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은 무엇을 탐구하는가
1. 지식
나는 먼저 지식으로써 시작하겠다. 우리는, 비합리주의(非理性主義: irrationalism)가 다시 한번 유행하게 된 시대에 살고 있다. 결국 내가 과학적 지식을, 우리의 최고이자 가장 중요한 종류의 지식으로서 간주한다고 ㅡ 비록 내가 그 지식을 유일한 지식으로 전혀 간주하지는 않을지라도 ㅡ 선언함으로써 나는 시작하고 싶다. 과학적 지식의 핵심적 특징들은 다음과 같다:
1. 과학적 지식은 이론적일 뿐 아니라 실용적 문제들로써 시작한다.
주요 실용적 문제에 대한 한 가지 사례는 예방 가능한 질병에 대항하는 의술의 싸움이다. 이 싸움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이 싸움으로 인하여 의도하지 않은 매우 심각한 결과가 생겼다: 인구 폭발. 이것은, 오래된 또 다른 문제가 새롭게 시급해졌음을 의미한다: 산아제한이라는 문제. 의술의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한 가지 과제는 이 문제에 대하여 정말로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발견하는 것이다.
1982년 알파크(Alpbach)에서 시행된 강좌. 부제목은 ㅡ ‘나은 세상에 대한 탐구’ ㅡ 저자에
의하여 추가되었다.
우리가 이룩한 가장 큰 업적들이 새로운 문제들을 일으키는 것은 이런 방
식이다.
우주론에서 주요 이론적 문제의 사례는 중력이론이 어떻게 추가적으로 시
험될 것인지와 통합장이론이 어떻게 추가적으로 검사될 것인지 이다. 이론적으로나 실용적으로 모두 중요한 매우 큰 문제는, 면역체계에 대한 지속적 연구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이론적 문제는, 설명되지 않은 자연적 사건들에 대하여 이해될 수 있는 설명을 제시하여 그 설명이 예측하는 바를 통하여 설명적 이론을 시험하는 것을 본질로 한다.
2. 지식은 진리 탐구를 ㅡ 객관적으로 참이고 설명적 이론들의 탐구 ㅡ 본질로 한다.
3. 지식은 확실성 탐구가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저지른다. 인간의 지식 모두는 오류를 저지를 수 있고 그리하여 확실하지 않다. 진리와 확실성을 우리가 예리하게 구분해야 한다고 귀결된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저지른다는 것은, 우리가 실수에 대항하여 부단히 싸워야 한다는 것뿐 아니라 심지어 우리가 가장 신중했을 때도 우리가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우리는 전적으로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을 또한 의미한다.
과학에서 우리가 저지르는 실수는 ㅡ 오류 ㅡ 참이 아닌 이론을 우리가 참으로 간주하는 것을 본질로 한다. (훨씬 더 드물게 우리가 저지르는 실수는, 어떤 이론이 참일지라도 그 이론을 허위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오류인 실수와 싸운다는 것은, 객관적 진리를 탐구하는 것과 허위사항들을 발견하여 제거하기 위하여 가능한 모든 일을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과학적 활동의 과제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과학자로서 우리의 목표는 객관적 진리이다; 더 많은 진리, 더 흥미로운 진리, 더 이해될 수 있는 진리이다. 우리는 확실성을 합리적으로 겨냥할 수 없다. 인간의 지식은 오류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깨닫자마자, 우리가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음을 우리가 결코 완벽하게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또한 깨닫는다. 이것은 아마도 다음과 같이 표현될 것이다:
불확실한 진리들이 ㅡ 심지어 우리가 허위라고 생각하는 참인 서술들 ㅡ 있지만 불확실한 확실성은 없다.
우리가 결코 어떤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없으므로, 확실성 탐구는 가치가 없을 따름이다; 그러나 진리 탐구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 그리고 실수를 탐구함에 의하여 그렇게 하여 우리는 그 실수를 수정할 수 있다.
그리하여 과학이자 과학적 지식은 항상 가설적이다: 그것은 추측성 지식이다. 그리고 과학의 방법은 비판적 방법이다: 진리를 위하여 일하면서 오류들을 찾아서 제거하는 방법이다.
물론 어떤 사람은 칸트가 지칭하는 바와 같이 다음과 같은 “오래되고 유명한 질문”을 나에게 던질 것이다: ‘진리는 무엇인가?’ 그의 주요 저서에서 (884쪽짜리) 칸트는, 진리는 ‘지식의 대상에 대한 지식의 대응’ 외에 (순수이성비판, 2판 본, 82쪽 이하.) 이 질문에 추가적 답변을 제시하기를 거부한다. 나는 매우 유사하게 말할 것이다: 이론이나 서술은, 자체가 말하는 것이 실재에 대응한다면, 참이다. 그리고 나는 이것에 세 가지 추가적 언급을 덧붙이고 싶다.
1. 모호하지 않게 언명된 모든 서술은 참이거나 허위이다; 그리고 그 서술이 허위라면 그 서술에 대한 부정은 참이다.
2. 그러므로 허위 서술들만큼 많은 참인 서술들만 있다.
3. 그런 모호하지 않은 서술 모두는 (그 서술이 참인지 우리가 확실하게 알지 못할지라도) 참이거나, 참인 부정을 지닌다. 이로부터, 진리를 확정된 혹은 확실한 진리와 동일시하는 것은 틀렸음이 귀결된다. 진리와 확실성은 예리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ㅡ 칼 포퍼, ‘나은 세상을 찾아서’, 1996년, 3-5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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