | 2024.11.24 |
---|---|
파르메니데스와 과학의 방법 (0) | 2024.11.24 |
파르메니데스의 위대성 (0) | 2024.11.24 |
신화와 과학 그리고 그리스 문명의 기적 (0) | 2024.11.24 |
파르메니데스의 세계 논문 5 (번역 수정본) (0) | 2024.10.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