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와 추측 사이의 인식론적 대립
파르메니데스가 진리와 추측(doxα: dokeō) 사이에 인식론적 대립을 설정한 것은 크세노파네스가 설정한 것보다 (B34 및 35) 훨씬 더 엄중하다: 파르메니데스는 추측(doxα)을 참된 믿음과 부단히 대립시켜서 (크세노파네스는 인간이, 비록 알지 못할지라도 우연히 어떤 참된 견해를 지닐지도 모른다고 인정하는 반면) 진리에 따르면, 움직임과 변화 및 다원성의 세계가 불가능하다고 그는 강조하여 선언한다. 그리하여 이 불가능한 세계의 생성이 설명될 때, 그 세계는 오류에 기인하는 것으로서 명시적으로 기술된다. 내가 느끼기에 그 구절들이 결정적이어서, 이 불가능한 변화의 세계를 ‘내 말의 기만적 요구’로서나 (내가 보기에 올바른 번역인) ‘내 말의 교묘한 요구’로서 (데 산틸라나가 제안하는 바와 같이) 여신이 자신의 기술을 규정하는지에 관한 문제는 논쟁할 필요가 없다. 나는 원본의 경향이 분명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추측(doxα)은 인간의 망상이어서 설명되어야 (그리고 해명되어야) 한다. 이성이 감각들과 (B7에서 완전히 배척당하는) 대립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진리는 추측(doxα)과 대립한다. 그러므로 추측(doxα) 또한 배척된다 ㅡ 게다가 불확실한 방식으로 배척되는 것이 아니다. 추측(doxα)은 파르메니데스와 그의 직계 제자들에게 추측이라기보다 망상이다; 그리고 추측(doxα)은 관념론자 플라톤에 의하여 자체의 위상으로 복원된다.
ㅡ 칼 포퍼 저, 아르네 피터슨 편집, ‘파르메니데스의 세계’, 2007년, 152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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