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관념과 파르메니데스
사유의 산물이자 내용인 관념들은 인간의 정신과, 관념들의 심층적 진화가 지향할 방향에 거의 전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것은 종교적 관념들에 관한 한 아주 명백하다: 불교나 기독교의 관념들은 우리의 언어뿐 아니라 우리의 사고, 우리의 모든 조치 그리고 심지어 모든 관찰도 물들이면서 우리를 지배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 철학과 그리스 과학의 가장 오래된 관념 중 몇 가지 관념이 우리의 가장 발전한 과학이론들에 미친 영향을 의식하는 철학자나 과학자는 없다 (에밀 메이에르송[Emile Meyerson]이나 찰스[Charles Khan]의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er]에도 불구하고): 고전물리학과 화학, 상대성, 양자론, 유전학 그리고 심지어 분자생물학에 미친 영향.
나는 여기서 여러분에게, 약 2,500년 전에 살았던 한 위대한 사람의 관념이 서구 과학사상에 여전히 미치고 있는 거의 무한한 힘을 밝히려고 시도하겠다: 엘레아(Elea) 출신의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파르메니데스의 이 관념들에 의하여, 불변을 탐색하는 과학의 목표와 방법들이 결정된다. 그러나 참으로 운명적인 파르메니데스의 이 관념들이 거의 잉태되자마자 일종의 좌절을 겪어 내가 파르메니데스의 변론이라고 부를 것을 유발했고, 이 좌절 또한 운명적이었음을 나는 여러분에게 밝히려고 시도하겠다; 이유인즉 현대 과학에서 파르메니데스의 관념들이 역시 반복해서 좌절을 겪었고 그 좌절로 인하여 전형적인 파르메니데스의 변론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가령 1935년 이래 이 관념들이 아마도 이전보다 더 급진적으로 다시 좌절을 겪었음을 여러분에게 밝히려고 시도하겠다. 그러나 그 관념들이 그렇게 깊고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사고방식에 침투해서 그 관념들을 대체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 사람은 극소수였다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은 데이비드 봄[David Bohm]이다).
나의 이야기에 따르면 파르메니데스의 관념들이 과학적 관념들의 발전에 매우 강력한 장악력을 지녔었기 때문에 내가 파르메니데스를 찬양할 뿐 아니라 또한 파르메니데스의 영향에 크게 감사하고 있음은 (메이에르송이 그랬던 바와 같이) 말할 필요도 없다. 정말로 ‘고전’물리학과 ‘현대’물리학 양쪽 모두의 관념들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것은, 나의 이야기에 따르면, 파르메니데스의 관념들이 지닌 영향력에 감사하는 것과 거의 동일하다.
ㅡ 칼 포퍼 저, 아르네 피터슨 편집, ‘파르메니데스의 세계’, 2007년, 146-147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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