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성과 불변 탐구
지금까지 추측성 믿음에 대한 나의 개인적 고백은 ‘비판적 합리주의’와 ‘실재론’이라는 두 가지 구호에 의하여 요약될 것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하여 나는 이 두 가지를 일찍 진술했어야 한다고 느꼈다. 이유인즉 내가 언급한 바와 같이, 나의 화제는 합리주의와 밀접하게 관련된 번안을 비판하려는 시도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서양과학의 한계를, 그리고 특히 서양 자연과학의 한계를 과거 24세기 동안 결정했던 합리주의의 번안; 많은 합리주의자가 정말로 모든 합리적 과학의 고유한 한계라고 믿는 한계.
내가 염두에 두고 있는 합리주의의 한계는, 과학이 불변 탐색에 엄격하게 국한한다: 변화 동안에도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탐구라는 파르메니데스 (이후) 교설에 의하여 선이 그어진다: 특정 변화 하에서 부단하거나 불변으로 남는 것에 대한 탐구.
합리주의의 이 번안에 대항하여, 불변 탐구가 모든 과학적 과제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 한 가지로 인정될지라도 그 탐구에 의하여 합리성의 한계 즉, 과학적 과업의 한계가 구성되지도 않고 결정되지도 않는다는 추측을 나는 매우 잠정적으로 제안한다.
그러나 이 논문에 관한 나의 계획은 이것을 초월한다. 나의 문제의 역정에 관한 나의 언급 이후 적어도 합리주의에 대한 비합리적 공격 몇 가지에 귀중한 것이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있음을 나는 논증하려고 시도하겠다; ‘창조적’이거나 ‘창발적’ 진화에 대하여 언급했던 저 비합리주의자들이 목격한 귀중한 것이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있음을 나는 논증하려고 시도하겠다. 비합리주의에 양보할 의도도 나에게 없고 생기론(生氣論: vitalism)에는 물론 양보할 의도가 전혀 없다. 그러나 사람은 제안을 ㅡ 특히 자신의 적진에서 나온 제안 ㅡ 배우고 수용할 준비가 항상 되어 있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ㅡ 칼 포퍼 저, 아르네 피터슨 편집, ‘파르메니데스의 세계’, 2007년, 154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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